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핀 부대 vs 와이번 부대(3)
“여기 오기를 왠지 잘한 거 같네.”
루시안은 입가를 올렸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고 말았다.
“언제까지 도망치기만 할 거냐!! 전사라면 정정당당히 붙자.”
도망만 쳐서 화가 잔뜩 났는지 녀석이 울화통을 터뜨리자 깎아지른 바위 사이를 날라 다니고 있던 루시안은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다시 급상승했다.
그 순간.
“이 녀석이! 지금 장난하나?”
한 번은 통했을지 몰라도 두 번부터는 어림도 없었다.
이 정도는 이제, 식은 죽 먹기였다.
바위와 부딪치게 할 모양이었겠지만, 바위를 타면서 다크 엘프 뒤를 매섭게 쫓아갔다.
“역시, 바보는 아니네.”
“알고 봤더니, 싸울 배짱이 하나도 없는 녀석이었구나. 꽁지 빠지게 도망칠 줄만 아는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싸울 배짱이 없다니. 이것도 엄연히 전략이라고.”
“같잖은 소리로 논점을 흩트릴 생각 말아라! 그런 말로 자신을 포장하다니.”
“진짜, 안 믿는 눈치네. 지금 당신 부하들 꼴 좀, 보고 말하시지?!!”
“.....!?”
그제야, 기사단장도 사태를 정확히 인지한 눈치였다.
“이럴 수가!”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분명, 싸우기 전에는 병력이 훨씬, 우세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이럴 수는 없어.”
“눈으로 뻔히 보고도 이럴 수 없다고 하다니.”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냐!!!”
성이 잔뜩 목소리로 물어보자 루시안은 웃었다.
“기세등등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잔말 말고, 얼른 말하지 못할까.”
“보고도 모르겠어? 실력 차이잖아.”
‘실력 차이?’
기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 내 부대가 너 따위 것들에게 진다는 게!!”
녀석이 무서운 기세로 거리를 좁혀오자 루시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말해봤자. 입만 아픈 설명이었다.
“어디까지 올라갈 셈일까?”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입을 다문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싸울 줄 아는 놈이네.
루시안을 쫓던 기사단장는 루시안이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뚫을 기세로 고도를 높이고 있자 당혹감에 빠졌다.
“젠장! 눈 부셔.”
루시안을 따라갈수록 빛이 강렬해졌다.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눈을 멀게 만들었다.
바로, 그때.
"맙소사!!"
"미친!!"
루시안이 황당한 짓을 벌이자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경악성을 내질렀다.
“까아아아아악!”
고성이 난무했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눈을 손으로 다급히 막았다.
“엄마!”
모자가 바람에 날라 가던 소녀도 눈을 갑자기 가리자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딸의 부모는 손을 절대 치우지 않았다.
루시안이 잘 타고 있던 와이번의 줄을 놓는 것도 모자라 낙하하자 나뿐만 아니라 이안, 에밀리아, 알렉스도 눈을 번뜩였다.
생각지도 못한 전법이었다.
“무슨 배짱일까?”
레베카 뿐만 아니라 로버트도 루시안이 보여주는 곡예를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 건가?”
루시안이 떨어지면서 단검을 꺼내자 기사는 막기 위해 황급히 검을 뽑았다.
“이 미X 자식이!!!”
무슨 생각으로 와이번을 놓고 달려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공격만 막으면 이긴 거나 다름이 없었다.
힘을 최대한 주고 검을 휘둘렀다.
챙!
손바닥이 찢어졌지만, 가까스로 막기는 막았다.
그 위기를 벗어나자마자 기사단장은 숨을 골랐다.
“겨우, 이 따위로 내 목숨을 노리다니.”
오히려, 너무 손쉽게 끝나자 허망하고, 허탕했다.
그런데.
“....!?”
그리핀의 몸이 잠시 들썩이자 기사는 눈을 끔뻑였다.
“뭐지?”
무슨 일인지 알아내기 위해 기사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알고 봤더니 죽지 않고 매달려있었다.
그것도.
-완전, 허를 찔렀네.
천마의 말대로 루시안은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다음 수가 있었는지 허리춤에 걸고 있던 채찍을 곧바로 풀어서 그리핀의 발목을 칭칭 감았다.
그 한 수로 인해 전세 역전이 됐다.
갑자기 무게가 쏠리자 그리핀의 날갯짓이 페이스를 잃었다.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제기랄!”
그런 상황이 벌어지자 기사는 황급히 고삐를 당기면서 그리핀을 진정 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끼에에에에엑!!
머리 위로 갑자기 거대한 그림자가 지가 기사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럴 수는...”
“체크메이트.”
루시안의 웃음과 함께 기사는 죽음을 맞이했다.
콰직-!!!
와이번이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는 것도 모자라 그 상황 속에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먹잇감을 순식간에 낚아 채자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도 휘둥그레졌다.
“쩐다...”
“봤어?!”
“어..봤어.”
그야말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아주 날뛰네.
“퍼포먼스가 끝내주네.”
천마와 이안의 말대로 마무리가 완벽했다.
전율이 돋을 정도였다.
“아빠, 봤어요? 완전, 멋있어요.”
에밀리아도 알렉스의 어깨를 흔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Finish’였다.
그런데.
"....!?"
그걸 시작으로 루시안이 그리핀의 발목을 감싸고 있던 채찍을 풀고 떨어지자 사람들은 또 다시 가슴을 졸였다.
“진짜, 죽으려고 작정한 건가?”
“대체 왜!!”
그야말로, 밀당의 고수였다.
밀고, 당길 줄 알았다.
테르네와 홀트도 안도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주 제대로 보여주네.”
“그러게 말이야.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는지 몰라.”
몇 년 동안 봉쇄하고, 베일을 감춘 채 살고 있던 르마리아 왕국이 세상 밖으로 다시 등장하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루시안이 채찍을 풀기 무섭게 와이번이 그 밑으로 지나가면서 루시안을 사뿐히 받았다.
그야말로, 환상의 하모니였다.
그 뿐만 아니라 주인은 잃은 그리핀은 족쇄가 풀리자마자 다시 균형을 잡고 야생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넋이 나갔다.
“다행이다. 진짜로...”
“난 또, 죽는 줄 알았잖아!”
“얄미워 죽겠네.”
싸움이 끝나자 루시안은 와이번을 쓰다듬었다.
“고생했다! 알렌.”
크에에에에에엑-!
알렌이 울부짖자 루시안은 미소가 절로 나왔다.
반면에, 제국 측은 희비(喜悲)가 완전히 엇갈렸다.
“이럴 수가!”
“단장님이 지, 지시다니..”
와이번이 발톱으로 단장님을 낚아 채기 무섭게 단장님을 쓰레기 마냥 버리자 단장님은 엄청난 속도로 추락했다.
아무리 단장님이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어 보였다.
엄청난 낙하 속도와 더불어서 가속도가 붙자 그냥,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콰아아아앙-!!
자욱하게 일어난 흙 먼지만 봐도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어.”
“퇴각하자!”
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제국 측 공수부대는 황급히 고삐를 틀기 바빴다.
“이것들이 어디 도망치려고!”
녀석들이 도망치자 다크 엘프들은 끝까지 추격했다.
“우리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아?”
-지휘관은 잃은 부대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이 없지.
천마의 말대로 남아있던 잔존병력도 급격히 무너져갔다.
궁술이 뛰어난 다크 엘프들의 손아귀에서 그들이 벗어나기란 아무리 봐도 무리였다.
뒤처리까지 완전, 깔끔했다.
다들, 알아서 잘 대처하고 있자 루시안은 속도를 늦추면서 낚아 챘던 모자를 떨어트렸다.
“엄마, 모자가 돌아오고 있어요.”
“그러게.”
민들레 씨앗처럼 나풀나풀 움직이면서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모자를 제 주인에게 돌려주고 루시안은 다시 고삐를 흔들었다.
“가자! 알렌!”
알렌은 힘찬 날갯짓을 하면서 다시 날아올랐다.
*
“다행이다.”
“어찌저찌 무사히 잘 넘어간 거 같네.”
주민들이 안도하면서 한둘씩 건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가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이자 나도 이만 흩어지기로 하고 몸을 돌렸다.
“우리도 이만 가자.”
“이번에는 무사히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아직, 위협이 끝난 게 아니야.”
이안의 말대로 어쩌면...위협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일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지 별 반대 없이 발길을 돌렸다.
*
“레베카는 잘 하고 있으려나?”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윌리어스는 쥐고 있던 만년필을 잠시 놓고 딸 걱정에 빠졌다.
딸의 안전을 염려해서 실력이 출중한 기사들을 붙여 놨지만,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딸이 혹시라도 무리할까 봐 걱정됐다.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잘 할 수 있을러나?’
알기론 우리 딸이 참석한 명단 중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걸로 알고 있었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거는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하..할 수 없지.”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윌리어스는 정원을 거닐었다.
밖으로 나오니까,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만 같았다.
“이제야, 좀 살 거 같네.”
최근, 다양한 사건이 터진 이후로,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여서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이러다가 딸이 가정을 꾸리기도 전에 과로사할지도 모르겠어.”
“단장님. 오늘 한 잔 어떠십니까?”
귀를 기울여보니 왕실 연무장 쪽에서 얘기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훈련이 지금 종료된 모양이었다.
그게 맞는지.
땀에 흠뻑 젖은 건장한 남성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들은 웃음꽃을 피운 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참 부럽기 짝이 없네.’
그야말로, 청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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