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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브
작품등록일 :
2015.07.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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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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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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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when-2

DUMMY

- - -


성환은 검을 만지작거리며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집에 수놓아진 용이 성환의 손가락을 타고 내려간다. 유려하면서 절도가 있고. 아름다우면서도 곧은 선이 뒤섞인 검집은 무기의 영역을 넘어 예술의 경계까지 이른다.

검을 빼들자 조금의 소리도 나지 않고 검이 검집에서 뽑혀나온다. 유려한 외관의 장식들과는 별개로 검 자체는 꾸밈없이 단순하다. 철저하게 실용적인 모양새다. 손잡이도 손가락의 모양에 맞추어 홈이 패여 있고, 쓸데없는 장식도 하나 없다. 이렇게 투박하니 아름다운 검집과 부조화가 일어날 만도 하련만 검집과 잘도 어울려든다.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성환은 많은 종류의 명공들을 봐 왔다. 명공들이 만든 검도 많이 다뤄왔고 수없이 많이 사용해 왔다. 검을 사용하고 보는 눈에 있어서만큼은 그도 어디가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성환은 이 검보다 아름답고 균형잡힌 검을 보았노라고 단언하기 힘들었다.

물론 이 검이 최고의 검이라는 뜻은 아니다. 검의 품질을 좌우하는 것은 장인의 솜씨뿐만 아니라 재료도 포함되는 법이니까. 용의 뼈나 비늘로 벼려낸 검이라면 이런 검쯤 단박에 잘라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은 미묘한 균형감. 그리고 재료를 극한까지 이끌어내는 능력. 마지막으로 사용자의 몸에 맞추는 능력.

이렇게 좋은 검을 그냥 받아들려니 속이 아려온다. 이 빚을 갚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알 수 없다. 마음으로는 몇십 번이고 필요없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거절하지 못했다. 그도 무인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검을 거절할 무인은 세상 천지에 아무도 없다. 어. 하고 정신이 드니 검을 받아든 다음이었다.

"오. 그거 새 검이군. 죽여주는데?"

호열이 다가오며 말을 건낸다. 성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캬. 힘 많이 줘서 만들었네. 점장 아가씨도. 대 놓고 편애라니. 너무하잖아."

"그냥 실력이 는 거겠지. 무시무시한 속도로."

"뭐. 그렇게 생각하던가. 그나저나 열 명이 하는 레이드라. 옛날 생각 나는군."

"그러게."

이제야 레이드다운 레이드를 한 번 한다는 기분이 든다.

"너는 처음이잖아."

"...음... KSF때는 수백 명이 함께 움직였으니까."

"참 나. KSF따위를 정식 레이드랑 같이 엮으려고 하다니."

호열이 혀를 툭툭 차올린다.

"마족 잡고 나면 우리도 이름값 알릴 만큼 알리게 되는 거겠지? 클랜도 만들 수 있을 테고."

마족은 A급 최상급의 몬스터다. 5인으로도 할 수 있는 중소규모의 헌팅에서 10인 이상이 동원되는 대규모 사냥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단순하게 A. B. C 따위의 등급이 아닌, 사냥감의 위험도 수치로 표현된다.

사실상 초인들의 영역. 여기서 좌절하는 인간들도 무수히 많다. 수많은 파티들이 이 즈음에서 부서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점에서 성환의 파티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재능 있는 동료들과 나름대로 괜찮은 팀워크. 이런 속도라면 더 위쪽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뽑은 사람들은, 괜찮아?"

"사람이 그다지 많이 모이질 않더라고. 아무래도 마족 사냥이다 보니까 위험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것 같아. 통짜 우리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하지만 뭐.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들로 구했으니까 안심해도 좋아."

"언제나 안심할 때에 사건이 터지던데."

"그 징크스도 이제 졸업할 때 됐어. 무슨 사냥만 나갔다면 사건에 휘말려. 무슨 액이라도 끼인 건가. 잘 아는 무당이라도 있으면 굿이라도 해 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지. 항상 빡센 몬스터 상대만 해 왔으니까. 이번에도 백이면 백 뭔가 일 터진다에 이 새 검을...아니다. 어쨌건. 그래."

둘이 사냥에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인원이 조금씩 불어났다. 느지막하게 도착한 일국을 마지막으로 열 명의 인원이 모두 모였다. 각자 소개와 인사를 나누고 나자 일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다. 은영이 앞에 나서 인원을 분배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마족 사냥은 다들 처음이실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현재 판단된 바로는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고 쉽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테지만요. 처음 대면했던 두 명중 한 명인 김성환 헌터가 브리핑을 하고 본격적으로 시 외곽으로 움직일 겁니다."

은영이 성환을 지목하자 성환은 순간 머뭇거리다 앞으로 나섰다.

"아. 마족이라고 별 거 있지는 않을 겁니다. 아랫길이라고 하는 통로로 들어가서 놈을 사냥하면 끝입니다. 던전이랄 것도 없죠. 패밀리어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지만. 아마 지금쯤이면 한 마리나 두 마리쯤이 한계일 겁니다. 패밀리어를 처리하고 나면 퇴각후 휴식. 다음날에 본체인 쥐의 왕을 잡는 방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질문 있으신 분?"

"특정한 공략법 따위는 없는 겁니까?"

"공략같은 건 없습니다. 애초에 마족이란 건 정형화된 몬스터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니 그 순간의 판단에 맞추어 따랑와 주시면 됩니다. 훌륭한 분들을 뽑았으니 잘 따라와 주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그 판단을 어떻게 믿지?"

뒤에서 한 명이 이죽거리며 말한다.

"믿어 주시면 됩니다. 제 판단만 믿고 따라와 주신다면 다칠 일 없이 끝날 겁니다."

말꼬리를 잘라먹은 남자에게 성환은 침착하게 답했다.

"너. 김성환이라는 헌터 맞지?"

"네. 그렇습니다."

남자가 머리를 슥 훑으며 허세를 부린다. 이제는 시비 걸어오는 인간들이 놀랍지도 않다. 성환은 다가오는 남자의 앞에 마주섰다.

"9급. 헌터던데?"

"네. 그렇습니다. 뭔가 문제라도?"

"하. 요새는 되도 않는 놈들이 와서는 사냥하겠다고 설쳐. 여기 파티장이 몇급 헌터지?"

"그게 중요합니까?"

"9급이면 밑바닥 아냐? 저질 사냥감이나 잡을 것이지 설쳐대는 꼴이 아니꼽군."

성환은 폭발하려는 이성을 겨우 붙들어챘다. 어쨌거나. 고용주의 입장이기는 했지만 거의 평등한 관계니까. 틀어지면 좋지 않다.

"요새 이 파티 유명하더라고. 꽤 괜찮은 파티라고. 능력있는 파티장과 탱커가 있다는 소문이 슬슬 돌아. 그런데 이런 사람을 파티에 들여도 되는 건가?"

요점은 되도않는 찌꺼기는 빠져 달라는 표현이다. 성환은 끓어오르는 속을 겨우 가라앉히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딱 보니 견적 나오는군. 능력 좋은 파티장과 파티원한테 묻어 가는 인간. 아냐? 보아하니 진짜 사냥에 참여했는지도 의문이군. 돈좀 먹인 모양이야? 그도 아니면 파티장이랑 그렇고 그런 사인가? 기둥서방? 그런 건가? 나도 그렇고 그런 일에는 자신 있는데. 한 명더 먹일 생각은 없나?"

남자는 혼자 좋다고 킬킬대며 웃는다. 남자의 뒤로 은영이 활을 뽑아드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호열의 모습이 보인다. 성환은 피식 웃었다. 주변의 눈치로 보아하니 그의 말에 흔들리고 있다. 사실 등급제라는 것이 능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색안경은 생길 수 밖에 없는 법이다.

"그래. 그래서? 뭘 해 줄까?"

"분배금을 올려 달라는 거지. 그리고 능력 없는 인간은 방해되니 꺼져 줬으면 좋겠는데."

"흠. 그러니까. 스스로 꺼지겠다는 말이지?"

"말로 해서는 안 될 놈이군."

남자가 등 뒤에서 한 쌍의 몽둥이를 꺼내든다. 성환은 하품을 했다.

"좋아. 한판 해 보자 이거군. 병원비는 자기 몫. 그리고 룰은... 딱히 없이. '항복'이라고 말하는 순간까지. 지는 놈이 꺼지는 걸로. 됐지?"

대답 대신 몽둥이가 날아온다. 성환은 검을 들어올렸다. 여유 있게 곤봉을 계속 피해냈다. 이딴 실력으로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니. 9등급이라고 막 대한 것이리라.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기보다 밑이라고 생각하면 멸시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

이 정도 실력 차이라면 검을 쓸 필요도 없다. 검집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용 장식에 상처라도 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아까위진다.

휘릭.

성환은 검을 뒤집어 검손잡이를 역수로 쥐었다. 검손잡이 정도는 상처가 나도 상관 없을 것이다. 투박하니 조금 막 써도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까드득!

날아온 몽둥이를 검밑둥으로 막아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공격을 검방패로 흘려낸 다음 발로 남자의 배를 걷어찼다.

퍽!

고통으로 몸이 살짝 굽혀진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칼밑둥이 남자의 어깨로 날아든다.

퍽!

몽둥이가 날아오지만 여유있게 다시 피해냈다. 남자가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성환의 무릎이 남자의 배에 틀어박힌다.

켁. 하는 소리와 함께 등이 굽어진다. 성환은 남자의 등을 검밑둥으로 다시 후려갈겼다. 자연스럽게 몸이 펴진다.

"항..."

퍼억!

성환은 남자의 말이 끝날새라 검손잡이로 남자의 뺨을 전력으로 후려갈겼다. 남자의 입 안에서 이의 조각난 파편이 공중으로 비산한다. 파편의 갯수와 양으로 보건데 이 예닐곱은 박살난 눈치다.

풀썩.

남자가 바닥에 쓰러진다. 성환은 발로 남자의 양 손을 걷어찼다. 남자의 손에 들려 있던 몽둥이가 구석으로 날아가 버린다.

"항ㅂ..."

성환은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손잡이를 남자의 입에 쑤셔박았다. 남자의 발버둥을 몸으로 찍어누르는 동시에 한 손으로는 검집을 붙잡았다. 남자가 입을 웅얼거려댄다. 하지만 말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음. 좋아. 아직 승부가 끝나지 않았다는 거지? 근성 하나는 멋지군. 9등급인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승부욕이야."

남자는 전력으로 도리질을 해 댔다.

성환은 가볍게 남자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아. 항복하지 않을테니 항복이란 말이 나올때까지 승부를 지속하는 방법밖에 없겠군."

남자가 눈빛으로 애원해댔지만 성환은 가볍게 미소를 띄울 뿐이다.

"좋아. 보통 항복을 받으려면 어디를 공격하는 게 좋을까? 눈도 괜찮을 테고."

성환의 손가락이 남자의 눈으로 향한다.

"턱도 나쁘지 않지."

턱을 톡톡 건드리자 남자의 몸이 가볍게 경련한다.

"아. 아니면, 자신있다는 아래쪽을 공격해 볼까?"

성환의 손이 내려가려 하자 남자의 눈이 애원에서 두려움으로 바뀐다. 눈물도 살짝 배여나오기 시작한다. 입을 계속해서 웅얼거리지만 남아 있던 이의 파편과 핏물만 나올 뿐이다.

성환은 그제야 남자의 몸에서 내렸다. 남자가 벌떡 일어난다. 상기된 얼굴로 구석으로 날아간 몽둥이를 줍고, 도망치듯 사라져 버린다.

"아직도 저 친구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

호열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이 없다.

"불만 없으시면 계속 브리핑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 분이 예약을 취소하셨거든요. 치과 예약이 있으시다고 하던데. 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호열의 말에 여기저기서 가벼운 웃음이 터진다. 불신이 있는 다섯 명 대신 어느 정도의 신뢰가 갖춰진 네 명을 얻었다면 엄청난 이득이다.

성환은 무심결에 검손잡이를 잡았다. 끈끈한 느낌에 손을 보니 피와 침이 뒤섞여 있다. 상황이 끝나고 보니 검손잡이를 쓰는 것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이 명확하다. 성환은 투덜거리며 검손잡이에 묻은 침과 피를 꼼꼼하게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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