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습
“죄송합니다. 정말로, 이런 식으로 상황이 흘러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내가 사과를 받아줬지만 시온은 찜찜함이 아직 남아있는지 연거푸 사과를 했다.
그 모습에 나는 화가 풀린 지 한참 됐다.
‘악의적으로 초대를 한 거 같지 않아 보여.’
-나도 그리 생각한다.
전투에서 보여줬던 냉철한 모습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수습하기 위해 진심 어린 사과를 몇 번이나 한 줄 몰랐다.
심성이 곧은 청년 같았다.
신중해야 할 때와 안 해야 할 때를 상황에 따라 잘 구분하는 거 같았다.
그래서 부단장 자리를 맡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 이후로, 애송이와 시온은 야영지를 돌아다니면서 가벼운 얘기들을 나눴다.
“그러니까 아까 덤벼온 기사들이 다 귀족 자제라는 거죠?”
“네. 그래서 예의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를 믿고 설치는 족속들이죠.”
시온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이 깨어있는 친구구나. 저런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하건만.
천마의 말처럼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도 귀족 자제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약간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방금 전, 그가 내뱉은 한마디로 벌어졌던 거리가 다시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콧대가 높아질 만 했네.’
“이번 원정만 무사히 완수하고, 다시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시온이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부디, 수락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헤어지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남아서 말입니다.”
-그냥, 다음날 가자구나. 귀족 자제들의 눈 밖에 난 마당에 여기 있어봤자. 나쁜 일만 생길 거 같은데.
‘하긴...’
천마의 말대로 귀족 자제들이 어떠한 보복을 할지 몰랐다.
오늘 이후로, 여기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 적진 한 가운데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냥, 떠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데.’
시온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간절 하자, 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동안 더 머무르십시오.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부담스러웠지만, 뭔가 나쁘지는 않았다.
시온이 나를 존중해주자 머무는 보람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급적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기 싫다면서...
천마가 비아냥거렸지만, 나는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그런데.
“.....!?”
내가 몸을 급히 틀자 시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그러시지?’
*
“젠장!! 언제 오는 거야...”
“그러게. 교대 할 시간인데. 이 녀석들 뭐하는 건지.”
“아무래도 술 진탕 마시고 있겠지.”
방책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은 몸을 덜덜 떨면서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응?”
“뭐지?”
팔짱을 낀 채 몸을 매만지면서 추위를 이겨내고 있던 동료도 수상한 장면을 포착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웬...불빛이.”
하늘 위로 불빛 하나가 갑자기 솟구치더니.
푹-!
바로 옆에 있던 동료가 갑작스럽게 쓰러지자 그는 눈을 끔뻑였다.
“이, 이거 장난이지..?”
알고 봤더니, 불이 붙은 화살이었고, 그 화살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런데.
“맙소사!!!”
그 화살을 시작으로 불을 머금은 화살이 연속적으로 날라 왔다.
불의의 기습을 당하자 시온도 머릿속이 혼비백산이 됐다.
“이럴 수가!”
-이거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일이 재밌게 됐네.
‘휴~ 다행이다. 잠을 보충한 보람이 있네.’
하마터면 오늘도 수면 부족으로 발 뻗고 잘 수 없을 뻔했다.
첫 화살을 시작으로 불을 머금은 화살 세례가 순식간에 펼쳐지고 있었다.
숲 속에서 불 붙은 화살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면서 낙하했다.
-아무래도 첫 화살은 신호였나 보다.
천마의 말대로 정말 그런 듯, 사방에서 화공(火攻)을 펼치고 있었다.
화살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뿐만 아니라 시온도 재빨리 검을 뽑고 화살을 튕겨 내거나, 베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걱- 서걱-
화살을 베면서 화살을 두 동강 내기도 하고.
콰직- 콰직-
화살을 튕겨내기도 했다.
팅! 팅! 팅! 팅!
막을수록, 그 주변에는 불붙은 화살이 한 가득 쌓여갔다.
하지만 다른 곳은 어수선했다.
“으아아아아악!”
“습격이다!!”
“다들 일어나서 얼른 방비해라!”
푹-! 푹-!
불의의 습격에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들은 화살에 여지없이 목숨을 잃었다.
“자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젠장!!”
푹-!
다급한 외침에 가죽 갑옷을 착용하고 있던 한 병사는 막사를 뚫고 화살이 들어올 뿐만 아니라 동료가 갑자기 쓰러지자 당혹감에 휩싸였다.
“야! 죽은 거 아니지...?”
건드려봤는데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
펄럭-
천막을 걷어내면서 레베카가 다급히 나오자 막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황급히 보고를 올렸다.
“단장님! 지금...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습격을 해왔습니다.”
“얼른 피하십시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병사들이 검으로 화살을 베거나, 튕겨내면서 막고 있지만, 한눈에 봐도 역부족이었다.
저 많은 화살 세례를 감당하기에는 아무래도 벅차 보였다.
‘야심한 시각을 이용해서 야습을 펼치다니.’
전투광(戰鬪狂)인 녀석들이 이렇게 전술적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매 전투마다 근접전으로만 싸우던 녀석들이 이런 식으로 대응하자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으아아아악!”
“살려줘!”
눈앞에서 병사들이 질서를 잃고 뛰어다니기 바빴다.
어떤 병사는 불에 탄 채로 돌아다니다가 불을 끄기 위해 말과 소들의 물통으로 몸을 다급히 넣고 뜨거움을 식혔다.
치이이이이이익-
수증기가 잔뜩 올라왔고, 다른 곳도 엉망진창이었다.
수많은 막사들이 녀석들의 기습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불에 잔뜩 타고 있었다.
야밤인데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환했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자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어 움직였다.
시간을 허투로 사용할 수 없었다.
시급을 다투는 아주 중요한 상황이었다.
*
-아주 작정하고 왔네.
천마의 말대로 녀석들은 오늘 끝장을 볼 셈인지, 끊임없이 화살을 쐈다.
화공(火攻)의 무서움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병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네.
천마가 이 상황에서 농을 던질 여유가 있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처럼 태평한 사람은 없을 거다.’
“시온!”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몸을 틀었다.
역시, 그녀였다.
그런데.
“어라?”
-저건 또 뭐래?
천마도 눈앞의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레베카가 사자를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사자였다.
하지만 익숙한 듯이 시온은 다급히 대답했다.
“넵, 부르셨습니까!”
“여기를 맡길 테니. 병사들부터 한가운데로 얼른 집결시켜.”
“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레베카가 사자를 타고 눈앞에서 바람처럼 슝! 하고 순식간에 지나쳐가자 나뿐만 천마는 어안이 벙벙했다.
‘방금, 잘못 본 거 아니지?’
-어..잘못 본 게 아니야.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저기!”
레베카에게 명령을 받은 대로 움직이기 전에 시온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디 갔지..?”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안 보였다.
기척도 없이 사라지자 어안이 벙벙했다.
“...도망친 건가?”
*
-겁도 없이! 적진 안으로 혼자서 쳐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불안해서 나는 그녀의 발자취를 뒤쫓았다.
그러다.
“...!?”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포착하고 말았다.
화르륵- 화르륵-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막사 근처를 지날 때, 사자가 입으로 벌리자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사자가 입을 벌리고 숨을 빨아들이자 불은 진공청소기처럼 사자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광경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요동쳤다.
신기하기도 하고, 그녀가 궁금하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자가 무수한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와아~!! 레베카 단장님이다!!”
“역시, 구하러 와주실 줄 알았어.”
그녀의 등장만으로 병사들의 사기(士氣)가 다시 치솟았다.
병사들이 환호하고, 열광하자 나는 그녀의 존재가 이 곳에서 확실히 비중이 높다는 걸 깨달았다.
“역시, 괜히 단장이 된 게 아니네.”
“뭐야? 쫓아오고 있잖아?!”
앞서 달리고 있던 레베카는 고개를 돌렸는데 내가 뒤쫓고 있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앞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화공(火攻)부터 멈추는 게 관건이었다.
그런데.
“...!?”
막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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