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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舶 님의 서재입니다.

흑응회

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대체역사

완결

金舶
작품등록일 :
2015.04.20 05:42
최근연재일 :
2015.07.09 08:04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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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4,692

작성
15.06.1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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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18쪽

다박사(茶博士)에게서 삼국지(三國志)를 듣다

DUMMY

운명이 진원성에게 허용해 준 재충전의 시간은 약 육개월 뿐이었으며, 본인도 모르게 내외적으로 알차게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 동안 벌어진 일들을 몇가지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진원성은 아침 인시에 일어나면, 천불산의 모처로 달려 가서 호흡공부와 권술을 한 시진을 하고, 사냥을 하거나, 열매를 따거나, 땅 속에서 풀뿌리 등을 캐서 먹거나 하였고, 정오가 지나면, 제남부성으로 돌아와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 동안은 호흡공부를 하며 길만 바라보며 달렸는데 이제 여유를 가지고 살펴보니 사람들 사는 모습이 얼마나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는지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진원성은 다박사(茶博士)를 알게 되었다.


어느 곳이나 어느 때나 마찬가지이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자들이 사는 방법은 비슷하였다. 선착장의 각부들을 살펴본다면, 그들은 하루 일을 하게되면 점심은 일을 하는 데에서 주는 밥을 먹게 된다. 그리고 저녁은 일이 끝나고, 당일 지급된 당례로 받은 동전 25 문 중에서 5 문 쯤 저녁 식사와 싸구려 화주를 먹는 데에 쓰고, 그 다음에 유숙(留宿)이라 부르는 간판도 없는 숙소에 가서, 동전 2 문을 주고 잠을 잔다. 유숙은 그야말로 칸막이 없이 툭 터진 공간에서 누구나가 평등하게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자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유숙 근처에 있는 찻집으로 간다. 그 찻집 역시 간판도 없는 곳이며 여기에서는 차 한잔에 동전 2 문을 받고 파는데, 사실은 차를 파는 것이 아니라 면도, 세수, 양치를 하고, 옷차림을 맞춰 가꾼 후에 따끈한 차 한잔을 마시는 것이었다. 아침에 뜨끈한 차 한잔을 마시면 바로 그것이 아침 식사가 되는 것이다.


찻집은 유숙에서 늦게 일어나는 사람들 때문에 오전까지는 손님이 있었지만, 오후가 되면 손님이 거의 없는지라, 이 시간을 이용해 이야기꾼이 나와서 이런 저런 세상사를 재미있게 들려주고 돈을 받는 그런 자리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꾼을 다박사(茶博士= 찻집에 있는 이것저것 많이 알고있는 사람 정도의 뜻)라 부르기도 하였다. 진원성은 어떻게 이런 곳을 알게되었고, 찻집 한 곳에서 삼국지(三國志)를 연화(連話 매일 순차적으로 이야기함)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에 두 달 동안 매일 찾아와서 삼국지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듣게 되었다.


당시의 찻집 들에서는 사회상이 어수선한 때문이었는지 삼국지보다는 수호지(水滸誌)가 인기를 얻고 있었으나, 진원성은 수호지보다는 삼국지를 좋아하여 삼국지를 택해서 들었던 것이다. 연화는 대충 이렇게 진행이 되었다. 찻집에 다박사가 나서서 모인 청중을 향해 물었다. 어디에서 시작을 할까요? 그러면 손님들이 모두 듣고 싶은 데를 한마디씩 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사람들의 요청이 많은 곳을 택해 다박사가 이야기를 하면, 그 대목을 말한 사람들은 이야기가 끝나면, 이야기 값을 맘대로 즉 정해진 금액은 없었고, 기분에 따라 내게 되는데 보통 동전 한 두 푼 정도였다. 그러면 다박사는 십 문이나 이십 문을 벌게 되는 것이었다.


진원성은 매일 한 시진 가량 다박사의 삼국지 이야기에 몰입되었으며 동전 다섯 문을 이야기 듣는 값으로 냈다. 다박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 연인(燕人) 장비(張飛)가 여기 있노라. 어서 덤벼라 - 우렁차게 외치며 삼국지 영웅들의 흉내를 내거나, 때로는 역사적 사실이 이 시대에 주는 교훈도 한 마디씩 섞어가며, 영웅들을 빌려서 시대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이 시대가 영웅을 부르고 있기 때문에 영웅들의 이야기가 인기를 얻는 지도 몰랐다. 진원성은 두 달 동안 약 100 년간의 삼국시대 이야기를 들은 셈이었다. 그리고 후한, 위, 오, 삼국 즉 유비와 조조와 손권의 천하쟁패를 듣고, 여포나 관우나 장비, 하후돈 등 맹장과, 제갈공명과 주유나 노숙, 사마중달 등 책사의 활약 속에서 나라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 나라는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나라를 이루고 살까?


진원성은 삼국지 속에서 미래법에 나오는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 한(漢)나라에 대한 충절이나 이런 충성과 의리보다는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만성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나라의 임무이지, 만성에게 고통을 주고, 만성을 착취하는 것은 강도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박사의 삼국지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기는 하였지만, 한가지 미흡하게 여기는 부분도 있었던 것이다. 즉 수 많은 전투와 수 백만 군병들이 나오는데 과연 그들이 움직이는 데에 필요한 군량과 기타 군수품을 만성들이 만들어 나라에 바쳐야 할 것인데, 어떻게 어느 누가 만들어 조달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아마도 진원성은 그런 점을 볼 때에는 어린 나이이지만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는 그런 자질이 있었나보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는 나관중의 저작이 아니라 명말에 이야기꾼들의 설화로 완성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삼국지에는 터무니 없는 과장이 계속 나열되어 있지요. 예를 들어 말이 쉽지 백만 대군이라 하면, 그에 따른 병참은 엄청날 것입니다. 서기 1422 년 명나라 영락제가 몽골 원정군 23만5천 명을 끌고 갔을 때의 기록을 보자면, 보급대의 마차 수가 11만7천 대였으며, 말, 소, 나귀 등 동물이 34만 마리가 동원되었다고 기록이 나옵니다. 아마 이것이 사실과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국지에 나오는 백만 대군은 그야말로 소설이라 봐야지요. 마찬가지로 수나라, 당나라가 고구려를 백만 군, 삼십만 군을 동원하여 공격했다는 말 역시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전쟁이란 군량과 건초를 공급하는 문제였고, 당나라 삼십만 대군이면 우마를 45만 마리 동원해야할 규모가 됩니다.]


또 다박사가 있는 곳은 현재 제남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소문이 되는 곳이었다. 진원성은 그 곳에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제남부의 많은 이야기들을 줏어들을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소문이 모아지고, 그것이 재해석되어 새로운 소문이 만들어지는 그런 곳이었다. 실제로 다박사란 과거에 합격할 정도의 실력이 못될지 모르지만, 글을 모르는 수많은 만성들에게 어떤 지식을 전달해주는 그런 역할 즉 사회적 언론기능을 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어떤 소식을 전해주고, 어떤 소식을 재해석하여 소문이 갖고 있는 본질적 가치를 만성들이 알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라 할 것이다.


또 진원성은 7 년 전 가몰 이후에 만났던 각종 사건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곰곰 되새겨볼 시간을 갖을 수도 있었다. 석도(石島)에서 탓던 밀무역선은 명나라의 사람들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밀무역을 해야 하였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았으나 그 답을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원수를 찾아서 갚고 나면, 자기도 큰 배를 가져서, 대포와 조총으로 무장하고, 바다를 헤치고 다니며 큰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 대포가 없으면, 바다에서는 살 수가 없다, 대포를 구해야만 돼, 으음 대포는 어떻게 구하지? -


또 소주의 이 관주님 딸 이 소저는 잘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하였다. 그리고 이관주님이 두 번째로 영파에 가서 밀무역을 할 때에 비단 만 필을 천선 3 척에 나누어 싣고 갔었는데, 북경으로 갈 때에는 천선 한 척에 비단 육천 필을 실었다는 것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다가, 결국 영파에서 밀무역을 할 때에 팔았던 비단은 공식적으로 거래된 것은 만 필이지만 실상은 이만 필이나 그 이상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또한 함께 거래한 미곡도 25 척의 배에 오만 석이 아니라 십만 석이나 그 이상의 미곡이 밀무역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관주님이 처음 영파로 와서 자기를 노예로 샀는데, 그 때에 영파로 온 이유는 그 다음 해에 비단과 쌀을 밀무역으로 팔기 위한 사전 교섭을 하려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거의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진원성의 차분하게 따지는 사고력은 꽤 쓸만 한 셈이었다. 진원성은 어려서 아직 이것까지는 생각할 수가 없었지만, 당시에 밀무역은 공개무역보다 열 배 이상의 물량이 거래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으며, 그 이유로 가장 큰 것은 첫째가 엄청난 세율 때문이며, 두 번째는 관리들의 부패 때문이었다. 관리들 조차 직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따로 부패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여 돈을 상납해야만 하였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인들의 탈법을 눈감아 주는 대신에 밀무역의 거래량 중에 일정부분을 할당 받아서 밀무역에 동업해야만 하였던 것이다. 관리가 되는 목적은 부자가 되기 위한 것이며 즉 관과 민이 힘을 합하여 밀무역의 주체가 되었던 것이었다. 관 중에서도 광감세사 환관들이 더욱 특별하다 할 것이었다.


또 그리운 얼굴 범대인을 생각해보았다. 아버지의 얼굴과 겹쳐져서 머리 속에 떠올랐다. 대운하를 만든 영락제 이야기도 다시 생각이 났었고, 또 고마우신 용표두 님과 엄표사님이 생각이 났다. 엄표사님을 다시 만나면 자기의 권술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솟았다. 그리고 동생 왕준서가 생각이 났다. 지금도 잘 있을까? 울먹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주었던 독수리 그림 목각도 생각이 났다. 언젠가 북경에 가면 꼭 찾아가 만나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대표두 아니 호공두 어르신이 생각 났다. 어디에 계실까? 또 심양의 범정이 생각났으며, 보고 싶어졌으나 너무나 멀었다. 범정이와 다시 가기로 한 창개 굴이 생각났다. 그 굴이 무엇이었을까는 지금도 궁금하였다. 대보인 형도 생각이 났다. 장문인이 될려면 3 년을 공부해야 한다는데, 아직도 2 년은 더 있어야 나올텐데.


진원성은 그러다가 무상도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어르신이 아니었다면, 자기는 아마도 죽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 나중에 오거든 뒷산 봉우리 넓적한 바위에 꼭 오라 - 고 했던 말도 생각이 났다. 그 바위에 오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 원수를 갚아야 할텐데, 그 원수를 어떻게 하면 찾아낼 수가 있을까? 누군지를 알 수만 있다면 될텐데. 그러다가 아직도 힘이 미진하여 원수를 갚기에는 턱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제남부에서의 임향주 만큼 힘을 갖은 다음에나 어찌해볼 수가 있을 것 같은 가늠이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냥 혼자만의 짐작일 뿐이었다.


진원성은 자기의 창법이 얼마나 되었나를 다시 한번 꼼꼼이 살펴보았다. 지난해까지는 아무리 해도 창술의 6 세나 7 세가 고작이었다. 이제는 7 세 까지는 펼칠 수가 있었다. 그러나 7 세, 그 다음은 펼쳐지지 않고 끊어졌다. 다만 창술 7 세를 펼치면서 느낀 것은 완벽하다는 느낌에서 작년과는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6 세까지는 각 세가 같은 간격이었다면 7 세는 6 세까지의 모든 세를 합한 것보다도 더 큰 기력(氣力)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8 세는 1세 부터 7세까지 합한 만큼의 힘을 소용한다고 예상해 볼 수 있었고, 8 세를 넘어가기 까지는 또한 많은 시간의 노력이 있어야 함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창술을 펼치는 주먹과 발길에서 느껴지는 기감이 공격하는 상대의 기운을 막거나 비틀고 잡아채고 하는 등의 명확한 구분이 되는 점에서 진일보 했음을 알게되었다. 참 내 병은 이제 다 고쳐진 것일까? 아니면 이 호흡법을 더 계속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데 왜 이렇게 한 시진만 수련하면 그 이상은 하고 싶지 않게 된단 말인가? 참 이상도 하였다.


진원성은 이 시기에 키가 훌쩍, 육 개월 여에 반 자나 크게 되었다. 그래서 두툼하였던 목이 좀 가늘어지고, 점차로 몸 전체적으로 까맣던 털이 많이 빠지고, 붉어졌던 살색마저 하얗게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게 되어, 점차로 영준한 본래의 얼굴이 되어오고 있었다. 그 대신에 겨드랑과 사타구니, 가슴패기와 다리통에는 좀더 굵고 까만 털이 무성하여지고, 얼굴도 구렛나루 수염이 나게 되었으며, 콧수염까지 까맣게 돋아, 점점 어른의 신체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일자 눈섭과 까만 콧수염은 진원성이 나이가 어린 약점을 얼마간 보완해주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 **


아린마님 즉 흑돈장 총관은 흑돈회 서기와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매월 회원들이 내는 회비 흑돈 1 대 당 동전 50 문 즉 총 은자 열 량으로, 장원을 유지하고 남는 돈은, 전부 회원들의 점심과 저녁 식사를 보조하는 것으로 충당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회원들이 식사를 하러 조금 외진 흑돈장에 까지 와야 하는 점에서 시행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경쟁이 되고 있는 흑룡회의 본부가 있는 제남역참 부근이라면 흑돈의 이동의 중심점이 되어 위치가 아주 좋은데, 흑룡회와 어떤 교섭을 한번 시도해볼 수는 없을까 하고 궁리를 하다가, 흑돈 서기가 흑룡회를 방문하여 상의하였다.


흑돈회가 흑룡회에게 야간에 흑돈을 재울 수 있는 공간으로 흑돈장 마당을 제공하고, 대신에 흑룡회의 시설을 반점으로 이용하는 조건이었으며, 이때에 흑룡회원들도 흑돈회원들과 같이 식사에 이용하는 조건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흑룡회원들이 개인적으로 흑돈 보관을 함으로써 겪는 불편이 상당하였다는 점(흑돈은 상당한 고가품이었기 때문임), 또 흑돈장에 흑룡회의 흑돈을 보관할 장소가 충분하다는 점 그리고 흑룡회원들 역시 식사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회원들에게 아주 도움이 된다는 점 등을 함께 고려해볼 때에 합리적인 제안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아린 총관은 이미 식품류 들의 가격을 조사해본 후에 다른 반점에서 동전 3 문이나 4 문으로 파는 식사를 2 문을 받고 팔아도, 집세를 내지 않고, 식사를 하는 인원 수가 꾸준하여 버리는 음식들을 줄일 수 있다면 결코 손해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음식의 질을 높여줄 수도 있다는 계산이었다. 결국 5월 초일에 흑돈 서기는 흑룡회의 회주와 서기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5 월 15 일을 기하여, 흑룡회가 흑돈장에 흑돈들을 야간에 보관시키며, 야간 경비는 흑룡회원들과 흑돈회원 들이 함께 경비조를 짜서 감당하기로 하였고, 흑룡회관은 공동의 식당으로 하기로 하며, 식사의 값은 동전 2 문으로 하고, 반점의 운영은 아린 총관이 책임을 맡기로 하였다.


시행을 해본 결과 아린총관의 예상과 거의 차질이 없이 진행되어, 모든 회원들은 보다 저렴하게 질 좋은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 회의 지도부에게 고마워 하고 있었다. 이로써 제남부의 흑돈 들은 흑룡, 흑돈 따질 것도 없이 점점 동료애가 생겨나는 그런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었다. 반점에서 일하는 선모들도 흑돈회원들의 식구들로 충당하여, 모두 일하는 댓가를 받는 것에 더하여, 자기들도 회의 일에 보탬이 된다는 점에서도 기뻐하고 있었다. 게다가 식품의 재료를 구입하는 일은 총관이 직접 나서서 상인들과 협의를 하고, 어떤 때는 총관이 직접 흑돈을 타고, 산지에 까지 다녀오면서 조달을 하며, 회원들을 위해 노력을 하였다. 재배를 하거나 육성을 하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해가 지날수록 더욱 좋은 방향이 되도록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거의 매일 식사에서 철에 맞는 과일이 한 알씩 또는 한 조각 씩 따라 나왔는데, 식사를 마친 회원들이 과일 한 알 또는 한 조각을 들고서 웃으면서 식당문을 나서는 모습은 무슨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회원들의 만족을 웅변해주고 있었다. 특히 처음에 일부 반대했던 흑룡회원들도 이제는 오히려 잘한 일이라며 칭찬을 주는 데에서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되어서 7 월이 되기도 전에 이미 제남부성의 흑돈장 아린 총관의 이름은 인근의 모든 식재료 공급업자 들에게 두루 알려졌다.


소문이 나자 회원이 아닌 사람들도 찾아와서 돈을 내고 식사를 하겠다고 어거지를 쓰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잘 달래서 내보내고는 하였다. 특히 선착장에서 일하는 각부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갔다. 그들은 녹수방과 비룡방의 소속인 바, 청룡파 무관이 바로 녹수방과 비룡방을 뿌리로 해서 만들어졌으며, 그 청룡파를 뿌리로 해서 흑룡회가 만들어졌으므로, 녹수방과 비룡방 역시 회원이나 다름없다고 강짜를 부리는 데에는 어떤 심각성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이 부분은 흑돈 서기가 녹수방과 비룡방에 협조를 부탁하여, 그들이 내부 단속을 함으로써 잠잠하여졌으나 이로써 얼마 후 녹수방과 비룡방 특히 비룡방에서 청룡파 일을 관여하였던 일부 사람들 내에 자기들이 박힌 돌인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 천대한다는 묘한 감정 바람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었다.


아무튼 이름을 얻으면, 시비도 늘어나는 것인지라, 좋든 싫든 이리저리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져서 아린 총관은 점점 바빠지고, 밤에 진원성 위에 누워 잠들 때에는 파김치가 될 때도 있었으나, 매일 거뜬하게 일어나 지는 것이 진원성이란 좋은 침대 덕분이라는 것을 아린총관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매일 매일 바쁘게 지나면서도 아린 총관은 잠들기 전에 진원성의 음경을 한번 만지며, - 꼬마야, 열심히 커라 - 하고 기도하는 것은 빼먹지 않았다.


작가의말

주인공 진원성이 소년기(현대로 치자면 6 학년과 7 학년 정도)를 막 지나고 있습니다. 현재의 앞과 뒤가 궁금해지면서 인과와 논리를 따지는 사고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라 할 수 있지요. 주인공이 상황을 따라가는 피동적인 시절이었고요, 이어지는 것은 청소년기로 좀 무모하고 실수도 하며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해보려는 시기를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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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박사(茶博士)에게서 삼국지(三國志)를 듣다 15.06.10 1,219 21 18쪽
68 매옥, 아린 총관(阿隣 總管)이 되다 15.06.09 831 18 13쪽
67 용호상교(龍虎相交) 15.06.08 984 17 12쪽
66 수난(水難)이냐 화난(火難)이냐 15.06.07 1,223 33 15쪽
65 생떼 언니 매옥(梅屋) 과부되다 15.06.05 1,308 16 14쪽
64 폭발 위기(爆發 危機)와 흑돈장원 구입(黑豚莊園 購入) 15.06.04 1,226 15 14쪽
63 보인장사를 제안받다 15.06.03 1,253 35 15쪽
62 숨어있는 효능(效能) 15.06.02 1,196 19 14쪽
61 광동권부(廣東拳夫) 초무량(楚無量) 15.06.02 1,203 1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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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특별한 손님 15.05.31 1,015 19 12쪽
58 흑룡회(黑龍會)와 흑돈회(黑豚會)의 탄생 15.05.30 1,036 22 15쪽
57 까만 돼지를 불러라 15.05.29 1,235 1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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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호공두(葫供頭)의 복수(復讐) 15.05.27 968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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