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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님의 서재입니다.

라포르리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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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작품등록일 :
2011.07.03 01:44
최근연재일 :
2011.07.03 01:44
연재수 :
2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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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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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8.04.1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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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La~port Liarta - 12장 마녀와 소녀 #02

DUMMY

제 12장 마녀와 소녀 #02



리리스는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갔다. 원래 리리스는 오전에 올리오르 할머니네 집에 와서 일거리를 도와주고, 점심때부터 마법을 배우다가 저녁이 되기 전에 돌아갔는데, 아란이 침대신세를 지게 된 이후부터는 저녁까지 먹고 늦게서야 돌아갔다. 그리고 리리스가 돌아가자, 아란은 마녀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이 때 일어났다. 아란은 왠지 노파와 둘만 있게 된 게 무서워서 밤에 잠을 설쳤는데, 결국 노파의 시끄럽다는 호통과 함께 다시 길어져 날아든 지팡이를 머리에 맞고 기절한 채 잠이 들었던 것이다.

침실이 따로 없이 거실에 침대가 있는 노파의 집 구조상, 집에 하나뿐인 침대를 아란이 쓰고있어서, 노파는 소파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녀는 그것에 굉장히 불만에 차 있었나보다.

아란이 조금만 뒤척이거나 시끄럽게 굴어도, 노파의 지체 없이 날아온 지팡이에 속절없이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때리는데도, 아프지만 치명적인 부분만은 피해서 두들기는 노파의 무시무시한 실력에 아란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마녀는 지팡이로 패는데에 도가 튼 것 같았다. 밤마다 잠자기 전 시작되는 죽음의 타작.

이 사이클은 아란이 몸을 회복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완치되어서 붕대를 풀고 침대를 나서는 순간, 아란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단다.

"축하해. 아란. 이제 거의 다 나았구나."

"어, 으, 응."

아란은 감격한 표정으로 리리스의 축하의 말에 답하면서, 자세를 잡고 서서 이리저리 몸을 스트레칭 해 보았다. 굉장히 기뻤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도 잠시, 어젯밤에 노파가 들어와 한말이 기억난다.

'내일부터는 슬슬 움직여도 될 거다. 하지만, 검술연습 같은 쪼다 같은 짓은 삼가도록. 아직, 뼈가 완전히 아문 게 아니야. 만약, 그런 짓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삐끗해서 온다하면, 내손으로 친히 네놈의 다리몽둥이를 모조리 부러뜨려 버릴 테다! 알았나!'

'허걱!! 네!!'

그때 아란은, 그저 알았다고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다. 노파의 눈빛이 내뿜는 살기는 감히 범인이 맞설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뻣뻣하다 싶으면 들어오는 지팡이질. 죽을 맛이었다. 요새 밤을 얼마나 공포와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었던가. 다시 한 번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란은 마녀가 가져다주는 공포에 부르르 떨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왔다.

곧, 아란은 심호흡을 하며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뻗어보았다. 정말 무리하지 않으려고 아란은 노력했다.

-우드득.

"……."

위험했다. 조금 역동적으로 움직여봤는데, 근육 전체가 아프다고 아우성을 친다. 거의 몇 주간 침대신세를 진 탓에 몸이 굳어있었다. 그래도, 서두르면 큰일 난다. 조금이라도 여기서 삐끗했다간, 마녀가 게거품을 물고 달려와 자신을 타작 할 것이다. 아란은 그런 피튀기는 결말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조심스레 뭉친 근육들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얼마간 몸을 조율하게 되자, 드디어 똑바로 설 수 있었다. 그때의 그 쾌감이란…. 해방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옆에서 따로 열심히 뭔가를 준비하고 있던 리리스가 입을 열었다.

"음, 이제 끝났어?"

"응!"

아란은 기쁜 마음에 돌아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리리스가 생각보다 작아진 것 같다?

"어라? 내가 리리스를 내려다보고 있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아란이 그렇게 말하자, 리리스는 장난스레 웃으면서 아란을 타박한다.

"그거야, 당연하잖아. 지금은 아란이 나보다 키가 더 큰걸, 난 여자고, 아란은 남자잖아. 게다가 성장기니까, 말야."

"아, 그, 그렇구나."

아란은 멋쩍은 듯 검지로 뺨을 긁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자신도 이젠 다른 남자애들처럼 키가 컸다는 증거니까. 이젠 리리스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는 이 소녀를 올려다보는 것조차 얼마나 큰 스트레스였던가. 이젠 오래 묵은 체중이 싹 내려 간달까. 아란이 그렇게 서서 바보같이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리리스는 그에 아랑곳없이 뭔가를 챙기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걸 눈치 챈 아란은 소녀에게 물었다.

"아, 혹시 어디 나가는 거야?"

"응, 오늘 할머니가 부탁한 약초 좀 캐놓으시라고 하셨거든, 흐음, 저번에 배웠던 것 복습이랄까."

"음….그래?"

"그래서 말인데, 같이 가지 않을래? 천천히 몸도 풀겸 말야."

"아, 같이?"

"응. 혼자가면 심심하잖아."

리리스의 제안에 아란은 귀가 솔깃해졌다. 리리스와의 단둘이라, 이것 참. 아란은 당연히 승낙했다.

"그, 그래, 그러자…."

아란은 노파도 없는 집에 혼자 남겨지는 것도 싫고해서, 리리스를 따라가기로 했다. 나름 은근한 기대도 있는데다, 게다가, 아란은 밖에 나가서 꼭 해야 할 일도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을 때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던 일.

사실, 오늘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무리를 해서 일어난 감이 있었다. 원래는 혼자 갈 예정이었지만, 리리스가 간다니 같이 따라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소년은 흔쾌히 소녀를 따라나섰다.


이제 봄도 절정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봄기운이 만연한, 뒷산의 정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종달새가 지저귀고, 나비가 날아다니며, 이름 모를 들풀들마저 어여쁜 꽃봉오리를 피우며 알록달록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봄이 무르익을수록 이제 곧, 하얀 호수마을에 루나사 축제를 열 시기가 다가온다.

17세 소년 소녀들에게는 성인의 자격을 주는 성인식을, 14세 소년 소녀들에게는 어떻게 성인이 되는지 엿볼 수 있는 예비성인식을, 그 흥겨운 축제를 열어주는 제국의 전통적인 명절. 루나사.

이때에는, 하얀 호수마을만이 아니라, 제국전역에서 축제가 벌어진다. 도시로 나가게 되면, 훨씬 멋지고, 화려한 축제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하얀 호수마을도 운치 있는 축제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하여튼, 이날은 모든 제국민들이 한데모여 새롭게 성인이 된 제국의 아들딸들을 축하해 주는 좋은 날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루나사구나."

한가롭게 산길을 걷던, 아란이 붕대투성이인 팔을 천천히 돌려보면서 말했다. 그 말에 저 앞에서 허리 숙여 산길 가장자리의 약초들을 살펴보고 있던 리리스가 대답한다.

"으음, 그러네."

산길을 거침없이 오르는 게 부담스러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아란과는 다르게 리리스는 약초들을 확인해보느라 여기저기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빠 보였다.

리리스는 따뜻한 봄 날씨에 알맞은 활동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시원하게 짧은 호박반바지에 발목까지 오는 부츠, 그리고 상의는 민소매셔츠위에 반팔조끼를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을만한 차림이었는데, 적당히 마른, 아니 가냘파 보이는 체구의 리리스에는 그마저 헐렁해 보인다.

그래도, 리리스가 입으니 상당히 귀여운 게 아란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쿡쿡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리리스는 지금 사방을 돌아다니며, 약초들을 비교해보느라 정신없어보였다.

리리스는 약초들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이거다 싶은 것들은 갈무리해 어깨에 걸고 있던 가죽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러다 곧, 한군데에 멈춰 서서 허리를 숙여 나무 주위로 피어있는 약초를 유심히 살펴본다.

리리스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뒤편에서 천천히 소녀를 따라 산을 올라가던 아란의 눈에 리리스의 허리숙인 모습이 들어왔다. 과장되게 부푼 호박바지를 입은 리리스였지만 바지선을 따라 드러나는, 조그마한 엉덩이 밑으로 뻗은 가느다란 하얀 다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아란의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허리숙인 리리스의 바지 끝단사이로 빨간 점이 가득 찍혀있는 흰색팬티가 살짝 보인다. '헙!' 소년의 심장이 다시 한 번 세차게 울렸다.

아직은 여자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소년이 보기에는 이보다 더 굉장한 건 없을 것 같았다.

"아란!"

그때, 리리스가 뒤로 획하고 돌아보며, 성큼성큼 산길을 내려왔다. '컥!, 들켰나?' 찔리는 것이 있던, 아란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치고 뒤로 물러난다.

"우악! 리, 리리스 왜 그래! 난 아무 짓도 안했어!"

그러자 내려오던 리리스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듯이 변했다.

"응? 뭔 일 했어?"

"에? 아, 아냐, 아무것도, 아, 아무 일도 없었어."

의외로 리리스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자, 아란은 얼버무리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 리리스의 팬티를 본 것은 의도치 않은 사고였지만, 절대로 들키게 할 수 없었다. 아란은 마음을 졸였다.

'팬티를 봤다고는 절대로 말 못해.'

아란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그러나 리리스는 다행히도 눈치 채지 못한 건지, 그다지 대수롭게 생각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응, 그래?' 하며 반팔조끼를 벗어서 아란에게 건넨다.

"후우, 살 것 같다. 아까부터 너무 돌아다니다보니 더워서 답답했었거든."

"어?, 어."

리리스의 조끼를 받아드는 순간, 소녀의 향긋한 체취가 아란의 코끝을 아찔하게 간질였다. 리리스는 반팔조끼를 벗어던진 게 굉장히 시원한지, 한손으로 부채질하며 씨익 웃었다. 아란은 갑자기 무안해졌다.

"부탁 좀 할께, 아란."

"으, 응."

아란은 리리스의 미소가 왠지 쑥스러워서 눈길을 내렸다. 그러자 그때, 민소매셔츠만 입은 소녀의 상반신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봉긋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 같은 조그만 소녀의 하얀 가슴이 민소매셔츠 라인사이를 타고 눈에 들어왔다. '크헉!' 아란의 얼굴이 화끈해졌다.

리리스는 아직, 속옷을 착용할 정도는 아닌지 그냥 민소매셔츠만 입고 있었는데, 셔츠가 조금 헐렁한 덕분에, 소녀의 하얀 속살이 셔츠자락사이로 흘끗흘끗 내비쳤다. -꿀꺽 아란은 시선을 떼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앞장서 올라갈게. 천천히 따라와 아란."

리리스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란….

"아, 아, 어, 어! 그래, 그래! 먼저 올라가!"

"으응!"

다시 버벅거리는 아란을 놔두고, 리리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약초들이 있는 쪽으로 다시올라갔다.

"휴우우~"

'살았다.'

아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간신히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리리스의 조끼를 잘 갈무리해 한쪽옆구리에 끼고선 조심스레 리리스의 뒤를 따랐다. 흐뭇한 게 왠지 득본 기분이었다.

리리스와 아란은 그렇게 길을 따라 주욱 올라와서 결국 목적지인 폭포근처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원래는 다른 쪽으로 올라가려했으나, 아란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해서 결국, 리리스도 같이 폭포위쪽 계곡으로 오게 되었다.

"이야~ 시원하다!"

리리스는 약초를 캐며 올라오는 게 힘들었던지, 계곡에 도착하자마자, 약초가 든 가죽주머니와 부츠를 벗어던지고는 계곡 물속에 참방거리며 들어갔다. 무릎까지 오는 물에서 찰박이던 리리스는 기분이 좋은지 한쪽 손을 높게 치켜들며 아란에게 외쳤다.

"아란! 너도 들어와! 너무 좋다아~!"

"아, 어,"

그런데, 아란은 그다지 좋아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당연하기도 한 것이 저놈의 계곡은 자신의 목숨을 통째로 삼켜버리려 했던 괴물이 아닌가. 멧돼지나 계곡이나 다 똑같아 보였다. 지긋지긋했다.

그래도 리리스의 부탁이라면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들어가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아란은 지금 이곳에 온 목적이 따로 있었다. 해야 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아란은 물가로 다가와 옆구리에 끼고 왔던, 리리스의 조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리리스, 나 지금 할일이 있어서, 금방 저기 좀 갔다 올게."

아란이 가리키는 방향 쪽으로 눈을 돌리는 리리스.

"음, 그러고 보니, 여기가 아란이 멧돼지에 쫓겼다는 그곳이구나."

"으….그렇지."

"그럼, 무슨 일 하러 가는건데?"

리리스는 호기심이 동한 듯 아란에게 물었다.

"아, 뭐 별건 아니구. 물건 찾으러 가는 거야."

"물건? 어떤 거?"

"아, 그게……."

그런데, 아란은 말하기 부끄럽다는 듯이 미적거린다.

"그게……."

"응."

"그게, 모, 목검을 떨어뜨렸거든. 멧돼지와 싸우다가, 그, 그래서. 아, 그게, 보통목검이 아니라 스승님이 주신 소중한 거라…."

"에?"

그랬다. 아란은 멧돼지에게 쫓기다 잃어버린 공작의 하얀 스틱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목검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었는데, 그때부터 괜히 못 찾는 것은 아닌가하고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란은 기사 지망생으로써 검을 떨어뜨려서 주우러 왔다는 사실이 좀 부끄러웠기 때문에 리리스에게 선뜻 말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검을 함부로 떨어뜨린 주제에 다시 비굴하게 찾으러간다니, 얼마나 실력이 없으면 그러겠는가.

그런 식으로 소녀에게 보일까봐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리스의 반응은 아란의 생각과 좀 달랐다.

"아, 그럼 어서 가서 가져와야지. 빨리 가봐!"

"아, 응. 그, 그래도 괜찮은 거야?"

아란의 소심한 발언에 리리스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긍정했다.

"당연하지. 스승님에게서 받은 소중한 거라면서, 그럼 누가 주워가기 전에 찾아야 하잖아?"

"으,응. 그래."

"빨리 갔다 와!"

"어, 어 알았어."

오히려, 아란은 리리스에게 쫓기듯이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조금 얼떨떨했다.

이윽고 아란은 얼마 전까지 자신의 연무장으로 쓰이던 공터에 도착했다. 공터는 멧돼지와 사투를 벌였던 곳답게 난장판으로 어질러져있었다. 땅바닥은 멧돼지 발자국으로 마구 파헤쳐져 있었고, 대련상대로 쓰이던 못난이 허수아비는 불쌍하게도 산산조각으로 토막 나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우와, 비참하다."

아란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당분간 검술연습은 하지 못할 듯싶었다. 연무장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도 지금 정상이 아닌 상태이니. 아란은 자신의 셔츠자락을 당겨 셔츠 속을 흘끗 본다. 온통 붕대로 둘둘 말려진 상체가 보였다. 답이 없다. 당분간은 자숙할 수밖에. 그리고 공터를 둘러보던 아란은 한쪽 구석에서 박혀있는 흙투성이가 된 하얀 스틱을 발견했다.

"다행이다."

아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달음에 달려가 바닥에 박혀있던 하얀 스틱을 뽑아냈다. 흙들이 말라붙어있어 엉망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아란은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스틱을 두 손으로 꼭 쥐어본다. 익숙한 감촉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아란은 그제야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아란은 그길로 계곡을 따라 리리스가 있던 곳까지 내려왔다. 리리스는 커다란 바위위에 올라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눈을 감은 채 앉아있었다. 조끼는 입은 채다.

바람을 느끼는 듯이,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리리스의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아란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숲의 요정 같았다.

연녹색 단발이 바람에 춤추듯이 살랑거리며, 리리스의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아란은 지금 저 예쁜 리리스의 모습이 '드라이어드' 라고해도 믿을만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리리스는 이얀의 여자 친구였다. 친구의 연인.

아란이 리리스를 동경하는 한구석에는 이얀에 대한 생각이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란은 자신은 리리스를 동경할 뿐 전혀 가까워질 수는 없는 대상이라 여기고 있었다. 리리스가 뭐가 아쉬워서 자기 같은 외모도 실력도 볼품없는 녀석에게 관심을 주겠는가?

그것은, 리리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당연한 사실이었고, 덕분에 자신이 리리스와 가까워진다는 것, 그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자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백번 옳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한구석으로는 착잡하고 답답한 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아란?"

리리스가 문득, 인기척을 눈치 채고 돌아봤다.

"응."

아란은 물가로 가며 대답한다.

"찾아온 거야?"

"응."

-찰랑찰랑

아란은 허리를 굽혀 흙이 잔뜩 묻은 스틱을 계곡물에 흔들어 씻어낸다. 그러자, 스틱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새하얀 빛이 되살아났다.

"우와, 혹시 그거야?"

리리스가 아란의 곁으로 오며, 감탄하며 묻는다. 목검치고는 특이한 하얀색 때문인지, 신기해 보였나보다.

"으, 응."

"좀 봐도 될까?"

"그래…."

아란은 리리스에게 물에서 씻어낸 스틱을 건넨다. 리리스는 두 손으로 그걸 받아들고는 찬찬히 살핀다. 그리고는 조그마한 탄성을 내질렀다.

"헤에, 대단하다. 이거, 정말 새하얗네. 나무인 것 같은데, 꽤나 무거워."

"음, 아무래도 목검대용으로 쓰이던 거다 보니……."

"하얀색이 너무 예쁜데? 와아~"

리리스는 그렇게 한참 스틱을 이리저리 감상하다가, 웃으면서 아란에게 되돌려준다.

"이얀이 보여주던 검은 목검도 대단했지만, 아란께 더 예쁜 것 같아. 후훗."

"그, 그래?"

아란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리리스에게서 스틱을 받아든다. 그러나 이얀의 이름을 듣게 되자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리리스가 이얀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아란은 이얀과 자신을 저울질하게 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리리스가 이얀의 여자 친구이기 때문이었다. 아란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리리스가 아란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나보다.

"아란? 왜?, 무슨 문제라도 있니? 표정이 왜 그래?"

"아? 아, 아냐 리리스. 아무런 문제도…."

"흐음, 혹시 내가 그 목검을 만진 게 잘못된 거야?"

"아, 아냐 아냐. 그런 게 아냐, 정말 아무것도 아냐…."

"그래에?"

리리스가 뾰루퉁한 목소리로 추궁하자, 아란은 당황해서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만 연거푸 해댔다. 리리스는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아란을 지긋이 노려본다.

아란은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슬쩍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리리스는 한참동안 아란을 지그시 노려보다 뒤쪽 바위위에 걸터앉았다.

"흐으음…."

아란은 리리스의 시선에 뻘쭘한 나머지, 괜스레 스틱을 다시 계곡으로 가져가 씻는다.

-찰박찰박….

"……."

-찰박찰박….

"……."

묘하게 긴장된 공기가 둘 사이에 흐르고, 부담스런 침묵이 감돌았다. 아란이 물에 스틱을 씻는 소리만 이 조용조용 울리고 있었다.



---------------------------------------------------------------------------<계속>

첫 글 조회수 천번 넘은 기념으로 이연참 갑니다 ~

아... 이러면 안되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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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La~port Liarta - 10장 영주성의 만찬 #01 +13 08.04.09 2,423 5 16쪽
35 La~port Liarta - 9장 결심 #02 +6 08.04.03 2,420 5 18쪽
34 La~port Liarta - 9장 결심 #01 +6 08.04.03 2,416 5 15쪽
33 La~port Liarta - 8장 소녀의 고민 #02 +4 08.04.02 2,408 6 12쪽
32 La~port Liarta - 8장 소녀의 고민 #01 +7 08.03.27 2,439 6 15쪽
31 La~port Liarta - 7장 두 가지 수업 #03 +8 08.03.26 2,424 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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