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칼날
슝-
한 녀석이 석궁을 쏘자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동전 하나를 줍고 비수(匕首)처럼 던졌다.
팅!
화살촉과 금화가 부딪치는 순간, 아주 깔끔한 소리가 작렬했다.
싱긋 웃고 나는 또 다시 바닥에서 동전 하나를 줍고 또 날렸다.
휘리리리릭-
회전하면서 날라 가던 금화가 녀석의 손등과 부딪치는 순간.
“윽!”
녀석의 찌푸림과 함께 재장전하고 있던 화살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녀석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과 동시에 격차를 순식간에 좁히고 검을 휘둘렀다.
서걱-
검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붉은 핏물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나는 허리를 뒤로 젖혔다.
“쉴 틈을 안 주네.”
슝-
눈앞에서 화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누가 방아쇠를 당긴 건지는 몰라도 녀석이 쓰러지고 있는 그 타이밍을 노리고 화살을 쐈다.
그야말로, 영악한 움직임이었다.
이렇듯, 녀석들이 틈만 나면 내 목숨을 노리자 나도 적당히 할 수가 없었다.
‘죽지 않으려면 죽이는 수밖에 없어.’
-잘 알고 있네.
일촉즉발의 상황을 가까스로 회피하고 나는 허리를 곧바로 세웠다.
그런데.
“...!?”
이번에는 화살이 한 개가 아니라 다발로 날라 오자 나는 눈앞에 있던 탁자를 발로 차서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푹! 푹! 푹! 푹!
석궁이 이번에도 통하지 않자 방아쇠를 당겼던 그들은 인상을 연신 찌푸렸다.
“젠장!”
“목숨 한 번 더럽게 질기네.”
“제발, 좀 죽어라! 이 XX끼야!!!”
“그건 내가 할 소리 같은데?!.”
그 말과 함께 나는 검으로 탁자를 산산조각 내면서 녀석들을 향해 튀어나갔다.
".....!?"
내가 아무렇지 않게 탁자를 조각 내고 달려오자 석궁을 날렸던 그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정말, 말이 안 됐다.
격차를 순식간에 좁힌 나는 녀석들이 대응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벴다.
솨악- 솨악- 서걱- 서걱-
검을 무아지경으로 휘둘렀다.
푸하아아아아악-!!!
피분수가 계속해서 솟구치자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자극 시키는구나.
내가 죽지 않자 녀석들은 치를 떨었다.
“피 냄새가 진동하네.”
“저 녀석 손에 얼마나 죽은 거야?! 대체...”
녀석 때문에 피가 마를 새가 없었다.
그야말로, 피를 뒤집어쓴 악마였다.
녀석의 몸에서 비릿한 혈향(血香)이 끊임없이 풍겨졌다.
그게 맞는지.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아주 피를 뒤집어쓴 괴물이네.”
“나와! 이것들아! 고작, 한 명 갖고 떼거리로 덤비고도 못 죽인다는 게 말이 돼?”
“너희들 이번 일만 끝내고 보자!”
기존에 있던 녀석들이 합죽이가 된 거 마냥 아무 말도 못했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욱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저 녀석들은?’
-아는 놈들이야?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보면 볼수록, 녀석들의 이목구비가 그때 그 기억이랑 똑같았다.
‘이 녀석들이 왜 여기에...?’
나이가 들었지만, 틀림없이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말을 잘도 걸었다.
“손님! 검 좀 쓴다고, 너무 나대시네.”
“당신 때문에 손해가 얼마나 막심한 줄 알아?!”
“적자야! 적자~”
“끼친 피해를 보상하던가, 아니면 목숨을 내놓던가, 좋은 말로 할 때 결정해!”
-같잖은 것들이 감히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다니.
천마처럼 나도 불쾌했다.
“여전하네. 지 잘난 맛에 사는 거..”
“뭔 개소리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얘들아! 덮치자.”
“칼 좀 쓴다고, 되게 유세떠네.”
“우리가 덤비면 너 같은 놈은 한 주먹거리도 아니야.”
녀석들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지만 나는 오히려,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씨익-
내가 웃자 녀석들은 불쾌한지, 흉흉한 기세를 내비쳤다.
“저 자식이! 지금 웃음이 나와?”
“제정신이 아닌 녀석이네.”
“아무래도 안 되겠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걸 알려주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웃으면서 바로 맞받아쳤다.
서걱- 서걱-
내가 막, 달려들고 있던 녀석들을 순식간에 죽이자 녀석들도 그제야,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경각심을 가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봤어?”
“아니, 너무 빨라서 못 봤어.”
바닥에 쓰러진 녀석들을 봤을 때는 분명, 가슴팍에 사선으로 된 상처가 있었다. 붉은 핏물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 상처로 봐서는 검으로 베인 게 맞았다.
틀림없이 자상(刺傷)이었다.
그런데.
‘진짜로..검으로 죽인 게 맞아?’
의구심이 들 정도로 녀석의 손속은 너무나도 빠르고, 잔혹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였다.
녀석들이 첫 등장과는 다르게 주춤거리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뭐야? 거들먹거리면서 오더니 고작, 그게 끝이야. 그럼, 심심풀이 수준도 안 되겠는데?”
“저 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는 거 봐라!!!”
“입 조심해라! 진짜, 뒈지고 싶지 않으면.”
녀석들이 서슬 퍼런 안광을 비추면서 막 달려드려는 움직임을 취했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녀석들만 보면 사무친 원한을 잊을 수가 없었다. 분노만 타오를 뿐이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주 날을 제대로 잡았네.
천마가 말하지 않아도 애초부터 그럴 셈이었다.
'내가 이 날 만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마침내, 갈고 갈았던 복수의 칼날을 꺼낼 때가 왔다.
녀석들을 본 순간, 나는 ‘복수(復讐)’라는 단, 하나의 단어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원한이 사무쳤다.
‘저 녀석들 손에 죽은 사람들만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고된 노동을 쉬지 못하게 막 굴리는 악마 같은 녀석들.
사람들을 가죽처럼 취급하는 녀석들.
노인이든, 어린애든 봐주지 않고 채찍질 하던 녀석들.
다양한 수식어가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들이었다.
“죽어! 이 XX새X야!”
한 녀석을 시작으로 녀석들이 또 달려들자 나도 질세라 달려갔다.
타다다다다다다닷-!!!
선두를 달려오던 녀석이 도끼를 휘두르자 나는 싱긋 웃었다.
마나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인성 뿐만 아니라 실력도 형편없네. 버러지 같은 녀석들.
마나로 도끼를 감싸면 이길 줄 아는 모양이었다.
녀석들은 무언가를 착각해도, 단단히 착각했다.
서걱-
애송이가 검으로 매끈하게 잘라버리자 녀석의 태도도 확연히 달라졌다.
“말도 안 돼!”
-버젓이 보고도 말이 안 된다고 하다니.
그 말과 동시에 애송이는 녀석의 왼쪽 가슴에 검을 찔렀다.
푸욱-!
살점을 꿰뚫었지만, 애송이는 확실하게 죽일 모양인지, 그것도 아니면 앙금이 깊은 모양인지.
콰직-
검을 한 번 더 비틀고, 녀석의 복부를 발로 찼다.
푸하아아아아아악-
피분수가 위로 솟구쳤지만, 애송이는 살인귀(殺人鬼)마냥, 붉은 핏물을 뒤집어쓰면서 녀석들을 향해 달려갔다.
반면에, 애송이가 발로 찬 녀석 때문에 녀석들은 곤욕인 모양이었다.
“젠장!”
“얼른 치워!”
죽인 녀석의 몸에 깔려 바닥에서 낑낑거렸다.
녀석들이 죽은 시체를 치우는 사이, 애송이는 검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서걱-
어깨를 베인 녀석은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내지르기 위해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푹!
그 소리조차 듣기 싫은지 애송이가 한 번 더 검을 휘둘러 확실하게 죽이자 녀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여태 죽은 녀석들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그 녀석을 시작으로 애송이의 살육(殺戮)이 1차전을 넘어 2차전으로 돌입했다.
솨악- 솨악-
등에 눈이라도 달렸는지 녀석이 몸을 휙휙 돌면서 막아내고, 검을 휘두르자 우리들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머릿속에서 경고성이 마구 울렸다.
위험하다고, 감당할 수 없다고 위험 신호를 마구 보냈다.
“괴물이 따로 없네.”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그도 부하들이 속절없이 죽고 있자 혀를 내둘렀다.
저런 녀석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아리송했다.
반면에, 나는 입 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녀석들 속에서 멀찍이 떨어진 한 남성을 보는 순간, 나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없었으면 아쉬울 뻔했는데 녀석도 이곳에 있었다.
노예처럼 우리를 막 굴렸던 짐승도 여기에 있었다.
-아무래도 저 녀석이 배후인 거 같다.
“오히려, 잘 됐네.”
저 자식이 배후라면 찾을 수고를 덜어도 됐고, 눈앞의 녀석들처럼 저 녀석도 어차피 죽일 셈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저 녀석은 ‘악마’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악독하고, 악랄한 녀석이었다.
저 녀석의 채찍질에서 죽어간 사람만 해도 어림잡아 몇 백 명은 넘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탄’이라는 별칭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지 녀석은 날마다 사람을 때려 죽였다.
그런 녀석에게 복수할 날이 오자 나는 살아남은 보람을 느꼈다.
서걱- 서걱-
'아르키아'를 죽이기 위해 나는 녀석들을 뚫었다.
내 길을 막는 자는 누굴 막론하고 적(敵)이었다.
그래서
서걱-!
녀석들을 가차 없이 죽였다.
팔을 베고.
콰직-
목을 베고.
서걱-
검을 베고.
솨악-
도끼를 베고, 검(劍)에 닿는 족족, 모든 걸 벴다.
“.....!?”
왠지 모르겠지만, 녀석의 목표물이 자신인 거 같아 아르키아는 소리쳤다.
“야! 이 미X놈들아! 구경만 하고 있을 거야. 안 막고 뭐해!!!”
“.....”
하지만 겁을 잔뜩 먹었는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아르키아도 할 수 없이 본보기를 삼았다.
서걱-
들고 있던 검으로 한 녀석을 죽이자, 녀석들은 순식간에 경직됐다.
“왜...?”
“말도 안 돼!”
“장난이지?”
“내 손에 죽기 싫으면 죽기로 살기로 싸워! 이 버러지 같은 XX들아!!”
아르키아가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보여주자 녀석들은 두려운 눈길을 가지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 장면 만으로 눈앞의 녀석들이 그동안 어떻게 당해왔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그건 바로, ‘공포’였다.
거역할 수 없게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이용했다.
반항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삶의 애착을 자극시켰다.
-사탄보다는 ‘백정’이 어울리는 녀석이네.
사탄보다는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보는 도살자(屠殺者)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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