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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舶 님의 서재입니다.

흑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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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金舶
작품등록일 :
2015.04.20 05:42
최근연재일 :
2015.07.09 08:04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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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4,692

작성
15.05.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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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3쪽

복왕(福王) 자금성에 들다

DUMMY

북경성은 3 중성의 구조로 지어졌으며, 그것을 밖에서 부터 경성(京城)과 황성(皇城)과 궁성(宮城)이라 불렀다. 황제가 계신 궁성은 그 이름이 자금성(紫禁城)인데, 황제의 개인 주택이라고 할 수 있으며, 궁성은 다시 남쪽과 북쪽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남쪽은 황제가 일을 하는 외궁이며, 북쪽은 황제가 휴식을 취하는 내궁이었다. 신하들은 황제가 일을 보는 곳까지는 들어갈 수 있지만, 북쪽으로 넘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남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내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환관들 뿐이었다. 또한 황제의 사내 자식들 중에서도 황태자이거나 아직 열 살이 되지 않은 아이들만 들어갈 수가 있었다. 황태자가 아닌 황자들은 열 살이 되면 왕으로 봉하여 봉지(封地)를 나누어 주고서 경성을 떠나도록 하였으며, 사전 허락없이는 다시 경성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것은 황권(皇權)을 보호하자는 율법이었으며, 절대 어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금 만력제에 들어서서 이것을 어기는 사례가 나타나게 되었다.


만력 21 년(서기 1593 년)에 만력제는 아들 3 명을 한꺼번에 왕으로 봉하게 하였는데 후세의 사가(史家)들은 이것을 삼왕병봉(三王幷封)이라 역사에 적었다. 만력제에게는 적자(嫡子 = 황후의 아들)가 없었고 서자(庶子 = 비빈의 아들)들만 있었으며, 그 세 명은 만력 10 년에 태어난 장자 주상락(朱常洛 후일의 태창제)과 만력 14 년에 태어난 3남 주상순(朱常洵 복왕으로 하남성 낙양에 봉해짐)과 만력 18 년에 태어난 5남 주상호(朱常浩 서왕으로 산서성 한중에 봉해짐)이었고, 2남과 4남은 요절(夭折)하였다. 상례적으로 일이 이루어졌다면 서장자 주상락은 오랫동안 황후에게서 소생이 없었으므로, 만 10 세가 되던 만력 20 년에 봉왕이자 황태자로 봉해졌어야 하였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어지다가 결국 11 세, 7 세, 3 세인 아들 3 명을 동시에 왕으로 봉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공비 왕(王)씨의 소생 서장자 주상락을 황태자로 봉하지 않고, 귀비 정(鄭)씨의 소생 3 남 주상순을 황태자로 봉하고 싶었던 황제의 뜻 때문이었다.


그리고 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누구를 황태자에 봉할 것인가를 두고 황제와 신료들 사이에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역사에서는 이것을 국본지쟁 國本之爭 이라 부른다.) 황제의 뜻에 따라 주상순을 황태자로 봉해야 한다는 파와 예법대로 장자인 주상락을 황태자로 봉해야 한다는 신료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였던 것이다. 10 년간 황제의 뜻을 저지하려다가 많은 신하들은 벼슬을 내놓거나, 태장을 맞고, 귀양을 가거나, 죽기도 하였다. 마침내 만력 29 년(서기 1601 년임) 황제는 장자 주상락을 황태자로 봉하게 된다. 이 와중에 명나라의 봉국인 조선의 광해군(光海君)은 서장자 임해군(臨海君) 대신 왕세자로 봉함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보게 되었다. 명나라의 사정과 너무나 닮은 상황에서 명나라 신료들은 혹시 자국에 나쁜 영향을 얻을까봐서 조선 광해군의 왕세자 봉하는 일까지 못하게 막았다.


이렇게 정리가 되고난 후 만력 30 년에 복왕 주상순은 나이 17 세가 되어서야 황궁을 벗어나 하남성 하남부 낙양성에 봉지(封地)를 받고 낙양으로 오게 되었다. 만력제는 사랑하는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면서 안타까워서 복왕이 평생 먹고쓸 은자 300만 량(= 112.5 톤임)을 실어보냈다고 하였다. 은자 300만 량이면 수레 40 대로 실어야할 엄청난 량이었으며, 북경에서 낙양에 이르는 복왕의 행차는 2 달 동안 쉬엄쉬엄 진행되면서, 그 소식에 온 나라가 떠들석하였었다.


그런데 이제 20 세가 된 복왕 주상순이 뜻밖에도 자금성의 저수궁(儲秀宮) 내 한방에서 친모인 귀비 정씨를 만나고 있었다. 이미 복왕의 눈두덩이가 빨갛게 된 것으로 보아 3 년만에 친어머니를 만나서 눈물을 흘렸음이 분명하였다.


"어마마마. 저는 날마다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아들 복왕이 보고 싶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전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보고 싶은 것 말고는 다른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나도 너를 보니 좋기는 하다마는, 과연 네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너도 이제 폐하의 허락없이 경성에 들어오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예, 소자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를 한번 보고 싶어서 그래서 신분을 감추고 몰래 경성에 들어왔습니다."


"경성에는 어찌 들어왔다고 해도 황성에는 어떻게 들어왔느냐? 누군지 밝혀지면 큰일이 날텐데...... 그리고 궁성(=자금성)에는 또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느냐?"


"황성에는 저를 위해 애써주는 낙양의 향신(鄕臣)이 안내를 해주어서 들어올 수 있었으며, 궁성에는 저를 알아보는 문지기에게 하는 수 없이 은자를 좀 집어주고 눈감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궁에 있을 때부터 알고있던 수문장(守門將)인지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래, 이왕에 온 김에 폐하의 용안(龍顔)을 한번 뵈어야 할텐데, 오늘 어디서 주무실려는지 모르겠구나. 오늘 나에게 오시면 너는 그 자리에서 용안을 뵙고 내일은 다시 궁을 몰래 벗어나서 낙양의 복왕부(福王府)로 돌아가야 한다. 들키면 안된다. 알겠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아바마마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한번 용안을 뵙고서 다시 낙양으로 돌아가야지요. 이번에 하남 낙양에서 산동성 제남에 구경을 갔다가 내친 김에 이곳 경성까지 왔습니다. 엄마의 생신도 가까웠다는 생각을 하고요...... 소자가 이번에 은자를 좀 얻어서 어머니의 노리개를 사왔습니다. 한번 보세요."


"뭐 네가 은자를 얻어...... 뭘 사왔는데......"


"은으로 만든 팔찌 두 쌍인데 칠보(七寶)를 넣어 세공을 해서 아주 그럴듯하여 소자가 사왔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폐하께서 내려준 은자가 아니라 소자가 번 은자이므로 엄마의 선물을 꼭 사고 싶었습니다. 자 보세요. 아주 예쁘지요?"


"네가 뭘 해서 은자를 벌었는지 모르나 에미를 그리 생각해주었다니, 네가 대견하고 고맙고 정말 내 마음이 기쁘구나 ...... 어쩜 이리도 색이 정묘(精妙)할까? 참 예쁘도다. 팔찌를 낄 때마다 내 아들 생각이 저절로 나겠구나. 그런데 네가 무슨 일을 해서 은자를 벌었는지 그게 궁금하다. 노리개의 값이 적어도 은자 이백 량을 나갈 것 같은데...... 네가 이걸 벌어서 사다니?"


"이번에 저는 낙양에 같이 사는 정모라는 신사(紳士)와 동행하여 제남에서 열린 비무대회를 구경 갔습니다. 주먹을 쥐고 서로 싸우는 시합인데 아주 재미있다고 소문이 낙양까지 나서 구경을 갔지요. 그곳에서는 보인이라고 도박표를 팔아서 이기는 편을 맞추는 도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반점에 머물면서 들어온 이야기는 어느 한쪽이 유리하다는 것이었지요. 정모라는 신사가 제남에서 추관으로 3 년 봉관(奉官) 하였는데, 그 때에 사귀어둔 반점의 숙수(熟手 = 요리사)가 한쪽이 가망성이 많다고 추천을 해줘서 제가 은자 오백 량을 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맞추었고요, 은자를 일천이백 량을 돌려받았지요. 이렇게 공돈이 들어왔으니 선물을 사서 경성에 와 엄마를 만나뵈려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모라는 신사가 알려주어서 도박에 이긴 것이구나."


"예, 그 정수훈이란 신사는 은자 삼천 량을 걸었고 칠천 량을 돌려 받았답니다. 그가 하는 말이 - 복왕 전하를 만나서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세상 어디든 복왕 전하를 모시고 따라다니겠습니다- 그러는데 참 충성심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 덕에 저는 제남 여행에서도 이번 경성 여행에서도 정 신사가 경호를 해주고 일체의 비용을 대줘서 편히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는 궁밖 세상을 살면서 믿고 의지할 이웃과 부하가 필요하니 잘되었습니다."


"그래 그 말은 맞다. 신하들이 너의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니, 하지만 너를 이용해먹자 덤비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 점은 꼭 유념해야 한다."


"정수훈(呈守訓), 그 자는 아마도 돈을 벌자고 저를 이용해 먹지는 않을 것입니다. 갖은 재산이 아주 많아서 저를 이용해 축재를 하려할 필요는 없을테니까요. 아마 저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서로 연대를 하자는 그런 뜻일 것입니다. 그런 일이면 저의 울타리가 되어줄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니 더 좋은 일이지요. 어마마마, 그 일은 제가 유념하여 항상 조심해서 잘 하겠습니다."


"그 정수훈이라는 자는 어떤 사람이더냐?"


"그는 낙양에서 유복하게 몇 대를 살아오는 대지주(大地主)이며, 신사(紳士)였습니다. 소유한 전토가 일만 경은 못되도 몇 천 경은 된다고 하였으니 엄청난 것이지요. 그는 회시(會試)를 보지않고, 은자를 내어 벼슬을 사서 세사 태감을 따라 산동성 제남에서 추관을 지내다가, 다시 관복을 벗고 낙양에 돌아왔습니다. 그 이외에도 낙양에는 대지주 향신(鄕紳)들이 많습니다...... 어마마마, 제가 낙양에 가서 한 3 년 살아보니 엄마와 아바마마를 보고싶어도 볼 수 없다는 것만 빼면 지낼만 하였습니다. 그래도 매년 한번씩 이렇게 뵈오려 들리겠습니다. 나중에 아버지 폐하께도 그런 말씀을 한번 올리고 책망하지 않으시면...... 책망만 하지 않으신다면 ......"


"아니다. 그냥 인사만 여주어라. 그리고 네가 물러날 때까지 폐하께서 아무말 없으시면 그것이 무언 중에 반쯤 승락하신 것이니......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말로 허락해달라 하는 것은 너무도 송구한 일이다. 그래도 너는 출입을 할 때에 조심해야 한다. 내가 궁성의 수문장들에게는 따로 단속을 해놓으마. 아무래도 그것이 만사에 불여 튼튼이라 했거든."


복왕 주상순은 이날 아버지인 만력제를 만나서 오랫만에 큰 절을 올리고, 자금성에서 하룻밤을 묵고 그 다음 날 북경성을 떠나 낙양 복왕부로 돌아왔다. 만일에 아버지 폐하께서 다시는 이렇게 몰래 출입하지 말라고 명을 내렸다면 복왕은 이것으로 북경 출입을 그만 두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폐하는 다시 오지 말라는 한 마디를 하시지 않았으므로...... 이것은 복왕이 신료들 몰래 자금성을 출입하기 시작한 처음 발길이 되었으며, 그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해마다 한번씩 자금성에 몰래 찾아들게 되었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자금성에 가면 머무는 기간도 점점 늘어가게 되었으며, 5 년이 지나자 자금성에 몰래 머무는 기간이 1 년에 절반을 넘어서게 되었다. 물론 신료들 중에 극소수를 빼고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자금성을 출입하는 궁녀나 환관들은 알고도 보고도 모르는척 못본척 하였다. 궁녀나 환관들은 입이 아주 무거웠으므로 비밀은 오래 탄로나지 않을 수 있었다.


자금성의 북쪽 내궁은 복왕이 자라면서 돌 한조각까지 친숙하게 눈에 익은 곳이었다. 그러므로 이 곳을 다시 볼수 없게 된 후에 복왕은 심중에 어떤 상실감과 우울증이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와서 잠깐이라도 볼 수 있게 되니 마음 속에 어떤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일이 되었다. 복왕은 다음날 자금성을 몰래 빠져나와서 정수훈을 만나고 함께 낙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산동성 제남부에서 열렸던 용쟁호투를 구경가자는 향신(鄕紳) 정수훈의 권유에 따라 약 3 개월 여행을 함께 하면서, 복왕은 정수훈과 한결 속깊은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정수훈을 자기의 인생에서 선생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마음 속으로 정수훈에게 상당부분 의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낙양에 돌아와서도 정수훈과 함께 낙양에 살고있는 유력자들 즉 지주와 유래 깊은 향신들과도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낙양에서 북왕부는 성 내에 있었으며, 정가장(呈家莊 = 정수훈의 장원)은 성의 동문 밖에 있었는데, 어느날 복왕은 정가장에 놀러가서 하룻밤 머물렀으며, 마침 나이가 찬 정수훈의 딸을 취하여 빈(嬪)으로 삼게 되었다. 이것은 복왕이 정수훈과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원하고 있었으며, 정수훈 역시 원하던 바가 있었으므로 말없이도 쉽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 딸은 2 년 뒤 복왕 주상순의 차남 주유숭(朱由崧 = 후일 복왕을 습봉 襲封 - 선대로부터 물려받음 - 하고, 남명 南明 시대에 홍광제 弘光帝 가 됨)을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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