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조여오는 족쇄
파지지지지직- 파지지지지직-
번개가 일렁이면서 한 존재가 나타났다.
에밀리아가 소환하자 바즈라는 의문을 가졌다.
“모처럼 불러주네. 잊은 줄 알았는데...”
“그냥, 심심해서. 말동무 좀 해달라고.”
“고작, 말동무가 필요해서 나를 부른 거야?”
“그럼, 다시 들어갈래?”
“생각해보니까 말동무 좋은 거 같네.”
바즈라가 말을 바꾸자 에밀리아는 눈웃음을 곧바로 짓고, 앞장섰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면서 숲길을 걸었다.
에밀리아를 따라가면서 바즈라는 말동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에밀리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에밀리아! 천마님은?!”
“천마가 아니고 데미안이라고 몇 번 말해.”
“뭐가 됐든, 어디 있는데?”
“몰라!”
“..모른다고?!! 네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항상 붙어다녔잖아.”
“몰라, 나도 모른다고. 나는 모르면 안 돼?”
에밀리아가 갑자기 역정을 내자 바즈라는 속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얘가 뭘 잘못 먹었나? 다짜고짜 화를 내고 난리야?’
진짜, 화가 났는지 에밀리아가 산책하다 말고 몸을 휙 돌리자 바즈라는 어안이 벙벙했다.
“산책하자고 할 때는 언제고...”
매몰차게 가버렸다.
*
이제, 제대로 된 몽타주도 확보한 이상 녀석을 수색해서 잡는 일만 남자 수색 범위를 넓히면서 포위망을 점점 좁혀갔다.
그런데
“.....”
그동안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몽타주를 봤다는 사람이 없자 기사는 속이 답답했다.
“다 허탕만 쳤는데. 여기는 부디, 있어라. 제발~!!”
찾다, 찾다 이제는 도시 외곽까지 수색하는 상황에 빠졌다.
그런데 죽지 말라는 법은 없는지.
“부단장님. 마을 촌장한테서 신비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에 그레이트도 흥미를 가졌다.
‘드디어 실마리가 잡힌 건가?’
“제가 얼핏 들었는데 며칠 전, 이 근방에서 이상한 현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뭔가, 그게?”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벼락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뭐야?! 시답지 않은 거잖아.”
부단장이 핀잔을 늘어놓자 기사는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런가요? 근데...”
“잔말 말고, 다른 소식이나 들고 와!”
“아...네.”
“잠시만 멈춰보게.”
막 출발하려던 시점에 그레이트가 불러 세우자 그는 긴장했다.
‘단장님도 터무니없는 말로 치부하시려는 걸까?’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거 같은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해보게.”
“그, 그게...”
그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그레이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뭔가 있어.’
그의 얘기를 가볍게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뭔가, 찝찝했다.
“괘념치 말고 말해보게.”
“...제가 듣기로는 여기서 동서쪽으로 500보 정도 더 걸어가면 우거진 수풀이 나오는데 하필이면 그 숲속에서 불길하게 벼락이 쳤다고 합니다.”
“불길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부단장도 그제야, 들을 태도가 된 거 같아 그는 숨김없이 말했다.
“그곳이 왜 불길하냐면~”
주절주절-
한동안 그의 얘기를 얼마나 들었을까?
얘기를 다 들은 그레이트와 부단장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고, 얘기를 마친 기사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왜들 그러시는 거지?’
표정들이 하나같이 탐탁지 않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착각인지, 엄청난 선물을 제안했다.
“자네가 이번에 혁혁한 공을 세우면 내가 자네 이름을 상부에 올려 진급시켜주도록 하겠네.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감사합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죽을 때까지 그레이트 님이 베푸신 은혜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기사는 연신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면서 감사함을 표현했다.
*
짹짹- 짹짹-
나무 아래, 흔들의자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맞으면서 알렉스는 눈으로는 책을 읽고, 귀로는 새 지저귐 소리와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었다.
오늘따라 유독, 햇살이 포근한 거 같았다.
그런데.
탕! 탕! 탕! 탕!
의문의 소리가 아름다운 운율에 훼방을 놓았다.
그것도 박자가 정박자가 아니라, 엇박자였다.
“어떻게 리듬감이 이렇게 틀릴 수가 있는 걸까?”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알렉스는 할 수 없이 책을 덮고 발걸음을 움직였다.
‘언제까지 두드릴 심산일까?’
광석은 두드릴수록 신기하게도 강해지는 성질이 있었다.
더욱 단단해지고, 불순물이 없어졌다.
그런데 그것도 며칠이지...
몇 주간 지속되면 소음 공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는 게 아니었는데..”
데미안은 그 선물을 받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담금질 하는데 온통 정신을 쏟았다.
진짜, 독수공방(獨守空房)하는 장인(匠人)처럼.
잠을 자면서 하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그 작업에만 온전히 몰두했다.
그곳으로 도착하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장간 굴뚝은 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흰 연기가 24시간 풀가동 중이었다.
얼마나 진행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알렉스는 대장간 안으로 몸을 낮추면서 조심스럽게 들어가 봤다.
그런데.
치이이이이이이익-
들어가는 입구부터 뜨거운 열기와 수증기가 마중 나오자 헛웃음이 터졌다.
대장간 안은 바깥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뜨겁고, 후끈후끈했다.
그래서 그런지 데미안은 상의를 탈의한 채로 작업하고 있었다.
‘못 본 사이 몸이 더 좋아진 거 같네.’
보편적으로 큰 근육은 키우기 쉽지만, 잔근육은 키우기 어려웠다.
또한, 근육들이 크기만 하면 힘은 강해질지 몰라도, 순발력 면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망치질과 더불어 체력단련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지 데미안의 몸은 삐쩍 말랐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얼핏 보기만 해도 균형 있게 잘 잡혔다.
하지만 순박한 표정으로 데미안은 자신을 반길 뿐이었다.
“아저씨. 오셨어요?”
“그래...잘 돼가니?”
“네! 거의, 다 완성 했어요.”
“어디 한 번 볼 수 있겠니?”
“잠깐만요.”
두드리고 있던 망치를 작업대에 놓고, 데미안이 집게로 붉게 달아오른 검을 물에 식히자.
치이이이이이익-
뜨거운 열기가 또 다시 대장간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런데 데미안은 익숙한 듯이 물에 검을 식히고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아저씨.”
“그럼, 어디 한 번 봐볼까?”
검을 받고 아저씨가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자, 나는 긴장했다.
이번에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 떨렸다.
아저씨가 검을 사용해서 유독, 더 떨리는 걸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게.
이번 기회로 경험은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안을 통해서.
그렇기 때문에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아저씨가 검에 관련된 조예도 훨씬 깊을 게 분명했다.
역시, 예상대로.
아저씨는 검을 가로로 보기도 하고, 세로로 보기도 하고, 비스듬히 보기도 하면서 꼼꼼히 살펴봤다.
그렇게 짧고도 숨 막히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잘 만들었구나. 명검(名劍)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야.”
“그게 정말인가요?”
“장난이 아니고 진심이란다.”
“이 모든 게 다, 아저씨가 좋은 광물을 선물로 줬기 때문이에요. 감사합니다. 아저씨!”
하지만 아저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비록, 재료는 내가 제공해줬다고 하더라도 미스릴 가치를 이 정도까지 끌어내기가 힘든데도 불구하고, 손에 꼽을 정도로 잘 만들었구나.”
“하긴, 그랬어요. 미스릴이 의외로 잘 달궈지지 않고, 망치로 아무리 때려도 평평하게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미스릴을 다룰 수 있는 존재는 극히 드물단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광석이기도 해서 평생 만져보지 못한 사람들도 수두룩 빽빽하지. 그래서 막상, 선물로 받아도 미스릴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책에서 얼핏 본 기억으로는 드워프라는 종족이 야금술이 무척 뛰어나고 하던데요? 그 말이 사실이에요?”
“네 말대로 드워프는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손재주를 타고나는 존재들이란다. 그래서 장인의 종족이라고도 많이들 불리지. 그런데 문제는..외지인을 달가워하지 않고 땅굴 깊은 곳에서 살아서 쉽게 볼 수가 없단다.”
역시,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랑 똑같았다.
천마처럼 왜곡되거나, 잘못된 역사가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듯 보였다.
“한 번쯤 만나보고 싶네요.”
-야! 말 꺼낸 김에 잘됐네. 찾아보자.
‘찾아보자고?’
-그래! 이제 너도 다 컸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눌러 살 수는 없잖아. 자립해야하지 않겠어?
천마가 무슨 속셈으로 이런 말을 지껄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납득 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긴, 맞는 말이긴 해.’
그 생각이 불현 듯 들기 시작하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
“여기입니다.”
“감사합니다.”
길안내를 해준 촌장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레이트는 손가락으로 기사 한 명을 콕 집었다.
“네가 대표로 촌장님을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고 와.”
“네, 알겠습니다.”
“가시죠.”
기사가 몸을 살짝 틀면서 길을 만들어주자 촌장은 기사의 보호를 받으면서 비탈길을 내려갔다.
명령을 내리고 그레이트는 우거진 수풀을 바라봤다.
‘여기가?’
“분위기가 음침하긴 하다. 진짜, 악마가 살 것만 같아.”
한 기사를 시작으로 다른 기사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거 같네.”
“어떻게 이렇게 안개가 자욱할 수가 있지?”
그레이트도 말로만 들었던 숲속을 진짜로 와보자 내심 놀랐다.
‘흉흉한 소문이 돌만하네.’
얼핏, 듣기로는 이 근방에서 촌락을 이루고 사는 주민들이 이 숲을 함부로 침범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보자, 왜 그랬는지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단장님?”
“우선, 들어 가봐야겠지.”
“들어갔다가 길을 헤맨다고 하던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음~”
그레이트가 팔짱을 끼고 턱을 괴자, 부단장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들은 기대감을 한껏 가졌다.
‘어떻게 하실 생각일까?’
‘단장님이면 무슨 방법이 있으실 거야.’
“근데...안개가 진짜 짙긴 짙다.”
한 기사는 우거진 수풀을 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기도 했고, 안개 때문인지 몰라도 신비스러움 분위기도 흘러넘쳤다. 심지어 오한이 들 정도로 섬뜩하기도 했다.
안개로 뒤덮인 밀림 때문에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소용돌이쳤다.
현지인의 얘기대로 눈앞의 숲 속은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나무가 우거져있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