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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브
작품등록일 :
2015.07.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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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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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2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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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3

DUMMY

성환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오늘만 해도 몇 번째인지 모를 패배. 속이 쓰리다. 진다는 느낌은 몇 번을 당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패배를 안겨준 노인은 이미 자리를 떠난 뒤다.

"오늘은 좀 진전이 있나?"

재인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매일 밥 먹듯 드나든 탓에 안면을 익힌 탓이다. 아직도 가끔은 무도인이 강하네 헌터가 강하네 투닥거리기는 하지만.

"뭐. 계속 제자립니다."

"뭐라고 조언이라도 듣지 그러나."

성환은 그저 묵묵히 노인에게 싸움을 걸 뿐이었다. 몸이 풀리고 움직일 수 있을때 쯤이 되면 느지막히 노인이 오고, 다시 몇 초 만에 드러눕는 일의 반복.

몇 마디 일상적인 대화들은 있었지만 대련에 대한 대화는 없었다.

"물어본다고 해서 대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대답을 듣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라서."

"뭐. 그야 그렇지. 설사 말로 할 수 있더라도 그다지 도움은 안 될 거야. 우리 아버지지만 말주변이 없다시피 한 분이라서."

성환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단서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것도 없으니."

"짐작가는 것도 없나?"

"그냥 격의 차이가 난다는 것 외에는 느껴지는 게 없군요."

성환은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쨌거나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으니까.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녔으니까. 그 정도의 마음가짐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감이라고 믿었다.

'이제 생각하니. 오만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최고라고 생각했던 자신 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지를 생각하니 낯이 살짝 붉어진다.

"무슨 생각 하고 있나?"

"별 생각 아닙니다. 그보다. 할아버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분이냐니?"

"여기서 이렇게 썩고 있을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유도를 하신 건 아니시군요."

지금까지 단순한 동작밖에 보지 못했다. 하지만 노인의 움직임은 유도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유도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야. 덕분에 내가 처음 유도하겠다고 했을때 펄펄 뛰셨지. 가문의 비전이니 심공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배우라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거든.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따랐으면 분명 강해질 수는 있었겠지만. 후회는 안 해."

"잘도 도망쳐 다니셨군요."

"두들겨 맞으면서도 계속 도망쳐 다녔지. 그러니 별 수 있나. 그렇다고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 보니 재인도 호열과 마찬가지였던 입장이었다. 그러고도 호열의 헌터 일을 못 하게 막는다.

민망한지 재인이 헛기침을 한다.

"나는 재능이 있었다고. 덕분에 이렇게 멀쩡한 집에 살고 있는 거야. 몇 년이나 제자리에서 빌빌대는 녀석이랑은 달라."

"그러시군요."

재인은 성환의 대답에 멋쩍게 웃었다.

성환이 호열의 집을 나선 것은 저녁이 지나 밤이 되고서였다. 온 몸이 근육통으로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은영도 함께 나왔다. 재인과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채다. 말로 봐서는 호열을 빼내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네 도움이 컸어. 그간 헌터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안 좋으셨거든."

성환은 피곤함에 지쳐 있었기에 고개를 그냥 까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햇다.

"그렇게 차이가 나?"

"꽤."

"어떤 점에서?"

"그걸 잘 모르겠어. 특별한 차이는 없다고 생각되는데."

"내공이 차이가 나는 건 아냐?"

"딱히 내공을 쓰시는 것 같지도 않던데. 나도 마찬가지지만."

"처음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때?"

"처음부터?"

"왜. 그렇잖아. 미로를 찾을 때도, 길이 막히면 처음부터 시작해 본다고."

"처음이 도대체 어딘데?"

"그거야 잘 모르지. 기본기?"

기본기라고 해 봐야 몇 없다. 기본 자세와 검을 휘두르는 방법은 지금도 쓰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오늘은 조금 다를 겁니다."

"어제도 그 말 했던 것 같은데."

성환은 검을 고쳐쥐었다.

자세를 바로잡자 노인의 눈에 이채가 섞인다. 성환의 기세가 바뀌었다. 전에는 싸움을 기다리는 사냥꾼의 것이었다면 지금은 가라앉은 강과 같다. 그 기운은 이전에 재인이 보였던 것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무도인의 기세.

"초식을 펼치려고?"

성환이 지금까지 초식을 펴지 않은 것은 간단한 이유였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순간순간의 상황에 가장 맞는 움직임을 하는 것이 초식이라는 틀 안에 얽매여 있는 것보다 강하다고 판단했다.

"뭐. 시험해서 나쁠 건 없잖습니까."

며칠 동안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선보였는데도 졌다. 다른 방법들을 찾아봐야만 했다.

어제 밤동안 고민을 계속한 결과물이다. 은영과의 대화가 실마리가 됐다. 물론 대답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성환의 검과 몸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인 것처럼. 노인의 눈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어린다.

성환의 검이 움직였다. 뻔하디뻔한 투로가 시작된다. 검을 찌르고, 빗겨베 당기고, 자세를 바로잡고, 상단을 베어낸다.

무한한 가능성을 버리고 하나밖에 없는 길로 돌아서다니.

'멍청한 짓이야.'

성환의 자평과 노인의 반응은 반대였다. 파고들어 성환을 때려눕히는 대신 검을 이리저리 피해내기만 했던 것이다.

노인은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거리를 좁히려 들었다. 뒤로 벗어나면 순간은 모면하겠지만 다시 파고드는 데 더 힘들다.

베고 찌르고 검을 내밀었다 회수하는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이 이어진다. 노인은 검의 폭풍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찔한 순간들을 피해내며 손이 다가간 것은 성환의 팔목이었다. 성환의 손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묵묵하게 다음 동작을 이어나갈 뿐이다.

성환의 공격이 노인의 목을 향했다. 이대로면 팔목을 얻어내더라도 큰 손해다. 노인은 팔을 회수해 성환의 검을 팔목으로 막아냈다.

쾅!

팔목과 검이 부딪히며 폭음이 터져나왔다. 성환의 검이 중간에 멎었다. 노인은 성환의 검을 움켜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득!

성환은 검을 포기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검을 잃은 최악의 상황이기는 했지만 바닥에 볼품없이 쳐박히지 않았다. 게다가 처음으로 일격까지 먹였다. 막히기는 했지만.

"계속 하나?"

"졌습니다."

노인이 검을 잡아 휙 던졌다. 성환은 검을 받아들었다.

"에잉. 한 대 못 먹여주니 그다지 기분이 좋질 않구만. 팔목도 얼얼하고."

"그렇게 때리셨으면 충분하지 않으십니까?"

"처음에 깝죽거린 거 생각하면 백 대 정도는 더 후려패야 속이 후련하겠는데. 깨달음은 얻은 모양이군?"

"조금은. 계속 나아가야 넘기는 하겠습니다만."

"초식. 실전에서 안 쓴지 얼마나 됐지?"

성환은 손가락을 꼽았다.

"꽤 오래 됐습니다."

"신검합일이니 뭐니 하면서 초식까지 같이 버렸던 거군."

노인의 말대로다.

"마음가는 대로 검이 가는데 초식이 무슨 필요입니까."

"너보다 잘난 인간이 만든 초식이니까. 배울 게 많은데 버리니 나아갈 수가 없는 게지."

초식은 하나의 투로다. 자신보다 먼저 나아갔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낸 해법.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버릴 만한 가치가 있는.

"이제는 쉽지 않으실 겁니다."

성환은 검집을 풀어내고 검을 뽑았다. 홀가분했다. 더 배워야 한다. 더 많이 알고 나서. 결국에는 초식을 버리겠다는 오만이 자신을 막아섰던 것이다.

"이제야 좀 싸울 맛 나는 인간이 생겼군."

홀홀거리며 노인이 웃는다. 성환은 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웅웅대며 검이 기분 좋게 공명한다.


- - -


성환은 바닥에 풀썩 누웠다. 몸 전체가 더럽혀져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노인이 자신을 내려다본다. 넝마가 된 자신의 몸과는 달리 깔끔하다.

하지만 옷과 몸 여기저기에 가벼운 상처가 남아있다. 성환의 검이 만들어낸 상처다.

"강하시네요."

"하루아침에 나보다 강해질 수 있기를 바랬나?"

"그래도 이만큼 나아진 게 어딥니까."

"쯧. 나아진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게 그제야 나온 것 뿐이야."

성환은 킬킬대며 웃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원했는데 대답이란 게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라니.

"후련한가?"

"대답이 너무 간단해서 맥빠지는 것만 빼면. 그렇습니다."

"원래 대답은 간단한 법이지."

"여하튼. 내기는 제가 이겼습니다?"

노인이 한숨을 쉬며 도리질을 한다.

"그래. 내가 졌다. 젔어. 소원 하나 들어주마. 뭔데?"

"성함. 가르쳐 주십시오."

"기껏 하는 이야기가 이름 가르쳐 달란 거야?"

"듣지 못했으니까요."

"영목. 영목 할아범이여."

"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다음번에 올 때는 손에 주스라도 한 박스 들고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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