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숙명
강대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자 알렉스와 검을 부딪치고 있던 그레이트도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다.
“진짜, 괴물들이 따로 없군. 자네 딸은 정령에게 선택 받았고, 저 친구는 재앙을 몰고 올 악마에게 선택 받았다니.”
그중에서 악마에게 선택 받은 친구는 무서울 정도였다.
‘저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때 내 앞에서 잘도...’
완전, 갖고 논거나 다름이 없을 뿐더러 그가 들고 있는 재료 또한 심상치 않았다.
“저 재료 당신이 선물해준 건가?”
“받은 게 있어서 나도 선물 해줬지.”
“알렉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재앙을 몰고 올 존재를 죽여도 모자를 판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니.”
“그런 이유로 이 따위 짓을 잘도 벌인 건가?!!”
알렉스가 노기가 가득 서린 목소리로 물어보면서 검을 휘두르자 그레이트도 한껏 성을 내면서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감정이 실렸다.
“재앙의 씨앗을 없애는 게 우리의 사명이네.”
그 순간, 알렉스는 기가 차다는 듯이 폭소를 터뜨렸다.
“사명이라...가소롭기 짝이 없는 말이군. 허울 뿐인 말을 그런 말로 포장하려고 하다니. 역시,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눈곱 만큼도 없는 집단이야.”
알렉스가 그 말을 내뱉기 무섭게 에밀리아는 잡고 있던 화살 깃을 놓았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수면을 위를 가르면서 화살은 숲 속으로 매섭게 날라 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눈을 끔벅였다.
지금껏 화살을 날리고 있던 녀석도 화살을 날릴 여유가 없어졌는지 화살을 그만 쐈다.
더 이상 날라 오지가 않았다.
그런데.
“응?”
-괜히, 기대했네.
활 솜씨가 너무 형편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엘프’라는 종족은 사냥과 궁술(弓術)에 매우 특화된 종족이라고 책에서 얼핏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활 솜씨가 꽝 중에 꽝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화살이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숲 속을 주파하고 있자 피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존재도 화살 방향이 이상하자 헛웃음이 터졌다.
“뭐야? 그냥, 힘만 센 바보였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화살을 계속 쏘는 건데.”
그래도 인정할 거는 인정해야 했다.
파괴력 하나 만큼은 장난이 아니었다.
콰지지지지지지직-
지금껏 화살이 날라 오면서 나무 몇 그루를 뚫었는지 몰랐다.
그럼에도 힘을 잃지 않고 날라 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날라 갈 셈일까?”
나도 의문을 가지고 지켜봤다.
그런데 운(運)인지.
그것도 아니면 에밀리아가 화살을 쏠 때부터 애초에 그곳을 노리고 날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외의 성과를 얻고 말았다.
“끄아아아아아악!”
“이게 뭐야!!!”
숲 속에서 의문의 목소리들이 들려오자 나는 에밀리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둘 중에서 에밀리아는 전자인지.
“뭐야? 애먼 녀석을 맞추고 말았잖아.”
“너 엘프 맞아? 어떻게 명중률이 형편없을 수가 있어?”
바즈라가 마침, 가려웠던 부분을 긁어주자 나도 관심을 가지고 에밀리아의 말을 들어봤다.
“야! 엘프라고 활 잘 쏴야 해? 못 쏠 수도 있지. 엄청 구박하네.”
에밀리아가 당당하게 나오자 천마는 웃긴지 폭소를 터뜨렸다.
-역시, 이래야 에밀리아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원군을 부른 모양이다.
“그런 거 같아.”
나도 숲 속에서 들려온 절규와 괴성을 듣자마자 곧바로 눈치 챘다.
기척을 파악해보니, 생각보다 숫자가 많았다.
“아주 작정을 하고 왔네. 왔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양방으로 불길을 일으키고, 전 병력을 이쪽으로 밀집시키다니. 머리가 제법 빠삭한데?!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지금 물어볼 처지가 암만 봐도 아...
천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거 같았다.
멈췄던 화살이 또 날라 오고 있었다.
“아직도 포기를 못 했어?”
내가 검으로 화살을 베는 동시에 에밀리아는 활 솜씨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는지 또 화살을 날렸다.
이번에는 부디, 명중하기를 빌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꽝이네.
아무리 봐도 궁술에는 소질이 없어 보였다.
“알고 봤더니 신(神)은 공평한 거였어.”
그래도 파괴력 하나 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힘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려, 수십 그루의 나무를 뚫고 불길 속으로 날라 가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기대했던 예상과 다르게 상황도 흘러갔다.
-실력은 형편없지만, 운이 미쳤네.
천마의 말대로 운이 너무 좋았다.
이번에도 지원병을 맞췄는지 숲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흘러넘쳤다.
“으악! 내 팔!!”
“대체 어디서 이런 무지막한 화살을 날리는 거야.”
“젠장! 도저히 피할 수가 없어!”
기사들과 병사들을 이끌고 갔던 부단장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죽고, 부상을 당하자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제길!!”
진짜, 피할 틈이 없었다.
번쩍거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번쩍거리는 순간, 우리들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벌써, 몇 백 명을 잃고 말았어.”
호기롭게 진격했던 기사들과 병사들의 사기는 지금 곤두박질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를 어쩌지...”
부단장이 낭패에 빠진 그때.
“거기! 너!”
의문의 목소리가 들리자 부단장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기사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렇습니다. 저도 똑똑히 들었습니다.”
“누구냐! 어서 나와라.”
“바보 같은 놈들. 눈치 채지도 못하다니. 이 녀석들아! 위야!”
의문의 목소리가 위치를 알려주자 그들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당신은?”
“명사수, ‘비반’인 거 같은데?”
“여기에 어떻게...?”
다들 놀라워하는 그때, 부단장은 정신을 곧바로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했다.
“비반 님 맞으십니까?”
나뭇가지 위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는 아무리 봐도 ‘명사수(名射手)’라는 별호가 있는 ‘비반’같았다.
그게 맞는지.
“그래, 맞아!”
“어째서 여기에 계십니까?”
단독으로 악마 토벌을 하는 취미를 가진 분이기 때문에 단체 생활을 안 하는 편이었다.
그런 사람이 눈앞에 있자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어보자 비반은 알려줬다.
“너희 단장이 협조를 부탁하더라고. 그래서 용무를 마치고 다급히 달려왔지.”
“그러...”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너희들 진격 속도가 너무 느려. 빨리 달려가. 안 그러면 너희 단장 죽을 지도 몰라.”
“예?!”
그 순간, 모두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죽는다고?’
“에이~설마..?!”
“거짓말 치시는 거죠?”
모두들 못 믿는 눈치이자 비반은 혀끝을 찼다.
“쯧쯧! 이렇게 정황을 몰라서야. 이 녀석들을 데리고 녀석은 그동안 어떻게 일했데?”
생각할수록 녀석이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답답이들 천국이었다.
상황을 읽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
챙! 챙! 챙! 챙!
그레이트는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었다.
“치사한 녀석들!”
“치사하다는 말은 당신들에게나 더욱 어울리는 말 같은데?”
“그러니까.”
에밀리아와 나는 아저씨를 도와 녀석을 몰아붙였다.
갑자기 일대일 구도에서 3 대 1로 싸우게 되자 그레이트는 피가 말렸다.
평범한 녀석들이라면 이렇게 고전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하나같이 괴물이자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앙의 씨앗만큼은 죽여야 해.’
여기서 설령, 죽더라도 녀석 만큼은 죽여야 했다.
챙! 챙! 챙! 챙!
그레이트가 좀처럼 물러서지 않자 알렉스는 경각심을 더욱 가졌다.
이럴 때일수록 집중력을 잃기 보다는 확실히 매듭짓기 위해 냉철하게 판단해야했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어.’
현재,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도 만만치 않은 강자(强者)였기 때문에 틈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녀석은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게 분명했다.
“....!?”
내가 아저씨랑 녀석의 앞을 공략하고 있자 에밀리아는 녀석의 뒤를 노릴 심산인지 수면 위를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녀석의 뒤로 달려갔다.
그런데.
“응?”
에밀리아는 예상치 못한 방해 공작이 또 펼쳐지자 수면을 밟고 뛰어올랐다.
그 순간, 한 끝 차이로 화살은 빗나갔고, 성력(誠力)이 깃든 화살은 애먼 물만 터뜨렸다.
퍼어어어어엉!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나자 그레이트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나랑 천마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되게 귀찮게 하네.
“도대체 어떤 자식이야?”
나도 녀석처럼 뒤로 물러나기 위해 수면을 밟고, 기를 세밀하게 컨트롤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럴 필요가 애초에 없었는지 아저씨가 알아서 해결해줬다.
파지지지지직-
한기(寒氣)가 급속도록 그 물보라를 통째로 얼릴 뿐만 아니라 그 강물 주변을 아예, 얼려버리자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대처방법이었다.
“이러면 더 이상 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네.”
“마음에 드니?”
아저씨가 장난삼아 물어보자 나도 따라 웃었다.
“네, 무척 마음에 드네요.”
“그럼, 다행이구나.”
“악마를 쥐 잡듯이 잡던 악마 사냥꾼이 재앙의 씨앗이랑 어울리고 다니다니. 타락했구나. 알렉스!”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버젓이 있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에밀리아는 빙판 위로 착지 하자마자 그레이트 뒤로 드러나는 장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뭐야? 저 수많은 인파는?!”
대규모 병력이 진을 치고 있었다.
수풀을 뚫고 병력을 집결시킨 부단장은 그레이트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제일 먼저 달려갔다.
“괜찮으십니까? 단장님.”
“용케 잘 와줬군.”
“비반 님이 단장님이 위험에 빠졌다고 해서 급히 왔습니다.”
얼마 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편지 한 통을 적어 보냈는데 늦지 않게 와준 거 같았다.
“역시, 와줬구나.”
화살을 봤을 때부터 짐작하기는 했지만, 부단장이 보고를 올리자 마음이 한결 든든했다.
“그럼, 이때까지 받은 설욕을 풀어볼까.”
그레이트가 입 꼬리를 올리자 나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또 무슨 짓거리를 벌일 셈이지?’
-가증스러운 것들! 감히, 내 목숨을 노리다니.
그게 맞는지.
“화살 장전해라.”
그레이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불길과 숲 길을 뚫고 여기까지 도착한 병사들은 화살을 끼우고, 활시위를 힘껏 잡아당겼다.
쫘아아아아아악-
한 명도 아니고 대규모가 활을 당기고 있자 한편의 장관이었다.
하지만 표적이 된 먹잇감들은 짜증이 치밀 뿐이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잘못하다가는 화살꽂이가 되겠는데?”
에밀리아와 바즈라를 시작으로 나도 불만을 토했다.
“이 징글징글한 녀석들. 기어코, 여기까지 불바다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작정일까?”
-조용히 살고 싶었거늘. 녀석들이 가만 두지 않는구나.
천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레이트가 손을 내리는 신호와 함께 수많은 화살들이 하늘 위로 솟구치면서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렸다.
슝! 슝! 슝! 슝!
화살세례가 쏟아지자 그레이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여기가 녀석들의 무덤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서 몰살시킬 생각이었다.
‘단, 한 놈도 살려주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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