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초대
-누가 미행하는데?
천마가 단숨에 알아차리자 나도 고개를 나직이 끄덕였다.
‘아무래도 의심하는 거 같은데?’
-하긴, 단번에 신뢰하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긴 하겠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숲 속을 단독으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상대가 경계할 이유는 충분했다.
-상황이 안 좋게 맞아 떨어진 거 같다.
‘그러니까 말이야.’
“여기 쓰시면 될 거 같습니다.”
시온이 발걸음을 멈추고 막사를 손으로 가리키자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너무 큰 거 같은데요? 작아도 괜찮은데.”
“아닙니다. 이 정도는 응당 해드려야죠. 한 번 살펴보세요. 부족한 점이 있는지, 없는지.”
그가 길을 비켜주자 나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천막을 위로 걷으면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쁘지가 않은데?’
-불도 지펴져 있고, 푹신푹신한 간이침대도 있네.
“어떠신가요? 마음에 드시나요? 병사들에게 시켜, 구비를 해두라고 하긴 했는데...”
“무척, 마음에 드네요. 이 정도면 오늘 밤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네요. 그래도 혹시...필요한 물품이라던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도 있으시면 길가에 지나다니는 아무 병사나 붙잡고 제 이름을 되시면 됩니다. 그럼, 알아서 잘 해줄 겁니다.”
“아..네.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시온이 막사 밖으로 나가자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막사 안을 둘러봤다.
“드디어 잠을 푹 잘 수 있겠어.”
밤이든, 낮이든 끊임없이 달려들던 녀석들의 방해를 더 이상 안 받아도 됐다.
“이게 얼마만의 휴식이야.”
-근데, 아까 얼핏 봤는데 너랑 나이가 얼추 비슷하던데?
“그래서 그 말을 꺼낸 저의가 대체 뭔데?”
-아니, 그 계집애는 총사령관이라는 직책을 꿰차고 있는데 너는 뭐하나 싶어서.
“지금 싸우자는 거지?”
-에이~ 장난이야. 장난. 장난을 왜 이렇게 진담으로 받아들이실까?
“거짓말 치고 있네...대체, 뭔 속셈인데?”
-너도 이왕 여기에 온 김에 한 자리 꿰차는 거 어때? 그러고 나서 막, 병사들을 내 발 아래에 두고 막, 진두지휘하는 거지.
“시답지 않은 말 할 시간이 있으면, 나불거리지 말고 입이나 다물고 있어! 괜히, 심기 건드리지 말고!”
그 말을 내뱉으면서 나는 간이 침대에 앉아서 살짝 들썩여봤다.
최고급으로 준비해줬는지 침대가 무척 푹신푹신했다.
하지만.
‘그 느낌 만큼은 아니야.’
-또! 또! 쓸데없는 생각한다.
“내 추억이야.”
-추억 같은 소리하고 있네. 추억보다 앞으로의 미래나 걱정해. 앞으로 어떻게 살 생각인지. 명확하게 계획한 것도 없잖아.
“몰라. 계획을 세워봤자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래.”
-이 자식이! 이제는 좀 강해졌다고, 꽁으로 살려고 하네.
“오히려 바라던 바야. 인생, 꽁으로 살면 얼마나 좋아?!”
-물러 터진 녀석 같으니라고!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안 가르쳐주는 건데.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잖아. 히힛!”
내가 웃자 천마는 화딱지가 나는지.
-야! 이 @#@#$@...
육두문자를 마구 날리자 나는 귀를 닫고 간이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푹신함에 잠이 스멀스멀 왔다.
얼마 못 가.
드르렁-! 드르렁-!
애송이가 코를 골자 짜증이 일었다.
-이 자식이! 눈 감자마자 바로 잠들었네.
이러면 욕한 의미가 없었다.
“뭐야? 눕자마자 이렇게 잔다고?”
막사에서 귀를 대고 염탐하고 있던 녀석도 애송이가 순식간에 자자 매우 놀란 모양이었다.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착각인가 싶어서 귀를 떼고 반대쪽 귀를 갖다 대봤지만, 변함이 없었다.
틀림없이 자고 있었다.
숨소리가 일정했고,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귀를 떼고 기사는 발길을 돌렸다.
*
화르륵- 화르륵-
횃불을 들고 병사들이 순찰을 도는 그때, 시온은 막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아무런 대꾸가 없자 한 번 더 물어봤다.
안쪽에서는 분명, 인기척이 있었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상체를 일으키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드, 들어오세요.”
내 허락이 떨어지자 시온은 막사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목이 잠긴 목소리로 판단하건데 아무래도 잠을 잔 거 같았다.
그게 맞는지.
“죄송합니다. 주무시는 줄 알았다면 안 깨우는 건데요.”
내가 눈을 비비고 있자 시온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그보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저희 레베카 단장님께서 데미안 씨께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대접이요?”
-뭔가, 불길한데...
‘뭐가, 불길한 건데? 혹시..나 자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건 아니기는 한데...
천마가 두루뭉술하게 말하자 나는 할 수 없이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미심쩍을 때는 승낙하는 것보다는 거절하는 게 아무래도 나아 보였다.
“괜찮습니다. 고작, 맞장구를 쳐준 거 뿐인데요. 그리고 별로 배고프지도 않습니다.”
꼬르륵-
그 순간.
-배에 거지라도 들었냐? 그것도 못 참아?
‘젠장! 하필이면 이때..’
나는 얼굴이 붉어졌고, 시온은 웃음을 삼켰다.
내가 무안하지 않게 웃음을 참고 있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냥, 편하게 웃으세요.”
“그럼, 사양하지 않고.”
시온이 웃음을 터뜨리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허기가 지신 거 같으니, 이만 가보실까요.”
다 웃었는지 시온이 물어보자 나는 감았던 눈을 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간다고 할 걸.’
괜히, 거절하려 했다가 우스운 꼴만 보여주고 말았다.
*
“부단장님. 고생 많으십니다.”
“고맙네. 자네도 고생 좀 더 해주게.”
시온이 병사들의 인사를 받아주면서 안내를 하자 나는 차마 볼 낯이 없어 입을 굳게 다문 채 조용히 따라가기만 했다.
생각할수록 얼굴이 화끈화끈했다.
-너 때문에 체면이고, 뭐고 다 떨어진다. 떨어져.
“고맙습니다. 제 체면을 세워주셔서.”
천마의 핀잔이 이어졌지만, 나는 시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체면이라니요?”
“데미안님을 못 데려갔으면 사람들이 놀렸을 겁니다.”
“..그런 이유가 있으셨다면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죠. 그럼, 단번에 갔을 텐데요.”
“그러면 등 떠밀려서 간 거나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인성이 괜찮네.
‘그러게..’
누구는 뒤통수 치기 바쁜데 누구는 순박할 정도로 배려심이 깊었다.
-그거 혹시...날 말하는 거 아니지..?
‘기분 탓이야. 왜 혼자서 찔리고 그래?’
-암만 봐도 날 겨냥한 거 같은데...
“절 기다리는 사람이 많나 보네요.”
내가 묻자 시온은 알려줬다.
“한, 10명 정도 있을 겁니다.”
“그럼, 서두를까요?”
-야! 갑자기 말은 왜 돌리냐? 나 맞지?!
‘아니라고.’
-아니기는 개뿔! 갑자기 말 바꾸고, 화제전환을 하는 거 보면. 맞는데!!!
“그럼, 사양 않고, 걷는 속도 좀 높이겠습니다.”
“좋습니다! 편하신 대로 하시죠.”
시온의 제안을 단번에 수락하고, 나는 시온의 보폭을 열심히 따라갔다.
애송이가 자꾸만 아닌 척하자 나는 짜증이 솟구쳤다.
‘이 자식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었다.
그 말대로 애송이는 현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느낌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아무리 봐도 수상쩍어.'
*
“외지인에게 연회를 베푸시다니.”
“역시, 레베카 님은 마음이 넓어서 탈이야.”
“누군지 몰라도 레베카 님과 겸상을 하다니.”
“듣기로는 그 친구 검 솜씨도 신기에 가깝다고 하던데?”
“하긴, 병사들 사이에서 그런 소문이 돌고 있기는 했어.”
기사들이 개인 좌석에 앉아 포도주를 들이키면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지만, 상석에 앉아있던 레베카는 팔을 올리고 검지로 팔걸이를 툭툭 치면서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데리고 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지?’
그러다
멈칫-
레베카가 손가락을 멈추고, 입꼬리를 올리자.
‘드디어 왔네.’
각 자리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던 기사들도 웃었다.
‘저렇게 자주 웃어주시면 좋겠는데..’
‘마음 같아서는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데.’
‘시간 날 때, 한 번 대시해볼까?’
어떤 기사는 음흉한 눈길로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용모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붉은 장미를 연상케 할 정도로, 붉은 머리카락과 굴곡진 몸매, 햇빛에 살짝 그을려진 피부로 인해 건강미도 넘쳤다.
그런 이유로 초장기 홍염의 기사단이 창설 될 당시, 실력보다는 그녀의 빼어난 용모 때문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유명세가 급속도록 퍼지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매년 수많은 장병들이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만큼, 그녀의 용모는 수많은 장병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정도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펄럭-
천막을 올리고, 초대 받은 손님과 시온이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 기사들은 관심을 가졌다.
‘뭐야? 외눈박이였어?’
‘저런 꼴로 검을 잘 다룬다고?’
‘역시, 허황된 소문이었어.’
초대 받고 왔는데 사람들이 뚫어지게 쳐다보자 나는 생각이 달라졌다.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
음식을 먹다가 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온, 거기서 멀뚱히 서서 뭐해? 자리 어서 안내해드리지 않고?”
그 적막함을 깬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알겠습니다.”
시온이 움직이자 나도 따라갔다.
양측으로 앉아있는 기사들 때문에 내 얼굴은 뜨거웠다.
지나갈 때마다 기사들은 따가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잘못 한 것도 아닌데. 등장부터 죄인 마냥 쳐다봤다.
-하나같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네.
“여기 앉으시죠.”
시온이 자리를 알려주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자리가 하필이면 그녀의 코앞이었다.
한 눈에 봐도 자리가 매우 부담스러웠다.
“그냥, 저는 여기에 앉겠습니다.”
“그러고 싶으시다면...”
“제 앞에 앉기 싫으신가요?”
그녀가 직설적으로 물어보자 나는 황급히 시온이 제안한 자리에 앉았다.
거절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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