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족(獸人族)(3)
“올 때가 됐는데...”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통로를 걷고 있던 테르네는 손님맞이에 한창이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회담에 참석하는 귀빈들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그런데.
“....!?”
갑자기 털이 삐죽삐죽 서자 테르네는 발걸음을 곧장 멈췄다.
“뭐지? 이 강대한 살기(殺氣)는?”
착각이 아니었다.
공기가 한층 무거워졌고, 어떠한 압력이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큰 일이 터진 거 같군.”
테르네는 곧장 발길을 돌리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
“아빠, 이것 좀 보세요. 신기해요.”
“그러게 말이다. 이건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물건 같은데.”
“안목이 좋으시네요. 맞습니다! 이 장신구는 비녀라고 불리는데. 북량에서 공수해온 물건입니다.”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팔고 있던 상인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자 알렉스는 눈을 빛냈다.
“역시,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라고 했더니. 북량이었군요. 에밀리아, 가지고 싶으면 사주마.”
“진짜요?”
에밀리아가 눈을 빛내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념품으로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고르렴.”
“음..”
“팔찌가 참 예쁘네요.”
상인이 팔찌에 관심을 가지자 에밀리아는 팔찌를 들었다.
“그래요?!”
“네, 누가 고른지는 모르겠지만, 안목이 뛰어나네요.”
비록, 여기에는 없었지만 데미안이 칭찬 받자 기분이 좋았다.
“혹시..번개 모양은 없나요.”
“..이를 어쩌죠?! 그게 실은...번개 모양의 비녀는 이미 팔렸습니다.”
“아..그, 그런가요?”
“.....!?”
알렉스가 고개를 휙 돌리자 쭈그려 앉아 장신구를 보고 있던 에밀리아도 곧장 일어나서 그곳으로 고개를 곧장 돌렸다.
“아빠, 이 기운은 분명...?!”
“아무래도...”
매우 익숙하고, 친숙한 기운이었다.
*
‘야! 그만해.’
-쳇!
내가 말리자 천마는 혀끝을 차고 살기를 잠재웠다.
그 순간.
철푸덕-
무언의 압력에 의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녀석은 곧바로 주저앉았다.
그 뿐만 아니라.
“윽!”
“이게 무슨 냄새야?”
단원들은 코끝을 잡거나, 코를 찡그렸다.
“뭐야? 설마, 지린 거야?”
“꼴좋네. 저 자식이.”
‘하긴, 그럴 만 해.’
몸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감쪽같이 사라지자 이안은 요주의 인물, 천마를 잠시 힐끔거렸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기운 만으로 사람의 혼(魂)을 빼놓았다.
그 시각.
슝- 슝- 슝- 슝-
아기자기한 지붕들을 밟아가면서 마을의 촌장, 테르네는 매서운 속도로 달렸다.
“왜 저러시지?”
테르네의 안색이 어딘가 모르게 안 좋아 보이자 마을의 주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렷다.
“뭔가, 큰일이라도 난 거 같은데?”
“그러게, 표정이 예사롭지 않아.”
모두의 관심을 받으면서 테르네는 박차를 가했다.
지붕과 뾰족하게 솟아 오른 바위들을 사뿐히 밟으면서 격차를 빠르게 좁혔다.
그런데.
“.....!?”
숨 막히던 살기(殺氣)가 감쪽같이 사라지자 테르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상황이 연속해서 벌어지자 더욱 불안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가뜩이나, 다른 나라의 귀빈들 때문에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개 아닌 마당인데 시작부터 불길한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지자 마음이 심란했다.
귀빈들이 이곳에서 머무는 한은 절대, 사건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됐다.
*
무거웠던 공기가 돌아오자.
챙! 챙! 챙! 챙!
이안은 마무리를 짓기 위해 호위무사를 집중을 공략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잘 버티네.”
녀석이 죽기 살기로 검을 휘두르자 이안은 뒷걸음질 쳤다.
휙- 휙-
계속해서 닿을 듯, 말듯.
간발의 차이로 회피하자 녀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강하다.’
상대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
자만심은 곧 화를 부를 수도 있었다.
뒤로 물러나면서 피하고 있던 이안이 뒤에 있던 기둥과 부딪치자 녀석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콰직-
검이 기둥에 박혔다.
“너무 성급했어.”
웃으면서 이안이 녀석의 품속으로 단숨에 들어가자
-영악하네.
분위기를 주도할 줄 알았다.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딱 봐도, 일부러 틈을 보인 거였다.
녀석의 품속으로 파고들면서 이안은 말도 안 되는 손놀림을 또 보여줬다.
휘리리릭-
이안이 쥐는 방식을 역수로 단숨에 바꾸는 것도 모자라 단검을 순식간에 휘둘렀다.
이렇게 되면 녀석은 쥐고 있던 검 손잡이를 냉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손목을 잃고 싶지 않다면.
예상대로, 녀석이 검을 놓자 이안은 몸을 회전하면서 이번에는 발차기를 날렸다.
퍼억-
이안이 숨 쉴 틈 없이 몰아치자 녀석도 이번 만큼은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얼굴이 가격 당하자마자 녀석은 발차기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곧바로 널브러졌다.
철푸덕-!
호위무사마저도 녀석을 당해내지 못하자 그의 동공은 지진이 난 거처럼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안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갈수록, 그는 바닥을 짚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내가 분명, 경고를 줬는데!! 입을 잘도 나불거리던데...”
“내가 잠깐 경솔했다. 내 목숨만 살려준다면, 너에게 부귀영화를 주겠다. 뭘 원하느냐. 돈? 권력? 그것도 아니면 여자? 말만 해라.”
“진짜, 다 줄 수 있어?”
“물론이다!”
“그럼, 네 목숨.”
이안이 줄 수 없는 선물을 요구하면서 단검을 찌르자 그는 재빨리 손을 뻗었다.
“잠깐, 나는 북량의 사신이다!!”
멈칫-
눈을 질끈 감았던 사신은 눈을 살포시 떴다.
단검이 눈앞에서 멈췄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쳇! 재미 다 떨어졌네.
‘이제 내 몸 좀 돌려줘.’
-재밌어지려던 참인데.
“모두 꼼짝 마라!”
웬, 무리들이 객점 안으로 들이닥치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감히, 여기서 행패를 부리다니.”
“너희들 이곳의 규율을 어긴 대가는 알고 있는 거겠지?”
“내빼는 거 봐라.”
-바꿔 달라고 해서 바꿔준 거 뿐이야.
“그 말을 믿을 수 있어야 말이지.”
“거기! 너! 조용하지 못해!”
경고하자 나는 입을 닫았다.
아무래도 눈앞의 수인족들은 치안을 담당하는 수인족 같았다.
그도 그럴게.
분위기가 하나같이 험상궂고, 체격이 우람했다.
“나 좀 살려주게. 여기 북량의 사신을 함부로 죽이려는 난적이 있네.”
녀석이 개소리를 지껄이자 이안은 녀석의 목에 단검을 겨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죽일 걸.”
“어디 한 번 죽여 보시지?! 북량의 사신을 함부로 죽였다가는 이곳 뿐만 아니라 온 곳이 쑥대밭이 되고 말텐데.”
사신의 말대로 전쟁의 빌미가 될 수 있었다.
사신은 왕을 대신해서 온 사절단이나 다름이 없으므로.
그걸 수인족도 알고 있는지.
“당장, 검 치워라.”
“우선, 사건의 경위부터 듣는 게 먼저 아닐까요?”
전란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우선, 진정 시키는 게 먼저였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신이 이곳에서 죽어서는 안 됐다.
‘죽는 순간, 파국이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보다는 우선, 대화로 푸는 게 어떻겠나?”
성큼성큼 바닥을 밟으면서 누군가가 들어오자 나 뿐만 아니라 이안도 눈을 빛냈다.
‘누구지?’
-싸울 맛이 좀 있겠는데?!
이안은 상대의 정체를 유추하려고 노력했다.
‘저 정도 역량을 낼 수 있는 자(者)는 단연코, 한 명 밖에 없어.’
“테르네 님!”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여기까지 행차하실 줄이야. 여기는 저희에게 전적으로 맡기시고...”
“자네들이 감당할 사람들이 아니네.”
테르네의 말에 치안을 담당하는 수인족들의 눈이 커졌다.
“네?!”
“감당할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씀이시죠?”
‘누구지?’
테르네는 여기서 느껴지던 살기의 주범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바삐 움직였다.
'저 녀석인가?'
모여 있는 곳을 주의 깊게 살펴봤는데 아무리 봐도 아니었다.
풍기는 분위기와 체격을 본 건데. 단련을 했어도 그 정도 역량을 뿜어낼 만한 녀석은 없었다.
괜히, 허탕만 친 거 같아 이번에는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2층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뭐지? 저 기운은?’
요사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혹시, 저 자인가?’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이번에는 단독으로 앉아있는 자(者)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도 꽤나 열심히 단련했는지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깨에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중년인을 들쳐 메고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점은 안대를 쓰고 있다는 거였다.
‘이 자인가?’
두 사람으로 선택이 좁혀졌지만, 확실한 거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행방이 묘연했다.
“혹시, 다른 자는 없었나?”
“저희가 온 그대로입니다.”
그럼, 둘 중 하나였다.
이곳에 있거나, 위병들이 오기 전에 도망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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