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굴!!!
'루'의 신전에서 누군가가 고품격스러운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이건...?!”
따스한 햇살이 드는 여신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던 성녀(聖女)는 눈을 번뜩였다.
몇 백 년이 지나도록 조용하기만 했던 빛의 신, 루께서 계시(啓示)를 내리셨다.
하지만 계시가 얼토당토 없었다.
“진정, 이게 루의 계시인가요?”
여신상을 보고 외쳐봤지만, 부질없는 공허한 외침이었다.
그게 끝인 듯, 어떠한 대답도 내려오지 않았다.
“파멸의 시대가 도래 하고 만다니...”
성녀(聖女)는 물끄러미 여신상을 바라봤다.
*
“데미안, 이 자식! 어디 간 거야?!”
“애송이 때문에 이게 뭔 개고생이야?”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빌어먹을 새끼! 감히, 도망치다니.”
“아주 싹수가 노란 녀석이야. 잡히기만 해봐라. 아주 곤죽을 만들어버리고 만다.”
두꺼운 털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맨 채 그들은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걸으면서 신경질을 잔뜩 부렸다.
“날씨만 좋았어도 기분이 개떡 같지는 않았을 텐데.”
탈출한 애송이를 잡아야 하는데 눈보라가 몰아치자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았다.
또한, 춥고, 배고프고, 너무 힘들었다.
푹푹 빠지는 눈밭을 걸을 때마다 평소보다 힘이 몇 배로 소모됐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까지 온 마당에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눈보라 속을 계속해서 뚫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꼬맹이, 그 자식을 꼭 잡아야 해! 놓쳤다가는 무슨 경을 칠지 몰라.”
“하긴, 아르키아 대장님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녀석이 설령, 죽었더라고 죽은 시체를 봐야 직성이 풀릴 걸?”
“워낙, 의심이 많은 분이긴 하지.”
*
“허억...허억...”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면서 어린 소년, 데미안은 눈보라 속을 오직, 앞만 보고 도망쳤다.
발바닥이 따갑고, 감각이 없었지만 맨발로 계속해서 달렸다.
“잡히면 그 순간, 바로 죽은 목숨이야.”
그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나는 눈보라 속을 계속 뚫으면서 더욱 깊이 들어갔다.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힘이 닿는 데까지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춥고, 배고파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목이 마르면 주변에 널려있는 눈으로 갈증을 해소했다.
“더럽게 차갑네.”
눈을 삼키는 순간,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지만 살기 위해 꾹 참고 먹었다.
정신이라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런데.
“.....!?”
한 눈덩이를 밟는 순간, 나는 그 밑으로 푹 꺼졌다.
그 구덩이를 피할 틈도 없이 얼음 굴 속을 데굴데굴 굴렀다.
구를 때마다 온 몸이 아프고, 아팠다.
고통이 끊임없이 몰아쳤다.
얼음과 부딪칠 때마다 차가운 감촉이 피부를 뜯어내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죽는다고?’
힘들게 도망쳤는데, 눈앞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철푸덕-
낭떠러지도 결국, 끝은 있는지 멈추고 말았다.
하지만 온 몸이 너무 나도 아팠다.
“윽! 온 몸이 부서진 것만 같아.”
아직 충격 속에서 몸이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여기 있다!”
“알았어! 거기로 갈게.”
녀석의 흔적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그들은 한 동료가 녀석의 흔적을 발견한 거 같아, 그곳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을 가보니, 눈 밭에 길게 늘어진 녀석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역시, 꼬맹이는 꼬맹이였다.
어른의 보폭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춥고, 배고픈 지역이라도 역시, 추격하기는 쉽네.”
“그러게. 발자국이 다 찍혀 있잖아.”
“발자국이 아주 다 까졌네. 까졌어. 맨발로 여기까지 용케 달려오다니.”
“얼른 잡고 돌아가서 몸이나 녹이자. 추워 죽겠다.”
“그래, 이 녀석 때문에 이게 뭔, 개 고생이야?”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 꽃이 가득 폈다.
피 묻은 발자국을 이제 따라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역시, 꼬맹이 답게 어른의 보폭을 따돌리기란 희박했다.
“금방, 격차가 좁혀지겠네.”
“정신 교육 좀 다시 들어가야겠어.”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그들은 너도나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눈앞에서 얼른 끝내고 오라는 듯이 모닥불이 아른거렸다.
*
얼음 굴을 굴렀던 나는 끝에 도달하자마자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봤다.
다행스럽게도 감각이 아직 살아있었다.
온 몸에 피 멍이 들었지만 나는 고통을 인내하면서 얼음 바닥을 손으로 짚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여기서 이렇게 노닥거릴 틈이 없어.’
지금 즈음이면 녀석들과의 거리가 많이 따라잡혔을 게 분명했다.
힘들게 몸을 일으킨 나는 제일 먼저, 주변을 둘러봤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저게 뭐지...?”
눈앞에 거대한 석문이 있었다.
그걸 보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 말도 안 되는 규모는 대체 뭘까?”
의문투성이였다.
하지만 곧바로, 현실을 지각했다.
구경할 때가 아니었다.
“우선, 저 석문으로 들어가 보자.”
빠져나갈 출구가 있을지도 몰랐다.
다리를 쩔뚝거리면서 힘들게 도착한 나는 도착하자마자 석문을 힘차게 밀었다.
그런데.
“안 밀리네.”
엄청난 추위 때문에 석문도 얼었는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었다.
문을 열기 위해 힘을 최대한 짜냈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했을까?
드르르르르르륵-
석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안 열리면 어쩌나 했는데...”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나기 시작하자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문 틈 사이로 점차 드러나는 내부를 볼 때마다 희망을 가져야 하는지, 버려야 하는지 정확한 판단이 서질 않았다.
화르륵- 화르륵-
기둥마다 횃불이 설치되어 있자 온기가 있어서 좋긴 좋았지만 분위기가 한눈에 봐도 섬뜩했다.
“이걸 들어가야 해, 말아야 해.”
“이 자식! 여기 밑으로 떨어진 거 같은데?”
“진짜, 가지가지 한다.”
추격대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민할 새도 없이 나는 그곳으로 곧장 들어갔다.
내부가 섬뜩하더라도 우선, 출구를 찾고 봐야 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나가는 길이 있는지 찾았다.
그런데.
“이건 뭐지?”
바닥에 이상한 문양들이 빙 둘러져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벽면에는 화려하고, 이상한 문자들도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
그 문양들이 찬란한 휘광을 내뿜기 시작하더니 내 눈을 멀게 만들었다.
“윽! 뭐야!!!”
그곳에서 빠져나올 틈도 없이 나는 그 휘광에 휩싸였다.
*
데미안이 남긴 흔적을 따라 이동하던 그들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구덩이에서 데미안의 발자국이 뚝 끊겨있자 녀석이 얼음 굴에 떨어져서 죽었더라도 시체를 회수하기 위해 신경질을 부리면서 부랴부랴 움직였다.
스르륵- 스르륵-
밧줄을 이용해서 기사들은 기어코 얼음 동굴로 내려왔다.
하나 둘씩, 밧줄을 잡고 얼음 동굴을 내려오면서 안전하게 착지 했다.
그런데 그들도 데미안처럼 얼음 동굴 내부를 보자마자 감탄했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여기는 뭐 하는 곳일까?”
“저기에 석문이 열려있는데?”
“쥐새끼 같은 자식. 아무래도 저 곳으로 들어간 거 같은데?”
“그러게?! 어서 들어 가보자!”
그들도 데미안처럼 석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가서 내부를 둘러보는 순간,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뭐야...”
“유적을 발견한 거 같은데?”
“우리, 떼 부자 되는 거 아니야?”
“상태가 양호해.”
“아르키아 대장님이 아시면 아주 기절초풍하시겠어.”
그들은 이곳에 온 목적을 잠시 잊은 듯, 주변을 둘러보는데 정신이 없었다.
‘한 눈에 봐도 몇 백 년이 된 유적지 같은데?’
“녀석을 찾다가 완전 땡 잡았는데.”
“그러게. 마법진도 그려져 있어. 무슨 마법진일까?”
“벽에 적혀 있는 룬 문자들도 온통 처음 보는 문자들이야.”
“근데...녀석은 어디 간 거지?”
한 동료가 의문을 던지기 무섭게 여기까지 온 목적을 다시 상기했다.
다급히 녀석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마법진에 핏자국이 찍혀있긴 한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
“다른 출구도 없는 거 같고.”
그 순간.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륵-
석문이 닫히고 있자 그들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뭐가 됐든 얼른 모이자.”
그들은 가운데로 순식간에 집결하면서 검을 재빨리 뽑았다.
그런데 놀랄 만한 게 아직 더 남아있는 듯.
화르륵- 화르륵-
이번에는 왠지 모를 돌풍이 불더니 기둥에 있던 횃불 몇 개가 순식간에 꺼졌다.
그로 인해 분위기가 한층 더 섬뜩했다.
한순간에 온 사방이 어둠으로 잠기자 그들은 숨을 죽였다.
“데미안, 순순히 나오면 봐준다.”
“얼른 나오지 못해!”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이런 걸로 우리가 겁먹을 줄 알아?!”
“좋게 말할 때. 그냥, 순순히 포기하고 이만 나와라~”
그 순간.
저벅저벅-
어둠 속에서 의문의 발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그 방향으로 고개를 재빨리 돌렸다.
가뜩이나, 무서워 죽겠는데 발걸음마저 삭막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야...’
‘녀석인가?’
그들은 숨죽이면서 어둠 속에 점차 등장하고 있는 실루엣을 주의 깊게 봤다.
붉은 눈동자가 점차 다가오고 있었는데...다행히 몬스터가 아니라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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