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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5.07.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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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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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when

DUMMY

해진은 가볍게 전화기를 들었다. 울려온 전화. 전화가 올 만한 곳이 많지 않기에 액정을 확인할 필요도 없다.

[잘 접촉한 모양이군.]

수화기 너머에서 높은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매혹적이면서도 허스키한 여자의 목소리다. 목소리의 주인은 해진의 하루를 모두 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고하기도 전에 다 알고 있어서야 보고하는 의미가 없다.

"그렇습니다."

[어때?]

해진은 잠시간 뜸을 들였다. 인간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은 그에게 서툰 일이다. 인간에 대한 판단은 사물에 대한 분석과는 달리 사견이 섞여들어갈수밖에 없는 법. 그리고 해진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익숙치 않다.

"'그'에게 격찬받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성장하고 있다는 건 대단하긴 하지만."

[뭐.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한 사람이니까 믿어 보자고.]

"우리들에 대한 반감이 커 보였습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지. 그 외에는?]

"눈치도 없어 보이더군요. 감각은 뛰어나지만, 단서들을 엮는 능력은 부족한 모양입니다. 덕분에 정체를 들키지 않았습니다만."

해진은 펜촉을 돌렸다. 손가락 위에서 빙글빙글 돌던 펜은 서서히 위로 떠올라 궤적을 만들며 잉크를 공중에 뿌린다. 빠져나오며 적혀나온 글자들은 다시 뭉치고 흩어지며 글자들과 그림을 만들어내고 지워낸다.

[그래. 염제한테 들었다. 텔레포트로 살아남았다고 하더군. 능력에 대해서도 줄줄 읊은 모양이고.]

"의문스러워 하는 눈치였습니다만. 그게 전붑니다. 당분간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리 걱정하지는 마. 네가 거짓말 서툰 건 누구나 다 아니까.]

"거짓말에 서툴지 않습니다."

성환은 코를 훌쩍였다.

[코 훌쩍이는 버릇이나 치우고 말하도록.]

"... 그래도 성환님에게는 들키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축농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요."

[그 인간도 어지간히 눈치없군. 피가 섞여서 그런지. 안 닮아도 될 부분까지 닮았어.]

"제 형을 만났습니다. 여러 가지 오해가 겹쳤던 덕분에 되려 오해가 풀려버렸죠."

수화기 너머에서 흠. 하는 소리가 들린다. 궁금한 이야기기는 하겠지만 딱히 듣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을 했는지. 다시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쨌거나 당분간은 연락하지 않아도 돼. 특별한 상황 있으면 보고만 하고. 이쪽도 바빠 죽을 지경이니까 일 늘리지 마.]

제 할 말만 하고 전화가 끊어져 버린다. 해진은 불만스럽게 휴대폰의 액정을 툭툭 건드렸다.

"딱히. 거짓말 서툴지 않은데."

해진은 다시 코를 훌쩍였다.


- - -


"뭐? 정말? 마..읍!"

호열이 은영의 입을 막으며 잔뜩 인상을 찌푸린다. 쉿. 하고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댄다. 정보가 흘러나가면 큰일이다.

"그래. 덕분에 죽을 뻔 했지."

성환은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울퉁불퉁한 상처가 만져진다. 진찰 결과 폐나 심장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염제의 치료가 확실히 효과는 있었던 모양이다.

"할렘가 지역에 마족이 있어? 그런데 아직까지 살아 있단 말야?"

"살아있다기 보다는 거주지를 옮긴 모양이야. 얼마 전에."

"당장 잡으러 가자."

"그래. 당장 잡으러 가자고."

은영과 호열이 몸이 달아오르는지 손을 바쁘게 꼼지락거렸다.

"다 죽을걸."

"백 퍼센트?"

은영이 조금의 가능성도 없냐는 듯 눈을 빛낸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들이받겠다는 표정이다.

"백 퍼센트."

현재 파티원 다섯. 능력치가 조금은 들쑥날쑥하기는 해도 어디가서 쳐질 파티원들은 아니다. 하지만 마족을 상대하는 것은 급이 다르다. 실력이 더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원을 늘이거나.

"그러니까 프리랜서로 한 대여섯 명 정도 불러야 해. 인원이 많으면 더 좋지. 스무 명이면 안전할 테고."

"그만큼 우리가 받을 돈이 줄어들겠지."

호열이 잠시 멈칫거린다.

"또 쫄아붙은 거야? 이 누나만 믿어. 당장 마족 놈의 목에 화살을 맛보여줄 테니까."

"으... 왠지 요새 들어서 빡빡한 일만 맡는 느낌이라서. 이전 수액채취는 정말 편했어. 그거 다시 하면 안 돼?"

"절대 안 돼. 안 해."

성환은 질색하며 대답했다. 수액채취에서 한 고생과 악취는 아직까지 치가 떨린다.

"...어쨌거나. 만약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데? 난 마족은 처음이라서."

"마족이라고 해서 별 게 있는 건 아냐. 지능이 꽤 높아서 사냥이 까다롭고. 그리고 가지고 있는 능력의 종류가 많으니 방비하기도 쉽지 않아. 마법도. 초능력도. 경우에 따라서는 내공을 통한 무술도 사용하는 경우까지 발견돼. 마지막으로 패밀리어를 부린다는 것 정도. 별 것 없지?"

"충분히 별 게 있어 보이는데."

패밀리어는 하수인이다. 마족이 자신의 힘을 부여해 만든 직속 부하.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다. 힘을 분산한다는 의미로 본다면 전력약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적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전력강화라고도 볼 수 있다.

성환은 귀를 긁으며 마족에 대한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결국 필요한 건 차륜전이라는 거지. 마나량이 많다고 해 봤자 결국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다행인 건 녀석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어.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녀석이니까 경험도 많지 않을 테고."

"이름은 뭔데?"

"쥐들의 왕."

"없어 보이는 이름이네. 뭔가 르 반테온 빈 포르셰. 처럼 귀족같은 느낌을 바랬는데."

"그래도 마음속 한 구석에 소녀같은 구석이 남아있긴 한가보군. 아저씨 감성만 있는줄 알아아악!"

"음. 사냥일자는 언제쯤이 되죠?"

호열의 머리가 은영에게 얻어터지는 동안 해진이 물었다.

"모르겠네. 열 명 정도 모아야 되고. 아. 칼도 만들어야 돼."

성환은 부러진 칼에 그제야 생각이 미쳤다. 이전 같았으면 한 자루 부러졌다고 해도 다른 검을 쓰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검 한자루가 전 재산이었다. 그마저도 부러져 버렸지만.

"일은 물어왔으니까 파티원 모으는건 알아서 해. 검 주문한다고 나는 바쁠 테니까."

성환은 몸을 일으켰다. 승혜에게 부탁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려온다.


- - -


"오랜만이네요."

반갑게 인사하는 승혜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건냈다. 이제는 알바가 아니라 거의 손님 취급이다. 하긴. 요새 들어서 자주 찾아오지 못한 것은 맞다.

성환은 오랜만에 들른 무기점을 둘러봤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당분간은 다시 일 할 수 있을 거야. 혹시 도와줄 일 있어?"

"아뇨. 딱히 없어요. 아! 사다리 좀 이쪽으로 가져와 주실래요?"

못보던 사다리까지 들어와 있다. 높은 찬장은 성환이 지금까지 닦아왔는데. 성환이 없으니 사 온 모양이다.

"...일은 잘 돼 가고?"

"네. 조금 바쁘긴 하지만요. 그래도 재미있는 일 투성이에요. 배워야 할 일도 많고요. 아. 차라도 드실래요?"

"아니."

성환은 장부를 뒤졌다. 장부도 나무랄 데 없다. 데스크도 깨끗하고. 물건도 잘 정돈되어 있다. 문에 발린 기름칠까지 완벽하다. 그렇다 보니 부탁하기가 더더욱 염치없어진다. 일이라도 좀 도울 게 있다면 일하다 던져라도 볼 텐데. 할 일까지 없다.

"그런데 검은 안 들고 오셨네요? 손 볼 때가 된 것 같은데."

승혜가 성환을 올려봤다. 성환은 머뭇거렸다. 그 검은 승혜의 할아버지가 만든 마지막 물건이다. 그걸 부러뜨렸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게... 사실 그 일 때문에 왔어. 무기가 한 자루 필요하게 돼서."

"네? 쓰시던 검은요?"

"부러졌어. 산산히."

성환은 고개를 떨궜다. 면목이 없다.

"그렇군요."

"미안해."

"뭐가요?"

"검. 할아버지가 만드신 물건이잖아. 내가 부러뜨려 버렸고."

"아뇨. 어짜피 금속류가 아니라 쉽게 부러지는 물건이었으니까요. 수명이 다 된거죠. 그리고 할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어요. 무기는 전장에서 쓰이다 부러지기 위해서 세상에 만들어지는 거라고. 어딘가에 놓여 녹슬어버리는 무기보다는. 훨씬 기분좋게 마지막을 맞이한 셈이죠."

성환은 고개를 살짝 올렸다. 표정으로 보니 위로하는 말은 아닌듯 싶다. 움츠린 어깨를 살짝 폈다. 모든 죄책감이 씻겨져나가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그래서 새 무기가 필요해."

"검이죠? 어떤 검이 필요하죠?"

"...일단 최대한 싼 재질로."

"네?"

"그게...예산이 거의 없거든."

"아뇨.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아뇨. 괜찮아요. 나중에 갚아 주시면 되잖아요."

"지난 번 외상도 다 못 갚았지."

"얼마간은 갚으셨잖아요. 신용도는 충분해요."

"다 못 갚고 새 물건을 주문하는 순간. 벌써 신용이 없는게 아닐까."

"하지만 갚으실 거죠?"

"만들어 준다면 갚기야 갚겠지."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승혜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아무리 봐도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여자다. 성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정당화해보려 노력해도 돋 뜯어가는 기둥서방 느낌밖에 나질 않는다.

"으. 진짜 갚아 줄게."

"말씀 안 하셔도 알아요. 아. 부탁 하나만 들어 주세요. 가벼운 부탁인데. 괜찮죠?"

"뭐. 갑과 을의 관계인데. 그쯤이야."

성환은 검 주문에 들어갔다. 마음을 완전히 놓자 차라리 편해진다.

"이전보다 조금 짧으면 좋을 것 같아. 무게는 조금 더 가볍게. 손에 잘 달라붙고 잘 베이면 좋겠어.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잘려나가선 안 되고. 굽이진 환도보다는 곧게 뻗은 직선형태로. 무슨 말인지 알지? ..뭐 하는 거야?"

승혜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스케치북을 들고와 뭔가를 슥슥 그리고 있었다.

"아. 바라시는 형태를 그려 보는 거에요. 요새 이런 주문제작이 늘었거든요. 무기를 그려서 보여 드리면 즉석에서 피드백이 가능하니까요. 아. 대충 이런 모양인가요?"

승혜가 스케치북을 뒤집었다. 깔끔한 모양의 검이 그려져 있다. 만드는 재주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림실력도 상당했다.

"두께를 조금 더 좁게 만들 수 있어?"

"조금 더요? 이 정도? 경도가 약해져서 좀 쉽게 부러질 수 있어요."

"...생각해 보니 두께를 좀 더 넓히는 게 좋겠군."

성환은 쉽게 부러진다는 말에 말머리를 급선회했다. 취향에 맞지 않아도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이 필요하다. 다시는 이런 낯부끄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칼끝 형태는 괜찮으세요? 조금 경사를 높게 만들었는데."

"별로 상관없어. 찌르기를 그다지 많이 사용하는 편이 아니거든."

"칼자루는 쓰시는 장갑과 같은 재질로 할게요."

"음. 그건 좋아. 만들어줬던 장갑. 정말 마음에 들거든."

"열심히 만든 거니까요. 방패막이는 원형으로 만들면 되겠죠?"

이후로도 여러 대화가 이어졌다. 마지막에 승혜가 내민 그림을 보고 성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만들어진 검을 잡는 것은 다른 느낌이겠지만. 취향에 맞는 검을 얻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마음에 들어."

"네. 그럼 이런 형태로 만들게요. 이삼주 정도는 걸릴 거에요."

"그래."

성환은 몸을 일으켰다. 승혜가 옷자락을 붙잡는다.

"왜?"

"부탁. 아직 말씀 안 드렸는데."

"아. 부탁? 여기서 바로?"

"네. 여기서... 십 분 정도만 앉아 있어 주세요."

"뭐? 그걸로 되는 거야?"

"네."

성환은 풀썩 주저앉았다. 별 부탁이 다 있다. 뭐. 이걸로 괜찮다면 그걸로 상관없지만.

승혜가 스케치북을 한장 넘기더니 다시 뭔가를 그려대기 시작한다.

"아. 움직이지 마세요."

"뭐 하는 건데?"

"성환 씨 그리는 거에요."

"내 얼굴 그려서 어디 쓰려고?"

"...사람 얼굴은 많이 그려볼 기회가 없거든요."

"싱겁긴."

성환은 혀를 툭 찼다. 결국 이번에도 공짜나 다름없이 다시 검을 얻게 됐다. 쿡쿡 찔러대는 양심이 짜증나기는 했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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