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사(1)
펄럭- 펄럭-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날라 다니면서 이사벨은 선생님 노릇을 아주 톡톡히 했다.
“좌측, 지금 대열이 안 맞잖아. 좀 더 간격을 넓혀.”
반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지적했다.
“우측! 속도가 안 맞잖아. 그래 가지고는 턱도 없어.”
“네, 높일게요.”
비앙카가 속도를 조율하자 이사벨은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선두 주자 뭐해?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진짜! 저게...”
에밀리아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인내했다.
한 번 더 불만을 표출했다가는 다시는 발도 붙이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고 엄포를 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퇴출 당할 수는 없어.’
다크 엘프들에게 톡톡히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를 우습게 보다가는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는 것을.
비앙카가 무슨 사건이 벌어졌는지 다 들은 이상,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두고 봐. 내가 기필코, 1등하고 말테니까.”
“모두들 내 말 잘 들어! 화살형, 직선형, 사선형, 마름모형 이 네 가지 대열이 완벽히 안 된다면 잠이고, 밥이고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아!! 다들, 알아들었어?!!”
“네에...?!”
“알겠습니다.”
“젠장! 망했다.”
‘이러다가 하루 웬 종일 하게 생겼는데..?’
-아주 독하게도 나오는구나.
천마의 말대로 이사벨은 쥐 잡듯이 잡았다.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릴 정도로 몰아붙였다.
“데미안! 너 아까부터 흐트러지잖아. 정신 안 차려?”
뜨끔거리자 나는 이사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고삐를 당겼다.
역시, 혼자 할 때보다 더 힘들었다.
속도 조절도 관건이었고, 간격도 관건이었다.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협동심과 더불어 팀원들과 마음이 하나로 뭉쳐야했다.
*
“세실리아 님! 이건, 명백히 항명인데요.”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네..?”
세실리아가 말을 타고 작전지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걸까..?’
제라프와 만난 이후로 어딘가 모르게 변했다.
그들은 장난으로 온 거 마냥, 긴 사투 끝에 결국 도망이라는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망자들이 걸림돌이 됐지만, 어찌됐든 매복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는 있었다.
아무런 전력 손실도 없이.
하지만 문제는...사령관의 행보를 따라갈수록 무수한 의문들이 생겨난다는 점이었다.
‘이 길은 분명...’
그녀를 따라갈 때마다 불길함이 맴돌았다.
이 길이 과연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
“오늘, 과연 누가 이길까?”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우리 쪽이 이기겠지.”
“하긴, 엘프가 배워봐야 얼마나 배워겠어?!”
“근데 아쉽다...”
“뭐가?”
“이사벨 님의 신기에 가까운 비행술을 못 본다는 게.”
“하긴, 이 축제의 꽃인데. 그걸 요번에는 못 본다니. 아쉽긴 하네.”
드디어 대망의 축제날이 되자 다크 엘프들은 너도나도 이야기를 나눴다.
길가든, 주점이든, 객점이든.
화젯거리는 단연코, 엘프와 다크 엘프의 공중전 시합이었다.
“여러분, 누가 이길지 한 번 걸어보세요.”
주점에서 다크 엘프와 엘프 중 누가 이길지 내기를 하고 있자, 다크 엘프뿐만 아니라 여행객들도 심심풀이 삼아 동전을 걸었다.
“나는 여기!”
“나도 여기!”
“이걸 말이라고?!”
“저것 좀 봐 바.”
“하나도 없어.”
모두가 다크 엘프 쪽에만 걸고 있자, 도박 주최자는 입술을 오므렸다.
‘이렇게 되면 하는 의미가 없는데...’
쨍그랑-!
그때, 사람들의 비집고 로브 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 사람이 하나도 없던 통에 동전을 넣자 주최자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저기요! 잠깐만요!”
하지만 잡을 틈도 없이 그가 사람들을 뚫고 사라지자 주최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누굴까?’
*
“어떻던가요?”
“아무도 승리할 거라고 생각 안 하던데?”
“역시...”
하이든이 착잡한 표정을 짓자 주점 밖으로 나온 루시안은 발길을 움직이면서 웃었다.
“그래도 나는 믿어!”
“저도 믿습니다. 뭐든, 패는 까봐야 아는 거니까요. 그리고 저희한테는 와일드카드가 두 장이나 있지 않습니까.”
“와일드카드라...”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루시안이 착잡하게 말하자 하이든은 관심을 곧바로 가졌다.
“동생한테 얼핏 들었는데...데미안이 재능이 없어도 너무 없데.”
“허면, 와일드카드가 두 장이 아니라, 사실상 한 장이네요.”
“뭐..그건 차차 두고 보기로 하고. 그보다는 준비는 착실히 했지?”
“하명하신대로 준비를 만반이 해뒀습니다.”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지는 마!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주의를 주고 루시안은 왕성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드디어 오늘인 건가?’
기다리고, 기다려 왔던 대망의 날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웃고 떠들면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앞으로의 사활(死活)이 걸린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
“에밀리아, 진짜로 이길 자신이 있는 거니?”
“아빠, 걱정 마세요!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1등하고 말테니까요.”
에밀리아가 거울 앞에서 경주용 복장을 살펴보고 있자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알렉스는 에밀리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에밀리아가 자신만만 할수록 걱정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말거라.”
“알겠어요. 그러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고 열심히 응원이나 해주세요. 알겠죠?”
“알았다. 그래도 몸 조심해야 한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에밀리아가 활짝 웃으면서 문을 열고 나가자 알렉스는 마음을 졸였다.
‘부디, 잘 돼야 할 텐데...’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만큼 본 경기에서 딸이 모든 실력을 발휘했으면 싶었다.
*
“다들, 왔지?”
“아직, 에밀리아가 안 왔어.”
내 말에 이사벨은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일찍 모이라고 했는데. 하여튼, 더럽게 말 안 듣는다니까.”
“그래도 시간이 좀 있으니까. 기다려보는 게 어떨까요?”
비앙카가 분위기를 풀자 너도나도 웃으면서 이사벨의 기분을 달래려고 노력했다.
“맞아요. 곧 있으면 올 거예요.”
“마지막까지 너무 빡빡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요.”
“안 본 새에 서로 편이라도 먹은 거야? 단합이 아주 끝내주는데?”
이사벨이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자 나는 웃었다.
“당연히 단합이 잘 돼야지. 곧 시합이 벌어질 건데.”
-쩔쩔매는구나.
‘그럼, 네가 한 번 해볼래?’
-피보고 싶거든. 그러든가.
천마의 협박에 나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한 소리였다.
‘무서운 자식.’
살벌한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내던지는 천마였다.
*
“저기, 나랑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겠나?”
“누구시죠?”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발길을 붙잡자 물었다.
“헤러드라고 하네.”
“근데, 이걸 어쩌죠? 제가 급히 가 볼 때가 있어서.”
그 말을 하면서 에밀리아가 지나쳐가자 헤러드는 입 꼬리를 올렸다.
“역시, 그 아비에 그 딸이군. 낯짝이 참 두꺼워. 여기가 어디라고 오는 건지.”
그 말을 듣자마자 에밀리아는 지나치던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무례하시네요.”
“무례라...과연, 내가 무례를 범한 걸까? 자네가 무례를 범한 걸까?”
“말 빙빙 돌리지 마시고. 하시고 싶은 얘기가 있거든. 끝나고 말씀하시죠. 제가 바쁜 관계로 시답지 않은 말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에밀리아가 가던 발길을 다시 걸어가자 헤러드는 고개를 나직이 끄덕였다.
“역시, 피는 어디 가지 않는군. 내가 충고하는데. 자네는 이 시합에 참석할 자격이 없네. 그것도 엘프 쪽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지.”
“어디서 모기가 윙윙거리네.”
에밀리아가 귀를 파고 후 불었지만, 헤러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거 아나? 당신의 아버지가 사실은 엘프들의 역적(逆賊)이라는 것을?”
“....!?”
에밀리아가 또 다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자 헤르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버지의 과거를 알고 싶거든. 따라오게. 안 그러면 자네뿐만 아니라 자네의 아버지도 피를 볼지도 모르니.”
“협박도 좀 그럴 듯이 하시죠.”
“협박이 아니라 이건 충고일세. 내 말을 귀담아듣는 게 좋을 거야. 아버지를 잃고 싶지 않거든.”
그 순간, 에밀리아는 주먹을 쥐고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이사벨이 왔다갔다 거리면서 조급함에 빠져있자 나도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길을 잃거나 그런 거는 아니겠지?’
-에밀리아가 넌 줄 알아?
‘하긴, 나는 아니기는 하지.’
애송이가 인정하자 오히려, 무안해졌다.
아무래도 무척, 긴장한 모양이었다.
-걱정 마라! 주인공은 원래, 늦게 등장하는 법이니까.
철컥-!
그 말이 맞는지.
에밀리아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야! 왜 이제와?!!”
“미, 미안...”
“미안하면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1등 해!”
그 말과 함께 이사벨은 앞장섰다.
“지금까지 배워왔던 모든 걸 아낌없이 보여줄 차례니까.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이사벨을 따라가면서 반은 침을 꿀꺽 삼켰고, 비앙카는 에밀리아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깨가 축 늘어져있었다.
에밀리아가 평소와 다르게 기죽어있자 나도 신경이 쓰였다.
‘혹시...긴장이라도 한 건가?’
-그래도 금세 털어내고, 즐길 거다.
천마의 말처럼 부디, 그랬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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