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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브
작품등록일 :
2015.07.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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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0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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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we enter-2

DUMMY

성환은 나무줄기 사이를 움직이고 있었다. 시작은 느렸지만 조금씩 요령이 붙고 있었다.

네 개째의 나무에 대롱을 박아넣고 나자 할 일이 없어졌다. 멀뚱히 기다리고 있으면 끝날 것이다. 그냥 앉아 있기에는 아무래도 심심하다.

'조금 돌아다녀 볼까.'

성환의 마음에 드는 곳이다. 새로운 환경이란 쉽게 설레기 마련이다. 호기심에 성환의 발이 여기저기로 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험한 곳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조용한 곳이다. 거인들이 간간히 보이기는 하지만 위해를 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녀석들은 느긋하게 이곳저곳을 움직인다. 성환을 발견하지 못한건지 발견하고도 무시하는 건지. 따로 반응이 있지는 않았다. 돌 같은 몸 위에 나무와 풀들이 뒤엉켜 하나의 자그마한 생태를 이루고 있다.

뭐가 그렇게 위험하다는 건지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간이 멈추어 있는 것과 같은 공간에 있으니 같이 느긋해지는 기분이다.

성환은 몸 전체를 누일 만한 공간을 찾아내 드러누웠다. 악취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헌터 일을 꽤 오래 하다보면, 악취에는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시체가 썩는 냄새에 비하면 썩는 흙과 비슷한 냄새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최근 들어 틈만 나면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딱 꼬집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힘들었다. 사실, 세상 전체가 이상해진 지 오래라 기묘한 느낌이 특이할 것은 없지만.

성환은 옷에 달린 호주머니에서 눈 조각을 꺼내들었다. 설에게 받은 물건이다. 외견상으로 특이하지는 않다. 상온에서도 녹지 않고, 손가락의 압력에도 부스러지지 않는다.

'내부에 깃든 힘은 확실히 거대하지.'

눈 내부에는 설의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선물로 준 것이 눈이 아니라 눈 안에 있는 그녀의 힘이라는 것도. 깨뜨리면 기운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처음에 성환은 눈을 깨뜨려 내부의 힘을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결심하고 눈을 깨뜨리려는 순간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냉기의 힘. 그 힘을 직격으로 쏘인다면 단전을 넓히기도 전에 온 몸이 얼어붙어 산산히 깨져 버리고 말 것이다.

"쓸 데가 없군."

성환은 눈송이를 손에서 이리저리 굴렸다. 아마 마법사들이라면 이 눈을 통해 완드나 마법무구를 만들 수 있을 테지만, 성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상점에 팔아버린다면 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내부에 있는 힘이 탐이 난다.

사실 이런 물건 외에도 신경 쓰이는 일들은 하나도 풀려 있지 않았다. 퍼즐 조각을 꿰어맞출 수 있다는 생각도 그다지 들지 않는다. 조각이 너무 적다. 그리고 택도 없는 가설.

'인간이 이계와의 통로를 열고 있을 이유가 있나?'

문이 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몇천 년간 인류가 일구어온 것이 대부분 사라졌다. 아직까지도 인류는 살아갈 터전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인간에게 이점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멸절을 바란다면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다.

대척점의 존재들.

정부의 테두리 밖에는 무법자들이 있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세상을 흔들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아웃로(outlaw)라고 부른다. 다수의 능력자와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폐허에 뿌리를 틀고 테러와 요인암살을 자행하는 무리들.

성환은 그들을 저주했다. 이해할 생각도 없거니와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썩은 뿌리지만 잘라내도 잘라내도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문을 완전히 열어놓는 것일지 모른다.

성환도 언젠가는 이 혼돈의 시기가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비록 더디기는 했지만 영토수복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고, 능력자들도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집에서 누워 쉬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반백년 전의 평범한 삶. 그게 바로 모든 이들의 꿈이었다.

하지만 이 절망적인 상황이 전주곡일 뿐이라면? 훨씬 강한 괴물들이 다시 세상에 넘어온다면?

"끔찍하군."

인류는 정말로 멸절을 맞이할 것이다. 등 너머로 소름이 내달린다.

끔찍한 상상이 끝을 모르고 내달리고 있을 때, 옆에서 가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옆을 바라보자 무언가가 꼬물거리고 있다. 성환은 저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그것을 집어올렸다. 늪지 거인이다.

사실 거인이라기는 미안할 정도의 크기다. 아무리 정식명칭이라고는 해도 손바닥만한 크기어서야 거인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꼬맹아. 부모님은 어디 갔냐?"

녀석은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손에 두려움을 느끼는지 다리를 버둥이기 시작했다. 성환은 녀석의 몸을 찬찬히 살폈다. 오가며 봤던 거인들과 같은 모양새다. 몸 전체를 덮은 식물은 있지도 않고 끔찍한 냄새도 나지 않지만.

갸악. 거리며 위협하는 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귀여울 뿐이다.

"귀엽다고 하기에는 못생기긴 했군."

성환은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녀석을 바닥에 내려놨다. 녀석은 계속 위협음을 내며 성환에게 몸을 세워댔다.

"왜. 한번 붙어 보려고?"

꼬맹이는 몸을 잔뜩 세우고는 달려들었다. 성환은 손바닥을 펼쳐 몸을 통째로 튕겨냈다. 놈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지만 그렇다고 위협이 될 리는 만무하다.

몇 번 더 달려들던 녀석이 그앙. 거리며 뒤로 도망쳐 버린다.

"그래. 친구라도 불러 와라. 아니면 좀 더 커서 오던가."

슬슬 놀리는 것도 재미가 떨어졌다. 성환은 몸을 뉘였다. 주변에 꽂아 놓은 대롱에 수액이 꽤 뭉쳐 있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될 것이다.

그르렁.

낮고 긴 소리가 몸 전체를 울렸다. 아까의 꼬마가 낸 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성환은 몸을 일으켰다.

"뭐야?"

낮은 울음소리가 다시 울리고는 옆에 있는 바닥 전체가 흔들거리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진흙을 피하며 이리저리 몸을 놀리며 겨우 시선을 돌리자.

진흙거인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르렁!

울음소리는 늪지 전체를 울릴 정도로 커져 있었다. 잔뜩 성나 푸릉거리는 숨소리가 피부에 닿을 정도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에 작게 매달린 꼬마가 보인다.

"미아가 아니었네."

쾅!

진흙거인이 성환을 깔아뭉개려 몸을 내려찍었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해내기는 했지만 연이어 튀겨오른 진흙이 몸에 묻는다. 흙 썩는 악취가 코를 찔러댄다.

"씻을 때 엄청 고생하겠네."

성환은 여유로웠다. 거인의 몸이 빠른 것도 아니고 특별한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성환의 상대가 되질 않는다.

주변의 진흙거인들이 움직이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진흙거인이 위협에 처한다면 달려올 것이다.

그러니 적당히 상대하다 지치게 만드는 것이 귀찮아지지 않으려면 최선이다. 성환은 발을 계속 놀리며 공격을 계속 피해냈다. 물론 진흙이 튀겨나오는 것까지 피해낼 수는 없다. 몸에 진흙이 엉겨붙는다.

계속 움직여대는 것이 상당히 귀찮다. 기동성을 제거하고 나면 조금 더 편해질 것이다. 생각과 동시에 검이 뽑혀져 나왔다.

콰드득!

성환의 검이 놈의 다리 일부를 뜯어냈다. 완전히 잘려나가지는 않았지만 몸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쾅!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성환 쪽으로 엎어지는 바람에 몸을 피해야만 했다. 성환은 옆으로 몸을 굴렀다.

철퍽.

발의 감각이 이상하다. 아차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성환의 발이 늪에 닿아 있다. 무심코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움직였다.

발이 바닥에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손으로 뭔가를 움켜쥐어 보려고 하지만 손이 닿는 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 머뭇대는 순간에도 몸이 늪 안으로 가라앉고 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아래로 가라앉는다. 벌써 어깨부분까지 몸이 가라앉았다. 몸을 자맥질하듯 발버둥쳐 봤지만 가라앉는 속도가 더 빨라질 뿐이다.

이내 성환의 머리까지 모두 집어삼킨 늪은 방금전까지와 같이 잠잠하고 조용해졌다.


- - -


'죽었나?'

성환은 손을 꿈쩍였다. 움직인다. 발가락도 움직인다. 입을 열어 숨을 들었다 내뱉는다. 지독한 악취가 머리를 짜릿하게 만든다.

몸을 일으켰다. 눈에 뭔가가 달라붙어 떠지지 않는다. 말라붙은 진흙이리라. 손가락으로 눈에 붙은 진흙을 떼냈다.

켁켁대며 입에서 진흙을 뱉어냈다. 입은 물론이고 눈과 코까지 진흙이 들어차 있다. 옷 안팎이 말라붙은 진흙으로 딱딱해져 있다.

성환은 주변을 살폈다. 천국은 아니다. 이렇게 냄새나는 천국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지옥일까 싶기도 했지만 그렇다면 진흙이 덕지덕지 몸에 발려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말인데.'

빛이 들지 않아 컴컴한 탓에 어둠이 눈에 익숙해지는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자신이 있는 곳이 동공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시야가 제한되는 탓에 동공의 크기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르렁.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진흙거인의 울음소리다. 어쩌면 여기가 서식지일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소리가 난 쪽으로 발을 옮겼다.

바닥이 쿵쿵 울린다. 동시에 거인의 거대한 울음소리가 귀를 터질 듯이 울렸다. 시야에 거인의 모습이 잡히기 시작한다. 거인의 몸에는 상처가 여기저기 벌어져 있었다. 바닥에 피가 흥건히 깔려 있다.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 성환은 몸을 숨기고 숨소리를 죽였다.

동공의 천장에서 진흙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바닥에 모인 진흙은 이리저리 퍼지면서도 한 쪽으로 흘러 사라져 버렸다. 이런 특이한 구조이기에 동공이 진흙으로 가득차지 않는 것이리라.

그오오!

거인이 다시 울부짖으며 움직였다. 거대한 질량 때문에 부딪히면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쾅!

거대한 충격음과 동시에 위쪽에 구멍이 뚫렸다. 빛이 바닥에 쏘아진다. 빛 때문에 절로 눈이 찌푸려진다. 다행히 출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떻게든 주변의 지물을 활용해 탑처럼 쌓는다면 구멍을 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거인의 괴성이 다시 울렸다. 이제야 시야가 돌아왔다. 거인의 몸이 천천히 바닥에 쓰러졌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에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동굴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거인의 몸을 뜯어먹는 무언가가 보였다.

"끔찍하군."

늪지 거인의 모습도 흉한 편이었지만 지금 괴물의 몸을 먹는 몬스터의 모습은 그 이상이었다. 크기는 거인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거대했고 세 쌍의 팔이 질벅거리며 출렁이는 부정형의 의 몸 위에 달려 있다.

자세한 이름은 알 수 없다. 아니,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가르릉.

성환은 또다시 익숙한 소리에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아까의 꼬맹이다. 두려움으로 몸을 떨고 있다. 성환은 녀석의 몸을 집어올렸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몸이 된 것이다.

애처롭게 울어대는 모습을 보자 기분이 나쁘다. 물론 몬스터에게 인정을 주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묘한 죄책감을 지울 수는 없다.

성환은 몸을 가볍게 풀고 검을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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