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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舶 님의 서재입니다.

흑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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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金舶
작품등록일 :
2015.04.20 05:42
최근연재일 :
2015.07.09 08:04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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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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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6쪽

까만 돼지를 불러라

DUMMY

3 월이 되어 제영반점 점소이로 복귀한 진원성은 결국 3 월 말까지 일하다가 점소이의 생활을 청산해야만 하였다.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곽찬보와 장영우가 그만 두게된 이유를 알게 된 점소이들이 은근히 진원성을 상전 모시듯 하였고, 게다가 본부님이나 선부님은 물론이고 어떻게 알게된 별부님도 진원성을 특별 대우 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진원성은 그것이 제영반점에서 점소이 노릇을 더하기가 곤란할만큼 못내 거북하였다. 그러나 정작 점소이를 그만둔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3 월이 되어 옷차림이 가벼워지자, 아무래도 피부가 많이 노출되는 계절이 다가오는데, 지난 해 부터 서서히 피부에 검고 굵은 털이 자라기 시작한 진원성은 금년 들어와서는 자기 몸에 까만 털이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인데, 털이 처음에는 윗 입술 주변에 그리고 아래턱 주위에 생기더니, 점점 퍼져나가서 구렛나룻 처럼 만들어지고, 다시 두 눈썹이 붙어서 일자 눈썹이 되고, 결국 두 볼에 까지 마구 자라기 시작하였다.


팔뚝에도, 어깨에도 사타구니에도, 허벅지에도, 종아리에도, 그리고 옆구리에서 가슴에 이르기까지도 털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목덜미나 등판에도 꽤 많은 털이 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엉덩이에까지 까만 털이 만져지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기가 마치 어릴 적에 본 적이 있는 돼지새끼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자기 몸이 음과 양이 싸우는 전쟁터가 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병증이므로 병의 치료가 다 되는 날이면 해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한결 걱정은 가벼워졌고, 더욱더 호흡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점소이로써 손님들이 앉아 있는 식탁에 음식이 들어 있는 접시와 음식물 들을 배열하거나 분배할 때에 팔뚝과 손등에 그리고 손가락까지 까만 털이 수북히 난 손으로 한다면, 손님들의 기분이 어떨까? 진원성 스스로 그만 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본부님에게 털 때문에 도저히 점소이를 못하겠다는 그 사실을 말하였더니, 본부님도 털이 많이 난 손등과 손가락을 살펴보시고, 하는 수 없다는 듯 그만두라고 허락하셨다.


진원성은 연구 끝에 5 월 부터는 작은 마차를 만들어 스스로 말(馬)이 되는 인력거(人力車) 사업을 하기로 하였다. 돈 많은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를 가기 위해서는 둘이서 또는 넷이서 드는 가마를 사용하였고, 먼거리를 이동할 때에는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진원성은 자기의 호흡공부와 수련을 위해서, 한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조그만 의자 마차를 만들어서 스스로 말이 되어 그것을 끌고 다닌다면, 스스로의 가장 큰 고민인 단전이 엉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주성에서 살았던 시절에는 부자들이 가마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서도, 인력거를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경항대운하를 타고 북상할 때는, 시간이 나면 마냥 큰 배를 타고 바다를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 생각만 하였지, 인력거를 생각할 여지가 없었으며, 심양의 표행에서도 마차 바퀴가 자꾸 고장이 나서 길을 붙잡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마차 바퀴가 고장이 자주 나지 않게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는 있었지만, 인력거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을 할 것인가와 마차와 가마를 자꾸 연결해서 생각하다가 돈도 벌면서 스스로 말이 되어 호흡공부를 해결한다니, 이것이야 말로 꿩먹고 알먹고 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점소이를 그만두게 되자, 진원성은 우선 제남 역참 가까이에 있는 곳에 셋방을 얻어 잠잘 곳을 마련한 다음, 그 옆의 대장간에 가서, 자기 생각을 말하고 마차를 만들어달라고 주문을 하였다. 대장간의 장인(匠人)과는 과거에 진원성이 팔과 다리에 찰 철편을 만들면서 친해진 사이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스스로 말이 되어 일할 생각이니 그렇게 쓸 수 있도록 편리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손님이 타면 아주 안락하게 느껴지도록, 제영반점 3 층 특실에 있던 고급의자를 얹어달라고 하였으며, 햇빛과 눈비를 가릴수 있게 작은 방처럼 만들어 달라고 하여, 그런 마차를 처음 만들어 본다는 대장장이의 말에 대금은 은자 열다섯 량으로 타협하였다. 대장장이는 나중에는 인력거 한 대에 은자 여덟 량 정도로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이라 이렇게 많은 은자를 내라고 하였고, 그것은 철편을 만들 때에 겪었듯이 몇 차례나 고쳐 만들 것을 고려한 때문이었다. 진원성은 대장간에 살다시피하며 철장인과 둘이서 마차를 만들기 시작하여 자주 뜯어고쳤으며, 거의 한달이 지나자 손님을 한 명 태우고 진원성이 혼자서 끌고 다닐만큼 앙증스러운 모양의 두바퀴 마차가 완성되었다.


5 월의 한 여름날 어깨와 가슴과 뒷등을 거의 드러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인력거를 끌고 달리는 진원성의 뒷태를 보노라면, 검은 털이 살짝 감싸고 있는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새끼돼지처럼 보였다. 누가 진원성을 까만돼지라 처음으로 불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한번 까만돼지를 보고 그 호칭을 들으면, 누구든 다음부터는 까만돼지라 부르게 되었다. 수레를 타고서 수레를 끄는 진원성을 뒤에서 보자면, 진원성의 몸매는, 땀에 젖은 몸통에 까만 털이 많은 점 말고도, 우선 목덜미가 굵어서 머리통보다 오히려 목이 더 굵은 것처럼 보였으며, 어깨는 넓고 탄탄했으나 몸통은 상대적으로 좀 가늘어 돼지와 비슷하였으며, 상체에 비하여 엉덩이 골반 등은 상대적으로 좀 빈약하였다. 그러나 팔과 다리는 오히려 튼실하여서, 그것 때문에 몸통이 가늘게 보였던 것이며, 이런 몸은 진원성의 과거 4 - 5 년 동안 수련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진원성에게 어떻게 군살 한 줌이라도 몸에 붙일 그런 여유가 있었을 것인가 생각해보면, 진원성의 몸은 그야말로 뼈와 근육으로만 이루어진 셈이었던 것이다.


점소이들 사이에서는 인력거를 찾는 손님이 있으면, - 까만돼지를 불러라 - 라고 말하고는 하였다. 그러다가 인력거 꾼들이 많아지자 흑돈이란 진원성이 아닌 인력거꾼 들을 지칭하거나, 인력거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아무튼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진원성의 이름은 제남부성에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꼬마라고도 불리우며, 까만돼지(흑돈 黑豚)라고도 불리우며, 인력거대장이라고도 불리우는 진원성을 모른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타지에서 제남으로 온지 닷새도 채 못된 사람일 것이 분명하였다.


진원성은 점소이 시절에 안면이 있던 순검 아저씨에게 상의한 결과 처음에 은자 두 량을 영업허가금으로 내고서, 아첩(牙帖 = 영업허가증)을 받았으며, 매달 세금은 동전 백오십 문으로 정하여 인력거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진원성이 스스로 말이 되어 인력거를 끌고 제남부성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은 순식간에 제남부성의 명물이 되었다. 진원성은 제영반점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지난 해에 용호대결의 결과를 알아보려고 하던 중에 제남부성 안팍 객점의 점소이들과는 상당한 친분을 쌓아둔 상태인지라, 점소이들은 손님들이 진원성의 인력거를 찾으면, 반점의 입구 간판에다가 빨간 천조각을 걸어두어서, 진원성이 알아보고 손님을 태우러 오게 만들어 주었고, 진원성은 그런 사실을 따라 치부책을 만들어 기록해 두었다가, 월말이 되면 각 반점 점소이들에게 적당량의 간식거리를 되돌려주었다.


제남에서 흑돈 거리의 기준이 되는 것은 제영가 즉 선착장에서 제남부성까지 일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왜냐하면 그 두 시종(始終)점 간에서 가장 많은 손님이 타고 내렸기 때문이며, 결국 이 거리를 기준하여, 인력거를 한번 타면 동전 7 문을 받았고, 거리가 조금 멀거나 짐이 많이 있으면 조금 더 달라고 하기도 하였는데, 하루에 보통 50문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한 달 여가 지나고, 이것이 꽤 짭짤하다는 것이 알려지자, 진원성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인력거 사업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진원성의 비밀이 있었으니, 인력거를 끄는 데에 들어가는 힘이 생각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진원성이 인력거를 끄는 것을 옆에서 보면 별로 큰 힘이 들어 보이지 않았으나, 실제로 해보니 그게 쉽지 않아서 한번 손님을 태우는데 동전 7 문을 받는다면, 그들은 결국 25 문에서 50 문 정도 밖에는 수입을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원성이 보기에는 나이도 어리고 몸집도 작고 하여, 어른들이 나도 금방 할 것처럼 생각하고 도전하였다가,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1회 승차 기본 요금을 10 문으로 올려 받기로 합의를 하였다. 그렇게 하고서야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이 마차의 수리비용과 자기들의 월례(月禮)를 챙겨가는 그런 상태로 될 수가 있었다. 이에 따라 진원성의 하루 수입도 자연히 100 문 가까이 오르게 되었다.


흑돈들의 수가 많아지자, 자연히 어떤 때는 일이 없어 손님을 기다리며 멈춰있는 흑돈들도 자주 있었다. 그러나 진원성은 거의 쉴 사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흑돈들 중에서 진원성의 인기가 단연 많았기 때문이다. 승차 요금은 같았지만, 진원성의 마차는 왠지 자리가 편안하였고, 다른 흑돈보다 빠른 속도로 원하는 곳에 정확히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진원성에게는 흑돈을 끄는 것에 돈을 벌기 위한 것 말고도 또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원성이 흑돈을 끌면서 가장 많은 지출이 생기는 것은 역시 바퀴의 고장과 수리에 따르는 비용이었다. 흑돈을 만들고 수리하는 대장간이 한 군데가 더 생겼지만, 두 곳은 사이좋게 일을 나누어 가졌고, 진원성과 모든 흑돈들이 이 두 곳의 단골이 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바퀴를 좀더 고장이 나지 않고 오래 사용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대장간 주인들과도 같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쇠(= 鐵)를 다루는 방법에 관한 것으로 귀결이 되는 문제였다.


진원성은 아침 인시에 일어나 한 시진 호흡공부를 하고 한시진 산속을 헤메다가 흑돈을 끌고 손님을 태우는 생활을 시작한 지 삼개월이 지나자 자리를 잡았고, 매달 두 량 가까이 진원성에게 돈을 벌어주었다. 진원성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돈을 모아나가 일 년만 지나면, 산 속에 감춰둔 돈에 손대지 않고서 제남 역참 부근이나 천불산 근처에 작은 집이라도 하나 장만할 생각이었다. 세를 산다는 것이 의외로 신경을 쓸 일이 많았으며, 생식(生食)을 하는 진원성으로서는 감추어야 할 것들이 좀 있는 편이기 때문이었다.


** **


8 월 1 일, 관례에 따라 산동성청에서는 금년에 부임한 순무(巡撫)가 지부지주들을 모아서 세량들에 관한 정기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여러 안건 중에 가장 중점이 되는 것은 산동성에서 중앙정부로 올려야 할 기운(起運)에서 미달하고 있는 일십만 량이었다. 이미 파관된 전 좌포정사의 파관 원인이 전 제남지부의 상소나, 환관의 세수부족에 인한 무고(誣告) 등이 아니라 미달된 기운 탓임이 신임 순무에 의하여 밝혀졌던 것이다. 그러나 신임 포정사 순무가 현지에 와서 업무를 파악해보니, 자기가 전임이었다고 해도 도적떼가 될 뻔한 남군들을 귀향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임포정사는 기운 미달 분을 태산 입장 수입으로 조달한다는 하기 쉬운 조치를 명령 하달하였다. 우선 돈을 차입하여 기운을 올려보내고서, 태산의 입산료를 다시 두 배로 올려서, 8 월 1 일 부로 1 인당 동전 80 문으로 올려받게 되었다. 그러면 3 년 남짓이면 10만 량의 부족분이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순무는 3 년 뒤에는 입산료를 다시 40 문으로 원위치 하기로 하였다.


또한 이제는 산동성과 인근의 성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용쟁호투 개최 여부가 공식적으로 성청에서 논의 되었다. 순무는 이미 어떤 결정을 가슴에 담고 있었으며, 3 년 계속하였던 용쟁호투는 더 이상 열지않도록 명령을 하였다. 사실 신임 포정사가 부임하자마자, 이미 수 차례에 걸쳐서 제남부의 여러 사람들은 임향주를 중심으로, 또 백호파와 청룡파의 힘을 모아 이리저리 손을 써서, 내년에도 용쟁호투를 이어보려는 노력을 하였었다. 그러나 신임 포정사는 단호하게 불가 결정을 내렸다.


결정적 불가 이유는 무관의 흥성은 결국 만성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며, 만성들이 힘을 가지게 되면, 유사시에 힘좋은 폭도들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순무가 용쟁호투를 옹호하는 지부지주 들에게 하는 한마디는 무관들이 잘되어 힘좋은 사람들이 배출되면, 그들이 맡을만한 무슨 일거리 즉 생업를 만들어 주지 못하게 되면, 그들은 결국 무뢰가 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무관을 졸업한 사람들에게 무슨 밥벌이 일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순무가 하문(下問) 한마디 하니, 지부지주 중 그 누구도 변변한 대답조차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신임 순무의 복안은 무관의 축소에 있었다. 지난 시절 풍추관이 한다던 민병대 역시 우선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멋보기일 뿐이지, 무관을 졸업한 그들이 도대체 뭘먹고 살겠느냐는 것이었다. 무술관을 한없이 늘려가지 못할 바에는 민병대의 모체는 무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즉 민병대는 따로 생업이 있는 민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되는 것이지, 관에서 미리 선도하게 되면 군병 양성이 아닌 바에는 결국 폭도 양성으로 되고말 것이라는 신임 순무의 결론이었다. 이로써 용쟁호투는 사실상 3 회를 마지막으로 되살아날 가망도 없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임향주는 입맛이 아주 썼다. 3 년을 겪어본 결과 보인판매 사업은 임향주 자신의 입맛에 아주 딱맞는 그런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계속할 방도가 없나 하고 자기가 주동하여 새로 임관한 지방관을 상대로 열심히 노력 하였으나 끝내 무산되었다. 임향주는 이제 정확히 알게되었다. 즉 보인판매 사업을 하려면 첫째로 민병대 또는 관아의 직접소관과 엮이면 관의 개입이 필연적이므로 그것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둘째로 인명의 살상이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인명의 살상은 그 뒷처리에 은자가 많이 소요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결국 사업을 오래 지속할 수 없게 만들 것이었다. 셋째로 관과는 무관한 임향주 자신의 사업으로 하되, 세금을 내면서 관에서 인정해주는 아첩만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넷째 보인장사는 도박이므로 그 약점을 보완할 방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기회가 온다면 다른 누가 챙기기 전에 자기가 꼭 선수(先手)쳐야만 하리라 생각하였다.


작가의말

오늘은 표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주어올린 그림인데, 저작권 침해입니다. 지적해주시면 바로 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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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흑응회(黑鷹會)로 합일(合一) 15.06.12 1,036 18 14쪽
70 청구회(靑鳩會) 출범, 초무량과 대련(對鍊)하다 15.06.11 1,057 17 16쪽
69 다박사(茶博士)에게서 삼국지(三國志)를 듣다 15.06.10 1,218 21 18쪽
68 매옥, 아린 총관(阿隣 總管)이 되다 15.06.09 831 18 13쪽
67 용호상교(龍虎相交) 15.06.08 984 17 12쪽
66 수난(水難)이냐 화난(火難)이냐 15.06.07 1,223 33 15쪽
65 생떼 언니 매옥(梅屋) 과부되다 15.06.05 1,308 16 14쪽
64 폭발 위기(爆發 危機)와 흑돈장원 구입(黑豚莊園 購入) 15.06.04 1,226 15 14쪽
63 보인장사를 제안받다 15.06.03 1,253 35 15쪽
62 숨어있는 효능(效能) 15.06.02 1,196 19 14쪽
61 광동권부(廣東拳夫) 초무량(楚無量) 15.06.02 1,203 17 15쪽
60 생떼의 이름은 난정(蘭庭)이었다 +1 15.05.31 1,055 22 11쪽
59 특별한 손님 15.05.31 1,015 19 12쪽
58 흑룡회(黑龍會)와 흑돈회(黑豚會)의 탄생 15.05.30 1,036 22 15쪽
» 까만 돼지를 불러라 15.05.29 1,235 19 16쪽
56 복왕(福王) 자금성에 들다 15.05.28 1,306 19 13쪽
55 호공두(葫供頭)의 복수(復讐) 15.05.27 967 17 13쪽
54 이정진의 죽음과 쇄음수(灑陰手) 15.05.26 1,098 19 15쪽
53 세번째 용호상박(龍虎相搏) 15.05.25 1,144 17 16쪽
52 비무(比武) 규정이 바뀌다 15.05.24 1,208 14 16쪽
51 청룡파에서 본 음공(陰功) 15.05.23 1,330 20 11쪽
50 무공(武功)의 연원(緣原)을 밝혀라 15.05.22 791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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