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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舶 님의 서재입니다.

흑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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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金舶
작품등록일 :
2015.04.20 05:42
최근연재일 :
2015.07.09 08:0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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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4,692

작성
15.05.2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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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3쪽

호공두(葫供頭)의 복수(復讐)

DUMMY

용쟁호투가 끝난 후 반 달이 경과할 무렵, 산동성청에서 좌포정사는 제남지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포정사는 광감세사 태감이 불러온 청룡파의 초청 권사 중 죽은 한 사람은 화장(火葬)으로 불태워 대청하에 백골 가루를 흐트려 주었으며, 나머지 한 명은 광세 태감과 함께 북경으로 가려고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제남지부에게 말해주었다. 제남지부는 포정사가 정작 말하려는 핵심이 이제냐 저제냐 하며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다.


"광감세사 그 놈이 다섯 번째 비무의 판정이 잘못되었다며 떼를 쓰고 있는데, 이것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날 포정사님도 현장에서 보셨지 않습니까? 어찌 판정이 잘못되었다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자기가 모셔온 권사가 천하무적이라고 그렇게 큰소리 쳤으면서 ......"


"비밀이 누설되어 백호파에서도 막강한 고수를 모셔왔으니, 그게 자기책임이냔 것이에요? 불알 까버린 잡것이 하는 말은 그날 둘이 서로 한 대씩 쳐서 둘이 다 죽었는데, 누가 누구에게 이기고 진 것이 아니라 비긴 것이라는 말이외다. 다만 한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를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현장을 벗어나 얼마 후에 죽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니, 비긴 것으로 해야되지 않느냐 하는 거지요."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는 말입니까?"


"그 개자식이 하는 말은 비무가 비겼으니 무효고요, 용 보인 산 돈 이만 칠천 량을 산동성 청에서 내놓으란 말이지요. 게다가 부족한 세수까지 더해서 아예 사만 량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포정사 님은 뭐라구 하셨습니까?"


"뭐라구 하긴요. 결국 풍추관의 머리를 한번 더 빌려볼 수가 없나 하고 제남지부를 찾아왔지요."


"포정사님, 지금 풍추관은 그것 말고도 골치 아픈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광세 태감이 한 말을 믿고 이리저리 용 보인을 사라고 했다가, 그 뒷감당을 하느라고 한 달이 다 지난 요즈음도 아직도 편히 잠들지 못한답니다."


"지금 그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에요. 광세 태감 저놈을 잘 달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에요. 끝이란 말이에요. 태감 저놈이 자기 혼자 죽으려고 하겠어요? 아마도 나는 물론이고, 제남지부와 풍추관도 지옥으로 끌고가서 함께 죽으려고 할 것이니 말이외다."


"포정사님, 어찌 이것이 우리 잘못입니까? 광세 태감 그 놈이 자기 입으로 장담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놓고도 그런 망발을 지꺼린다니 참 환장할 지경입니다. 말씀 안드릴려 했는데 풍추관은 지금 사퇴서를 내놓고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무슨 머리를 또 빌릴 수 있겠습니까? 풍 추관을 어떻게든 달래서 수습을 해야하는데......"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이까? 이번에 수수료 얻은 것 일만팔천 량을 떼고, 내가 일만이천 량을 내고, 지부가 칠천 량을 내고, 추관 더러 삼천 량을 내라고 해서, 사만 량을 만들어 보는 것이 말이외다."


"포정사님, 추관이 몇 백 량이면 몰라도 몇 천 량 씩이나 어찌 부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부가 일천 량이나 이천 량이면 몰라도 칠천 량이나 되는 돈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추관이 오백 량, 제가 천 오백 량 부담할테니, 나머지는 포정사 님이 어떻게 해보시지요."


"지금 다른 지부, 지주들 모두가 이번 용보인에 다 털리고 말아서, 보인을 사지 않은 제남지부만 건재한 형편이외다. 그러니 제남지부가 좀 양보를 많이 하세요.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제가 사천 량을 부담하고, 추관은 일천 량 이상이면 나자빠질 것이 분명하니 그리 처결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에구구, 참 말귀를 못 알아듣네 그랴 ...... 제남지부! 용쟁호투 만들어 낸 책임이 제남지부에게 있다는 것을 설마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풍추관하고 제남지부에게 이 모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요.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 도박판을 벌려서 만성들에게 나쁜 풍조를 퍼뜨리고, 수많은 만성들의 가산(家産)을 파탄시킨 책임을 어떻게 하시려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했다고 그렇게 말하지를 않았소이까?"


"그 때까지는 이러한 폐단이 드러나지 않아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제 그 폐단이 드러났으니 말을 바꾸게 되었고, 지부와 추관이 연대해서 책임을 져야 될 때가 온 것이지요."


"예, 저도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지요."


"생각해서 좋은 해결책을 알려주어도 못알아듣네...... 아 정말, 그럼 하는 수가 없지요."


그날 저녁에 산동성 좌포정사가 보낸 자기 휘하의 군병들에게 제남지부와 풍추관은 뇌물 수수와 공금을 유용한 죄목으로 자택에서 체포되어서 성청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며, 자택을 샅샅히 압수 수색 받게 되었다. 제남지부에게서는 은자 오천 량 전후, 풍추관에게서는 일천 량 전후의 은자가 나왔을 뿐, 합해서 최소한 삼만 량 정도는 나오기를 바랐던 산동성 좌포정사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어서는 나중에 본 건을 감사하기 위해서 내려올 어사(御使)를 구어삶을 은자로써도 부족할 판이었으니, 산동성 좌포정사에게는 광감세사의 어거지에 말리면서 부터 꼬이기 시작한 이번 사건이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


제남지부(濟南知府)는 정 4 품 고관(高官)으로써, 황제에게 직접 상소를 할 권한이 있었으며, 이대로 가만히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으므로, 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 기록하여 황제께 즉시 상주(上奏)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남지부는 자기가 오래지 않아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나, 지부가 기대하는 그대로 일이 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은 사건이 중첩되었기 때문이었다.


산동성 좌포정사는 지부와 추관에게서 몰수한 것과 보인 판매 수수료 중에서 남겨진 것과 자기의 내고를 털어서 은자 삼만오천 량을 회표(會票)로 만들어 광감세사에게 전해주었다. 광감세사는 3 월 중순이 되자,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으므로 그것을 가지고 북경을 향해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육로를 선택한 그들 일행 7 명은 덕주(德州)를 지나 산동성 경계를 벗어나자마자, 정체불명의 강도 들에게 모두 잡혀 죽고, 은자 삼만오천 량 회표도 강탈되었다.


이제 대보당에서 본래 이름을 되찾은 심의파 전 장문인 호공두(葫供頭)는 제자들을 동원하여 제남을 떠나는 세사 태감의 뒤를 따라와서, 행렬이 북직예성(北直隸省) 하간부(河間府)에 접어들자 태감을 잡아 쇄음수의 출처를 추궁해내었다. 또한 쇄음수를 추적하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단순 강도로 위장하고 은자 회표는 회수하였으며, 일행 전원을 몰살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4 월 중순 경에 산동성 좌포정사에게 전해졌으며, 성간(省間) 경계선 상의 일이라 책임소재와 상황이 좀 복잡한 일이 되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일이 꼬였다고 하는 것인데, 불투명한 가운데 머뭇거리던 좌포정사는 5 월 초가 되자 파관이 되어 북경 조정으로 불리워 갔다. 그리고 곧바로 산동성 포정사 자리에 다른 사람이 산동성 순무로 부임하여 왔으며, 감옥에 있던 제남지부와 풍추관 역시 복관(復官)이 되지 못하였고, 그를 대신할 새로운 제남지부와 추관 역시 다시 부임하여 왔던 것이다. 표면에 나온 파관(破官) 죄목(罪目)은 좌포정사는 남군을 절강성 항주로 보내기 위해 기운(起運) 세량을 빼먹은 그것이었다. 기운을 빼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 지부와 추관은 사병(私兵)을 양성하려고 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민병대(民兵隊)를 조직하려 했음을 일컫는 것이었다.


심의파 전장문 호공두는 때려잡은 광감세사 태감의 입에서 쇄음수가 흘러나온 북경의 정보를 뽑아내고, 심의파 제자들을 동원하여 북경에서 다시 하나의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 7 월이 되자 북경 황성 근처에 고위 환관들의 목욕을 담담하던 경성 내 절들 중에서 두 곳과 경성 밖의 절 3 곳이 하룻 밤 사이에, 절에 있던 승려들은 물론 잡역을 담당하던 모든 사람들과 그곳에서 잠을 자던 고위 환관들까지 총 이백 수십 여 명 모조리 죽음을 당하는 참변(慘變)이 발생하였다. 호공두는 쇄음수가 출현한 곳을 발본색원 멸절시켰던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심의파 호공두는 이런 일을 할수 있는 자격과 권한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이런 복잡한 사정이 저변에 깔려서 결국 제남지부와 추관도 함께 파관이 되었던 것이다.


북경 절터 현장에서 발견된 문서에는 - 죽은 그들 중에 원나라 잔여세력 들의 한간(漢奸 = 한 즉 중화민족에 해를 끼치는 간세)이 끼어 있으며, 일일이 색출하여 판별하기 어려우므로, 떼로 한꺼번에 척결하였다 - 는 그런 내용이 증거와 함께 밝혀져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현장을 접수한 동창 첩형은 제독 태감에게 즉시 보고하여 지시를 받고, 신속하게 본 사건을 유야무야 덮어버렸다. 문서의 내용은 틀림없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였으며, 기록한 사람은 동창제독에 의하여 믿을 수 있는 신분이라 확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달단(타타르의 음사이며 몽골족을 말함)족 원나라 잔당들이 아직도 북경성 내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니, 이런 사실이 만성들에게 알려진다면 크나큰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 동창은 금의위 군병들을 동원하여 은밀하고 신속하게 현장을 수습하였으며, 세상은 다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사건이 경성 안과 밖에서 발생했다면 만성들이 동요해야 하고, 경호를 맡는 금의위나 동창 등의 사람들 중에 견책 징계를 받는 사람들이 다수 나와야 마땅할테지만 이번 일은 아무 일 아닌듯 그렇게 마무리가 잘 되었다. 명나라 조정은 북쪽 국경이 다시 소란이 발생하자 달단족들의 동향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으며, 달단족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모를 산동성의 사건은 지방관의 교체로써 수습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 때의 만리장성 국경의 달단족 상황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만력제 등극(서기 1572 년임) 이후 명나라 조정은 달단족에게 국경에서 호시(互市 마시를 열어 군마 軍馬를 사고 생필품을 팔았던 국경 무역시장)를 열어주는 댓가로 달단족과의 평화를 이끌어내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국경은 조용하였으나 달단족의 13 세 밖에 안된 리그덴 호타그트 칸(林丹汗 서기 1603 년임)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에 조부(祖父)의 뒤를 이어 칸에 올랐으며, 그 때부터 약간 분위기가 달라지게 되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영특한 바가 다소 있던 리그덴칸은 여러 갈래로 흩어진 부족들을 통합하여 힘을 모으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몽고족의 힘을 모아 - 징기스칸의 위업(偉業)을 다시 이루어보자 - 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당시 몽고지역은 다얀 칸(재위 서기 1470 - 1517 년)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대로 6 만인대(萬人隊) 체제로 구축되어 있었으며, 제 부족들은 징기스칸의 위대한 시대에 대한 열망이 아직도 뜨겁게 남아있었으므로 이 말에 호응해주었다. 이렇게 하여 리그덴칸은 명나라에 대해서 강온 양면 정책을 구사하게 되었다. 즉 일방으로는 호시를 이용하여 교역을 하며, 일방으로는 국경을 넘어 침공하여 물자를 약탈해 갔던 것이다. 이로써 북쪽 국경은 다시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명나라 조정은 달단족들의 동향에 다시 민감해지게 되었다. 리그덴 칸은 일단 부족들의 힘을 모으는 데에 얼마간 성공하였고, 여러 부족들의 충성서약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리그덴 칸은 금방 패착을 두게 되는데 그것은 노략질하여 얻은 물자를 배분할 때에 공평하게 하는 일을 못함으로써 각 부족들의 신망을 점차로 상실하게 된다. 이로써 달단 부족들은 통제되지 못한 채로 다시 각 부족들이 개별적으로 국경을 침범하여 독자적인 약탈 행위도 서슴치 않게 되었다. 이것은 명나라로써는 바람직한 일이었다. 달단족에 영웅이 나타나 부족들을 일통하였다면 부족들이 모두 행동통일되어 일부 부족들이 임의로 국경을 침범하는 일이 있을 수 없으므로, 간헐적으로 국경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란은 달단족 내부가 혼란스럽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나타내주는 증표였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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