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vs 정령
그뿐만 아니라 정령은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
“너 정체가 뭐냐?”
“네?”
정령이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물어봤지만, 나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나를 한 번 더 가리켜보면서 되물어봤다.
“...저 말인가요?”
“아니! 네 몸속에 숨어있는 놈 말이야.”
그 순간, 내 심장 뿐만 아니라 알렉스의 심장도 철렁거렸다.
‘어떻게 알았지?’
‘역시...정령인 건가?’
통찰력이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거의, 신(神)급에 버금가는 역량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되게 재수 없네.’
녀석의 등장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태도와 말투까지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들었다.
에밀리아하고 천마만 유일하게 심드렁하게 반응 할 뿐이었다.
-저 자식이 내가 누군지 알고? 삿대질을 하는 거야? 싸가지 없게.
그러다 곧이어 알게 됐다.
버릇없는 태도는 가볍게 넘겨야 할 수준이라는 걸.
심지어, 녀석은 독불장군이었다.
“너와의 계약은 저 일부터 해결하고 하도록 하지.”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정령이 데미안이 있는 쪽으로 날라 가자 에밀리아는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야! 잠깐만.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는 게 어디 있어?!!”
“잠시만 기다리래도...성격이 되게 급하구나.”
벌떡 일어나서 에밀리아가 뛰어오고 있자 정령은 다시 손을 휘저어서 능력을 사용했다.
그 순간.
우르르콰쾅-!
천둥 번개가 또 한 번 요동쳤다.
쾅! 쾅! 쾅! 쾅!
지상으로 번개 다발이 순식간에 내리치더니 에밀리아가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벼락이 감옥처럼 주의를 둘러싸고 있자 에밀리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야! 얼른 안 풀어!!!”
“거기서 잠시 구경 좀 하고 있어. 빨리 끝내고, 네가 그토록 원하던 계약을 해줄 테니까.”
“뭐...저런 녀석이 다 있지?”
복장이 터질 거 같아 에밀리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대화가 통하는 걸로 봐서는 귀가 있는 거 같았다. 하지만 말이 안 통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그런데 그 상황 속에서도 알렉스는 누구보다 상황 판단이 빨랐다.
“데미안, 얼른 도망치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잔말 말고,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해! 어서!!!”
아저씨가 간곡하게 말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재빨리 돌리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싸움의 소용돌이에서 멀어지기에는 격차가 너무 컸다.
애송이 수준으로 정령을 따돌리기란 무리였다.
그걸 알렉스도 알았는지 정령을 막아 섰다.
“거기까지만 하시죠.”
“지금 내 앞길을 막은 거야?”
정령이 기가 찬 듯이 코웃음을 치자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는...”
말을 마칠 새도 없이 정령이 또 다시 움직이자 알렉스도 다급히 움직이면서 빙검(氷劍)을 순식간에 생성시켰다.
콰지지지지지직-
알렉스가 공기 중에 있던 수분을 순식간에 빙결시키면서 검(劍)을 만들고 진심으로 죽일 기세로 빙검(氷劍)을 휘두르자 정령도 가만히 있지 만은 않았다.
“감히, 엘프 따위가 내 앞길을 막을 생각을 하다니.”
그 말을 하면서 정령이 손을 들고 또 다시 내리자 알렉스도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그도 그럴게.
우르르르콰쾅-!
천둥이 울리더니 상공에서 강렬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
뇌운을 가득 머금은 먹구름이 또 다시 번개를 내뿜었다.
그것도 알렉스 머리 위로 번개가 떨어지고 있자 에밀리아는 소리쳤다.
“아빠! 얼른 피해요!”
“잘 가거라.”
하지만 말대로 상황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만은 않았다.
위기 의식을 느꼈는지 공격을 포기하고 엘프는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공격보다는 수비가 급선무라는 걸 판단했는지, 들고 있던 빙검(氷劍)을 땅 속에 있는 힘껏 내려 찍었다.
그 순간.
쾅! 쾅! 쾅! 쾅!
주위가 순식간에 동결되면서 빙벽이 돔처럼 솟아 오르더니 방어막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대처하자 내심 놀랐다.
“제법이구나. 공격을 멈추지 않고, 수비를 하지 않았다면 너는 벌써 죽었을 건데.”
그야말로, 한 끝 차이였다.
‘엘프’는 가까스로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운인지, 실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공격을 버티고 있다는 게 대단한 거였고,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 지가 관전의 요소이기도 했다.
파지지지직- 파지지지직-
빙벽 안에서 알렉스는 모든 마력을 끌어 모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번개로 인해 자신의 신체가 잿더미로 변해도 이상하질 않은 상황이었다.
천둥 번개를 땅으로 누전 시키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여파를 쉽게 피할 수가 없었다.
지금 온 몸이 찌릿찌릿해서 감각도 이상했다.
감전이 된 거처럼 온 몸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막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힘(力)을 사용했다.
알렉스가 만든 빙벽 위로 번개가 계속해서 내려치고 있자 에밀리아의 마음은 미칠 듯이 타 들어갔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상황이었다.
“제발, 그만해~!!!”
에밀리아가 애타게 불렀지만, 정령은 듣는 채도 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가던 길을 마저 가볼까.”
곧 있으면 검게 그을린 채로 죽을 게 분명했으니, 쫓던 녀석을 다시 쫓기로 했다.
그런데.
“뭐지...? 도망쳐도 모자를 판에 이쪽으로 오다니.”
“당장 그만두지 못해!!!”
내가 달려오면서 말하자 정령은 우스운지 코웃음을 쳤다.
“배짱이 두둑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멍청한 건지 모르겠네.”
내가 정령을 향해 달려가자 천마의 마음도 덩달아 급해졌다.
-애송아~~!!! 네 실력으로는 턱도 없어. 지금 알렉스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알아! 나도! 그 정도쯤은!”
-그래도 죽음을 각오하겠다고?
“너희들끼리 그만 말하고, 나한테 좀 집중해.”
그 순간, 나는 눈을 끔뻑였다.
말도 안 되는 스피드였다.
정령이 순식간에 도달해 있었다.
‘이게 말이 돼?’
-그러니까, 내가 도망치라고 했잖아.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건지...
애송이는 사람 피 말리는 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어쩜, 이렇게 앞뒤가 꽉 막혔는지.’
오래 살고 싶다던 녀석이 힘도 없으면서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와 맞붙을 생각을 했다.
녀석의 일격도 버티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너무 감정적으로 나섰다.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승산이 ‘0’에 가까울 정도로 격차가 너무 심한데도.
하지만 나는 심혈을 기울였다.
“까짓 것 해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 밖에 없었다.
정령이 순식간에 등장하는 것도 모자라 뇌전(雷電)이 뿜어지는 주먹을 휘두르자 나는 다급히 양팔을 ‘ㄴ’자로 만들면서 얼굴을 막았다.
정령의 주먹이 우스울 정도로 매우 작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암만 봐도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했다가는 골로 가기 딱, 좋은 십상이었다.
방어를 하면서 나는 부탁했다.
“잘 부탁해.”
-뭐?!!
내가 말을 뱉은 순간, 천마뿐만 아니라 정령도 깜짝 놀랐는지 눈동자가 커졌다.
“역시!”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예상대로 범상치 않은 녀석이었다.
첫 등장부터 강력한 짙은 마기(魔氣)를 내뿜고 있었다.
“우선, 어느 정도인지 탐색해볼까!”
정령이 휘두른 주먹을 맞자마자 내 몸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그 여파를 다 흡수하지 못하고 육체가 뒤로 날라갔다.
콰지지지지지직- 콰지지지지지직-
뒤로 날라 갈 때마다 수많은 나무들이 부서졌다.
등이 쓰릴 정도로 얼마나 부셔 먹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뇌옥(雷獄)에 갇힌 에밀리아도 그 순간, 눈이 번뜩였다.
“데미안!!!”
데미안이 뒤로 날라 갈 때마다 나무들이 양옆으로 꺾여나가자 마음이 애탔다.
얼마나 강력한지. 양옆의 나무들이 ‘V’자로 쓰러지면서 아주 처참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만큼 정령의 주먹 한 방은 매우 강력했다.
“데미안...죽은 거 아니지..?”
에밀리아는 발을 동동 굴리면서 그 싸움을 초조하게 바라봤다.
반면에, 정령은 데미안이 날라 간 방향을 보면서 씨익 입 꼬리를 올렸다.
“역시, 악마는 악마인 건가?! 목숨 한 번 참, 질기네.”
한참을 뒤로 날라 가던 녀석이 암석과 부딪치고 나서야 멈추더니, 그 돌 무더기 밑으로 녀석이 매장 당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하지만 생체 반응이 확실히 느껴졌다.
녀석은 아직 죽은 게 아니었다.
그게 맞는지.
-기분 참 엿 같네. 바꿔줘도 하필 그 타이밍 때 바꿀 줄이야...
돌 무더기 속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리더니 퍼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돌 무더기가 여기저기 비상하는 것도 모자라 녀석은 엄청난 기백(氣魄)을 내뿜으면서 그곳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터벅터벅-
녀석은 마치 왕좌인 거 마냥, 아주 늠름한 자태를 풍겨냈다.
-애송아. 다음부터는 바꿀 때는 언질 좀 줘. 이게 뭐냐? 모양 빠지게.
‘알았으니까, 얼른 저 녀석이나 어떻게 해줘.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야.’
내 말에 천마는 옷을 털고, 어깨를 돌리면서 정령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걸 아는 녀석이 이런 짓을 벌이다니? 간덩이가 부었다고 해야 할지,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그것보다 얼른...’
“아까부터 나는 안중에도 없나 봐. 그러면 좀 섭섭한데 말이지.”
내 말을 단칼에 잘라 먹자, 천마는 정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애송이 주제에, 감히 누구 안전이라고 발언하는 거지? 나는 너에게 발언권 따윈 준 적 없는 거 같은데?
빠직-
그 순간, 정령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지금...애송이라고 했어? 나보고?”
-그럼, 애송이를 애송이라고 하지! 뭐라고 할까?
“인간의 몸에 기생충 마냥 기생해야만 영위할 수 있는 놈이 나를 애송이 취급하다니...참, 우습기 짝이 없군.”
-내가 지금 우스운 꼴이라도 너 같은 녀석은 이 정도로도 충분해. 그러니까 후배야~!!! 내가 선배로서 그 격차를 절실하게 알려주도록 하마.
‘야! 왜 이렇게 도발하는 거야? 가뜩이나, 우리가 불리한 조건인데.’
내가 불만을 토로하자 천마도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인생의 선배로서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잔말 말고 보기나 하고 있어. 싸움의 진리라는 게 뭔지 알려줄 테니까.’
천마가 자신 있게 말하자 나는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히 염려스러웠다.
제발, 말 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했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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