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vs 검성(6)
하지만 나는 정신을 무장하고, 물러서지 않았다.
안대를 벗어던지면서 속도를 더욱 높였다.
“듣기로는 오드 아이라고 하더니.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게 맞았군.”
비반이 알려줬던 용모와 별반 차이가 없자 마틴은 웃으면서 검 손잡이를 잡았다.
‘아들아, 곧 기다려라.’
드디어 아들의 복수를 갚을 날이 오고야 말았다.
마틴이 검을 잡고 달려오자 나도 신중하게 검을 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격돌하는 순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발검(拔劍)했다.
스릉-! 스릉-!
“미친놈!”
그 모습에 일리어스는 코웃음을 쳤고, 블레어는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로, 칼을 빼 들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검성을 상대로.
“배짱이 대단하네.”
“그러게.”
검을 휘두르자마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콰앙-!
단, 한 번 부딪쳤을 뿐인데 손아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손목이 시큰거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어때? 막상 부딪쳐보니까 별 거 아니지? 할 만하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단, 한 번 부딪쳤을 뿐인데 바닥이 균열이 갔고, 강력한 돌풍이 몰아쳤다.
그야말로, 엄청난 여파였다.
-고작, 이 정도에 약한 티를 내다니! 하여간, 허약한 녀석이라니까.
천마에게는 우스운 수준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강하다.’
머릿속에서 위험 신호를 마구 보내고 있었다.
더 이상 부딪치면 안 된다고.
하지만.
“....!?”
상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지 다시 검을 휘둘렀다.
할 수 없이.
콰아아아앙-!
나도 한 번 더 검을 휘둘렀다.
살기 위해서는 막는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몰라도 수비가 아주 탄탄하군. 누구한테 배웠지?”
마틴이 관심을 가졌지만 나는 오히려, 불편했다.
달갑지 않은 관심이었다.
-뭐하고 있냐? 얼른 말하지 않고!!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내 이름을 떨칠 수 있는 기회라고!!!
“널 가르친 스승이 누군지 진심으로 궁금하구나.”
두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통하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동류끼리는 원래, 마음이 잘 통하는지.
하는 짓이 다 똑같았다.
“그보다 저를 왜 이렇게 못 죽여서 안달이시죠?”
“네가 그레이트를 죽였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레이트..?’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기억하려고 하니까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역시, 기억 못하는가 보군.”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난 거 같은데?
천마의 말대로 마틴의 기도가 확 변했다.
날이 잔뜩 서있었다.
풍기는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눈빛까지.
진득한 살기가 뿜어졌다.
-이 정도로 짙은 살기를 내뿜을 수 있다니. 사람을 꽤, 죽여본 자군.
이 정도 살기는 절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살기가 아니었다.
무수한 살육을 통해서 만 이룰 수 있는 영역이었다.
역시, 허울 뿐인 명성은 아닌 듯,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기도가 포악하기 짝이 없네.
마틴이 검을 휘두를수록 애송이는 쩔쩔맸다.
콰앙! 쾅! 쾅! 쾅!
부딪칠 때마다 금방이라도 검을 놓칠 것만 같이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칭찬할 점이 아예, 없는 거 아니었다.
굳이 뽑자면 당하고 만 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애송이가 간간히, 반격을 날리자 마틴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동자가 번뜩였다.
‘반격까지 날리다니.’
방어하기도 바쁜 상황에서 애송이가 목을 노리면서 검을 찌르자 마틴은 검으로 검로(劍路)를 틀었다.
그야말로, 검술(劍術)이 수준급이었다.
상대보다 검을 잘 다뤄야지만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래도
‘아직, 할 만해.’
애송이가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동안 애송이도 놀고먹은 게 아니었다.
손바닥이 찢어질 정도로 검을 휘둘렀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 본 사람이 바로, ‘나’였고, 애송이를 가르친 스승도 바로, ‘나’였다.
‘나한테 배운 이상, 맞고 다니는 꼴 절대, 못 봐!!’
맞고 다닌다면 그야말로, 수치였고.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뭐 하는 거야?!! 검을 휘두를 때 내가 뭐라고 했어? 망설임 따윈 버리라고 했잖아! 과감하게 좀, 휘둘러봐!!
그 말이 맞는지.
“검에서 지금 주저함이 보이는군. 싸우는 상대 앞에서 딴 생각을 하다니. 그 태도는 옳지 않네. 오직, 상대를 이길 생각으로 전력을 다해야지!!”
마틴도 지적하자 나는 기가 찼다.
“지금, 뭐하자는 거죠? 절 죽이러 오신 거 아닌가요?”
“나는 모든 전력을 발휘한 자네를 이기고 싶은 거네.”
마틴이 그렇게 말하자 애송이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뭔가, 열 받네.’
자신감에서 비롯된 여유인지.
그것도 아니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농락을 하려는 건지
그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깔보고,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마틴이 죽기 직전의 불씨를 다시 지펴주자 나는 매우 흡족했다.
‘보기보다 싸움의 재미를 아는 녀석이네.’
-이렇게 당하고 만 있을 거야? 널 완전히, 무시하고 있잖아. 다시는 찍 소리도 내지 못하게 한 방 먹여야지!! 뭘, 넋 놓고 가만히 만 있어?
내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장작불에 이번에는 부채질하자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스륵-
보법을 밟으면서 애송이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자 마틴 뿐만 아니라 지켜보고 있던 일리어스, 블레어도 눈이 커졌다.
“어디 간 거지?”
“뭐야? 실력을 감추고 있었어?”
앳된 소년이 제국의 검이라고 불리는 마틴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자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겉모습과 달리 검술 실력이 대단했다.
스륵-
사각지대로 등장하기 무섭게 나는 검을 휘둘렀다.
천마(天魔)와 검성(劍聖)의 가르침대로 이번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콰앙-!
역시, 손꼽히는 검의 대가였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지.
금세, 기척을 감지하고 검으로 막아냈다.
“이번에는 제법, 괜찮은 공격이었네.”
마틴이 칭찬했지만, 나는 오히려, 불쾌했다.
웃음마저도 가식 덩어리 같았다.
-비웃네.
뭔가, 불쾌하자 나는 검을 열심히 휘둘렀다.
쾅! 쾅! 쾅! 쾅!
내 검을 막으면서 마틴은 웃었다.
‘내가 원했던 모습이 바로 이거였어.’
망설임과 주저함이 없었다.
검 끝이 날카로웠다.
아까와 달리 검에서 주저함이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거 같군.”
잠재력을 더욱 이끌어내고 싶었다.
아니, 그가 가진 모든 힘을 끌어내고 싶었다.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껏 해야지. 아주 물로 보잖아.’
나는 투지가 활활 타올랐다.
“설마...아니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자 일리어스와 블레어는 기대감을 한껏 가졌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아무리 봐도 예사롭지 않은 솜씨였고,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됐다.
마틴과 검을 부딪칠 수 있는 존재는 극히 드물었다.
전 세계를 뒤져봐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게 가당키나 한 거냐고?’
꿈 같은 일이 발생했다.
의문의 소년이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것도 기염을 토해낼 만한 사건이었다.
*
챙! 챙! 챙! 챙!
술래잡기를 하는 거 마냥 서로 틈을 노리면서 단검과 해머를 부딪치고 있던 악마와 이안은 시간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누가 먼저라도 할 거 없이 서로 거리를 벌렸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암만 봐도 인간도 아니고, 요괴도 아닌 거 같은데.”
“역시, 악마 답게 눈썰미가 좋네.”
“하찮은 인간 따위라면 너는 내 손에 진작 죽었어야 했다.”
“근데, 이를 어쩌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는데.”
이안이 어깨를 으쓱거리자 악마는 눈을 번뜩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인간을 함부로 무시했다가는 큰 코 다쳐. 인간 중에서도 특출 난 사람이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거든.”
“그 중에서도 너도 포함되는 건가?”
“글쎄...나는 인간도 아니고, 요괴도 아닌. 불완전한 존재라서.”
“그럼, 널 죽이고, 한 번 알아봐야겠군.”
그 말과 함께 악마가 바닥을 부서트리면서 달려오자 이안은 웃었다.
‘속도를 더욱 높이시겠다..?’
힘보다는 속도에 치중하는 편인지.
힘이 다른 악마들보다 약한 방면에 속도가 무척 빨랐다.
그 뿐만 아니라 눈을 어지럽게 할 모양인지.
그것도 아니면 속도가 빠르다는 걸 자랑할 모양인지.
악마가 순간 이동을 하는 거 마냥, 지그재그 사라졌다가 나타나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대를 잘못 만난 거 같네. 나도 제일 자신 있는 게 속도전인데.”
그 말과 함께 이안이 눈앞에서 잔상을 일으키면서 사라지자 해머를 휘두르고 있던 악마는 휘두르던 모션을 곧바로 멈추고 눈을 부릅떴다.
녀석의 기척을 찾기 위해 기감을 확장시켰다.
그런데.
‘뭐지?’
기척이 감지되지 않았다.
존재감이 사라진 거 마냥,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이라도 쓴 거 마냥,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게 도대체...?”
그 말과 함께.
푸욱-
악마는 이상한 감촉이 느껴지자 고개를 살짝 숙여봤다.
그런데.
쿵쾅쿵쾅-!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것도 녀석의 손아귀에서.
그 손아귀를 보자마자 녀석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너는...”
알고 봤더니 녀석은 지금껏 발톱을 숨기고 있었다.
그것도 가장 날카롭고, 가장 위협적인 발톱을.
“맹수는 먹잇감을 잡을 때, 기척을 숨기는 법이지.”
그 말과 함께 녀석은 쥐고 있던 심장을 잔혹하게도 터뜨려버렸다.
그것도 눈앞에서.
퍼어어어엉-!
그걸 시작으로 녀석은 등을 뚫은 팔을 빼더니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다.
그야말로, 맹수(猛獸)였다.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털썩- 털썩-
녀석의 몸을 이등분으로 찢어버리고 이안은 발길을 돌렸다.
녀석도 이제, 죽었으니 여기서 더 이상 할 일은 없었다.
“오랜만이네.”
별일이 없는 한은 발톱을 감추고 살았는데. 악마랑 맞닥트리자 발톱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악마는 만만히 볼 존재가 아니었다.
“로버트는 눈치껏 잘 피했겠지?”
이제, 여유가 생기자 까맣게 잊고 잊었던 사람이 떠올랐다.
돌아가라고 말을 해뒀기는 해뒀는데 로버트의 성격상 내 말을 들었을지는 미지수였다.
워낙, 충성심이 강한 ‘로버트’라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분이 뭔가, 싸하자 이안은 달리던 속도를 더욱 높였다.
휙- 휙-
황폐하게 변한 그 곳을 빠른 속도로 주파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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