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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브
작품등록일 :
2015.07.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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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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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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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when-8

DUMMY

축구장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노인이 보였다. 성환은 축구장에 돌아와 있었다.

노인은 성환이 다가서는데도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부지런히 물건을 옮기고 있었다. 물건들을 옮기고, 배열하고, 정리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쓰레기 더미로 물건을 움직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감님."

노인은 대답 없이 알 듯 모를 듯한 말만 중얼거릴 뿐이다. 성환은 다가가 노인의 어깨를 건드렸다. 노인이 그제서야 성환을 돌아본다. 노인은 성환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돌아본다.

"쥐는 다 잡아 왔나?"

"잡느라 몇십 번은 죽을 뻔했죠."

"쥐 몇 마리 잡아놓고 엄살이 심하군."

"몇 마리도 아니었고. 죽을 뻔했다는 건 거짓말도 아닙니다."

"알고 싶다는 건 뭔가?"

노인은 말을 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는다. 작고 쭈글쭈글한 손이 굳은살로 가득차 있다. 찰각. 그의 손이 아무렇게 박혀 있던 앨범 한 장을 뽑아낸다. 노인은 앨범을 펼쳐보고는 다시 제 자리에 꽂아넣는다.

"문이 열리던 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노인의 손이 움직임을 멎는다.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니군."

"그때는 악몽같은 일이었죠."

"지금은 아니지."

노인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까보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손가락이 가볍게 떨리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악몽인 일입니다."

"대체 뭘 알고 싶은 건가?"

"그냥. 세상에 알려져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노인은 성환을 바라봤다. 성환은 노인의 눈을 바라봤다. 어찌됐건. 어떤 쓸모없는 이야기건 들을 것이다.

"2015년 7월 13일. 공식적으로 '문'이 열린 날이지. 나타난 괴물들에게 인류가 멸절할 뻔 했던 날. 세계 각지에서 나타난 괴물들과 기상이변, 갑자기 나타난 건축물과 지형들. 그 후 50일간 보고된 이상상황만 3017건."

"그런 수치들밖에 없습니까?"

"아마 자네가 바라는 이야기는 없을거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 봐야 그 때의 기억. 내가 겪었던 일이 전부지. 그래도 상관없나?"

"상관없습니다."

"그 때.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 기억력은 꽤 괜찮은 편이였네만, 그다지 돈벌이가 되는 재주는 아니야. 그냥 술자리에서 몇 가지 잔재주를 부리는 게 전부였지. 맥주병의 성분을 줄줄 읊어내린다거나 하는 것 정도."

성환은 노인이 순간기억능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사실 실생활에서나 유용할지언정 초월적인 능력은 아니다.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라고 해 봐야 전자기기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보다. 그 때 32살이셨으면, 현재는 연세가 얼마나 되시는 겁니까?"

"모르겠군. 세어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 내 나이를 말해준다면야 기억하겠지만. 어찌됐건. 그 날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고 있었지. 갑자기 재난경보가 울리더군. 상당히 특이한 일이었어."

"재난 경보가요?"

"지금은 몇 시간을 멀다하고 울리지만, 그 때는 그랬지. 전쟁의 위협은 있을지언정 전쟁은 적었고, 세상을 멸망시킬 무기가 있을지언정 사용된 적은 없던 시절."

"특이한 세상이었군요."

"난 솔직히 아직도 이 세상이 이렇게 변한 것이 적응이 되지 않는다네."

노인은 부서져버린 벽을 바라봤다.

"아내를 찾는게 가장 먼저였어.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더군."

"아내분이 있으셨군요."

"나에게는 과분한 여자였다네. 아름답고. 똑똑했지. 다시 보지는 못했지만.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서 강제로 어디론가 이송됐어. 시간이 지나고서야 원래 살던 곳에 핵폭탄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알다시피. 그다지 효과는 없었네. 세계를 위협으로 끌어넣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들이, 새롭게 나타난 존재들에게는 쓸모없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성환도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뭔가. 특이한 건 없었습니까? 소문이나. 뭔가 이상한 징조 같은 것들 말이죠."

"특이한 게 있다고 해 봤자 내가 알 리가 없지. 나는 특별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군요."

"그냥 아내가 조금 초조해 하기는 했었는데."

노인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때는 잘 몰랐네. 워낙 쫓기듯 사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본다면, 뭔가.. 이상하기는 했지."

"아내 분이 무슨 일을 하시던 분이었죠?"

"정부 쪽에서 실험을 했었지. 뭔가 중요한 일이었던 모양이야. 남편인 내게까지 비밀일 정도였으니까."

"실험?"

성환은 눈을 빛냈다. 정부 쪽에서 이뤄진 실험. 그것도 비밀리에 이뤄진 실험.

사실 뭔가 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비밀리에 이뤄지는 실험이라고 해도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새로운 병기의 개발이나 약물 개발과 같은 것들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서는 그나마 뭔가 있을법한 부분이다. 성환은 조심스레 노인의 부인에 대해 몇 마디를 더 물었다.

하지만 금새 들켰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애정이 있는 사이에 거짓말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거든. 양심상으로도 그렇고, 자기도 알게 모르게, 거짓말에 서툴게 되어버리니까."

"무슨 실험이었죠?"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네. 아내의 말로는 물리학에서, 평행우주란 게 있다고 하더군."

"들어본 적 있습니다."

"평행우주란 건, 언뜻 생각하기에는 무한히 많은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더군. 지금은 어떤지 모르고 정설이나 학설이 어떤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그랬네. 내가 그녀의 편을 들거나 동의한다고 해서 별 일이 생기지도 않을 테니. 나는 그녀의 말을 믿고 있지."

"평행우주 말인가요."

"아내의 일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지."

"혹시....자료같은 것도 남아 있습니까?"

"나에겐 없네. 하지만 국가에 예속되어 있는 단체의 후신이라면 남아있을지도 모르지. KSF라거나."

대부분의 사법권을 긁어모은 단체인 KSF라면 문이 열리기 이전과 직전의 자료들도 대부분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접근할 방법이 없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호기심이 자극되는 것도 아니고.

성환은 머리를 긁었다. 확실히 뭔가가 더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노인도 뭔가 더 알지는 못하는 눈치다. 몇 마디를 더 나눠 봤지만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전부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환은 품에서 팬던트를 꺼냈다. 노인의 눈이 놀람으로 뜨여진다.

"이거. 찾으시던 물건 아닙니까?"

"...그렇다네. 어떻게 찾았나?"

"늙은 쥐의 귀에 들어 있더군요."

"그랬군. 그랬어. 아아. 고맙네."

노인은 성환의 손을 붙잡고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건냈다. 노인은 이미 녹이 슬 대로 슬어버린 팬던트를 보물처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아내 분 물건입니까?"

"그렇지. 마지막으로 남은 물건일세. 정말 고마워. 또 내가 필요하거든 찾아오게. 내가 힘 닿고 기억 닿는 데까지는 들어줄 테니. 이름이 뭔가?"

"김성환입니다."

"그다지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군."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군요."

성환은 피식 웃었다. 확실히. 자신의 이름은 아니기는 하다.

"난 최원명일세. 뭔가 부탁할 게 있으면 찾아오게. 나야 늙은 몸이라 부탁하러 찾아가기는 힘들지만. 자네는 젊으니까."

노인은 말을 마치고 등을 돌린 채로 쓰러진 잡동사니들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성환은 축구장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섰다.

"쓸만한 이야기들은 들으셨습니까?"

축구장 입구에서 앉아 있던 해진이 물었다.

"뭔가. 미로에 갇힌 기분이야. 궁금한게 해소되기는 커녕. 궁금한 게 더 생기기만 했으니까."

"살다 보면 잊히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우연한 기회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지도 모르죠.""

"그럴지도 모르겠군."


- - -


해진은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휴대폰 너머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쁘니까 전화 자주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일은 잘 처리됐습니다."

[그런 것까지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보다. 의심하지는 않던가?]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요."

[쯧. 원명씨도 특이하다니까. 뭘 그리 굳이 보겠다고 나서는 건지. 시간 지나면 어련히 알게 될 사이인데. 게다가. 지 아끼는 팬던트는 뭣하러 일부러 잃어버린 거래?]

"그 분 괴벽이야 저희가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보다. 몇 번이나 죽을 뻔 했습니다."

[뭐. '그'가 그렇게 추천할 정도면 그 정도쯤은 멀쩡하게 걸어나오겠지.]

"까딱하면 죽을 뻔했습니다."

[그렇게 위험했나?]

"상당히. 특이한 인물 하나가 더 늘어났습니다. 이름이 설. 이라고 하더군요."

[알아봐주지. 성은?]

"없습니다."

[그냥 이름만 있는 거야? 고아일 가능성도 높짐나 조직 내에서의 암호명일지도 모르겠군.]

"사진 보내드릴 테니 조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알았어. 잘 지내고. 다시 말하지만 특이한 거 있는 거 아니면 연락 하지 마.]

전화가 끊어져 버린다. 해진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사람 주변에 있기만 해도, 특이한 일들이 꼬여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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