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2)
이곳도 한창 치열하게 전투 중이었다.
“이 녀석들! 별거 아니네.”
“제국이라고 칭하더니! 고작, 이 정도 수준 밖에 안 돼?!”
“저기 도망치는 꼴 좀 봐라!”
“싹 다 잡아 족치자!”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대장군의 진두지휘아래 북량의 장군들도 말을 열심히 몰았다.
“넵! 알겠습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게 섰거라!! 이 녀석들아!”
역시, 제국답게 어디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육로를 개척해 놨다.
그 길을 이용하자 속도가 지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들을 처리하는 속도가 더욱 가속화됐다.
“고마운 녀석들! 길을 아주 잘 닦아 놨네.”
“그러게 말이야. 이러면 죽이는 맛이 한 맛 더 나겠어.”
“오늘 원 없이 죽여보자!”
“이럇! 이럇!”
말을 열심히 채찍질하면서 제국의 병사들 뒤를 바짝 추격했다.
다그닥-! 다드닥-!
대장군이 선두를 달리면서 창으로 제국의 병사들을 사정없이 죽이자 병사들의 사기(士氣)는 치솟았다.
“우와아아아아~!!”
“대장군님 만세!”
용감무쌍한 모습에 다들 감명을 받았다.
“한초 대장군님의 뒤를 따르자!”
푹-!
대장군을 따라서 장군, 병사들도 창과 검으로 제국의 병사들을 사정없이 찌르고, 벴다.
서걱- 솨악- 솨악-
북량의 대장군이 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제국의 병사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크헉!”
철푸덕-
“끄어어어억!”
털썩-
대장군답게 그의 창술(槍術)은 현란한 솜씨를 자랑했다.
창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제국의 군대를 무력화시켰다.
그도 그럴게.
돌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말발굽과 더불어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하지만
‘자웅을 겨룰만한 녀석이 있을 줄 알았건만...’
북량의 대장군, ‘한초’는 미간을 찌푸렸다.
제국이라고 불리는 게 민망할 정도로 상대가 형편없이 무너졌다.
아무리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너무 심했다.
왕국도 아니고, 무려 제국인데. 이건 암만 봐도 제국답지가 못했다.
“재미가 하나도 없군.”
슝-!
화살이 날라 오자 대장군은 창을 휘둘렀다.
콰직-!
목숨의 위협 속에서 무사히 벗어났지만 대장군은 곧바로 소리쳤다.
“이런! 매복이다!!”
수많은 화살이 숲 속에서 날라 오고 있었다.
슝-! 슝-! 슝-! 슝-!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면서 화살 수십 발이 날라 오자
“젠장!”
“이 비열한 자식들.”
팅-! 팅-! 팅-! 팅-!
말을 타고 대장군의 뒤를 따르고 있던 장군들과 병사들은 창과 검으로 화살을 쳐내거나, 베기 바빴다.
콰직-! 서걱-! 서걱-!
하지만 워낙, 방대한 숫자에 모두가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커헉...!”
“..크윽!”
철푸덕-
화살에 맞아 낙마(落馬)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말의 발광을 멈추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자(者)가 있기도 했다.
히이이이이잉-!
말이 앞발굽을 번쩍 들자 진정시키기 위해 말고삐를 열심히 잡아당겼다.
“진정해라! 좀!!”
“하필이면 이때...”
“젠장! 말 더럽게 안 듣네.”
그 곳은 순식간에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변모했다.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졌다.
전세가 연적되자 북량의 대장군도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어 소리를 질렀다.
“모두 후퇴해라!”
“알겠습니다.”
“어림없는 소리.”
그 말과 함께 누군가가 수풀을 밖으로 도약하면서 튀어나오자 한초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뜻밖의 복병이 숨어있었어.’
그것도 남자가 아니라 척 보기에도 여자였다.
그녀가 주먹을 휘두르자 한초는 다급히 창을 들어 막았다.
그런데.
퍼어어어엉-!
막는 순간, 말도 안 되는 위력이 전해졌다.
손맛이 아주 짜릿했다.
충격이 얼마나 강한지 그동안 생(生)과 사(死)를 같이 해왔던 말도 그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뒤로 질질 밀렸다.
하지만.
히이이이이잉-!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면서 앞발굽을 들더니 녀석은 균형을 곧바로 잡았다.
역시, 산전수전 겪은 녀석다웠다.
“그 일격(一擊)을 용케 버텨내다니.”
“그건 내가 할 소리군. 당신 이름이 뭐지?”
“세실리아.”
“.....!?”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부하들도 동요했다.
“뭐라고?”
“세실리아라고?”
“권성(拳聖), 세실리아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그러니까 자네가...제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그랜드 마스터 중 한 명이라는 거지?”
무언은 긍정이라는 뜻인지.
그것도 아니면 대답할 가치도 없는지.
그녀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한초는 씨익 웃었다.
“누가 됐든. 자웅을 겨룰 수만 있다면 상관없어.”
얼른 붙어보고 싶은 마음에 한초도 말고삐를 흔들면서 그녀를 친히 마중 나갔다.
“이럇! 이럇!”
제국의 주축이랑 붙어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쿵쾅쿵쾅!
얼마 만에 맛보는 설렘인지 몰랐다.
*
솔직히 단편적인 기억만 가지고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꼬맹이였고, 어른들이 보듬고 도망쳤기 때문에 정확한 요인을 몰랐다.
왜 우리나라가 침략을 받고, 망국의 길을 걷게 됐는지.
그래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있었다.
‘영원히 잊을 수가 없지.’
거대한 화마(火魔)가 세계수(世界樹)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누가 세계수에 불을 지른 건지 몰라도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그 부근에 있는 모든 나무와 집들도 집어삼켰다.
그야말로 불바다였고, 그 악몽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때, 당시 어린아이에 불과한 제가 할 수 있는 거는 고작, 지켜보는 거밖에 없었죠.”
“혹시, 누가 불을 저지른 건지 알 수 있나요?”
“당신도 익히 들어본 적 있을 거예요.”
‘도대체 누굴까...?’
-어떤 자식인지 몰라도 한 번쯤 만나보고 싶네.
마을도 아니고, 왕국을 잿더미를 만들 정도면 실력이 범상치 않을 게 분명했다.
“...세실리아라는 이름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궈, 권성(拳聖), 세실리아를 말씀하시는 거는 아니죠?”
“그녀 말고 또 있을까요?”
-한 번 붙어보고 싶네.
천마와 다르게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가 그 전쟁에 관여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제가 알기론 대외적으로는....”
“맞아요! 검성(劍聖), 마틴이라고 사람들이 대다수 알고 있죠. 그 전쟁의 일등공신이라고...”
“그런데...”
“그 이유는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전쟁의 판도를 바꾼 그녀가 모든 공(功)을 왜 검성(劍聖)에게 다 넘겼는지.”
그녀의 말대로 이상해도, 매우 이상했다.
만약, 그녀가 얘기했던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시기적으로 오차가 있었다.
그녀의 위명(威名)이 떨치게 된 시기는 엘프 왕국이 멸망하고 난 후, 몇 년 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 바였다.
-아무래도 무슨 내막이 숨겨져 있는 거 같구나.
“그러게.”
“네?!”
비앙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문을 표하자 나는 서둘러 손사래 쳤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얘기 잘 들었어요.”
“그럼, 이제 약속 지켜주시죠.”
“약속대로, 당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알려줄게요. 그뿐만 아니라 차별하지 말고 생활 여건을 보장해 달라고.”
“그 말 꼭 지켰으면 좋겠네요.”
비앙카가 의심을 끈을 놓지 않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자라온 환경 때문인 거 같았다.
-그냥,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꼴이네.
천마의 말대로 여기 사는 엘프들은 나라를 잃는 것도 모자라 꿈과 희망도 없어 보였다.
‘죽지 못해서 사는 거 같네.’
“까아아아아악!”
웬, 여성의 비명과 함께 사람들의 다급한 고함이 들려왔다.
“또 쳐들어왔다.”
“도망쳐!”
“이 지독한 자식들!!”
“아주 씨를 말릴 작정이잖아.”
심상치 않은 일이 또 발생하자 비앙카는 말 붙일 틈도 없이 그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일이 벌써 터진 모양이었다.
‘한발 늦었어.’
아무래도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보였다.
평소보다 너무 거칠었다.
*
“다 때려 부셔!”
“별 것도 아닌 녀석들이 감히!!”
“싹 다 부시자!”
“반항하는 자(者)는 아주 매운맛을 보여주고.”
명령하자 사병들은 몽둥이로 철거명령을 내린 거 마냥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쨍그랑!
창문도 부수고, 문도 부수고, 그냥 눈에 보이는 족족 다 부셨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녀석들아! 그만 두지 못해!”
“이제 할 만큼 했잖아.”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적어도 숨통을 트이게는 해줘야지.”
엘프들이 발악하자 사병을 동원했던 그는 명령을 내렸다.
“이 녀석들이! 미쳤나? 얘들아, 따끔한 맛 좀 보여줘라!”
“그만하세요!!!”
한, 엘프가 한 골목길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도 모자라 양손을 펼치고 길을 막자 사병을 이끌고 있던 그는 입 꼬리를 올렸다.
“괜히, 오지랖 부리지 말고 좋게 말할 때, 내 눈앞에서 꺼져!”
“반은 어떻게 됐죠?”
“반...?”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비앙카는 알려줬다.
“아까, 당신을 쫓던...”
“아~ 그 녀석 말하는 거였어?!”
그가 입 꼬리를 씨익 올리자 비앙카는 등골이 서늘했다.
‘설마...’
“죽인 거는 아니죠?”
“에이~ 내가 그런 파렴치한 놈으로 보여?”
그 말과 함께 그가 박수를 치자 사병이 데리고 왔다.
그런데.
“어떻게....”
비앙카는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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