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불명
그 시각.
한껏 차려진 식탁에 앉아서 '아르키아'는 고기를 열심히 씹기 바빴다.
와그작- 와그작-
살이 통통 오른 뒷다리를 손으로 쥐고 뜯어먹으니까, 한 맛 더했다.
“이제야, 좀 살 거 같네.”
똑똑!
기분 좋게 식사하고 있는데 어떤 자식이 문을 두드리자 불쾌감이 차올랐다.
씹고 있던 고기를 꿀꺽 삼키고 소리쳤다.
“밥 먹고 있는데 어떤 자식이야?!”
“아르키아 대장님. 아직까지 도착 못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선발대하고 후발대 말입니다.”
그 순간, 아르키아가 쥐고 있던 고기가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아르키아는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당장, 병력 소집해! 내가 직접 수색한다.”
“넵!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리고도 아르키아는 화가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주먹 쥔 손으로 식탁까지 힘껏 내리쳤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식탁은 곧바로 ‘V’자로 쪼개졌다.
식탁 뿐만 아니라 음식을 담고 있던 그릇도 부서졌다.
그럼에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아르키아는 뜨거운 콧김을 뿜어냈다.
암만 봐도 이상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
철컥- 철컥-
쇳소리가 들리자 여신 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기도를 하고 있던 성녀(聖女)는 몸을 일으키고 방문자를 맞이했다.
성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갑옷으로 중무장한 '그레이트'는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인사를 올렸다.
“알리아나 성녀님, 병력을 풀어 온 곳을 수색해봤지만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북쪽 채굴 장에 유적이 발견됐다면서요? 뭔가, 찝찝하네요."
"그래서 마도사들을 보내 어떤 경위인지 알아보라고 보낸 참입니다."
“그레이트 경,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찾아야 합니다. 그 존재를 찾지 못한다면 파멸이 도래하고 말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셨나요?”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레이트는 무릎을 다시 피고 일어나, 붉은 카펫을 밟으면서 다시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디 숨어 있는 거냐. 사탄이여!’
파멸을 일으킬 존재를 찾기 위해 이 도시 뿐만 아니라 도시 외곽, 다른 왕국, 심지어 다른 나라에도 병력을 풀어 수색해봐야 할 판이었다.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 마땅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속은 새까맣게 더욱 더 타 들어갔다.
*
“와아~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내가 감탄을 내뿜자, 에밀리아는 자랑하듯이 말했다.
“어때?! 우리 집 멋있지?”
“응! 멋있어.”
알렉스랑 에밀리아를 따라 이동한 지가 벌써, 며칠 째인지 이제는 가물가물했다.
그들을 따라 눈보라를 뚫고, 사막을 뚫고 하다 보니 이곳에 도착했다.
안개가 가득한 숲 속을 뚫고 나오자 거대한 고목들로 둘러싸인 오두막집이 있었고, 다양한 새들과 동식물들도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오두막집과 자연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었다.
짹짹-
삐약삐약-
다양한 새들이 날거나, 지저귀였다.
하지만 나와 달리 천마의 감상평은 남달랐다.
-수련하기 안성맞춤인 공간이네.
역시, 녀석 다운 발상이었다.
틈만 나면 몸이 근질근질 거리고 따분해 죽겠다고 얼마나 볶아 되던지.
여기까지 그 시달림을 버틴다고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구경을 다 한 듯 보이자 알렉스는 말을 걸었다.
“앞으로 여기서 지내렴.”
“감사합니다. 아저씨. 여기까지 데리고 와주셔서.”
알렉스는 웃으면서 에밀리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에밀리아, 데미안에게 방을 마련해주렴.”
“네, 아빠.”
고개를 끄덕이고 에밀리아는 다짜고짜 내 손을 잡았다.
“일로 와!”
‘뭐가 이렇게 힘이 세?’
에밀리아가 손목을 잡는 순간, 손목이 뜯겨나가는 줄 알았다.
-기골이 좋네.
그 이후로, 나는 속절없이 에밀리아의 완력에 끌려 다니다시피 했다.
“여기가 내 방이야.”
에밀리아는 본인 방 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소개해줬다.
“여기는 아빠 공방이고.”
집에 돌아와서 에밀리아는 힘이 넘치는지 체력이 지치지를 않았다.
“여기는 서재고.”
그 다음으로.
“여기는 대장간이야.”
에밀리아가 집을 소개해줘서 고마웠지만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근데...내 방은 언제 소개해줄 생각이야?”
“아~맞다! 네 방이 있었지?”
-완전, 천방지축이네.
천마의 말대로 완전, 장난꾸러기였다.
오면서 얼마나 골탕을 먹었는지 몰랐다.
사막에서 횡단하고 있을 때, 에밀리이가 갑자기 눈을 감아보라고 하자 감아봤다.
그런데 아주 끔찍한 짓을 잘도 벌였다.
“눈 떠봐.”
에밀리아가 눈을 뜨라고 하자, 눈을 떠봤는데 에밀리아가 무섭지도 않은지 전갈 꼬리를 잡고 내 눈앞에 들이밀고 있었다.
그 기억만 떠올린다면 지금도 식겁했다.
그 뿐만 아니라 설산에서는 눈덩이로 얼마나 괴롭혔는지 몰랐다.
청개구리처럼 하지 말라고 하면 더 더욱 괴롭히는 ‘에밀리아’였다.
아찔한 추억들을 잠시 회상하고 있을 때, 내 방에 드디어 도착했는지 에밀리아는 문을 번쩍 열면서 안으로 끌고 왔다.
“어때?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긴 드는데. 이제 손 좀 놔주면 안 될까?”
에밀리아가 손목을 놔주자 나는 손목의 상태를 제일 먼저 살폈다.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피부가 붉었다.
‘시큰거려 죽겠네.’
나는 손을 매만지면서 방안을 한 번 둘러봤다.
그런데.
-저건 뭐냐?
천마가 뭔가를 보고 신기해 하자 나도 신기해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그 물건을 보자마자 드는 생각이 연꽃 잎에 맺힌 이슬 같았다.
“이건 뭐야?!”
“아~그거? 침대.”
“이게 침대라고?!”
나는 손가락으로 침대라는 물건을 콕콕 찔러봤다.
촉감이 물컹물컹 했다.
“푹신푹신한 게 아니라 물컹물컹 거리는데?”
“재료가 물인데. 당연히 물컹물컹하지.”
“물이라고?”
-저게 물이라니?
내가 놀라워하자 에밀리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거 아빠가 마법으로 만든 거야. 대박이지?!”
‘와아~마법으로 이런 거까지 만들 수 있다니.’
-마법이라...
내가 멀뚱멀뚱 서있기만 하자 에밀리아는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누워봐.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어...아, 알았어. 누워볼게.”
침대라고 부른 물체에 우선, 조심스럽게 앉아봤다.
말캉말캉하고 시원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체감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왜 이렇게 겁이 많아? 그냥 누워봐.”
에밀리아가 답답한 모양인지 나를 밀쳤다.
그 순간, 불의의 기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에밀리아~”
나는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벌러덩 뒤로 자빠졌다.
그런데 침대의 성능이 의외로 뛰어나자 생각이 확 달라졌다.
두려움보다는 놀람이 더욱 컸다.
“어라?!”
이슬이 몸을 감싸 안은 것만 같았다.
“어때? 괜찮지?”
에밀리아가 웃으면서 물어보자 이슬에 벌러덩 누운 채로 나는 고개를 나직이 끄덕였다.
몸을 이리저리 굴러보자 이슬이 어떤 자세든, 편한 자세로 누울 수 있게 유동적으로 변화했다.
-잠 잘 올 거 같네.
천마의 말대로 정말 그럴 거 같았다.
완전 만족스러웠다.
나는 상체를 일으키고 웃었다.
“진짜, 대단하시다. 못하시는 게 없네!”
“우리 아빠, 아마...못하는 거 없을 걸?”
-완전, 철부지네.
천마가 심드렁하게 말하자 나는 말했다.
‘그래도 너보다는 나아. 적어도 속이 시커멓지는 않잖아.’
-하...나, 원...참..어이가 없어서...
“데미안, 잠시 내려 와볼래.”
알렉스가 부르자 에밀리아와 나는 곧바로 움직였다.
“왜요?”
“네, 알겠습니다.”
밖으로 딸이 데미안과 함께 나오자 알렉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밀리아, 너는 왜 나오니?”
“데미안, 왜 불렀어요? 아직, 구경할 게 더 남았는데요.”
딸이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면서 물어보자 알렉스는 헛웃음이 나왔다.
“데미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단다.”
“나중에 하면 안 돼요? 꼭, 지금이어야 해요?”
에밀리아가 떼를 쓰자 내가 나섰다.
“에밀리아, 우리 시간이 많잖아. 그러니까 차근차근 구경 시켜줘.”
“그래도...”
에밀리아가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나는 할 수 없이 말했다.
“이번에는 내 말대로 해주면 나중에 원하는 소원 하나 들어줄게.”
“진짜지?”
“응! 진짜!”
“꼭 약속 지켜!”
“응! 약속 지킬게!”
그제야, 에밀리아가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러나자 알렉스는 기가 찼다.
‘딸이 저럴 줄이야.’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의외의 모습에 억울하면서도, 속상했다.
에밀리아가 멀어지자 나는 알렉스가 부른 용건을 다시 상기했다.
“저한테 묻고 싶은 게 뭐에요? 아저씨.”
“어..그, 그게 뭐냐면...”
데미안이 물어보자 알렉스는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서재에서 고서를 훑어보면서 데미안이 만났던 요정이 뭔지 알아냈다.
“...내가 고서를 읽고서 알게 된 게 있는데. 네가 만났다는 요정이 있잖니?"
“뭔지 알아내셨나요?!”
“세계수인 거 같더구나.”
“그게 가능한 얘기에요?”
-내 앞길을 막은 놈이 세계수라고?
내가 의문을 가지자 알렉스는 설명을 덧붙였다.
“세계수의 과실은 우리 엘프들에게는 만병통치약이라고 불린단다. 이때껏 무슨 병이든 호전시켰지.”
“그 말씀은 그러니까...세계수가 제 머릿속에 등장해서 천마가 제 몸을 뺐지 못하게 막아줬다는 말씀이세요?”
“그런 걸로 보이는구나. 옛 문헌들을 찾아보니, 우리 엘프들도 악마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 세계수의 과실을 먹고 악마를 퇴치했다고 하더구나.”
데미안이 보여줬던 증상이랑 선조들이 남긴 자료를 비교해봤을 때, 증상이 거의, 일치했다.
악마에 빙의된 선조들도 데미안이 겪었던 현상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상에서 요정이 나타났고, 그 요정이 악마를 퇴치해줬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근데...왜 저는 퇴치 못한 건데요?”
-야! 그걸 굳이 물어봐야 알겠어? 그건 당연히 내가...
“아무래도 최상급 악마라서 그런 거 같구나.”
알렉스의 말에 나는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소리시죠?”
“기다려보렴, 내가 책을 훑어보고 확실해지면 다시 알려주도록 해주마.”
아쉽게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아직 찾지 못했다.
서재 뿐만 아니라 지하 창고에도 책이 한가득 쌓여있어서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 듯싶었다.
아저씨의 말에 나는 희망을 걸어봤다.
“알겠습니다. 아저씨.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그러니까 좋은 소식 기다리렴.”
“네, 알겠습니다.”
-이 자식이! 죽을상이네. 복(福)에 겨워도 모자를 판에...
‘시끄러워. 너랑 나는 기연이 아니라 악연일 뿐이야. 알아들었어?’
-말하는 싸가지 봐라?!! 나도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마음 같아서는 나도 이 빌어먹을 신세 때려치우고 싶어.
내가 기분이 꿀꿀해보이자 에밀리아는 눈치를 살폈다.
“괘..괘, 괜찮아...?”
“그럼~또, 구경해줄 곳 없어? 아까, 구경해줄 데가 더 남았다면서?”
“어...잠시만...”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에밀리아는 야심찬 장소를 떠올렸다.
그 곳은 언제나 봐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