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손님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한 이안은 제일 먼저 객점에서 짐을 풀고, 로버트랑 마을 한 번을 둘러봤다.
현장 조사를 하기 위해서 객점이든, 주점이든 한 번 씩 들려서 직접 주문도 해보면서 술을 맛보고 가격을 어느 정도로 추정하면 좋을지 상품 가치를 현장에서 머릿속으로 두드렸다.
‘여기는 맛이 별로네.’
‘맛이 별로 인데도 이 정도로 받다니.’
로버트랑 이안은 포도주를 음미하면서 각자 평가를 내렸다.
그렇게 주점을 몇 곳 더 둘러본 뒤 이안과 로버트는 길거리를 걸으면서 의견을 나눴다.
“은화 5개는 받아야겠습니다.”
“나도 그런 거 같더군. 암만 봐도 우리가 들고 온 술이 품질 면에서도, 가격 면에서도 적당해.”
“맞습니다. 여기에 저희가 온 목적은 활로를 뚫으려는 목적도 있으니 저희 상단 이름을 알리는 게 우선입니다.”
“그럼, 오늘은 단원들에게 편히 쉬라고 하고, 내일부터 작업하도록 하지.”
“그게 아무래도 좋겠습니다. 녀석들도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다들 쉬고 하고 싶어 하는 눈치더라고요.”
고개를 끄덕이고 로버트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럼, 이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로버트가 묻자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왕 온 김에 더 둘러보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로버트를 대동한 채 이안은 이리저리 노점들을 둘러봤다.
둘러보니, 값비싼 보석을 파는 노점도 있었고, 고기를 파는 노점도 있었으며, 가죽을 파는 노점도 있었다.
심지어는 가짜 진주를 진짜라고 속여서 파는 상인도 있었다.
“더 볼 것도 없네.”
“그럼, 이만 돌아가시겠습니까.”
로버트가 물어보자 이안은 고개를 내젓고, 손가락으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한 번 가보지.”
“네, 알겠습니다.”
이안이 앞장서자 로버트는 이안을 묵묵히 따라갔다.
*
“야! 네 말대로 했는데 하나도 안 오잖아.”
-야! 참을성 있게 기다려봐.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날 줄 누가 알아?!
‘진가는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네.’
좌판을 깔고 그동안 열심히 만든 검과 화살, 도끼, 칼을 팔기 위해 좌판에 내놨는데 사람들은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지나갈 뿐이었다.
“오라는 손님은 안 오고 파리만 날리고 이게 뭐야...”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대장간 주변에 지금껏 만든 장비들을 진열해 놨는데 사람들은 너무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냥, 휙휙 지나갔다.
손님은 없고 날파리만 날리자 나는 파리를 내쫓기 위해 손을 휘저었다.
“눈앞의 대장간은 손님이 끊이지 않는데 왜 나만 이러지?”
그 순간, 수많은 인파 속에서 멈춘 발걸음이 있었다.
꿈인가 싶어서 고개를 슬며시 올려봤는데, 진짜였다.
“손님이다.”
애송이가 바보 같이 혼잣말을 내뱉자 손님은 웃긴지 입 꼬리를 올렸다.
-야! 바보라고 떠벌리고 다닐 일 있어? 정신 안 차려? 부끄럽게 뭐 하는 짓이야!
‘아~ 맞다!’
나는 손님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둘러보세요. 이거 제가 다 만든 거예요.”
-와아~ 어떻게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 치냐? 거의 내가 다 했는데.
천마가 불만을 토로했지만, 나는 손님맞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게 얼마만의 손님이야.’
그것도 1명이 아니라 2명이었다.
한 명은 나랑 또래로 보였고, 한 명은 백발이 성성한 중년 남성이었다.
하지만 손님 중, 중년 남성은 탐탁지 않은지.
“이안 님. 검을 가지고 싶으시면 다른 곳으로 가시는 게 어떨까요?”
“오히려, 이런 곳에 생각지도 못한 소득을 얻을 수도 있는 법이거든. 그야말로, 진흙 속 진주처럼.”
“그, 그래도....”
손님을 놓칠 수 없어 나는 이안에게 포커스를 집중했다.
‘저 사람이 실세야.’
-팔고 싶으면 얼른 실세를 잘 좀 구슬려봐.
보기만 해도 귀족 티가 확 났다.
옷부터 시작해서 중년 남성을 하대하는 모습까지.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손님이 돈벼락으로 보였다.
‘분명, 세상 물정 모를 게 분명해.’
나이가 비슷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귀족이라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을 테니, 물가를 잘 모를 게 분명했다.
역시, 그게 맞는지.
“너무 비싼데요?”
가격 판을 보고 이안이 불만을 토로하자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손님, 뭘 모르시네요. 여기서는 시세가 이 정도 해요.”
“그런데 그 시세가 과연 맞을까요? 날마다 바뀌는 게 시세인데? 아까 손님이 없어서 안색이 어두우시던데...제가 왜 손님이 없는지 알려드릴까요?”
“네?”
“첫째는 전문성이 안 들어요. 오히려, 딴 곳에서 좌판을 깔았으면 벌써 몇 자루는 팔았을 거예요.”
“저...저기 잠깐만요!”
손을 뻗으면서 내가 제지했지만, 이안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격이 너무 비싸요. 전문성도 없어 보이는데 가격이 비싸니까. 고객이 살 마음이 들겠어요?”
-야! 온실 속 화초는 무슨...오히려, 뚝 부러지는데?
도와줘도 모자를 판에 천마까지 옆에서 비아냥거리자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살 생각 없으시면 가세요.”
내가 손을 휘젓자 로버트도 바라던 상황인지 이안을 설득했다.
“이만 가시죠. 이안 님이 문제점을 지적하셔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깐만요. 가더라도 이왕 온 김에 물건은 제대로 보고 가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손님이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뭐야? 도대체?’
다짜고짜 와서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내가 만든 물건들을 한 개씩, 한 개씩 훑어보고 있었다.
우선, 외관 만을 둘러보다가 이안은 수많은 검(劍)중에서 한 개를 대충 고르고 살짝 뽑아봤다.
스릉-
검집은 볼품이 없었지만,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은 최상급이었다.
“역시, 뭐든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 다니까.”
“여기에 이런 검이 있다니?”
이란이 살짝 뽑은 검을 보고 로버트도 눈이 번쩍 떠졌다.
잠깐 봤을 뿐인데도 검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나는 얼떨떨했다.
‘그래서 산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역시, 보는 눈이 있네. 거봐? 내 말 맞지?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했잖아.
천마의 말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듯 보이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짜, 될 놈은 되는 건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치부했는데 실제로 일어나자 어이가 없었다.
검의 상태만 봐도 합격이자 이안은 구부렸던 무릎을 피고 일어났다.
더 이상 살펴볼 이유 따윈 없었다.
“이걸 진짜, 당신이 만들었다는 거죠?”
“네, 그런데요?”
“저한테 다 파세요.”
“네?!!”
-물어도 완전, 대어를 물었네.
천마의 말대로 정말 그랬다.
‘이걸 다 팔면 얼마야...? 대체?’
하지만 즐길 새도 없이 누군가가 훼방을 놓았다.
“저기!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저 정도 돈이면 제 검 두 자루나 살 수 있습니다.”
“저희 검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냥, 저희 검(劍) 사시죠.”
“아니요. 저희는 검 세 자루 드리겠습니다.”
대장간 장인(匠人)들이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너도나도 어필하자 나는 골머리를 앓았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그냥, 싹 다 부숴버리는 거 어때?
‘뭐만 하면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네.’
-그러면...이렇게 순순히 고객을 뺏길 참이야?!!
‘그건 아니지만...’
내가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좌중을 조용히 시키면서 이안은 사람들의 이목을 이끌어냈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시죠.”
너도나도 판매하려고 하는 이 상황에서는 이 방법이 가장 나아 보였다.
‘어떻게 하시려는 걸까?’
모두의 관심 속에 로버트도 이안의 내뱉는 말에 귀를 기울었다.
“이 검을 이기신 장인 분이 있으시다면 그 검을 만드신 장인 분들의 검 모두를 두 배로 사겠습니다.”
“진짜죠?”
“그게 정말입니까?”
“한 사람도 아니고, 모든 검 전부요?”
“네, 싹 다 사겠습니다.”
이안이 호언장담하자 로버트는 덜컥 겁이 났다.
“이안 님.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러다가 정말 파산할지도 모릅니다.”
“로버트. 괜찮으니까. 그냥, 나만 믿고 지켜보고 만 있어.”
로버트를 진정시키고 이안은 좌판을 깔고 있던 상인에게도 허락을 구하기 위해 물었다.
“어떠세요?”
“그 제안 받아들이죠.”
내가 수락하자 천마는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떼돈을 벌겠구나.
천마가 기세등등 하자 나도 우스울 뿐이었다.
*
“야! 거기서 뭐해?”
“왜?”
“묻지 말고 따라와 봐. 재밌는 광경이 펼쳐졌어.”
사람들이 어딘가로 몰리고 있자 마을로 들어온 에밀리아와 알렉스도 관심을 가졌다.
“아빠, 뭐 재미있는 일이 생긴 거 같은데. 우리도 가 봐요.”
“됐다. 괜히 사람들 눈에 띄어서 좋을 거 없어.”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로브로 얼굴을 칭칭 감싸고 있었지만, 마을로 올 때마다 불안감을 쉽게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이곳은 상업적으로 번창한 마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가 너무 좋았다.
“네가 데미안이 걱정된다고 사정사정해서 온 거잖니. 그러니까 너도 내 말 들으렴.”
“아..아, 알겠어요. 들으면 됐잖아요.”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에밀리아는 알렉스를 따라갔다.
데미안을 찾기 위해 우리는 쉼 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데미안.’
호기심도 참으면서 에밀리아는 데미안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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