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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브
작품등록일 :
2015.07.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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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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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5.10.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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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nah mean

DUMMY

"그다지 특별할 일은 아니야."

성환은 가볍게 둘러댔다. 평소의 승혜였다면 '아. 그렇군요.'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럴 기미가 없다. 오히려 조금 더 뾰루통한 표정이 된다.

설은 주변의 상황이 어떻든 호기심에 가득 차 여기저기를 훑어보고 있다. 선반 하나를 넘어뜨릴 뻔 했지만 승혜가 재빨리 붙잡는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인데. '어떤 일'때문에 '피치 못하게' 당분간 같이 살게 됐다는 거죠?"

"앞뒤 다 떼고 말하자면. 그런 거지."

"그 피치 못할 일은 말할 수 없으시다는 거고요."

"그렇지."

대체 뭐가 문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승혜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설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추측컨데 학창 시절에 사이가 좋지 못한 친구를 닮았거나 하는 이유일 것이다.

"성환 씨한테는 그게 특별할 일이 아닌 거군요."

성환은 고민했다.

가능한 대답은 둘이다. 분위기로 보아하니 둘 중 하나는 기폭 스위치다. 속으로 계산을 마친 성환은 직관이 말하는 대로의 대답을 꺼내들었다.

"...그렇지."

승혜의 눈끝이 살짝 올라갔다 내려온다. 아무래도 잘못된 선택지였던 모양이다. 성환은 목을 살짝 움츠렸다. 뭔가 말을 꺼내려던 승혜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렇다고 치죠. 이해가 전혀 안 가지만 그렇다 쳐 드릴게요. 그런데 대체 이 분..."

"설."

"설 씨는. 왜 저희 가게에 와 있는 거죠?"

"그게. 여기 오고 싶어 하더라고."

설이 어린애처럼 창날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고. 성환은 한숨을 쉬었다. 내려온 이유가 성환이라고 해 두고도 딱히 성환에게 관심을 두질 않는다. 그런 주제에 성환이 일하는 곳에는 무조건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떼어놓으려고 별 수작을 다 부렸는데도 허사였다.

"왜요?"

성환은 설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는 대체 왜 오려고 한 거야?"

설이 고개를 뒤로 돌리고 말했다.

"다 알게 될 거야."

"지금. 알고 싶은 거라고."

"그럴 수 없어.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된다는 말이지."

이 이상을 물어도 계속 돌고 도는 대답일 뿐이다. 성환은 다시 무쓸모한 대답의 연쇄에 빠지는 대신 승혜에게 말을 돌렸다.

"그래. 언젠가는 알 수 있겠지. 잘 부탁해."

"대체 뭘 잘 부탁한다는 건데요!"

승혜가 빽 소리를 지른다. 역시 이런 대화로 납득시키기는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러지 말고. 어쩔 수 없잖아."

"성환 씨가 우유부단한 것 뿐이잖아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니까."

"어쨌든. 제 가게에서는 안 돼요. 아니. 성환 씨 집에서도 내보내요."

"대체 우리 집에서는 왜 내쫓아야 되는 건데?"

"그건... 어찌됐건. 저희 가게에서는 안 돼요."

"어쩔 수 없잖아. 안 나가겠다는데."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에요."

"그럼. 점원으로 쓰면 어때?"

"싫어요."

승혜는 단박에 거절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요새 손님 꽤 많이 늘었잖아. 슬슬 너랑 나 둘이서 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고."

"점원 시킬 사람은 많아요. 처음 보는 사람을. 그것도 믿을 수 있는지도 모를 사람을 쓸 수는 없다고요."

"모르는 사람이 아니잖아. 내가 보증하는 사람이라니까?"

"아뇨. 차라리 모르는 사람 쓸 거에요."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데?"

승혜는 몰라서 물어요. 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이대로는 끝이 없다. 그렇다고 그녀를 계속 여기에 두고 싶지도 않다.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일을 잘 해야 해요. 제 마음에 들 정도로."

"문제없지."

"그리고 설 씨를 성환 씨 집에서 나오게 해요. 가게에 작은 샛방이 있어요. 거기서 지내게 하면 될 거에요."

이 부분이 핵심이다. 둘이 무슨 관계인지는 몰라도 같은 집에 남녀를 같이 지내게 할 수는 없다.

"일단 이야기는 해 볼게."

"아뇨. 그 정도라면 협상은 결렬이에요."

"...확실히 그렇게 만들어 두도록 하지."

성환은 설에게 동의를 구했다. 의외로 설이 선선히 대답하는 바람에 협상은 싱거울 정도로 쉽게 끝나 버렸다.


- - -


설은 무기점 유니폼을 입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환이 승혜와 몇 가지 대화를 나눈 결과였다. 고음이 섞여나가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승혜쪽이 양보를 했다. 성환의 조잡한 설명대로라면 성환이 여기에 있는 동안은 자신도 여기의 일을 도와야 하는 듯 했다.

양보의 결과가 왜 자신에 대한 선물로 이어지는지는 이해하지 못 했지만. 옷이 한 벌 생겼다. 설은 몸을 돌려 옷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설은 옷을 만지작거렸다. 면이라고 불리는 재질로 만들어진 옷이다. 설은 옷이라는 선물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인간에게 가장 먼저 받은 것은 이름이었다. 성환이 준 설이라는 이름. 처음에는 신기하고 특이했지만 금새 시들해졌다. 이름이란 것은 자신에게는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부르는 사람에게나 쓸모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게다가 산 위에서는 이름을 불러줄 존재가 아무도 없었다. 산양에게 이름을 불러 달라고 해 봐야 가볍게 메에. 거리며 짜증을 부릴 뿐이었다.

물론 내려온 이후에는 조금 사정이 나아졌다. 성환이 자신을 부를 떄에는 알 수 있었으니까.

"설아. 일단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자. 물건을 정리하고 진열하는 것 부터 하면 될 거야."

성환이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설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물건이 거기 있다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면 될 것이 아닌가. 편하게 꺼낼 필요가 있다면 손에 닿는 곳에 뭉쳐 두면 된다.

설이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자 성환이 몇 번 더 설명했다. 물론 도움이 되질 않는다.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그냥 그렇게 하면 돼. 한 번 해 볼래?"

설은 이것도 인간이 만든 이름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일들을 하는 것이 인간의 특기였으니까. 설은 창고에서 날붙이를 꺼내 진열장이라고 불리는 곳에 차근차근 올렸다.

"아니. 거기는 검이 놓이는 곳이잖아. 창이 아니라. 아. 거기는 화살. 화살이라고. 검이랑은 완전 다르잖아. 모르겠어?"

검. 창. 활. 화살. 성환은 각각의 날붙이의 차이점에 대해서 한참을 설명했다. 하지만 설은 차이점을 구별할 수 없었다. 결국 날붙이고 뾰족하게 갈린 돌일 뿐이다. 인간들은 구별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이런 종족이라면 열매들에도 이름을 붙일 것이다. 맛있는 나무열매. 덜 맛있는 나무열매. 더 맛있는 나무열매. 같은 식으로.

설에게 날붙이들의 차이점을 가르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성환이 전략을 바꿨다.

"좋아. 좀더 간단한 걸로 가 보자. 내가 손님이라고 가정해 보자."

"손님."

"손님이란 건. 돈 주는 사람이야. 물주. 소비자. 호구."

"호구."

"...호구란 말은 나쁜 말이니까 잊도록 하자."

"호구."

"일부러 그러는 거지."

성환은 나쁜 말에 격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설은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성환이 특이한 반응을 보였던 언어들은 따로 모아 기억하고 있다. 잊지 않는다면 요긴하게 쓰여질 수 있을 것이다. 막돼먹은. 쓰레기. 호구.

"자. 손님이 오면. 친절하게 대해야 해. 그래야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 수 있거든."

"호구."

"너 사실. 말 엄청 잘하는 거 아니냐?"

설은 성환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승혜를 쳐다봤다. 잘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빼꼼 눈을 내밀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눈을 마주치자 후닥닥 사라져 버린다. 아마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신을 바라볼 것이다.

"똑바로 안 하면 쫓겨난다고. 그러면 너나 나나 길바닥 행이라고. 그러니까 열심히 해."

"안 쫓겨나. 나. 저 인간보다 강해."

설의 대답이 불만족스러웠는지 성환의 교육과 잔소리가 주구장창 이어진다. 그 이후로도 꽤 오랜시간 교육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잘 모르겠는 내용들이었다. 뭔가 물어봐도 다 똑같은 말들이 계속될 뿐이다. 돈이 뭐냐는 질문에 물건을 교환하는 화폐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화폐가 뭐냐는 질문에는 돈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식이다.

결국 설은 뭔가를 질문하는 대신 아는척 시침을 떼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성환의 잔소리가 금방 줄어들었다. 이내. 자신만의 설명을 모두 마친 성환이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잘 해 보자."

설은 뭘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무슨 일이건 이런 의미모를 말을 계속 듣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 틀림없다.


- - -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손님 한 명이 짜증을 있는대로 부리고 있었다. 종업원에게 말을 걸었는데 무시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무시하고는 기분나쁘다는 표정으로 째려봤다고 했다. 성환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 종업원이 오늘이 처음이라. 뭐 해. 사과 드려."

"죄송합니다."

사과는 곧바로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만 해도 벌써 여섯 번째 사과였기 때문이다.

"종업원 교육 좀 똑바로 시켜요. 별 이상한 가게를 다 보겠네. 쯧."

그는 진열장을 밀어 쓰러뜨리며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래도 이번 손님은 나은 편이다. 노골적으로 돈이나 보상을 바라고 진상 짓을 하는 손님도 있었으니까.

설이 벌여놓은 일도 다양했다. 물건을 쓰러뜨리고, 손님의 발을 밟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에서 문제가 생겨나왔다. 덕분에 일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성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반대로 일이 늘어날 뿐이다.

"호구."

"그 말. 쓰지 마라니까."

성환은 툴툴대며 진열장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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