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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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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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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8
추천수 :
60
글자수 :
30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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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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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황도의 비밀결사 (2)

DUMMY

하녀 메리가 길게 비명을 지르고, 그 소리에 메이븐을 돌아본 황도의 시민들이 메리를 따라 '살인이야!' '살인범이야!' 소리질렀다.


"어떻게 따라잡은 거에요?"


"지름길."


뒷골목의 길로 기사단본부를 향해 직선행로로 달리다가 중앙광장 인근에서 베카와 메리, 메튜 삼인방을 따라잡았다.


"메이븐, 이 망할 자식아. 넌 남아서 감시하라니까. 오필리아 하이멜은 어쩌고?"


"신문했더니 자살하더군."


"등신아! 그 것 하나 감시 못해!"


햄보칼 수가 없어서 베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가 옆차기를 날리려고 몸을 틀다가 등 뒤에 업힌 메튜의 신음에 도로 왼발을 땅으로 내렸다. 차이나드레스를 입은 채 발차기를 날리는 미녀를 보려고 집중되었던 길거리 남정네들의 지저분한 시선도 씻은 듯 사라지고, 곧 그들이 애인이나 아내에게 꼬집히며 내는 고통에 찬 괴음성만 광장에 남았다.

평소라면 베카에게 대꾸 했을 메이븐은, 기분이 꿀꿀해 그냥 쓰린 미소나 한 번 짓고, 친절한 메리가 건네준 흰 손수건으로 묵묵히 얼굴에 묻은 오필리아의 빨간 피를 닦았다.


'무수한 시체들... 저게 너야.'


아직도 왼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오필리아의 검은 동공이 눈 앞에 선명했다. 메이븐은 베카와 메리에게 지시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 너희는 메튜 경을 데리고 신전으로 가도록 해. 성신의 신전에 도착해 이 서신을 보여주면 성녀님을 뵐 수 있을 거야. 성녀님께 메이븐 티리얼 백작이 모처에 살아있고, 메튜 경을 치료해주면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면 그 기사의 얼굴까지 재생시켜 주실거야."


"성녀님하고도 친분이 있었어? 아, 하긴 티리얼 백작이니까."


베카가 깜짝 놀라며 메이븐이 건넨 밀봉된 편지를 받아 품에 넣다가 스스로 납득했다.


"그럼 널 신고한 내 포상금, 아니, 아니지 하이멜 공작가 저택에서 벌어진 흉악한 살인사건에 대한 신고는?"


"수도기사단에는 내가 신고하도록 하지. 조서를 작성해 접수하는 것도 전문가인 내가 직접가야 더 빠를 거다. 어쩌면 현장이 훼손되기 전에 불러갈 수 있을 거야."


메이븐이 글라디우스를 세게 움켜쥐며 베카와 메리에게 설명했다. 그리고는 성녀님께 메튜를 데려간다는 소리에 밝아진 메리의 표정과 달리, '역도인 메이븐을 팔아치우면 벌 수 있는 내 포상금은...'이란 생각에 음울해 진 베카를 보며 메이븐이 덧붙였다.


"수도 제2기사단에 속한 옛 부하들에게 맡겨둔 얼마 안 돼는 재산이 있는데 내가 가면 받아올 수 있다. 내 말대로 움직여주고 내 정체를 숨겨주면 너희 셋에게 대가를 치르겠다. 신고포상금보다 최소 두 배 씩 주마."


베카가 씩 웃었다.


"알았어, 레이크웰. 돈은 잊지마."



*



메이븐은 일단 사건접수처로 가기 전 거리의 아무 옷가게에나 들어가 피칠갑이 된 옷을 버리고 말끔한 새 옷을 샀다. 그 뒤 분수대의 물에 메리의 손수건을 넣고 빨기를 반복하며 단검과 손, 목, 머리카락을 닦아내었다.

피만 닦아내는 건 어려웠는지 머리카락의 염색이 연해지며 머릿결이 청남색으로 변했다. 어느 정도 몰골이 정리되자, 메이븐은 글라디우스와 단검을 거지꼴이 된 피묻은 예전 옷으로 감싸 인적이 드문 곳에 숨겼다. 한 눈에도 핏자국이 지저분해서 누가 집어가진 않을 듯 보였다.


그가 수도기사단 사건접수실의 문을 두드리자 여성이 앉아있었다. 안경을 쓰고 묶여있는 머리가 단정히 정돈되지 못한, 30세 전후로 보이는 피로에 절여진 접수담당 사무원이 책상 너머에 서류를 앞뒤로 넘겨보며 인상을 쓰고 있다.


다행히 기사단원이 아니라 민간인이기에 메이븐의 얼굴을 알아본 것 같지는 않았다. 상당히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이라 메이븐은 미소년의 얼굴을 십분 활용해, 순진무구함을 가장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름다우신 누나, 신고할 게 있어요. 저는 레이크웰이라는 평민이고 18살이며, 베이커가 12번지에 살고 있습니다. 방금 오필리아 하이멜 양의 저택에서 큰 폭음이 들렸는데, 도망쳐 온 경비병들이 오필리아 하이멜 마도사의 비밀연구실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요. 그 곳에 들어가보니 100구의 시체가 끔찍하게 희생당한 채 죽어있데요."


"사실이니? 거짓말하면 못 쓴단다."


"사실이에요. 여러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다니는 것을 봐선 목격자도 다수인걸요. 조사팀을 보내서 확인해 봐야할 것 같아요. 호위기사로 있던 소드익스퍼트 중급 메튜 보울더 경은 중상을 입고 성신의 신전으로 실려갔데요."


"그래? 여기 신고접수서 좀 작성해주렴. 맙소사, 황도 한복판에서 100 구의 시신을 바친 흑마법이라... 말세야."


메이븐은 자신이 되살아난 게 들통나진 않을지 고민해 보았다.


시체의 산으로 만든 마법진 중앙에서 메이븐 티리얼이라는 이름은 지웠다. 연구자료는 지금 메이븐의 등 뒤에 있는 마법사 행낭에 담겨있다. 오필리아 하이멜이 죽었으니 그 조수인 그레이시 윈스턴과 성신의 신전에 보낸 삼인방 정도가 메이븐 티리얼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자들이다.


그레이시 윈스턴이야 수배되고 잡아들여져도 검은머리 평민 소년 레이크웰이 메이븐 티리얼이라는 사실까진 알지 못한다.


'삼인방만 정리하면 되는데, 생명의 은인인 메리가 섞여있어서 죽이기는 그렇고... 일단 일리오네를 족쳐서 제2기사단 단원들에게 맡긴 나의 차명재산을 수거한 다음, 그 돈으로 입막음 해야겠군.'


차분하게 계산을 마친 메이븐이 제2수도기사단 접수원에게 덧붙였다.


"아름다우신 누님, 혹시 오늘 빈민가에서 대규모 재산피해가 있었다는 신고는 안 들어왔나요?"


"아, 레이크웰. 너도 베이커가 출신이구나. 그 동네에서 피해접수가 들어오는 중이야. 너희 집에도 파손된 게 있어?"


메이븐은 얼굴은 예쁘지만 성격이 운명적인 개새끼인 녹색머리 여배우를 떠올려보았다. 함께 오필리아의 저택에서 죽을 뻔했고, 동고동락하며 유대감이 생기긴 했지만, 그 정으로 덮기엔 너무 깊은 감정의 골이 패어있었다.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범인을 알거든요. 초록생 긴 생머리에 자기 키만한 양손검을 들고 소드오러로 때려부수고 다녔을 텐데, 이름은 베카이고 황도의 협곡에서 일해요. 입이 거치니까 잡으러 갈 땐 귀마개도 꼭 챙겨가세요."


"정말이니? 고마워, 사실이면 네 덕에 수사가 쉬워지겠구나."


"뭘요. 선량한 시민으로써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요. 잊지말아요. 걔 이름이 베카에요."


메이븐이 그 나이 또래 소년처럼 순진한 미소로 웃어보이자, 접수원 여성이 그 미소년의 예쁜 자태에 한눈 팔려 잠시 눈빛이 멍해졌다.


'...신고하지 않기에는 너의 고통은 내게 너무 큰 행복이야. 베카, 미안.'


"흠! 혹시 제2기사단장이신 일리오네 경은 어디계신가요?"


"응? 제2단장님은 빈민가 사건에서 시미터를 든 소년이라는 증언을 듣더니 바로 뛰쳐나가셨어."


피를 닦아내느라 검은색이 아닌 남청색 머릿결로 바뀐 메이븐은 과연 예상대로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일리오네는 방금전 그 자신이 통과했던 드넓은 황도의 뒷골목 어딘가에서 베카와 그의 흔적을 뒤쫓는 중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추적한다면, 일리오네를 뒷골목 어딘가에서 마주치는 건 시간문제이다.


'어둠의 자매들에 대해 일리오네가 아는 바를 탈탈 털어 알아내야 한다.'


어느새 오필리아에게 너를 죽이고 나도 속죄를 위해 자살하겠다고 허세부리던 건 꿈 속의 일처럼 메이븐의 머리에서 흐려졌다. 메이븐은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과, 어둠의 자매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고생하세요. 누님!"


"응! 잘 가렴 예쁜아! 또 봐."



*



중앙광장에서 메이븐과 헤어진 베카, 메리, 메튜 일행은 성신의 신전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오필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메리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안돼. 아가씨가 돌아가시면 내 고용안정성이..."


베카가 측은했던지 메리를 보며 말했다.


"내가 황도의 협곡에서 일하는데 자리를 알아봐 줄까?


"무슨 일자리인데요? 거기도 하녀써요? 스태프는 극장에서 하루 2시간 쪽잠잔다던데... 여배우라도 시켜주나요?"


"아, 참고로 배우는 하지마. 메리 네가 얼굴이 반반해서 그 놈들이 제안할까봐 그러는데. 배우들 대부분 투잡 뛰면서 굶어죽기 직전이야. 내가 인기배우이고 황도의 협곡이 황도에서 손에 꼽히는 극장인데도 겨우 한 달에 600골드나 번다니까. 게다가 공연계 어르신들 손버릇이 지저분해."


"한달에 600골드요! 와 제 반년치 봉급을 한 달에 버시네요."


"아니면 티리얼 그 새끼도 명색이 소드마스터인데, 인맥이 꽤 될거야. 성녀도 아는 사이래잖아? 메리, 네가 글만 잘 알면 어디에 사무보조원으로 채용시켜 줄지도 몰라."


"메리.. 천사님... 힘을... 내세요."


"꺅! 메튜 경. 정신이 드셨군요. 조금만 참아요. 성신의 신전으로 가는 길이거든요. 성녀님께 데려다 드릴께요.


오필리아의 자살로 당장 거리에 나앉게 된 메리를 위로하던 대화는 어느새 베카의 등에 엎혀있던 메튜의 작은 웅얼거림까지 끼어들자 세 사람의 공통의 적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레이크웰, 코볼트의 콧물을 모아 수영장을 만들어 쳐넣어도 불만이 없어야 할 개새끼."


"내 일터를 파괴했어."


"아아, 기사의 긍지가..."


베카가 오늘 빈민촌에서 이성을 잃고 기물파손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 메리의 고용안정성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주적, 메튜의 생명을 위협하고 얼굴을 끝장내 버린 뒤치기의 달인.


"레이크웰, 아니 메이븐 티리얼 백작... 이게 다 그 자식 때문이야!"


베카가 으드득 이를 가는 순간 저 멀리 아치형의 고색창연한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제 골격 위로 한 글자씩 네모난 판자 위에 정성스레 초록 글씨로 새겨진, 5개의 판자로 만들어진 안내판이 보였다.

그 아래로는 당연하다는 듯 붉은색 글씨로 에스피온 제국 성직자들이 따르는 성신의 말씀이 현수막으로 걸려있었다.



[성] [신] [의] [신] [전]

- 오라! 강인한 몸에 강인한 신성력이 깃든다!



귀엽게 생긴 호랑이와 잿빛 와이번, 그리고 파란 돌고래가 발달된 대흉근을 자랑하듯이 삼각형 몸매를 뽐내며 현수막 좌우와 중앙에 그려져 방문객들을 향해 윙크하고 있었다.

익숙한 듯 아무 감흥이 없는 메리나 고개를 들 힘조차 없는 메튜 경과 달리 베카는 흠칫하고 그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성신의 신전이야?"


"예, 맞아요. 베카님은 처음 와보시는 건가요?"


"응, 나 사실 제국에 온 지 일년 밖에 안됐거든. 그런데 보통 제국에서는 신전이라면 이런 분위기야?"


"우리 에스피온 제국 신전들이 특이하지요. 메이븐 티리얼 백작님이 왕국에서 제국으로 개편되던 시점에 가장 먼저 뜯어고친 곳이 성신의 신전이라고 해요. 그 결과 제국 건국전쟁에서 성신의 성직자들이 혁혁한 공을 세웠지요. 성녀님과 티리얼 백작님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물도 있는걸요."


"으엑, 더러워. 무슨 잘난 게 있다고 메이븐 그 놈을 남주로 했데. 성녀님이 불쌍하네."


"글쎄요... 누가 불쌍한지는."


메리가 애매하게 말 끝을 흐리며 성신의 신전에 먼저 발을 들였다. 친절하고 큼직한 글씨의 안내판이 갈림길에서 둘을 맞이했다. '대연병장'이라고 쓰여진 갈림길의 저편에서 힘찬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둘! 셋! 넷! 하나둘! 높은 산 깊은 골."


베카의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졌다. 반면 메리는 익숙한 듯 아무 감흥없이 안내판을 꼼꼼히 살펴보며

베카는 마른침을 삼키고 길가의 나무에 메어진 두 번째 현수막을 살폈다.


'제731기 환영, [호국] 에스피온 제국은 그대를 원한다! [요람]'


베카의 얼굴이 서서히 벌레라도 씹은 듯이 일그러졌다. 결국 오르막길에서 지나가는 하얀 사제복을 입고 구보하는 남녀사제 12명을 보더니 반대편 길가로 멀리 비켜서서 메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잠깐. 시발 호흡 좀 가다듬고... 후우...하. 후우...하."


"왜 그러세요? 베카님, 어디 아프세요."


"여기 왠지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예? 설마요. 들어간 땐 마음대로지만 나올 땐 아니라니, 그런 막장인 곳이 있을 리 없잖아요.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도 아니고."


"...그러게."


베카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등 뒤의 메튜를 고쳐업고 성녀님이 계시다는 '제1치료사령부'라는 괴상한 이름의 건물로 걸어갔다. 건물은 깔끔했지만 몰개성하게 지어진 3층의 하얀 벽돌건물이었다. 이 건물이 저 건물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은 성신의 신전은 묘하게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게 속으로 메이븐 티리얼 욕 좀 하자... 메이븐 개새끼, 티리얼 나쁜 놈, 벌거벗은 채 동성애자 인큐버스 소굴에 등짝을 탐구 당하러 내던져질 자식.'


베카의 안색이 한 결 편안해졌다.

그 와중에 메리가 능숙하게 치료사령부 건물 내부 민원실의 견습사제에게 메이븐 티리얼이 준 편지를 보여주고 거짓말을 했다.


"네, 네 제2기사단에서 편지전달과 환자치료를 부탁받아서 왔어요. 성녀님께 그 편지를 밀봉된 채로 전해주시면, 성녀님과 사전에 약조된 바가 있어서 조치를 취해주신데요. 아, 환자는 일단 응급실로 옮기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메리의 안내에 따라 베카가 응급실을 찾아가 메튜 경을 눕히자, 당직으로 보이는 치료사제가 달려나와 메튜경의 으깨진 얼굴을 보고 혀를찼다.


*


메이븐은 제2기사단을 나와 다시 일리오네의 흔적을 뒤쫓아 황도의 암흑가로 뛰어들기 전, 단골이던 무기잡화점에 들렀다. 넝마가 된 피묻은 옷에 감췄던 글라디우스와 대머리 도적의 단검을 손에 든 채였다.

끝에서 휘어져 반원을 그리는 콧수염을 코밑에서 양 옆으로 늘어뜨리며 멋드러지게 기른 잡화점 점장이 문을 열고 들어온 남청색 머리 미소년을 반겼다.


"어? 꼬마야, 익숙한데... 너 혹시 티리얼 백작님의 숨겨둔 사생아니?"


"먼 친척입니다. 제 이름은 레이크웰이고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요. 평민이니까 편하게 대하세요."


잡화점 주인은 메이븐의 걸음걸이와 자연스럽게 칼을 손에 쥐는 방법만 보고 메이븐이 검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소년이지만 손님이기에 일단 친절하게 물었다.


"그래, 이렇게 어린 너도 칼밥을 먹나 보구나. 무엇을 도와줄까?"


"이 단검, 소드마스터의 소드오러도 한두번은 막아낼 만큼의 마법적 강화를 원합니다. 마법의 지속시간은 한 시간으로 족합니다."


잡화점 점장은 메이븐으로부터 찌르기용 단검을 받아들더니 손 위에 올리고 그 송곳모양의 단검을 이리 저리 뒤집어 보았다.


"가능하긴 한데... 이건 모양을 보니 뒷골목 도적들이 쓰는 망고슈구나. 게다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피냄새까지 희미하게 나고 있어."


"80골드 지불하겠습니다. 우연하게 길에서 주운 것이고, 소드익스퍼트와 정면 결투하러 하는 것이니 뒤끝은 없을 겁니다. 저는 암살자 같은 게 아닙니다. 그럼 칼을 부딛힐 일도 없이 일격에 끝나니, 소드오러를 버티기 위해 마법강화할 필요도 없지요."


"애늙은이처럼 말하는 구나. 말로 1만골드 빚도 갚겠어. 꼭 죽은 메이븐 티리얼을 보는 것 같군, 허허."


잡화점 점장 토마스 씨가 웃자 아차싶은 메이븐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 나이대 소년 다운 수줍음과 어색함이 묻어나는 동작을 뒤늦게 하기 시작했다.


"제가 나쁜 일에는 쓰지 않겠다고 약속드려요. 앞으로도 자주 들릴께요."


"그래, 너는 싹수 없던 메이븐 새끼처럼 단골이 될 것 같구나."


메이븐은 잡화점 점장의 고인모독아닌 고인모독에 욱하고 주먹을 날리려다 참았다.

잡화점 점장은 레이크웰이라는 평민 소년이 메이븐인 사실을 모른채, 메이븐 티리얼 백작에 대한 불평을 툴툴거리며 대머리 도적의 망고슈를 들고 가게 한 편의 작업장으로 가더니 마법시약을 바르고 소형 스크롤을 찢었다.


"딱 80골드 값어치를 할거야."


"정확히 몇 번 버티냐가 중요합니다."


"마법의 지속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첫 거래니까 앞으로 자주오라고 30분은 서비스야. 소드익스퍼트 하급이라면 아무리 때려도 안부러질 거고, 소드익스퍼트 상급이나 중급이라면 오십번 정도 부딪혀도 안부러질거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마나로 강화된 상대방의 신체능력에 완력으로 밀려서 칼을 놓치면 뭐... 끝이지. 허허, 오늘이 우리의 거래 첫날이자 마지막 날이되려나?"


웃는 얼굴로 살벌한 소리를 내뱉는 잡화점 점장에게 욕을 한바가지 퍼부으려다, 말은 저래도 서비스로 30분어치 마법을 더 걸어주는 사람이라 메이븐은 참았다. 입은 험하지만 거래에서 서비스는 듬뿍 얹어주는 괴짜 잡화점이기에 단골로 다녀온 것이다.

실력은 의심할 바 없다.


"상대가 소드마스터라면?"


"소드마스터가 무슨 동네 형이나 옆집 아가씨냐? 나도 꽥 디져버린 메이븐 그 놈 외에는 본 적이 없다."


'응, 그런데. 옆집 아줌마하고 나하고, 앞집 할아버지 등등...'


메이븐은 목구멍이 간질거리는 가운데 인내심으로 억눌렀다. 그러던가 말든가 무기잡화점 점장은 마법으로 강화되어 은은한 파란 광채를 내뿜는 대머리 도적의 단검을 들어올려 검신 전체에 골고루 강화가 되었는지 확인했다. 특히 부러지기 쉬운 단검 끝의 얇은 부위는 다른 곳보다 더 세밀하게 시약에 몇 차례 담갔다.


"소드마스터라면 두 번. 딱 두 번 정면으로 소드오러를 막아낼 수 있다."


"아, 상급은 오십 번인데 왜!"


"그러니까 그 경지가 모든 무인의 꿈이 아니겠느냐."


메이븐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왼손 엄지로 문지르며 잡화점 점장에게 팔십 골드를 건네고 단검을 되돌려 받았다. 이제 그의 수중에는 달랑 20골드 밖에 없었다. 하루 사이 100골드를 사용하고 다시 거지가 되고 보니 눈물이 절로 차오르는 듯 했다.


'어디 어제 대머리 도적처럼 적선해 줄, 착한 범죄자 없나.'


은은한 파란 예기를 발하는 단검을 고이 품 안에 집어넣고 메이븐은 잡화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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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1 0 -
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8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9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7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2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2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9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8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30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10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8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2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3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5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2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7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6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7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1 1 19쪽
»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5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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