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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브
작품등록일 :
2015.07.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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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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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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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print-7

DUMMY

성환은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을 붙잡으려 애썼다. 팔다리의 버둥거림이 서서히 멈춰가고 있었다.

귀에서 환영과 같은 발소리가 들려온다.

"걸레짝이 돼서 왔군."

쯧쯧대며 혀를 찬 발소리의 주인은 성환의 몸을 뒤집고는 액체를 확 뿌린다. 타들어가는 고통이 몸을 뒤덮는다.

"미안하군. 안 아프게 치료하는 방법은 몰라서 말이야."

고통을 즐기듯이 킬킬거리며 웃는 남자의 목소리. 고통이 머리를 짜릿하게 감싸고 돈다. 빙빙 돌던 세상이 서서히 멈춘다.

머리를 기분나쁘게 툭툭 건드린다. 감촉으로 봐서는 막대기 같은데. 확신할 수는 없다. 몸이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는 감각까지도 왜곡되는 일이 흔하니까.

성환은 겨우 눈을 다시 떴다. 과하게 작은 남자는 로브로 온 몸을 가리고 있었다. 깊게 눌러쓴 후드 안에서 눈 하나가 반짝일 뿐이다.

"좋아. 눈은 그만 굴리고. 죽지는 않을 거야. 흉터는 남겠지만."

다시 한번 상처 위에 액체가 쏟아진다. 이번에도 강렬한 통증이 몸을 훑어내린다.

"음. 좋아. 해진이가 데리고 온 걸로 봐서는 돈은 꽤 있는 놈일 테고. 돈을 떼먹지도 않을 놈 같군. 목숨 건진 값은 해 주겠지? 그렇지?"

다시 낄낄거리는 소리와 함께 액체가 상처 위를 다시 덮는다. 성환은 이를 악물고 다시 찾아올 고통에 대비했다.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까지의 고통이 씻은듯이 사라져 버렸다.

"음. 좋아. 반응을 보니 성공한 것 같군. 당장 죽지도 않을 것 같고. 푹 쉬고 있어. 해진이 몸을 녹여야 되거든. 삼사 분이면 충분할 거야."

성환은 꼼짝없이 누운 채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죽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성환은 마지막에 뒤에서 들려온 텔레포트 주문. 텔레포트는 공간을 왜곡시켜 같은 시간의 다른 공간을 엮는 능력이다.

시간을 역행하는 류의 주문은 아니지만 고도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해진이 혼자 해 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고급의 마법을 혼자서 성공시킬 수도 없거니와, 가능하다고 해도 마나가 부족했을 테니까.

하지만 해진은 분명히 텔레포트라고 말했고 둘은 다른 곳에 도착해 있었다.

'던져달라고 했던 눈송이와 연관이 있는 건가?'

아마 눈송이와 텔레포트가 연관이 있는듯 싶다. 자세한 내막은 물어 봐야 알게 되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무렵 길다란 비명소리가 울린다. 해진의 목소리다. 비명소리의 크기로 봐서는 그도 몸이 성하지 않은 상태인 모양인듯 싶다.

"좀 익숙해지라고. 매번 계집애처럼 끽끽거려서야."

남자는 약간의 빈정거림을 섞으며 낄낄거렸다. 해진의 비명이 한번 더 울리고 나서야 주변이 조용해졌다.

"좋아. 좋아. 해진이 놈이야 돈 떼먹을 걱정 없고. 거기 새로 오신 신입. 미안하지만 신상이 증명될 때까지는 가만히 있어 줘야 되겠어."

남자가 손에서 자그마한 침을 꺼내들었다. 뒤틀린 손이 로브 아래로 보인다. 차라리 노송의 제멋대로 뻗은 가지가 더 나을 정도의 모습이다.

"남의 손의 제멋대로 보는 건 아냐. 미끈한 아저씨."

남자는 침을 성환의 가슴팍에 꽂아넣었다.

"음음. 점혈이 끝났어. 몸을 움직일 수는 없을 거야. 이런 몸이라. 내가 조심성이 좀 많은 편이지. 이해해 주기를 바래. 말은 할 수 있어? 말 할 수 있다면 대답해 봐."

성환은 입에 고인 침과 피를 삼켰다. 숨이 쉬어지는 것을 보니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법이나 치유능력을 사용한 것도 아닐 텐데 경악스러울 정도의 치유속도다.

"...여긴 어디지?"

성환은 팔을 움직여 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꿈쩍도 않는다. 정도 이상으로 몸에 피로가 누적된 것 때문인지 가슴팍에 꽂힌 침 때문인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정말. 여기 처음오는 인간들은 다들 그런 질문들이야. 뭔가 창의력 있는 질문은 없어? '애인 있냐?'라거나 '첫눈에 반했으니 사귀어 주세요.'따위의. 물론 사내 놈들이야 사귀자고 해 봐야 사절이지만. 흥미로운 질문을 해 봐. 나를 재밌게 해 달라고."

보아하니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성환은 다음 질문을 던졌다.

"너는 누구지?"

"말했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라고. 내가 누군지 난 별로 궁금하지 않아. 부를 이름이 없어서 그렇다면 그냥 염제라고 불러. 염제 신농. 나름대로 괜찮은 이름 아냐? 물론 원래 이름은 아니지만."

염제의 목소리가 쇳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어떻게 상처를 낫게 만든 거지?"

"이제야 나름대로 괜찮은 질문이 나왔군. 간단해. 약초들을 일정비율로 섞은 치료제야. 세 번에 나눠 부어야 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지? 조금 따끔거리기는 하지만."

"치료비는 얼마지?"

그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고개를 드는 탓에 후드가 살짝 벗겨졌다. 어둑한 빛에 조금 비친 그의 얼굴은 손가락보다 나아 보이지는 않았다.

"좋아. 아주 좋아. 이제야 내가 바라는 질문이 나오는군. 눈치가 빨라. 능력 가진 놈들 치고 눈치 빠른 놈들이 적은데 말이야. 좋은 질문이었어. 하지만 대답은 못 해 주겠는걸. 대답은 네게 있으니까. 네 스스로한테 물어봐. 네 목숨값은 얼마지?"

성환은 남자의 심중을 알기 위해 그의 눈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언뜻 비치는 호기심 정도가 전부다.

"네 목숨값만 내 놓고 가. 네가 스스로 생각하는 목숨 값."

"한푼도 내놓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 이렇게 추하게 뒤틀린 몸을 가지고. 네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내 목따위는 탁. 하고 부러져 버릴 걸."

"말은 쉽게 하는군. 좋아. 돈을 낼 테니 날 풀어줘."

"해진이가 일어나고 나서. 새로운 사람은 믿을 수가 없거든."

"오래 아는 사이인 모양이군."

"불알 친구지. 돈독한 사이는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금전으로 이어져 있지. 그리고 흥미로운 실험체를 제공해줄 귀한 몸이기도 하고."

축축한 방. 검게 그슬리고 뜯어져 나간 벽지. 부숴져 내린 창문과 여기저기 아무렇게 놓여진 유리 조각들. 빈민굴의 어딘가인 듯 했다.

염제는 해진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일어나. 일어나. 다 나은 거 알고 있다고. 차라리 귀신을 속여. 벌써 피곤해. 돈 내고 썩 꺼져."

염제의 말을 듣자마자 해진이 몸을 일으킨다.

"이번에도 신세를 졌군."

"공간이동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능력이 올라간 거냐?"

"운이 좋았을 뿐이야."

"한 놈은 폐가 반대편까지 꿰뚫리고. 한 놈은 팔과 가슴이 뼈째로 얼어붙었는데 '운이 좋았다'라. 운이 안 좋으면 어떻게 될지를 보고 싶어지는군."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자고. 돌아갈 곳이 있어서 말이야."

"그래. 돈은 바로 지불할 건가?"

"그래. 언제나처럼."

해진은 지갑을 꺼내 통째로 던졌다. 염제는 지갑을 받는 대신 몸을 돌려 지갑을 피해냈다.

"조심해 달라고. 몸에 부딪히면 뼈가 한둘은 부러지니까."

"좋아. 거기 이름모르는 형씨도. 몸값 내고 당장 사라져."

성환은 품을 뒤져 지갑을 꺼냈다. 안에 있는 헌터증을 꺼내 품에 넣었다. 그리고 해진과 마찬가지로 지갑 채로 던졌다. 해진의 지갑 옆에 나란히 멈춰선다.

"가지고 있는 게 그게 다야."

염제는 성환의 지갑을 지팡이로 열었다. 안에 들어있는 수표들을 본 염제가 눈을 찌푸린다.

"말했잖아. 네가 주고 싶은 만큼만 주면 된다고."

"부족한가?"

"거참. 비싼 목숨이로군."

염제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성환과 해진은 콧노래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저 자는 누구지?"

"친구입니다."

"능력자인가?"

"아닙니다. 스스로는 약재사라고 부르더군요. 연금술사에 더 가까운 모습이기는 하지만. 능력이랑 연관되는 것에는 질색을 하는 친구라."

"그렇군. 몸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학구열 때문이죠."

"학구열?"

"세상이 이렇게 바뀌고 나서. 수많은 생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생물들이라고 하면 몬스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세계에서 넘어온 수많은 식물과 균류들도 있죠. 그리고 저 친구는 거기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약물들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그래서 자신의 몸을 모르모트로 수많은 실험을 한 겁니다. 자연스레 몸은 뒤틀리고, 뼈는 오그라들었죠. 바람만 불어도 부서지는 몸이 된 겁니다."

해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

" 하지만 자신의 몸을 희생해 수많은 연구결과를 남겼죠. 지금 상아탑에 있는 대부분의 식물학 관련 논문은 저 친구의 글입니다."

해진은 말을 다시 멈췄다.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었지만 그가 친구의 성과에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군."

"시 외곽에 사는 저희들은 병원에 갈 수 없습니다. 이쪽에서 쓰는 약품배합은 거의 대부분이 염제의 물건입니다. 수많은 목숨을 구했죠."

성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하고 뒤틀린 모습을 하고서도 묘한 당당함을 가지던 그의 모습이 그제서야 이해되었다. 노송처럼 뒤틀린 뼛조각들은 그에게 영광의 훈장인 것이다.

"대단한 친구군."

"장난기가 좀 있기는 하지만요. 그것보다. 다른 궁금하신 건 없으십니까?"

"아. 잊어버릴 뻔 했군.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마나가 바닥났다고 하지 않았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습니다. 눈송이를 부숴 버렸으니까요."

해진이 고개를 팍 숙였다. 성환은 손을 가로저었다. 목숨값에 비하면 훨씬 싸다. 그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만 궁금할 뿐이다.

"인사는 됐고. 미안하다면 어떻게 한 건지나 알려줘."

"제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기억하십니까? 물론 머리는 나름대로 있었지만. 거의 완벽한 무능력자였죠."

"물론."

"그리고 꽤나 큰 행운을 잡게 됐다는 말씀도 드렸었고."

성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진은 잠시간 말을 멈췄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그가 토해낸 말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어떤 계기 이후로 제 몸은 마나를 흡수하는 신체가 되었습니다."

성환은 얼굴을 굳혔다.

"무슨 말이지?"

"이를테면, 주변에 강력한 마나의 파동이 있다면 그만큼 마나의 양이 늘어나는 몸이 되었다는 겁니다. 눈송이 내부에 있던 마나를 터뜨리고. 터져나오는 마나를 몸에 받아 텔레포트를 시전한 겁니다. 마나량의 최대치가 상당히 많이 올랐습니다."

성환은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해진이 한 설명은 자신과 같은 상황이었으니까.

'이 모든 게 다 우연인 걸까?'

의심이 다시 머리를 치켜든다. 하지만 해진에게 묻지는 않았다. 일단은 생명의 은인이다. 생명의 은인을 상대로 강하게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그렇군."

"제 능력에 관해서는 죄송하지만 함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아.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셔도 좋습니다. 축구장으로 돌아가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도 방법이겠죠. 일단 랫맨들은 거의 다 없앴으니까요."

성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쥐들의 왕'은 살아 있잖아. 놈이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번식할 거야. 그래서야 의뢰를 완수했다고 할 수 없지."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다. 장난감처럼 당한 탓에 자존심이 끝간 데 없이 긁힌 탓이다. 놈의 목줄기에 칼을 깔끔하게 꽂아넣지 않는다면 잠을 설칠 것이다.

"둘만으로는 절대 무리입니다. 저도 모험을 나름대로 동경합니다만 비빌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마족이라니."

"왜. 둘이 아니면 셋이 하면 되고. 셋이 안되면 넷이. 그도 안되면 열이건 스물이건 모여 하면 되잖아."

"아. 그렇군요."

그제서야 해진이 알겠다는 듯 손뼉을 친다.

"헌터라는 자각을 좀 하도록. 헌터란 몰려다니면서 한 놈 족치는게 특기인 사람들이라고."

마족이라면 위험을 감수하는 헌터들에게는 최고의 사냥감이다. 위협은 거대하지만 그만큼의 보수가 있으니까. 아마 스무명 정도는 순식간에 모일 것이다. 게다가 몇 마디 말로 미루어 볼때, 늙은 마족같지도 않다.

"돌아가서 은영이한테 끝내주는 일 생겼다고 알려야겠군."

검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고보니... 돈이 없군.'

염제에게 있는 돈을 다 털어줬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통장에 남은 돈으로는 싸구려 칼 한 자루 사기에도 벅차다. 좋은 검을 사는 것은 꿈도 못 꾼다.

또 승혜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할 판이다.

일을 할수록 빚만 늘어난다. 성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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