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복수(1)
“그 소문 들었어?”
“뭐? 이번에는 어떤 소문인데?”
바로 옆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숨 죽이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던 나와 시온은 귀를 쫑긋 세웠다.
-혹시...?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트리아 가문이 누명을 받았데!”
“뭐? 그게 사실이야?”
“하긴, 뭔가 찜찜하다 했어. 하루아침에 트리아 가문이 몰락했잖아.”
“그래. 그럴 분이 아니긴 하지.”
그 테이블 뿐만 아니라 다른 테이블도 그 이야기로 한창이었다.
“맞아! 얼마나 착하신 분인데. 인자하시고. 그 분 아니었으면 우리 왕국이 이렇게 번영하지도 못했어.”
“적국들도 전쟁의 신이라고 함부로 침범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립다. 그 시절...”
“참, 인자하고, 따뜻하셨던 분이었는데.”
“내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연신 닦고 있자 시온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그 노인에게 걸어갔다.
“어르신, 이걸로 닦으세요.”
“고맙네. 청년.”
수건을 건네주고 시온은 웃었다.
“아닙니다. 별거 아닌데요. 근데...뭐 때문에 그러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시온이 묻자 그는 눈물을 닦던 손수건을 잠시 멈췄다.
“...말하기 참 쑥스러운데.”
“그럼, 굳이...”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서 그랬어.”
-아무래도...
‘사연이 있는 거 같지?’
-그런 거 같은데?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트리아 가문의 가주였던 테이세르 님이 내 목숨을 구해주셨던 적이 있었다네.”
‘설마...?’
“그때 날 구하신다고 어깨에 화살을 맞으시더니...”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분이 구해주면서 말했던 첫 마디가.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질주해!”
그 이후로, 그는 목숨을 걸고 백성들을 구해주는 것도 모자라 적군이 더 이상 침입하지 못하게 시간을 벌였다.
그야말로, 영웅 중에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런 분이 갑자기 자결을 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
뚝뚝-!
시온이 눈물을 흘리자 옛 추억을 얘기하고 있던 노인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 갑자기 왜 우는가?!!”
“아...그, 그게 너무 감동스러워서요.”
시온이 눈물을 다급히 닦자 나는 아련한 눈길로 바라봤다.
-역시, 영웅은 죽어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토록 남아있네.
“이제라도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서 정말 다행이야.”
-이게 다~ 나의 지략 덕분 아니겠어?
‘하긴...요번에는 인정!’
누가 퍼트렸는지는 몰라도 레베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 소문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젯거리로 금세 자리 잡혔다.
그때, 천마는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이용했다.
천마의 말대로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사탕과 과자를 주면서 어떠한 이야기를 퍼트려 달라고 부탁해보자 그 이야기는 금세 퍼져나갔다.
역시,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한 번 영웅은 영원한 영웅인지 그와 관련된 면모가 쉴 틈 없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을 시작으로 주점이든, 객점이든, 길거리든, 집이든. 사람들은 그를 아낌없이 칭송하고, 그리워했다.
“나도 그분 때문에 목숨을 산 적이 있었지.”
“그런 분이 억울하게 죽으셨다니.”
“세간에 알려진 게 진실이 아니었어.”
“곧이곧대로 믿은 내 잘못이야.”
자책과 후회, 연민, 분노 수많은 감정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야말로, 거짓된 진실이었어.”
“그 분은 그렇게 죽으셨으면 안 되는 분이었는데.”
“왕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자식들!”
“영웅에게 그런 수치와 모욕을 주다니.”
굵은 빗줄기가 곧 쏟아질 것만 같이 평온했던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끼자 서재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윌리어스는 의자에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누가 그런 소문을 퍼트렸을까?”
그 소문은 왕실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게 정녕, 하늘의 뜻인가?”
자식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던 친구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자 가슴이 먹먹했다.
그때 당시에도.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했었는데...”
하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가주도 아니었기에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아버지에게 부탁하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려도 봤지만 아버지는 어쩔 도리가 없다면서 지하 감옥에 자신을 가뒀다.
그때, 깨달았다.
감옥 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힘이 없는 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보잘것없든지...”
소중한 친구를 잃은 직후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힘을 갈망했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갈았다.
그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힘을 키웠다.
“어쩌면 이 날을 기다려왔는지도 몰라.”
억울하게 죽은 친구가 누명이 벗겨지기를 간절히 원해왔다.
*
지나갔던 사건이 수면 위로 둥실둥실 떠오르자 왕실은 아주 쑥대밭이 됐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그러게. 그 말이 진짜 사실일까?”
기사들 뿐만 아니라 시녀,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소문을 점점 믿는 눈치이자 그 사건에 가담했던 모든 인물들의 머릿속은 캄캄해졌다.
“이를 어쩝니까.”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어요.”
“우선, 그 모든 소문은 허황된 소문이라고 선포부터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걸로 턱도 없습니다. 해봤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오히려, 반항만 더욱 거세졌습니다.”
쾅!
답이 없자 후작은 원탁을 주먹으로 내려치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하여간, 못 배운 티를 낸다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소문을 진짜로 믿고 다른 사람들까지 선동하는 추세입니다. 이를 어쩝니까.”
“빨리 해결 방안을 모색하지 않다가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 겁니다!!”
짝짝!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리자 모두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향했다.
“누구야!”
“당장 나오지 못해?”
“어떤 자식이지...?”
다른 누구도 아닌, 윌리어스였다.
“안건이 대체 뭐길래? 이리들 모이신 겁니까?”
“크흠...”
“별 거 아닙니다.”
“괜한,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저, 윌리어스 공작님 따님에 대한 소문을 잠재우려고 모인 거 뿐이니.”
“후작. 자네 생각은?”
“들었다시피, 그 안건으로 다급히 모인 겁니다. 더 이상 지켜볼 수 만은 없을 거 같아서 말이죠.”
“그렇다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네? 그게 무슨 소리시죠?”
후작이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자 윌리어스는 실소를 터뜨렸다.
“아니, 그러한 안건으로 모인 거면 내가 무조건 참석해야 할 자리인 거 같아서 말이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으신 거 같아. 초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자네가 임의적으로 주관했다는 소리로 들어도 되겠지?”
“그, 그건...”
“소집 권한을 이런 식으로 쓸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고작, 후작 나부랭이가 월권을 행사하다니...”
그 순간, 후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후작 나부랭이라니. 말이 좀 심하시네요.”
“공작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하대하면 우리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예의를 지켜주시죠.”
“예의라...이번 기회로 따져보고 싶네요!!”
윌리어스가 눈을 번뜩이면서 노려보자 귀족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뭔 자신감이지?’
‘뭘 따진다는 거야?’
‘무슨 속셈일까?’
‘암만 봐도 술에 취한 거 같진 않아 보이는데?’
“뭘 따지자는 거죠?”
후작이 물어보자 윌리어스는 웃었다.
“그동안 당신들이 저지른 죄질을 따져보자는 거죠.”
“입이 뚫려 있다고 말을 너무 막 하시는 거 아닌가요?”
“죄질이라니.”
“우리가 무슨 죄를 졌다는 겁니까?”
“첫째! 영웅의 힘이 커질까 봐 두려워. 작당모의하고 국정을 혼란스럽게 한 죄!”
“그 무슨 말도...”
“둘째!! 시민들을 약탈하고, 등골을 빼먹은 죄!!”
“이봐 요!!”
“셋째!!! 왕의 귀와 눈을 어지럽게 만든 죄!!!”
“지금 뭐 하자는 거죠?”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꺼내시죠.”
“지나간 일을 이제 와서 바로 잡을 거라는 개소리는 하지 않을 생각이시죠?”
죄질을 말했지만, 어느 누구도 죄 의식 따윈 없어 보였다.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나라가 쇠약해지고, 도탄에 빠지는 거다.”
“지금 뭐, 뭐..뭐라고 하셨습니까?!! 그 말 당장 철회하시죠!”
“거참!!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왕족이랑 사돈지간이 된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봅니다.”
“힘 좀이 있다고 우리에게 이런 수모와 악담을 퍼붓다니!!”
후작이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윌리어스는 실소를 터뜨렸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하긴...변했으면 진작 변했겠지.”
“완전, 실성했네. 실성했어!!”
귀족들은 윌리어스가 배를 부여잡으면서 웃자 치를 떨었다.
“아무래도 미친 거 같은데?”
“딱 봐도 제정신이 아니야.”
“광증이라도 도진 건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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