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vs 마도 공국(1)
“응?”
-저게 뭐지?
탑 꼭대기에서 아슬아슬한 자태로 병력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성벽들이 위웅- 위웅- 소리를 내면서 서로 공명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뭐야?”
-글쎄 말이다.
여기는 생전 처음 보는 거들 뿐이라서 지식이 현저히 부족했다.
그래서 애송이에게 자신감 있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냥, 구경꾼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저기 강대한 기운이 요동치는데?!
천마의 말대로 마도 공국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정중앙의 건물, 성벽의 높이보다 훨씬 큰 마탑, 꼭대기 탑첨(塔尖)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강대한 마력이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그러자
‘.....!?’
숙소 의자에 앉아 독서를 즐기고 있던 이안도 창가에 비친 현상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생전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고 있던 여행객도, 침대에서 겁을 먹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떨고 있던 한 여인도 그 현상을 보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게 뭐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모두의 관심사 속에서 나도 상황을 열심히 주시했다.
그런데.
“와아~ 말도 안 돼!”
공명 하던 성벽도 갑자기 강대한 마력을 위로 내뿜더니 방어막을 생성하면서 점차 가운데로 집결했다.
돔 모양처럼 모양을 갖춰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경악했다.
“미친! 마도 공국이 이 정도였어?”
“기술이 이 정도일 줄이야..”
“진짜,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니라 오히려, 소문이 약한 편이었잖아?”
-사람들이 괜히,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그러게. 보기만 해도 든든해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감탄을 자아내기 바빴다.
이안도 건물 위로 투명한 막이 처져있자 입 꼬리를 올렸다.
“역시, 비장의 수가 있었네.”
역시, 만만히 볼 곳이 아니었다.
비록, 영토는 작아도 기술 만큼은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니. 그야말로, 비교 불가. 그 자체였다.
여태껏 상단을 이끌고 수많은 곳을 돌아 다녀봤지만 이렇게 까지 발전된 곳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제국 쪽에서는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기대되는데.”
묘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
“이건 명백히 거절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거대한 장막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자 비반은 실소가 터졌다.
생전 처음 보는 기술에 넋이 나갈 만도 하지만 비반이 가볍게 웃어 넘기자 부단장은 소름이 돋았다.
‘이제 어쩌실 요량이시지?’
그들의 행동은 명백히 거절이었다.
자국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방어막을 설치했다.
그들의 태도에 다른 기사들 사이에서도 소동이 일었다.
“저런 기술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
“우리가 저 성을 함락 시킬 수 있을까?”
“도저히 덤빌 엄두가 나지 않은데.”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녀석도 있었고, 전의(戰意)가 불타오르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제국의 힘을 우습게 보다가 큰 코 다칠 텐데.”
“어리석은 선택을 하다니.”
“거절한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고 말 테다. 마도사 녀석들!”
시작부터 뭔가가 어긋나기 시작하자 부단장은 마음이 불안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돼.’
한마음, 한 뜻으로 모아도 성공할까, 말까 인데. 마음이 서로 동 떨어져 있자 걱정이 슬며시 들었다.
반면에.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이거 일이 재밌어졌는데?!”
이 사태를 직면하고도 비반이 웃음을 잃지 않자 불안감이 약간이나마 해소됐다.
‘자신감에 비롯된 말인지, 자만심에 비롯된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부단장.”
“네, 부르셨습니까.”
“지금, 당장 집결시켜.”
“예?”
“두말하게 하지 마!”
비반이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자 부단장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병력들을 모으기 위해 움직였다.
‘눈빛이 어쩜 저럴 수가 있지?’
눈빛 만으로 사람을 죽일 기세였다.
방금 전, 눈빛을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
“공격할 모양인가 본데?”
-역시, 제국인가?
제국 역시, 신(新)문물을 가지고 왔다.
기사들이 바퀴를 밀면서 그 물체를 성벽 외곽으로 하나씩 하나씩 포진시켰다.
얼핏, 보기에는 대포 같은데.
“발사!”
비반의 명령에 맞춰 기수가 깃발을 흔들자
퍼엉! 퍼엉! 퍼엉! 퍼엉!
거대한 ‘마력탄’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면서 방어막을 가격했다.
그것도 360도로. 동서남북 가릴 거 없이 포탄을 쏟아 부었다.
콰앙! 쾅! 쾅! 쾅!
마력탄이 터질 때마다 폭발음이 요동쳤다.
전쟁이 진짜로 벌어지자.
“까아아아아악!”
성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남녀노소(男女老少)할 거 없이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진짜, 전쟁이 일어난 거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길 승산이 정말로 있는 걸까...”
마력탄이 계속해서 방어막을 가격하고 있자, 모두가 불안한 눈빛으로 그 장면을 지켜봤다.
방어막이 언제 동안 지속될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근심을 쉽사리 지울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면 시간 싸움이겠는데?’
-네 말대로 장기전이 될 거 같다.
물자가 먼저 떨어지는 쪽이 지는 싸움 같았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시간 싸움이었다.
-아무래도 좀 더 지켜봐야 할 거 같다.
마음을 차분히 먹고 나는 탑 꼭대기에서 싸움의 양상을 침착하게 바라봤다.
*
보글보글.
삼각 플라스크 안에 담긴 보라색 용액이 끓고 있음에도 홀트는 책상 위에 있는 수정 구슬에 눈을 한시도 떼지 못했다.
“역시, 제국은 제국이라는 건가?”
저력이 만만치 않았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대포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것도 마정석으로 위력을 한껏 더욱 높인 대포였다.
그 대포로 방어막의 힘을 계속해서 깎고 있었다.
‘결국, 시작되고 말았군.’
앞으로 어떤 식으로 양상이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그 시각.
“당분간, 마정석 값어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겠군.”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이안은 독서를 즐겼다.
바깥이 한창 시끄러워도 이안은 여유로웠다.
찻잔을 탁자에 놓고, 종이를 넘기면서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역시.’
방해되지 않게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로버트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감정 동요보다는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그야말로, 평정심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늘이 어두워져도 대포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력탄을 하염없이 퍼부었다.
쾅! 콰앙! 쾅! 콰앙!
마력탄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불안감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퍼부을 셈이야?”
“미친놈들!”
“아예, 잠을 못 자게 하려는 수작이네.”
벌써부터 정신이 피폐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방어막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정신 소모가 엄청났다.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장난 아니겠지.
차라리, 지금 미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이 상황이 언제까지 더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보다 약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게.
‘더 몰려들었네.’
선발대 뿐만 아니라 후발대도 도착했는지, 어둠 속에서 횃불이 수없이 돌아다녔다.
“데미안, 하루 종일 굶을 셈이야? 내려와서 밥 먹어. 그만 망보고.”
탑 아래에서 이안이 큰 소리로 부르고 있자 나는 이만 보기로 하고, 탑 아래로 점프했다.
툭 튀어나온 벽돌을 밟고, 지붕도 밟으면서 차근차근 내려갔다.
탁-! 탁-! 탁-! 탁-!
내가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와 착지 하자 이안은 턱 짓으로 숙소를 가리켰다.
“얼른 가자. 밥이라도 먹어야 싸울 힘이라도 생기지.”
-누구와 다르게 아주 뚝 부러지네.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더니.”
“그래도 밥은 든든하게 먹어야지.”
이안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앞장서자 얼른 따라붙었다.
“야! 같이 가!”
“그럼, 얼른 따라와. 배고파 죽겠으니까.”
그 말에 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
“기다려라.”
비반은 꺼지지 않는 불꽃 축제를 보면서 결심을 굳혔다.
그동안 녀석에게서 복수하기 위해 이를 갈고, 칼을 갈았다.
물구나무서서 하루에 운동장 100바퀴 돌기.
흔들림을 없는 평정심을 기르기 위해서 명상하기. 등등.
그동안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복수심(復讐心) 하나 만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버텨왔다.
'어떻게 보면,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녀석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검성(劍聖)이 건넨 주소지로 가보니.
무려, 제국에서 신궁(神弓)이라고 불리는 분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람들이 발길이 미치지 않는 미지의 숲 속을 손으로 헤치면서 뚫고 가다 보니, 검성이 알려준 대로 한 동굴이 보였고, 그 곳에서 그 분과의 인연이 첫 시작됐다.
그 분은 나를 흔쾌히 알려줬다.
“진짜, 흔치 않은 기회였어.”
그래서 그토록 하기 싫었던 단체 생활도 하면서 새롭게 기사단을 창설하고, 황제폐하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얻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 손으로 직접 처단하고 싶은데.”
황제 폐하는 이번 기회로 야심을 드러낼 속셈인지, 마도 공국이 순순히 협조하지 않으면 아주 박살을 내버리는 특명까지 따로 내린 상황이었다.
아니, 마도 공국이 무조건 반대할 거라고 이미 짐작하신 거 같았다.
이 정도의 병력을 아무 거리낌 없이 차출 할 정도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폐하의 의중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거리낄 게 없으니까. 이제부터는 철저히 부서트리는 일만 남았네.”
그들이 기회를 버린 마당이니, 이제부터 압도적인 힘과 작전으로 굴복 시키는 일만 남았다.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들에게 공포심을 먼저 선사했다.
피로가 누적될수록 내부는 급격히 균열 될 게 분명했고, 그 사이에서 틈이 무조건 발생할 게 틀림없었다.
“어디 한 번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볼까.”
녀석들의 성이 아무리 철옹성이라고 하더라도 함락될 운명이었다.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