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port Liarta - 16장 불신과 오해 #03
제 16장 불신과 오해 #03
아란은 오랜만에 검술연습을 했다. 어제까지 집에만 틀어박혀있었더니, 몸이 뻐근한 게 굉장히 나른했다. 간만에 하얀 호수에 올라 검을 휘둘렀다. 이자크노인의 하얀 목검을 휘두르며 '방어검술'을 시전해 보았다. 다행히도, 몸은 검의 궤적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정작 검을 휘두를 때에는 똑바로 자세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근 일 년이 다되어가도록 검술수련에서 손을 놓은 탓인지, 예전같이 날렵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게다가 거기에는 지금 아란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잡념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아란은 요새 고민이 많아져서 걱정이었다. 특히, 공부할 때도 리리스에 대한 것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하기까지 했다. 아란은 리리스만 생각하면 심각해졌다. 요즘 리리스의 태도가 상당히 변했다.
뭘 해도 짜증을 잘 냈고 잘 웃지도 않았다. 뭔가 단단히 화가 난 듯 한데, 그게 뭔지 물어 보려 고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하며 입을 꾹 닫아버렸다. 혹시 루치야가 문제인가 싶어 얼마간 루치야를 보러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리리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대화의 단절.
아란은 답답해진 나머지, 오늘은 리리스를 마녀의 집까지 데려다 줘놓고 목검을 가지고 하얀 호숫가로 가서 실컷 휘둘렀다. 그러고 나니 전보다 훨씬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에야말로 꼭 리리스에게 사과하고 화를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터였다.
'뭐지?'
광장으로 들어서던 아란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리리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금발벽안에 훤칠한 키를 지닌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자세히 본다. 그 금발의 누군가는 아란도 익히 잘 아는 얼굴이었다.
이젠 소년티를 훌쩍 벗어버려 첫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금발벽안의 조각같이 잘생긴 얼굴, 훤칠한 키. 그는 자신의 친우 이얀이었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이얀과 만나는 것까지는…
그러나, 리리스는 활짝 웃고 있었다. 굉장히 즐거워하는 미소. 이상했다. 아란은 자신이 리리스의 그 미소를 본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간 리리스의 그 미소를 보기 힘들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요즘 리리스는 저기압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리리스는 이얀을 보며 그런 극상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리리스, 요즈음 기분 나쁜 게 아니었어? 나한테만, 그런 거야?'
아란은 문득 착잡해진 기분의 자신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얀과 리리스가 나란히 서있으니 정말 아란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커플의 그림이 나오기에 더욱 그랬다. 자신과의 그 괴리감과 오랜만에 본 친우에의 애증. 리리스에 대한 의문. 아란의 마음은 지금 굉장히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때 이얀이 자신 쪽을 돌아보았다. 아란은 자기도 모르게 가까운 건물벽 뒤로 숨었다. 왜 숨어야 하는지 이유는 잘 몰랐다. 하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굉장히 심란해진 아란, 벽너머로 이얀과 리리스를 훔쳐본다.
둘은 굉장히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둘과의 거리가 멀어서인지 대화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둘은 오랜만에 만난사이치고는 너무 친해 보이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지금, 나갈까? 말까?' 아란은 고민했다. 어차피 이얀에게는 따로 만나 사과도 해야 하고, 리리스와의 사이도 미안하게는 됐지만 이얀에게 밝혀야했다. 이얀이 알고 있던 리리스에 관련된 게 착각이었다는 것도 껄끄럽긴 하겠지만 직접 알려줘야 했다.
하지만, 막상 그러자니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당장 면전에 대고 그런 얘기를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예전일의 사과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런 말을 꺼내면 그대로 끝장날 것 같았다. 아란은 이얀과 리리스 쪽을 다시 훔쳐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 분위기가 묘했다. 연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 잘 어울리는 연인사이라고 오해할 만큼….
소년은 왠지 질투심이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그러면 안 되지만, 그런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맘을 정하고 나가려는 찰나, 아란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다시 벽 뒤로 숨었다. 이얀이 갑자기 반지를 꺼내더니, 리리스의 손에 직접 끼워주는 것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리리스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망연스럽게 그 반지를 꼈다. '뭐야?' 아란은 어이가 없었다.
'뭐하는 거야. 리리스. 왜 이얀이 주는 반지를 끼는 건데?'
어째서 이얀이 주는 반지를 끼는 거지? 리리스는 자신의 여자 친구 아니었나? 그런 의문이 아란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방금 그 장면만 놓고 본다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들의 애정표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란은 당혹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떠올라 아란을 괴롭힌다. 혹시 자신과 리리스의 관계가 착각이고, 소문이 났던 리리스와 이얀의 관계가 진짜였나. 아니면, 리리스가 자기 몰래 이얀과 만나고 있었던 건가. 아란은 혼란스러웠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에이, 아니겠지.'
하지만, 마음을 바로잡았다. 일단 아란은 리리스를 믿었다. 저것만 보고 리리스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자신과 사귀는 동안 그 흔한 스캔들도 나지 않았던 리리스다. 그런 리리스를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었다. 아란은 그렇게 애써마음을 다잡는다. 직접 물어봐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아란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얀은 벌써 가고 없었다. 사람들이 가득한 마을광장안에 리리스는 홀로 뚱한 표정을 지은 채 그렇게 서있었다. 비로소 아란 자신이 알고 있던 요즘의 리리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아란은 그제야 미적미적 리리스에게로 걸음을 옮긴다. 그러자, 리리스가 곧 아란을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이쪽으로 온다.
"아란! 늦었잖아. 대체 뭐하다 이렇게 늦은 거야!?"
리리스가 버럭 소리 지른다.
"아, 미, 미안. 리리스. 오는 길에 일이 좀 있어서…."
"하아, 정말이지. 한 40분 정도 늦은 거 알아?"
아란은 리리스의 그 말에 시계를 쳐다본다. 생각보다 많이 늦었다. 리리스가 화내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아란은 리리스의 역정보다는 리리스의 손으로 시선이 갔다. 반지, 아란의 예상대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오팔의 띠로 멋을 낸 상당히 아름다운 반지다. 그리고 그것이 연인의 자리를 상징한다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 아란은 다잡은 마음이 다시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후우, 대체 아란은 언제쯤 돼야 늦지 않을래? 약속은 먼저 해 놓구. 자기가 지각을 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정말 내가 화를 안내려구 해도 안낼 수가 없어."
투덜대는 리리스의 잔소리를 듣고 한쪽귀로 흘린 아란은 홀연히 반지를 눈짓하며 리리스에게 묻는다.
"…웬 거야? 그거?"
"으, 응? 이거? 아, 반지지 뭐…."
"나, 잠깐만 볼 수 있을까?"
아란은 리리스를 한번 떠보았다. 정말 이얀이 준 반지인지 아닌지 알아볼 요량이었다.
"안 돼! 이건 굉장히 '소중한 거'란 말야. 아무리 아란이라도 이건 안 돼!!"
그러나 리리스는 왼손을 뒤로 숨기며 딱 부러지게 거절한다. 그 말에 아란은 충격 받았다.
"……."
'뭐, 소중한 거라구?' 굉장히 소중한 거라는 리리스의 말에 아란은 묻어두었던 의심이 한꺼번에 다시 튀어오르는게 느껴졌다. 남자친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그 소중한 게 대체 뭐란 말인가. 정말 리리스가 이얀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말야. 리리스."
"뭔데?"
"오늘, 이얀 만난 적 있어? 내려…왔다고 들었거든,"
"……."
아란은 진중한 목소리로 묻는다. 아란의 분위기가 무거웠던 탓일까? 리리스는 그 질문에 어느 정도 뜸을 들인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니, 글쎄… 내려왔었어? 이얀?"
"……."
'거짓말….' 리리스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란은 아까 전 리리스가 이얀과 함께 있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거짓말이었다. 그러자, 아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란은 리리스의 저의를 알 수 없었다. 아까 전, 이얀을 대하던 밝은 태도의 리리스와 지금의 퉁명스런 리리스가 아란의 머릿속에서 대비되었다. 그것은 아란이 소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얀이 준 반지와 소녀의 거짓말은 더욱 더 아란의 심경을 긁어놓았다.
"어쨌거나, 가자. 이런 걸로 시간 끌다간 해떨어지겠어."
리리스는 간단하게 그렇게만 말하고는 몸을 돌려 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란은 왠지 리리스의 그런 행동이 무안해서 말을 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착잡한 눈빛으로 소녀의 뒷모습을 본다. 조용히 리리스의 뒤를 따르는 아란의 마음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란과 리리스가 떠나자, 인파속에 섞여서 둘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발에 하얀 코트, 그는 떠난 줄 알았던 이얀이었다. 이얀은 방금까지 둘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이얀의 입가에는 만족할만한 미소가 걸려있다. 이얀에게는 둘의 불화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자신이 당긴 불씨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여겼다. 지금쯤 아란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겠지?
"훗. 아란, 머리 좀 썩혀야 할 거다. 솔직히 리리스는 너한테 너무 과분한 존재거든, 여튼 이 정도 장난질에 얼마나 즐겁게 놀아나는지 구경하고 있으마."
이얀은 아란에게 맺힌 게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란과 리리스, 둘 다 자신을 갖고 놀며 자기의 자존심을 철저하게 짓밟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갚아줄 것도 많았다. 그러는 그는 이미 이성이 반쯤 벗겨진 눈빛을 하고 있었다.
"둘 다 기대하고 있으라고, 날 짓밟고 올라선 것들이 잘되는 꼴은 그냥 봐줄 수 없잖아?"
이얀은 복수심과 질투심에 가득찬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나직한 독백에는 둘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그 내뿜어지는 광기에 가득 담겨있었다. 그렇게 비릿한 미소를 띠고 있던 이얀은 곧, 광장의 많은 인파를 헤치고 광장저편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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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요즘 날씨가 많이 변덕스럽죠? 저도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많이 힘든데요. 여러분들도 조심하시고 건강 챙기세요^^
Karist님께서 멋들어진 글로 추천을 해주셨던데^^ 이런 거 저는 좋아라합니다. 글 쓸 때도 신명이 나구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위에 공지로 세계관 같은 것을 내용에 따라 공개할 예정이니 같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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