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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브
작품등록일 :
2015.07.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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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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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0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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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nah mean-2

DUMMY

결국 성환은 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문제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냥 사과하고 좋게좋게 끝내는 것이 나아 보인다. 설은 여기서 계속 지내고. 일은 돕지 않는 방향으로.

"잘 안 되시나 봐요."

승혜가 다가와 넌지시 묻는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게 고소하다는 얼굴이다. 사과하고 굽히고 들어갈까 하는 생각이 쏙 들어간다.

"아니. 잘 되고 있어. 너무 순항중이라서 닻을 내려야 할까 생각이 들 정도니까."

"침몰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 같아 보이는데요."

"원래 순항하는 배는 살짝 위험해 보이는 법이지."

"우리. 배도 타고 있었나."

설이 옆에서 듣다 한 마디 끼어든다.

"비유적인 표현이야."

며칠 동안 나아진 점이 있다면 설의 표정을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감정 표현이 극도로 없기는 하지만 그녀에게도 단순한 몇 가지 종류의 표현들이 있다. 이를테면 지금 표정과 같은 것.

'[인간은 쓸모없는 것들을 참 좋아하는군.]이라고 생각하고 있군.'

"어쨌건. 곧 우리가 일을 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고."

"가게가 망해서 일을 못 하게 되는 건 사양이에요."

승혜가 가시돋힌 말을 한 마디 하고서는 총총 사라져 버린다. 성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왜 화를 내는지도 미궁일 뿐더러. 어떻게 풀어야할 지도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대화를 떠올려 봐도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 점장이 우리한테 화를 내는 걸까?"

"모르겠어."

"화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성환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괜찮은 방법이 떠오를 리 없다.

"있을지도."

"뭐?"

"남자 산양은 사이가 좋지 않은 여자 산양이랑 친해지려고. 춤을 춰."

"딱히 구애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닌데."

그리고 춤이라면 잼병이다. 칼춤이라면 자신 있지만. 사과 한답시고 칼춤을 췄다가는 뺨이나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리고 아끼던 보물이나 좋은 음식을 암컷 산양에게 주고는 하지."

"선물이라."

그러고 보니 뭔가를 선물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선물을 하면서 사과를 한다면 승혜의 기분도 나름대로 괜찮아질 것이다. 문제는 어떤 선물을 하느냐지만.

"그리고 사이가 좋아지면 짝짓기를 해."

"...거기까지만 하도록. 아니. 그보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호열이 가르쳐 줬어."

짧은 시간에 이상한 말들만은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성환은 금지어 목록에 단어 하나를 더 올렸다. 언제나처럼 왜 쓰면 안 되는 말인지는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그보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산양들은 예쁜 돌을 쓰고는 해."

"걔들 사정이야 알 바 없고."

성환은 잠시 고민하다 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 - -


크게 지어진 건물 내부에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손에는 제각각의 손가방이 들려 있다. 성환은 설의 손목을 잡아끌고 움직였다.

"모든 사람이 다 여기 모인 것 같아."

성환은 설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둘이 도착한 곳은 백화점 내부에 있는 금은방이었다. 아름답게 깎여진 형형색색의 보석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떤 물건을 찾으십니까?"

"요새는 어떤 물건이 좋나요?"

"돌이 너무 작아."

설이 가볍게 불평했다.

"대신 빛나잖아."

"빛나고 큰 돌도 많아."

성환은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나가는 대신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둘러봤다. 점원이 요새 좋은 물건이라며 이런저런 물건을 추천해 준다. 하지만 이거다 싶은 물건이 없다. 애초에 예쁘고 아기자기한 물건에는 조예가 없기도 했고.

성환은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목걸이를 발견했다. 장식이 따로 없는 금 목걸이다. 얇은 길이가 적당한 크기로 이어져 있다.

"여자친구분과 함께라면 커플 반지가 좋습니다."

성환이 목걸이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점원이 반지를 탁자 위에 올린다. 자그맣게 세공된 은빛의 반지다. 하지만 은은 아니다. 성환은 반지를 집어들었다.

"백금으로 만들어진 반지입니다. 예쁘고 색깔이 특별해서. 많이들 찾으시는 물건입니다."

"그보다. 여자친구라뇨?"

"옆에 여자 분. 여자친구분 아니신가요?"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선물할 사람도 여자친구가 아니고."

성환은 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커플 반지라면 쓸모도 없다. 반지 두 개를 선물해 봤자니까. 돈만 두 배로 나가는 셈이니까. 성환은 설에게 어떤 물건이 괜찮아 보이는지 물어 보기로 했다. 도움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지만.

"네가 보기에는 어떤 물건이... 뭐 하는 거야!"

성환은 설의 볼을 붙잡았다. 설이 반지를 이 사이에 넣고 깨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환이 재빨리 반지를 꺼냈지만 이미 선명하게 잇자국이 난 뒤다. 혹시나 지워질까 싶어 손으로 문질러 봤지만 지워질 턱이 없다.

"좋은 돌은 쉽게 자국이 나지 않아."

설은 반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성환은 더 참는 대신 폭력을 사용했다. 중지가 빼끔 올라온 주먹으로 설의 정수리를 가볍게 내리쳤다. 콩. 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설이 머리를 붙잡는다.

"이..걸로 주세요."

점원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 대신 미소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반지 사이즈는 어떻게 해 드리면 될까요?"

"사이즈도 있습니까?"

"네."

성환은 잇자국이 난 반지를 꺼내들었다. 이 쪽의 반지가 조금 더 크다. 검지에 끼어 보니 얼추 맞는 크기다.

"여자가 쓰기에는 좀 큰 것 같은데요."

"남자분 반지니까요. 여성 분이 쓰실 반지는 이쪽입니다."

성환은 반대쪽 반지를 손 위에 올리고는 크기를 가늠했다.

"잘 모르겠는데...."

성환은 승혜의 손가락 크기를 가늠하며 가볍게 눈을 감았다.


- - -


승혜는 발을 굴렀다. 요새 일이 바쁜 것도 이해했다. 결국 성환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가게에 잘 못 나와도 이해했다. 결국 자신에게 갚아줄 돈을 버는 것이니까. 언젠가 이런 채무 관계가 끝난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까지도 이해했다.

'어떻게 집에 여자를 끌어들이고. 나에게는 일언 반구도 없을 수가 있지?'

그러고서는 잘못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뻔뻔한 태도라니.

물론 며칠 지내며 설과 성환이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잘 봐 줘도 어린 동생과 오빠 사이의 관계였다.

하지만 감정은 이해한다고 사그라드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승혜는 다시 감성적이 되려는 것을 멈추고 차근차근 상황에 대해 생각해 나갔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너무 주제넘게 나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성환의 일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가 밖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든. 누구를 만나든.

'특별한 사이도 아니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성환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그냥 무기상과 헌터 간의 사무적인 관계로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만 해도 자신을 두고 휑하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승혜는 발 앞굽으로 애꿏은 진열장을 두드렸다.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란 승혜의 입에서 가벼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언제 들어왔는지 입구에서 성환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와 계셨던 거죠?"

"진열장 발로 차고 있을 때부터."

"그보다. 가셨던 일은 잘 되셨나요?"

"그냥. 그렇지 뭐."

"어디 다녀오신 거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승혜의 손을 성환이 붙잡았다. 쥐여진 주먹을 펴고. 손바닥 위에 뭔가를 올려놓는다. 반지다.

"이게 뭐죠?"

"미안하다고."

"뭐가요."

"점장한테는 한 마디 정도 이야기 했어야 했는데. 설이가 워낙 막무가내여야 말이지. 너무 갑작스럽게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고."

"그걸 알고도 그렇게 행동하시나요."

승혜는 화를 내는 대신 반지를 바라봤다. 아름다운 은빛의 반지다. 약지에 끼우자 딱 맞는다. 어떻게 맞췄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감각으로 사이즈를 측정한 것이리라. 성환의 평소 행실로 봤을 때 되는대로 사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고마워요."

승혜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물론 고맙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지는 아무래도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승혜에게는 딱히 장신구랄 게 없었다. 귀걸이나 목걸이는 몇 정도 있었지만 반지는 전혀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그런데 반지는..."

"그리고 말이야."

성환이 승혜의 말을 끊고 승혜의 손을 다시 편다. 머쓱한 얼굴로 다시 승혜의 손에 물건을 올린다. 금 목걸이다.

"목걸이네요?"

"그거. 반지 끼워서 쓰라고."

"네?"

"무기 만들 때. 방해되잖아. 반지. 움직이기도 불편하고. 열기에 변형 되기도 쉽고. 손가락 감각이 중요한 일이니까."

성환은 마지막 순간에야 승혜의 직업에 대해 깨달았다. 자신이 알던 사람들 중에도 손에 뭔가를 묻히는 것을 질색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때? 나름대로 괜찮은 선물이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승혜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며 성환은 따라 웃었다.

"설이가. 반지 하나쯤 선물해 주는 게 어떻냐고 그래서."

"고마워요."

승혜는 설에게 인사를 건냈다. 설이 입꼬리를 밀어올린다. 오는 사이에 성환이 속성으로 가르친 것이다. 표정이라기에는 너무 어색했던 탓에 승혜는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말인데. 설이. 안 내쫓으면 안 될까?"

"왜요?"

"아무래도. 일 시키는 건. 무리인 것 같거든. 쟤 더 가르치다간 내가 과로사로 죽어."

"침몰 선언이에요?"

"그렇지."

승혜는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목을 따라 내려와 걸린 반지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알았어요. 설 씨. 앞으로는 여기서 계속 지내셔도 괜찮아요."

설이 다시 예의 미소를 짓는다.

"이제 미소 안 지어도 돼."

설은 그제서야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다. 지금까지 봐 왔던 것 중에 가장 행복한 표정이다. 물론 미묘하기는 하지만.

설은 그렇게 새 집을 얻었다. 더 이상 클레임을 걸어오는 손님도 없었고. 모든 일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후로는 별 일 없었다. 가게를 정리할 시간이 되고. 간단한 청소를 끝내고. 성환은 밖으로 나섰다. 달이 휘영청 하늘에 걸려 있다.

성환은 호주머니에서 잇자국이 난 반지를 꺼내들었다. 이 반지도 주는 김에 건내줄까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하자 있는 물건을 건내주기에는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뭐. 그것 뿐이야."

성환은 누구에게 들으라는 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반지를 약지에 집어넣었다가 뺐다. 빠져나온 반지가 성환의 눈 앞에 올려졌다. 반지를 달이 걸린 곳에 가져다 댔다. 반지가 달보다 커다랗다. 반지를 눈에서부터 떨어뜨리자 얼마 안 가 달과 반지의 크기가 합쳐진다.

"싫다. 내 몸이 내가 아니라는 건."

성환은 중얼거리며 반지를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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