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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님의 서재입니다.

라포르리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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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작품등록일 :
2011.07.03 01:44
최근연재일 :
2011.07.03 01:44
연재수 :
2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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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8.04.1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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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La~port Liarta - 11장 베이에트 #02

DUMMY

제 11장 베이에트 #02



"뭐?"

아란이 이얀의 말에 놀라워하자 이얀은 그런 아란이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으며 말을 잇는다. 평소에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다.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네가 밤마다 영주성 도서관에서 헬카이트 공작님께 수업 배우는걸? 그리고, 나한테 그런 건 말도 안 해주고, 그 정도로 신용이 없었냐, 내가!?"

"……."

"난 기다렸다. 네가 나한테 그 비밀을 말해주고, 나도 너처럼 제국최고의 영웅이었다는 헬카이트 공작 밑에서 가르침을 받게 해주는걸…. 그런데, 넌 자기 자신만 생각하면서 들킬까봐 그 사실을 숨겨버렸지!?"

"……."

"그리고, 그 덕분에 아까 그 나한테 개쪽 준 망할 검사!, 그 녀석과도 친해졌잖아 넌. 어떻게, 잘만하면 내가 원하던 훌륭한 스승을 모조리 가질 수 있는 주제에……!!"

이얀이 원하던 것은 훌륭한 스승이었다. 자기한테 가르침을 줄 그런 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헬카이트 공작은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서, 누구와도 가까이 하는 것을 싫어했다.

꼭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었던 이얀은 언젠가부터 아란이 자기가 가르쳐 준 비밀통로로 밤마다 들어와 헬카이트 공작에게 공부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솔직히,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아란이 야속했지만, 언젠가는 자신에게 귀띔이라도 해주어 자기도 헬카이트 공작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아란에 대한 믿음은 결국, 헬카이트 공작이 제도로 가는 걸로 인해 사정없이 깨져버렸다. 그래도 이얀은 묻어두려했다. 하지만, 오늘 하필 아란에게 감정이 격양되는 바람에 그 쌓아두었던 감정이 같이 터져버렸던 것이다.

아란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지금 분위기상 자신이 먼저 이얀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과대신 더 험한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허, 그래서? 평민인 나는 좋은 스승을 가졌으니 가만히 닥치고 있으라는 말이냐!?"

"뭐라구?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오, 그렇지. 검술 천재에다 결점하나 없는 이얀 기가스님이 그 좋은 스승들의 가르침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고충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아, 그러셔? 난 그래 진짜 잘난 놈이라서, 네 녀석의 고충 따윈 모른다. 어쩔래?"

서로를 비이낭거리던 말을 주고받던 두 소년의 싸움은 이제 감정싸움으로 번져버렸다. 이미 둘에게 처음의 '위로'라는 좋은 의도 따윈 날아간 지 오래였다.

"시끄러워! 겉멋 만든 쭉정이 녀석이 할 소리는 아니야!!"

"뭐라구? 이 자식아!?"

아란이 급기야, 이얀에게 시리우스가 했던 말까지 꺼내자, 이얀은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아란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럼 아니냐? 직접 그 배우고 싶어 안달 난 스승에게서 들은 소리잖아!"

"이게, 건방지게! 평민 녀석 주제에 같이 놀아줬더니 한다는 소리가!!"

"뭐야? 이자식이! 너 전부터 마을에서 잘난척 할 때부터 재수 없었어!"

"나도 네 녀석이, 주제에 기사가 되겠다고 찌질거릴때부터 병신 같았어!"

"뭐라구? 이 망할 자식이 진짜!!"

"허, 왜? 한대 쳐보실려구? 그따위 병신 같은 실력으로!?"

이얀과 아란이 서로의 멱살을 잡았다. 급기야는 주먹다짐까지 할 상황까지 되어버렸다. 그때였다.

"그만둬라!!"

두 소년은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봤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헬카이트 공작이었다. 공작은 시퍼렇게 도끼눈을 뜬 채 두 소년을 쏘아보고 있었다.

"무슨짓이냐! 이게!! 영주성에서 싸움질이라니…….!"

공작의 호통에 이얀과 아란은 상대방의 멱살을 쥔 손을 서로 거칠게 놓으면서 물러났다. 이얀이 아란에게만 들리는 조용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운 좋은 줄 알아. 앞으로 네 녀석한테 검술 따위 가르쳐 주나봐라!"

"흥, 필요 없어. 너 따위 녀석에게는 절대로 배우고 싶지 않아!"

"어허! 이것들이!!"

헬카이트 공작의 호통에도 아랑곳 않고 이얀은 아란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거칠게 정원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장내에는 헬카이트 공작과 아란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이얀의 뒷모습을 죽 지켜보고 있던 아란은 이얀이 사라지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흥분이 가라앉자, 말할 수 없는 후회와 상실감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도대체 무슨짓을 한 거냐.'

자기가 저지른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이가 없었다. 소년은 단지 자기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형제 같은 친구와 싸움을 해버렸던 것이다. 황당해서 온몸에 힘이 죽 빠졌다. 잘못한 것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녀석과 자존심싸움을 해버렸다.

평소의 자신답지 않은 처신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란은 그저 망연자실하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란에게 헬카이트 공작이 다가와서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나중에 가서 사과하거라."

아란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아란이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몸짓이었다.

영주의 배려로 칼 부자는 영주성에서 하룻밤을 묵고갈 수 있게 되었다. 헬카이트 공작과 시리우스는 오늘밤은 영주성에서 지낸 후, 내일 새벽 이른 시각에 마차를 타고 출발한다고 했다.

늦은 시각이었다. 아란은 문득 잠에서 깨었다. 깨자마자 오늘 있었던 일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오늘은 너무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가는 하루였다. 솔직히 저녁시간동안 겪은 일을 따지고 보자면 밑도 끝도 없는 충격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영주성 홀에 위치한 괘종시계가 12시를 가리키는 소리가 났다.

-뎅 뎅 뎅

아란은 지금 2층의 객실한구석에 위치한 침대위에 누워있었다. 객실에는 두개의 침대가 놓여있었는데, 한개는 아빠의 침대였고, 한개는 지금 아란이 누워있는 침대였다.

분명 너무 피곤해서 일찍이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간 아란이었으나, 선잠이 들었었는지 자고 있었다는 자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다.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옆의 침대를 본다. 그런데, 아란은 지금쯤 코를 골며 자고 있어야 할 아빠가 침대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다. 아빠의 침대는 잘 정돈되어있는 것이 아직 자러오지 않은 것 같았다. 어디있는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침대서 일어난다. 어째 잠은 안 오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란은 비틀거리며 2층 복도로 나왔다.

-따박 따박

아란이 걷는 소리가 조용한 영주성내에 울렸다. 아란은 기지개를 켠다. -으아 하고나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걷고 있자, 문득 저 너머에서 누군가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란은 조금 궁금해졌다.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얘기를 나누고 있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목소리는 바로 앞 모퉁이너머에서 들려온다. 아란은 조용히 모퉁이를 등지고 서서 조심스레 그 너머를 향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보았다.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란도 익히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녀석에게는 기회조차 줘보지 않을 거라는 말인가."

"네."

"그게, 녀석을 위하는 길이라고?"

"네, 저는 녀석이 아예 이 마을을 떠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냥 저처럼 평범하게 여기서 늙고 평범하게 여기서 소소한 행복들을 만끽하며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단 말입니다."

그들은 아란의 아빠, 알베르트 칼과 헬카이트 공작이었다. 두 사람은 무언가에 대해서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게, 진정으로 그 녀석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나. 이런 온실 같은 환경 속에서 썩어가는것이?"

"아비 된 입장으로써의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아니지, 그건 오히려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까지 못 담그는 격이지, 언제까지 아란이 자네의 품안에서 안주할 것 같나."

아란. 둘은 아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란은 두 사람이 자기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공작과 아빠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평생, 평생 그래도 좋습니다. 차라리 제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아란이 평범하게 이곳에서 살았으면 합니다. 평범한 직업을 갖고 평범한 여자를 아내로 얻어서 죽을 때까지 평범했으면 좋겠습니다."

"자네는 자네아들 마음속조차 모르는구먼."

"아뇨, 알고 있습니다. 아란이 기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도, 그리고 그 녀석이 '베이에트'라는 것도."

아빠의 말에 공작은 꽤나 놀라는 모양이었다.

"음, 아란이 '베이에트'라는 것은 언제부터 알았나?"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전 녀석의 아비입니다. 아란이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안심했지요. 이 녀석은 최소한 피로 얼룩진 더러운 길은 걷지 않겠구나하고…."

"……."

"…왜냐하면, 바로 저도 그 '베이에트'이니까요."

-두둥!

"……!!"

아란은 깜짝 놀랐다. 아빠가 '베이에트'였다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물론, 예전에는 '베이에트'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 저주받은 체질이 아빠 때부터 이어져오던 거였다니, 충격이었다.

"그래서, 아란이 기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별말하지 않았죠. 저도 어렸을 때 그랬었으니까요. 하지만, 베이에트. 이 저주받은 숙명이 앞길을 단단하게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꿈을 이루지는 못했었죠.

아란도 똑같을 겁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니까요. 저 역시 기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만, 덕분에 목숨을 건졌죠. 지금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케도 그 사실을 몇 십년동안이나 숨겨왔군."

"자랑하고 다닐만한 일은 아니니까요."

"여튼, 이곳은 아무래도 위험하다. 너도 아란도, 황제까지 이곳에서 나의 존재를 눈치 챌 정도 까지 왔다면 아무리 기가스 남작이 보호해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네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할 거다."

"차라리 공작각하께서 힘 좀 써주시죠."

"흥, 말이나 못하면, 그런데, 정말 아란을 제도에서 공부시키지 않을 작정이냐. 그 녀석 만한 기재도 드물다. 기사는 힘들어도, 크게는 될 놈이야."

"안된다고 몇 번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이 소소한 행복을 찾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했는지 공작각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개!… 똥고집! 여튼 몸조심해라. 아란 녀석에게도 잘 좀 해주고, 네놈의 아들만이 아니니까, 그리고, 모리아에게도 안부전해주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헤어지는 듯, 발소리가 뚜벅뚜벅, 하나는 커졌고, 하나는 작아졌다. 한 명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빠인 것 같았다.

아란은 다시 허탈해진 몸을 추슬러 계단 층계 쪽으로 내려가 숨었다. 아란이 계단 층계 아래로 몸을 숨기는 것과 동시에 모퉁이에서 아빠가 나타났다. 아란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갔다.

아빠는 방으로 가는 듯, 층계를 지나쳐 저쪽으로 멀어져 갔다. 다시 침울해진 아란. 아무래도 오늘 잠자기는 다 틀린 것 같았다. 아빠가 '베이에트'라는 사실도 사실이었지만, 아빠가 자신이 기사가 되리라는 것에 대해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것 때문이었다.

오히려 아빠가 결사적으로 반대했으면, 아란의 기분은 훨씬 나았으리라. 허나, 반대였다. 아빠는 전혀 반대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왜냐.

'아란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우울해진다. 아란은 허망한 마음을 안고 층계를 내려갔다. 그렇게, 아란이 층계를 따라 1층으로 내려오자, 문득 아란의 귀에 어디선가 누군가의 기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압! 타앗! 흐얏!

그 소리는 다름 아닌 1층 연무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란은 조심스레 연무장으로 나가봤다. 누구지 이 시간에? 누군가가 푸른 달빛아래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달밤에 검술연습 이라니, 의아하게 생각한 아란은 연무장 구석에 숨어서 그 누군가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실루엣으로 보면 머리가 치렁치렁하게 긴 것이 여자 같기도 했다. 허나 웃통을 벗어젖힌 채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아하니 여자는 아니었다. 그 누군가는 아란을 눈치 채지 못한 듯 열심히 검술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의 검술은 일반적인 제국중검술이 아니었다. 아란은 그 커다란 검이 그리는 궤적이 마치 뱀의 혀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고 여겨졌다. 어떤 때는 쾌속하고 가볍게, 어떤 때는 중후하고 무겁게, 특이한 검술이었다.

그러나 그 검술의 가장 큰 특징은 검을 휘두르는 몸짓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끊임없이 이어지는 춤사위처럼, 날랜 몸짓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검만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검을 찔렀다 회수하며 주먹을 섞기도 했고, 검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발차기를 하기도하며 공수의 강약을 잘 조절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 검이 마치 무기가 아니라 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의 강맹한 검술을 보고 있노라니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도 패기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아란은 그의 검술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격렬하게 검을 휘두르던 그의 몸짓이 거짓말처럼 우뚝 하고 멈췄다.

"언제까지 거기 숨어 있을 거지? 허락도 없이 남의 검술을 훔쳐보는 건 실례이지 않나."

검을 휘두르던 그가 말했다. 아란은 그제서야 그가 누군지 눈치 챘다. 아란은 숨어있던 그늘에서 연무장 쪽으로 나왔다.

"시리우스?"

"음? 의외로군, 아란인가?"

휘두르던 대검을 땅바닥에 -콰악 하고 꽂은 채 시리우스는 고개를 돌려 아란 쪽을 바라본다. 아란은 들킨 게 당황스러운 듯, 미안한 듯, 어깨를 으쓱하며 푸른 검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격렬하게 움직이던 양반이 지금 보니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아란은 속으로 놀라워하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훔쳐볼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냥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아, 뭐 그다지 상관은 없어.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시리우스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대검을 들었다. 항상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시리우스가 가지고 다니는 대검, 전체가 푸른빛을 띠고 은은한 광채까지 띄는 것이 보통명검이 아닌 것 같았다.

아란의 시선이 자신의 검에 향해있자, 시리우스는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 이거? 이래봬도 보통명검은 아닌 물건이야. 무려 '마검'이니까."

"마, 마검요?"

"그래, 칼 주제에 건방지게 사람이 가진 마력을 흡수하지. 그래서 자격이 안 되는 자들은 검을 쓰다가 말라죽는다는 요망한 물건이야. 게다가 보통 성깔있는게 아니라서 난폭한 이놈을 길들인다고 나도 꽤나 고생 좀 했었지~."

"헉!"

"'폭풍의 마검 스탐브링거', 그게 이 녀석의 이름이다."

시리우스는 아란이 잘 볼 수 있게, 검을 아란의 눈높이에 맞추어 -푸욱 꽂아주었다. 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아란이었지만, 검병에 박힌 푸른색의 수정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 한 음각의 무늬는 자신이 보통의 검이 아니라는 듯, 엄청난 존재감을 주고 있었다.

검에 매료된 아란에게 시리우스는 한마디 당부했다.

"그래도, 만지지는 말도록, 마력을 흡수하는 녀석이니만큼, 순식간에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어."

"에엑!? 정말요?"

아란은 할아버지가 된다는 말에 질겁을 하고 물러섰다. 그 모습이 웃겼던지 '푸핫'하고 한차례 웃은 푸른 검사는 검을 다시 뽑아들고는 천천히 자세를 취했다. 아란은 입맛을 쩝쩝 다시고는 시리우스에 방해되지 않게 뒤로 물러나 앉았다.

푸른 검사는 흰 달빛을 받으며 연무장 한가운데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시리우스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정말로 멋있었다. 묶지 않은 긴 장발이 몸의 움직임에 맞추어 화려하게 흩날린다. 상체의 날렵하게 균형 잡힌 근육이 힘찬 몸짓에 꿈틀거렸다.

발은 땅에 닿은 듯 닿지 않은 듯 유연하게 움직이며 마치, 구름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스스로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듯, 몸놀림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렇게는 죽어도 될 수없는 자신의 재능에 깊이 한탄했다. 한번 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침울해졌다. 이제 자신은 과연 기사의 꿈을 접어야 하는 것인가.

정녕 방법이란 없는 것인가. 이대로라면, 반드시 멋진 기사가 되겠다는 루치야와의 약속조차 지킬 수 없을게 뻔했다. 아란은 고민했다.

소년이 이렇게 머리를 싸매며 고민하고 있자, 문득 검을 휘두르고 있던 시리우스가 허공에 검을 멈추고, 우뚝 서서 소년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게, 기사가 되고 싶냐?"

아란은 시리우스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답했다.

"네!"

"정말, 죽을 만큼 고된 수련과 시련을 통과해야만 하는데도?"

"네!!"

"반쪽짜리 기사가 된 다해도 불만은 없겠지?"

"네! 물론이죠!"

그래, 상관없었다. 이젠, 기사가 되기만 할 수 있다면…….

"그래, 그렇다면 좋다. 내가 네 녀석이 기사가 될 수 있을 정도의 검술을 익힐 수 있는 방안을 말해주지."

"저, 정말요? 뭐, 뭐죠?"

아란은 상당히 놀랬다. 그리고 지금 심히 떨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절망의 나락근처까지 추락해있던 아란이었다. 그런데, 시리우스는 지금 방도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진짜로?

그 말에 지금 아란은 조그만 희망의 불꽃이 다시금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푸른 검사의 말을 한마디라도 흘릴까싶어 온 정신을 귀를 기울여 집중했다.

"…아란, 넌 '베이에트'다. 그게 뭔지는 알고 있겠지?"

"네."

"베이에트는 범재가 20년 해야 할 훈련을 120년은 소화해야 동급의 수준이 가능하다고 하는 거다. 근데, 이 말이 진짜 베이에트가 검술을 익히지 못한다는 말로 들리나?"

"……."

솔직히 말해선 잘 모르겠다.

"아니지, 이 말의 참뜻은 베이에트도 120년만 수련하면 기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허나, 보통 사람의 수명이 그 정도로 늘어날 리가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지."

"…그,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

"간단해. 그 120년 걸리는 검술을 5년이면 되는 검술로 교체하면 되지."

-두둥!

"……!!!"

아란은 새삼 발상의 전환이 위대함을 느꼈다. 말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절망과 희망을 이렇게 오고갈 수 있다니….

솔직히 조금 허탈하긴 했다. 그런, 아란의 표정을 본 시리우스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허어~ 어이 이봐, 설마 그 제국중검술인가 뭔가 하는 걸로 세계최강이 되려는 건 아니었겠지? 그런 걸로 제대로 된 기사가 되려면 120년은커녕 천년만년이 걸려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하.하…."

아란은 멋쩍은 웃음밖에 지을 수 없었다. 아란이 배우고 익힌 것은 오로지 제국중검술밖에 없어서 그 이외의 것들은 상상조차해보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벅벅 긁고 있는 아란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시리우스가 말을 이었다.

"허이구, 참, 어쨌거나, 내가 지금 가르쳐주는 검술은 굉장히 간단하다. 하지만 의외로 대단하지. 내가 아는 녀석이 만들어낸 검술인데. 검술이라고 해야 할지 기술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거긴 하지만. 여튼 허접한 중검술따위와는 상대도 안 되는 거니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배우도록 해라. 기회는 지금밖에 없으니…."

"예!"

아란은 기대에 찬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자, 시리우스는 어디서 났는지 헬카이트 공작의 스틱을 들고선 천천히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란은 시리우스가 펼치는 검술의 궤적에 빠져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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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작성일
    08.04.28 20:40
    No. 1

    웬만하면 그냥 스톰브링거라고 적으시지,,,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7 루이네드
    작성일
    09.06.29 20:09
    No. 2

    영주한테 초대 받았을 때
    싫다고 안가는 주인공의 어머니를 보고 뭔가 있다 생각하고
    거기서 아버지한테 글을 배웠다는 걸 볼때 뭔가 있겠구나 했지만..
    공작과 아는 사이라니 ㄷ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월하려은
    작성일
    09.06.29 20:40
    No. 3

    루이네드 님 ^^몇 가지의 복선을 보셨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이천(異天)
    작성일
    09.08.02 18:34
    No. 4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09.12.08 19:10
    No. 5

    이로써 아란은 초고수가 되고 아얀은 그럭저럭 기사가 되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월하려은
    작성일
    09.12.13 13:27
    No. 6

    나무방패 님 ^^ 이로서 조건은 비슷해졌다고 보면 되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키온
    작성일
    10.09.09 21:16
    No. 7

    건필하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SlamDrum
    작성일
    11.04.27 23:51
    No. 8

    아아.. 내심 아란이 기사보다는 마법이나 다른 쪽으로 가길 바랬는데 끝까지기사라니 아쉽네요. 저주받은 몸치 체질을 눈물겨운 노력으로 극복하고 마침내 기사가 되어버리는 그런 감동적인 결말은 너무 닭살스러울 것 같은데... -_-; 제 감성이 좀 비뚫어졌나봐요. ㅠ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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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리아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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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La~port Liarta - 17장 깨어진 우정 #01 +16 08.05.25 1,929 4 18쪽
59 La~port Liarta - 16장 불신과 오해 #03 +18 08.05.24 1,856 7 11쪽
58 La~port Liarta - 16장 불신과 오해 #02 +10 08.05.21 1,880 4 17쪽
57 La~port Liarta - 16장 불신과 오해 #01 +9 08.05.21 1,888 5 17쪽
56 La~port Liarta - 15장 꼬마연인 #04 +15 08.05.18 1,898 5 18쪽
55 La~port Liarta - 15장 꼬마연인 #03 +10 08.05.18 1,849 5 16쪽
54 La~port Liarta - 15장 꼬마연인 #02 +8 08.05.18 1,903 5 18쪽
53 La~port Liarta - 15장 꼬마연인 #01 +15 08.05.18 2,008 5 12쪽
52 La~port Liarta - 14장 예비성년식 #04 +11 08.05.04 1,981 5 12쪽
51 La~port Liarta - 14장 예비성년식 #03 +7 08.05.04 1,969 5 15쪽
50 La~port Liarta - 14장 예비성년식 #02 +11 08.05.04 2,051 6 15쪽
49 La~port Liarta - 14장 예비성년식 #01 +13 08.04.30 2,099 3 13쪽
48 La~port Liarta - 13장 전야제 #03 +13 08.04.30 2,102 6 16쪽
47 La~port Liarta - 13장 전야제 #02 +12 08.04.28 2,142 5 15쪽
46 La~port Liarta - 13장 전야제 #01 +14 08.04.28 2,152 7 17쪽
45 La~port Liarta - 12장 마녀와 소녀 #03 +11 08.04.21 2,242 5 11쪽
44 La~port Liarta - 12장 마녀와 소녀 #02 +8 08.04.19 2,228 7 19쪽
43 La~port Liarta - 12장 마녀와 소녀 #01 +4 08.04.19 2,289 8 19쪽
42 La~port Liarta - 11장 베이에트 #04 +11 08.04.17 2,310 5 16쪽
41 La~port Liarta - 11장 베이에트 #03 +5 08.04.17 2,268 6 13쪽
» La~port Liarta - 11장 베이에트 #02 +8 08.04.17 2,308 6 20쪽
39 La~port Liarta - 11장 베이에트 #01 +4 08.04.16 2,360 5 15쪽
38 La~port Liarta - 10장 영주성의 만찬 #03 +7 08.04.15 2,331 6 12쪽
37 La~port Liarta - 10장 영주성의 만찬 #02 +2 08.04.15 2,401 6 12쪽
36 La~port Liarta - 10장 영주성의 만찬 #01 +13 08.04.09 2,417 5 16쪽
35 La~port Liarta - 9장 결심 #02 +6 08.04.03 2,417 5 18쪽
34 La~port Liarta - 9장 결심 #01 +6 08.04.03 2,414 5 15쪽
33 La~port Liarta - 8장 소녀의 고민 #02 +4 08.04.02 2,405 6 12쪽
32 La~port Liarta - 8장 소녀의 고민 #01 +7 08.03.27 2,436 6 15쪽
31 La~port Liarta - 7장 두 가지 수업 #03 +8 08.03.26 2,422 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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