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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5.07.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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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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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i am-2

DUMMY

무기에게는 무기마다의 거리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검이 능력을 발휘하는 최적의 거리는 검끝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검과 창이 맞붙으면 창이 우세하다. 창과 총이 맞붙으면 총이 우세하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마나가 발견되고 기의 운용법이 발전하면서 다소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유효한 이야기다.

그러니 이 싸움에서는 성환이 이점을 가지고 시작해야만 했다.

성환이 먼저 재인에게로 움직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성환은 검의 사정권에 재인을 들였다.

그리고, 몇 걸음 더 움직였다.

손발이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재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성환의 움직임은 '당신이 모든 것을 발휘할 거리를 용납해도 이길 수 있다'라는 말과 같았으니까. 여유만만한 미소는 덤이다.

'당장 그 미소를 지워 주지.'

싸가지 없는 적들은 몇 만나 왔다. 오만한 녀석들도 적잖이 봐 왔다. 하지만 싸가지 없고 오만한데다가 새파랗게 젊은 녀석은 처음이다. 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재인이 팔을 뻗어 왼 손으로는 검병을 움켜쥐고 있는 성환의 손을, 오른 손은 성환의 왼쪽 옷깃을 노렸다.

성환은 손을 비틀어 재인의 한 쪽 팔을 피해냈다. 팍! 하고 검의 밑둥으로 재인의 왼손을 후려갈긴다. 뼈가 살짝 어긋났는지 지릿한 고통이 팔을 타고 내달린다.

하지만 한 손에 옷의 감촉이 잡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끝이다!'

쾅!

재인이 한 손으로 성환의 몸을 던져 바닥에 내꽂았다. 큰 소리가 나는 것으로 봐서는 충격 대부분을 몸에 넓게 퍼뜨려 완화한 모양이다.

하지만 뒤를 잡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직까지도 둘의 거리는 지근(至近). 재인의 손이 빠르게 성환의 허리를 파고든다. 붙잡기만 하면 감싸안는 힘으로 허리를 분지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분지르지는 않겠지만. 승부의 마지막으로는 충분할 터.

성환은 재인이 뒤에 있음에도 그의 움직임이 손바닥에 보이듯이 그려졌다.

그리고 입에 걸린 여유는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은 채다.

'역시. 너무 뻔해.'

무도란 그렇다. 똑같은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고 그럼으로서 강해진다.

틀 안에서.

정도를 벗어난 길이나 도박수. 무리한 결정은 최대한 배제한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쯤이 아니라면.

그만큼 상대하기가 편하다. 이 상황 또한 그렇다. 자신이었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그대로 달려드는 것은 상대가 예측할 범위니까. 제대로 반격당하면 치명적이다.

물론 상황이 녹록치는 않다. 몸을 튼다면 그대로 붙잡힐 것이다. 피하려 한다면 몸을 덮치며 달려들 것이다.

성환은 검을 역으로 돌려잡고 뒤로 찔러갔다. 눈이라도 달린 듯 재인의 얼굴을 파고드는 검집을 피해내고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성환의 몸이 틀 수 있는 시간을 줬다. 게다가 자세도 바로잡지 못한 상태다. 검을 고쳐잡은 성환의 검이 재인의 오른쪽 팔목을 노리고 날아온다.

쐑.

성환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재인이 바닥을 굴러 성환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버린 탓이다.

"제법 하는군."

만약 공격을 허용했다면 양 손이 다 온전치 않은 상황이 된다. 손을 포기할 수 없기에 재인은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주더라도 한 손이 온전한 상태가 낫다고 판단한 탓이다.

"저라면 다른 한 손을 포기하더라도 거리를 벌리지 않았을 겁니다."

"싸가지는 쥐풀 있지도 않고."

재인은 피식하고 웃었다. 성환의 말대로다. 그 편이 더 이길 확률이 높다. 언뜻 보기에는 무모해 보이는 선택이지만.

"그게 무도와 실전의 차이죠. 다시 오실 겁니까?"

한 손이 온전하지 못한 상황. 그리고 상대적인 거리. 승산은 0다.

"물론이지."

"못 이길 거라는 걸 아실 텐데요."

"그게 무도와 실전의 차이지."

이후로는 꽤나 일방적인 공격과 방어였다. 재인은 무기를 든 상대와 많이 싸웠는지 이리저리 몸을 피해내며 움직였지만 조금씩 거리가 벌려진다.

재인의 몸이 땀으로 뒤덮혔다. 반면 성환은 여유가 남았다.

쐑.

거칠어진 호흡을 노리고 성환의 검이 찔러들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냈지만 그 뿐. 성환은 마무리를 위해 검을 당겼다.

찌릿.

오싹한 감각이 성환의 등을 타고 흐른다. 성환은 주저 없이 검을 회수하고 뒤로 몸을 빠르게 굴렀다.

성환이 방금까지 있던 자리에 누군가가 서 있다. 긴 백발의 노인이다. 자그마한 덩치와 제멋대로 흐트러진 수염과 머리카락.

퍽!

노인이 누가 제지할 새도 없이 재인의 머리를 후려쳤다. 동시에 재인의 입에서 '악'소리가 터져나온다.

"어이고. 아들 놈 훈계한다기에 자리 좀 마련해 줬더니. 아들 뻘 되는 놈한테 죽이 되도록 후드려맞고 있어? 으이고. 이 무능력한 자식아. 무능력한 자식아."

"아! 아아! 귀는 잡아당기지 마세요!"

"아. 우리 아들이 결례를 저질렀군. 쥐뿔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놈이 혈기만 왕성해서. 나이 먹었으면 철 좀 들어라."

"아니. 아버지 오시기 직전까지만 해도 거의 비슷하게 싸우고 있었다고요."

"언제부터 비슷했는데?"

"언제부터 보고 계셨는데요?"

"쬐끄마한 도발에 앞뒤 모르고 덤비다 손 한 짝 헌납할 때부터."

재인의 얼굴이 찌그러지며 조용해진다. 그 때라면 극초반이다. 변명할 거리가 없다.

"무도관 한다는 놈이 저런 놈한테 얻어맞고. 쪽팔린 줄이나 알아라."

아들뻘 되는 사람들 앞에서 등을 손바닥으로 얻어맞는 것이 불편하기는 한지, 재인이 연신 '아, 아버지, 여기서는 좀.' 같은 말을 연신 부르짖는다.

"부모자식 간에 성격이 판박이네."

은영의 말에 호열이 불평 가득한 얼굴이 된다.

"그래서, 뭣 때문에 싸우고 있었나?"

노인이 잠시 손을 멈추고 성환에게 물었다.

"누가 더 강한지 알아보려는 거였죠."

"재인이 녀석이랑 자네가?"

"아뇨. 무도와 진짜 전투. 어느 쪽이 우위인가."

노인의 얼굴에 호기심이 핀다. 그도 이 부분에 관해서는 확고한 견해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둘이서 온 세상의 대표로 일대 일을 했다?"

"뭐, 누가 와도 제 선에서 끝낼 수 있다 싶습니다만."

"자네. 싸가지 없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나?"

"겉멋 따지는 사람들은 저한테 꼭 그런 소리 하더군요."

성환은 말을 내뱉으며 노인의 몸을 훑었다. 말과 달리 움직임이나 기척이 미동도 없다. 성환은 노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깊고 아득한 눈동자가 모든 것을 꿰뚫듯 자신을 훑어내린다.

'고수.'

강하다. 자신이 지금까지 만나왔던 어떤 무도인들보다도.

'이길 수 있을까?'

대어 봐도 승산이 희박하다. 마른침이 절로 넘어간다.

"좋아. 아주 좋아. 가벼운 내기 하나 하지."

"이기시질 못할 텐데요."

"자네가 제대로된 일격이라도 먹이면 자네가 이기는 걸세. 그리고 그 전에 자네가 바닥에 쓰러지면 내 승리. 간단하지? 내가 이기면 질문 하나를 하지. 그리고 자네가 이기면 소원 하나를 들어 주는 거야."

성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노인이 파고들었다. 성환이 대처할 새도 없이 팔이 꺾인다.

탕.

성환의 검이 바닥에 떨어진다. 고통보다도 놀라움이 앞선다.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는데도. 대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득히 빠른 움직임도 아니다. 물이 흐르듯이 파고들어 자신을 제압하다니.

"정체가 뭡니까?"

"질문은 내 몫이지. 질문 하나. 정체가 뭔가?"

성환은 대답하는 대신 노인에게 파고들었다. 정신을 모은 채로 검을 노인의 명치로 찔러들어갔다. 노인은 피하는 대신 검신을 타고 성환의 몸에 파고든다.

'제지하나? 아니. 느리다. 피해야 한다.'

퍽!

피하려 했지만 이미 노인의 손바닥이 명치에 부딪힌 후였다.

제대로된 일격을 허용한 탓에 숨이 멈춘다. 뭘 해볼 새도 없이 두 번이나 쓰러졌다.

"기의 양은 많지 않지만 활용법이 능숙해. 대처도 빠르고, 동시에 완숙미까지 보여. 그 경지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그런데도 신체는 검법을 얼마 익히지 않은 사람의 몸."

정곡에 성환의 몸이 움찔거린다.

"대답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렇다할 능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기공술도, 혹은 특별한 기술도 아니다. 평범한 움직임과 평범한 공격이다. 일반인의 것과 동일한. 그 속에 담긴 의미까지 같지는 않을 테지만.

확언할 수 있다. 자신에게는 막혀 있는 벽을 이 노인은 이미 넘어섰다. 얼마나 높은지는 알 수 없지만.

"대답하지 않아도 돼. 내가 알고싶은 걸 묻는 거니까. 질문 둘. 검법의 이름이 뭔가?"

성환은 겨우 몸을 일으켰다. 호흡을 고르는 동안 노인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주 기초적인 검로만을 사용하는 걸로 봐서는 배운 사문을 숨기고 싶어하는 것 같군. 하지만 눈썰미 있는 사람이면 투로 약간만 보고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어."

성환은 대답하는 대신 장갑을 고쳐씌웠다. 노인은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장난치듯이 자신을 떨쳐내고 바닥에 쳐박는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전력 차이.

예전의 몸이었더라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내공의 격차로 손발을 떨쳐내고 검기를 내뿜는다고 해도, 이 작달만한 노인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꽤 고매한 사람에게 사사받은 모양이군. 움직임 자체는 변칙적이고 변수가 많지만. 중심을 잡아주는 기초는 그렇지 않아. 단단하고 뼈대가 있어."

성환은 다시 검을 붙잡았다. 이번에는 빠르게 들어가는 대신 검을 세로로 길게 세워 오른쪽 가슴팍에 붙였다.

"지금만 해도 그래. 올바른 선택지를 저도 모르게 머리에서 뽑아 쓰는 거야. 똑바로 수련을 받아오지 않았다면 그러기 힘들지."

성환의 검이 아래로부터 노인을 덮쳐갔다. 파고드는 것이 힘들게 하기 위해서다. 노인은 훌쩍 뒤로 물러났다가 성환의 검이 반쯤 올라가는 때부터 덮쳐들었다.

성환은 올라가는 검을 억지로 바닥으로 내려붙였다. 하지만 그래도 늦다. 노인의 반쯤 펼쳐진 손이 성환의 턱으로 날아온다.

퍽!

뇌가 흔들렸는지 자세가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귀가 웅웅거린다. 성환의 몸이 일어나려다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세 번째 질문일세. 그 자리에 머문 지 얼마나 됐나?"

무릎을 지지해서 몸을 일으키던 몸이 석상처럼 멎는다.

"무슨 말입니까."

최대한 담담하려 했지만 성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야. 자네를 사사한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있어. 재능 자체도 대단해. 신체나 기의 보유량은 왜 그 꼬라지인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자네의 재능이면 혼자서라도 벽을 넘어섰어야만 해. 그런데도 그러지 못했다."

성환은 침묵을 지켰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지만 노인은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어찌됐건.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재미있어."

"내기. 아직까지 유효합니까?"

성환은 내뱉듯이 말했다. 승부에서 노인은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고 했다. 승부에 이기면 그에게서 해답을 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몸 일으킬 수 있겠나? 아직도 세상이 빙빙 돌 텐데?"

"내일도 있죠. 모레도 있고. 그 다음 날도 있고."

"참 나. 그래서 자기 이길 때까지 덤벼들겠다? 그러고서 대답은 하나도 못 해 주고?"

"말씀대로."

노인이 혀를 끌끌 찬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매일 아홉 시. 여기로 찾아오겠습니다."

"나는 안 나올 테니 그리 알어."

"싫으시면 매일같이 쫓아다닐 겁니다. 일어날 때부터 주무실 때까지 덤벼대는 건 달갑지 않으실 텐데요."

"우리 집에 맘대로 찾아올 수 있다는 듯이 말 하는군."

"어렵지 않죠. 화장실을 가시건 저녁밥을 드시건 계속 들러붙을 겁니다."

"자네 그러다 반신불수 되는 수가 있어."

"그러지 않으실 걸요. 그게 무도와 실전의 차이니까."

노인이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든다.

"이기적이라는 소리 자주 듣지?"

진탕된 머리가 거의 가라앉았다. 성환은 몸을 일으켰다. 물론 더 싸울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떨어뜨린 검을 챙겨들고 허리에 묶었다.

"굉장히 자주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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