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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브
작품등록일 :
2015.07.06 09:14
최근연재일 :
2015.10.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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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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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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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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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as we enter-3

DUMMY

동공의 주인은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먹이가 자신의 둥지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먹이를 먹어치우고 동면에 드는 것을 반복한다면 꽤 오래간 허기에 몸서리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가 이 바닥에 둥지를 튼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둡고 축축하고 많이 움직이지 않는 곳이기에 퍽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그 반대로 자신의 마음이 둥지에 적응한 것일 지도 모르지만.

그 외에 자신의 것이 아닌 진동이 둘 느껴졌지만 별 것 아니다. 자그마한 녀석 하나와 그것보다도 작은 먹잇감. 식사거리도 되지 않을 크기다. 가만 놔 두기로 했다. 큰 먹잇감을 찾았고. 당분간은 먹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의 입장에서는 많이 선심을 베푼 셈이다.

찌리릿.

그의 몸이 가볍게 전율했다. 거대한 크기의 살기가 압박감이 되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주변을 훑었지만 자신의 적이 될 만한 크기의 생명체는 아무 곳에도 없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아까 자신이 무시했던 자그마한 놈의 몸에서, 기분나쁜 기운이 뭉실거리며 그를 기분나쁘게 건드려댄다.

작달만한 크기와는 정 반대로 거대한 적의. 하지만 특이하다는 것보다는 분노가 앞선다.

그는 몸을 둥그렇게 뭉쳐 나가기 시작했다. 놈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콰악!

성환은 빠르게 괴물의 몸에 달려들어 몸체를 가로로 잘라냈다.

푸확!

뭔가 저항이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반대로 너무도 쉽게 몸체가 잘려나갔다. 몸체에서 철벅거리며 체액이 흘러나온다.

성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악취가 체액에서 났기 때문이다. 진흙 거인의 악취는 향기롭다고 느껴질 정도다. 성환은 가볍게 헛구역질을 했다. 바닥을 보니 부식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악취만 심할 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흘러나오던 체액이 멈췄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도 있는 모양이다.

회복속도가 빠르거나 하지는 않다. 체력전으로 몰고 간다면 승산이 보인다. 성환은 더딘 녀석의 주위를 빙 돌며 검으로 상처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변이 체액으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악취는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코가 마비된 것이다. 차라리 잘 됐다.

괴물은 앞뒤나 특별한 약점이 있어 보이는 형태는 아니다. 군체의식을 가지거나 하지는 않은 듯 집중하는 곳은 한 부분으로 제한되는 것 같다. 성환의 움직임에 적응하는 속도도 느린 탓에 데미지를 많이 누적할 수 있었다.

놈에게 달려 있던 세 쌍의 팔이 꿀렁이며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이 커진 팔이 성환에게 덮쳐 오기 시작했다.

콰득!

성환은 반격을 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다. 공격이 상하좌우에서 날아오는 데다가 팔의 위치마저 계속 바뀌어 대는 터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콱!

결국 정면에서의 주먹질을 한 방 허용하고 말았다. 검으로 대부분의 충격은 막아냈지만 몸이 튕겨져 나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철퍽.

뒤로 날아간 몸이 쌓여있던 체액에 쳐박혔다. 후각이 마비됐다고 생각했는데도 더 느낄 악취가 남아 있었는지 코를 뒤덮는다. 방독면과 얼굴 사이로도 체액이 들어온다. 눈이 알싸하게 아파온다.

성환은 방독면을 벗어던졌다. 내부에 체액이 섞인 터라 더 이상 방독면은 의미가 없다. 방독면을 벗자마자 눈이 더욱 따가워진다. 최루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넘친다.

"으어어."

눈을 떠 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하다. 쉭 거리는 소리에 성환은 바닥을 굴렀다. 다시 쾅 하는 진동으로 보니 공격이 빗나간 모양이다.

철벅. 하는 소리와 동시에 머리가 어딘가에 틀어박혔다. 안 봐도 뻔하다. 체액이다.

성환은 질색하며 머리를 악취덩어리에서 빼 냈다. 코와 얼굴, 머리카락 전체가 악취로 뒤덮혔다. 머리를 털고 흔들어봐도 냄새는 빠질 생각을 않는다. 당장 구토를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무방비 상태가 된다.

"별 더러운.."

켁켁대며 입에서 썩은내가 나는 물을 뱉어냈다. 다시 코가 마비됐는지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역겨움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성환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녀석의 주먹질이 물 만난 고기처럼 이어진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소리만을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마저도 불완전하다. 귀에 엉겨붙은 체액이 전부 떨어지지 않은 탓이다.

쾅!

이번에는 직격으로 등에 일격을 허용했다. 한참을 날아간 성환은 바닥에 쳐박했다. 다리아 부서질 듯이 아파온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척추가 부러져 버렸다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을 테니까.

성환은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눈은 회복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 지 깜깜하기만 하다.

주먹이 내질러지는 소리가 귀를 감돈다. 세 쌍의 팔. 여섯 개의 주먹. 막아낼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에 최근에 깨달은 것에 생각이 미친다. 초식. 수천, 수만번을 반복한 길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검이 춤을 춘다. 빛이 거의 없는 공간인데도 성환의 검에서 달빛과 같은 빛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단심무(丹心舞) 일식(一式) 승무(昇舞)

가장 처음 배우는 초식이다. 검에서 처음 배우는 동작들이 한 번씩 사용되는 소박하고 간단한 검로. 그 단순한 검로에 거력이 담긴 주먹들이 두부처럼 잘려나가기 시작한다.

그어어엉!

괴물의 손이 죄 잘려나가 공격이 멈췄는데도 성환의 몸은 멈추지 않았다. 은은히 빛나던 검빛이 더 밝아져 있었다.

성환은 그제야 자신이 검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공을 불어넣어 잘라내는 검기가 아닌, 진짜 검의 기운.

성환의 머리에 오랜만에 목소리가 들린다.

[검에 내공을 들입다 불어넣는다고 진짜 검기가 아니다. 물론 검의 절삭력이야 늘어나겠지. 하지만 검기를 흉내내는 것 뿐이다. 결국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편법을 사용해서 검기를 쓰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뿐.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느냐고? 한번 써 보면 알게 될 거다. 스스로 알게 되는 거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그리고 얼마나 갈 길이 먼지 그 때면 처음 자각하게 될 거다.]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코는 없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오감 중 쓸모잇는 감각이라고는 촉감밖에 없다.

'그런데도 주변이 환하다.'

검을 쥐고 있는 손이, 공기와 맞닿고 있는 피부가 눈과 귀가 되는 느낌이다. 괴물의 공격이 완전히 멎어들었다. 하지만 성환은 초식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 순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아마 초식이 아니면 이 느낌을 받을 수 없겠지.'

아직 첫 발을 디뎠을 뿐이다. 성환은 다음 초식으로 넘어갔다. 괴물의 공격이 이어지고 멈추기를 반복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검을 휘둘러 나갔다.


성환의 검 멈췄다. 몸의 감각이 원래대로 되돌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죽었는지 모를 괴물이 바닥에 엎어져 있다. 성환의 검에 난자당해 수백 조각이 넘게 도륙이 나 있다. 끈질긴 생명력 덕분에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꿈쩍거리는 조각들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흙으로 되돌아갈 것은 명백했다.

문득 새끼 거인에게 생각이 미쳤다. 성환은 시체 위에서 주변을 훑었다. 한 쪽에 붙어 시체의 몸에 몸을 비비며 깩깩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지켜 주던 존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성환은 녀석을 주워들었다. 발버둥을 치고는 있었지만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이러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미안하다."

성환은 가볍게 코를 훌쩍였다. 부모와 떨어지자 더욱 애처로이 우는 녀석을 보니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렇다고 여기에 놓아둘 수는 없다. 놔 두면 그대로 죽어 버릴 테니까. 꼬맹이를 머리 위에 올렸다. 높은 곳이 무서운지 팔다리로 성환의 머리를 꽉 붙든다.

성환은 천장을 바라봤다. 진흙거인의 시체를 타고 오르면 아슬아슬하게 천장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거대한 시체를 오르기 시작했다.

천장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자 진흙이 조금 쏟아져 내리며 빛이 쏟아져 내린다. 성환은 구멍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다행히 늪 지역은 아니다.

주변의 악취도 여전하지만 지금은 어떤 산림보다 맑은 공기로 느껴졌다.

성환은 지상으로 올라왔다. 몸에 붙은 진흙을 털어냈다. 그리고 머리에 달라붙은 꼬맹이를 떼어내 바닥에 놨다. 녀석은 주변을 킁킁이며 돌더니 이내 멀리 달아나 버린다. 운이 좋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성환은 잠시 녀석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다. 시야에서 꼬맹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나서야 성환은 머리를 돌렸다.

성환은 꺼져 있던 헤드셋을 켰다.

"뭐 하고 있냐?"

[야! 너 어디야!]

성환의 말을 반토막내며 은영의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그제서야 살아나왔다는 실감이 난다.

바깥바람이 얼마나 신선한지를 감상하고 있는 동안 파티원들이 성환에게 도착했다. 은영은 성환의 몸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호열은 질린 얼굴로 성환의 몸을 털었다. 일국은 성환의 몸에서 나는 악취에 가볍게 헛구역질을 했다.

"대체 몸에서 나는 냄새는 뭐야?"

"나도 몰라."

호열의 물음에 성환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신무기로 악취를 풍기기라도 하려고? 충분히 위력적인 건 알겠지만 내 파티에서 쓸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생각만 했담 봐. 당장에 모가지니까."

"제일 짜증나는 건 나니까 거기까지만 해 줘. 수액은 다 모였어?"

"진작에 다 모였지. 네가 실종되지만 않았으면 벌써 돌아가서 맥주 한 잔 걸치고 있었을걸."

"다행이네."

생각보다 금방 돌아가 씻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돌아가는 길은 평안했다. 몬스터를 만나지도 않았고, 차가 심하게 덜그럭거리지도 않았다.

다만, 성환의 몸에서 악취가 너무 심해 운전자가 운전을 할 수 없다고 해 대는 통에 성환은 장갑차의 위에 탄 채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보는 시선도, 대화도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다. 거의 내다버릴 삭은 쓰레기 취급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이대로 타면 차량 내부에서도 악취가 나기 시작할 테니까.

"생각보다 심하진 않은 것 같은데."

몸에 코를 대고 킁킁였지만 그다지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질겁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로 봐서는 마비된 코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쪽이 더 설득력 있는 가설일 것이다.

성환은 시무룩한 상태로 덜그럭거리는 차 위에 앉았다. 다시는 늪지 거인이 있는 쪽의 의뢰는 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물론 현재 파티원들의 반응으로 봐서는, 성환이 다음 의뢰를 선택할 수 있을 확률은 희박했지만.

당분간은 자신도 발언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뢰를 받았으니 그도 당연하다. 아무리 그래도 다음 의뢰에서 조건 하나 정도는 내걸 수 있을 것이다. 내걸 조건은 명확하며 단순하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돈이 많이 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쉽고 편한 의뢰일 필요도 없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조건.

의뢰장소가 악취나지 않는 장소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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