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제 시작!

언덕집 마법사는 멀리 내일을 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걓디
작품등록일 :
2019.04.01 15:27
최근연재일 :
2020.03.29 17:30
연재수 :
239 회
조회수 :
18,687
추천수 :
189
글자수 :
1,433,207

작성
19.09.10 16:00
조회
36
추천
0
글자
17쪽

인형의 외전. 보내기 싫을 정도로 (7)

많은 분들의 격려에 무한한 감사를! 앞으로 더 좋은 글로 보답할 수 있게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DUMMY

눈을 뜨니 무언가······. 굉장히 불편한 감각만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런 것은 전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몸이 잘 안 움직인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굉장히 익숙한 느낌.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는 건가?


그런 의문을 품으며 터벅, 터벅 문을 향한다.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거의 본능이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 하나만은 잘 알 것 같았다.


문이 벌컥 열리며 깜짝 놀란 표정의 여성 하나가 보였다.


왜 놀라는 걸까?


그리고 그 놀란 표정에 일순 빛이 번쩍이더니 그 놀란 표정이 스르륵 무너졌다.

아, 이런 모습. 어디서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 사람이란 날붙이에 쉽게 당하고는 한다.


그렇지. 이 장면은 분명 그런 것이다.


방의 천장을 향해 붉은 줄기가 치솟더니 온 사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옛날부터 바라 마지 않던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자면 느끼겠지만 이 순간, 본능에 휘둘렸다는 변명을 댈 수 있다.


결코 그런 죄의식은 없었다.


그저 속이 시원할 뿐.


그리고 모든 인간이 미웠다. 이 순간.

자신의 몸을 이리도 엉망진창으로 비틀어 버린 존재들.


분명 프레드, 그 자의 짓이다.

섭정의 실각에 한 몫을 한 외지인을 처리하겠다는 의미겠지. 분명하다.

왕자는 어벙하게 그것도 모르고 그저 그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사실 그런 복잡한 분석도 필요 없다.


이 나라의 인간들을, 적어도 이 성 안의 사람들은 모조리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있어서 적이다.


그런 의식이 어디선가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적은 적이다.

이 순간 뱅칼루의 모든 것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자신을 무너뜨린 죄악이다.

결코 내버려둘 생각은 없다.


§


“프레드님! 그 여자가 난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몸을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경비 하나가 황급한 표정으로 프레드의 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어허, 무슨 일이 있다고 그리 급해? 그리고 누가 난동을 피웠다는 말인가?”


“왕자님을 따라다니던 그 빨간 머리 말입니다. 살아있습니다!”


“뭐?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다는 건가?”


잠깐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 떠올랐지만 곧장 프레드 역시 심각함을 느꼈음이 얼굴에 드러났다.


“가지, 성의 경비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 모아! 가능한 많이다!”

“알겠습니다!”


분명 극독을 준비했다. 그 정도의 양이라면 몸이 완전히 녹아내려 겉만 멀쩡한, 속은 거의 쓰레기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을 뒤엎고 살아있다? 이건 누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살아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죽은 자였거나.”


“누구냐?”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프레드가 빙글 돌아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섭정의 일은 안타깝게 생각해. 하지만 나라 하나 삼키고자 한다면 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포섭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누구냐?”


누구냐고 다시 묻기는 했지만 방금 것과는 조금 다른 물음이었다. 이미 본 일이 있다. 섭정과의 담판에 등장했던······.


그 새까만 옷을 입은, 높은 곳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오느라 괴상하게 등장했던 자다.


“나야 어느 나라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권력이 이동하든 관계는 없지. 하지만 조언을 하고 있는 거야. 물론 그 조언도 오늘부터 필요가 없겠지만.”


“섭정의 계략인가?”


“이미 끝난 섭정이 계략을 펼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에이, 질긴 녀석!”


프레드가 벽으로 달려가 걸려있던 도끼를 들었다.


“적어도 약속한 것의 일부라도 성사를 시켜야지. 프레드라는 뱅칼루의 괴수의 제거는 실패했지만 적어도 프레드라는 자가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손에 쥘 것은 없어.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섭정의 생존. 그 외에는 없거든.”


“역시, 섭정이 고용한 자였군!”


“그야 보면 아는 점. 그리고 나를 상대하고 있을 시간은 없을 것 같은데?”


넓고 깊은 후드를 써서 하관만 보이는 자의 입술이 슬슬 이동하더니 비웃음으로 변했다. 마치 미래를 모조리 꿰어 보는 느낌으로.


그리고 프레드 본인의 선택을 비웃는 듯이.


“그건 내가 선택해!”


프레드가 도끼를 들고 창 쪽으로 향해 내려 찍으려 하자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손을 가볍게 흔들고 뒤로 스르륵 넘어지더니 성 밖으로 떨어졌다.


급히 달려 창 밖을 봤지만 그 검은 옷을 입은 자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거야?”


짜증을 조금 내며 프레드가 뒤로 돌아서자 조금은 끔찍한 모습이 눈 앞에 보였다.



“프······레드 님······.”


뚝, 뚝, 뚜둑.


목이 으스러진 통에 고개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다 싶었더니 자세히 보니 목이 몇 바퀴를 돌아 꼬여 있는 모습이었다.


“이 악마 녀석이!”


그리고 아래가 없는 몸통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는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



악마?

그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만든 악마. 그리고 누군가의 개입.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가장 의심이 가는 존재라면 방금 전의 그 검은 옷을 입은 자다.



“에이이이이잇!”


미소.


그는 그렇게 악을 써가며 달리고 있었지만 상대에게서 나타난 반응은 미소였다.

그래, 원한이다.


복수를 행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짜릿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 미소의 의미를 진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본인도 복수를 행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복수가 눈 앞에 온 이 순간에 이런 변수를 맞이한다.



세상사 본인의 마음대로 다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나?


하지만 자신보다 강한 자는 얼마든지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역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래, 이 자가 바로 자신에게 있어 예측할 수 없는 사고, 그리고 자신보다 월등히 하늘 끝에 있는 변수.


“어째서 살아있을 수 있는 건가?”



불멸자.

단순히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을 했어야 했다.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본인을 해친 것이다.



그냥 조용히 보냈다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조용히······.


그래,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을 골라야 하는데 본인의 실수였다.


“뱅칼루는······. 내 것이 되었다.”


피식 어설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웃음이 이어질 수는 없었다.


번쩍 거대한 빛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온통 붉은 빛의 방울이 튀어 사방을 어지럽혔다.



의지도 없다. 고의도 아닐 것이다.


그저 누군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이제야 자신의 역할을 옳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그의 꼴도 그렇게 우습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태라도 원한은 깊어 그 길고 가는 검이 이미 떨리기만 하는 식어가는 몸을 마구 찌르기 시작했다.


어떤 눈에는 배신자, 어떤 눈에는 복수자인 그의 몸도 결국 이렇게 되니 무엇 하나 자랑할 것 없는 유기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포부도 의지도 결연함도 사상도 신념도 그 어떤 것도 없는 그냥 그런 것이다.


§


“왕자님, 얼른 피하셔야 합니다!”


“어째서? 카티야는 날 더는 떠나지 않게 되었는데!”


왕자가 터벅, 터벅 초점 없이 떠도는 망령에 가까운 자를 향해 가려는 것을 가신들이 막아섰다.



그러는 중에도 터벅, 터벅. 움직이는 재앙이 된 인형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 카티야! 결국 마음을 굳힌 건가?”


뒤에서는 여전히 신하들이 그를 붙잡고 뒤로 끌고 있었지만 그는 결코 도망을 갈 생각도, 조심하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왕자님을 지켜라! 이대로 뱅칼루를 끝낼 수는 없다!”


조금 고급스러운 바느질이 되어 있는 가죽 갑옷을 입은 병사장이 소리치자 성의 경비들이 우르르 뛰어 인형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 무기가 더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눈에도 옳게 보이지 않았지만 번쩍번쩍 빛이 튀면서 병사들이 서걱서걱 썰려 나갔다.

사람의 몸도, 아무리 훌륭한 검도 그렇게 움직일 수는 없다.


상식을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 선에서 움직인다면······. 저것은 분명 검을 휘둘러서 일어난 일이 아닐 것이다.



“으, 으으으으······. 모르겠다!”


병사장이 피로 범벅이 된 복도에 더 이상은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복도의 반대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대장님!”


경비 하나가 그를 쫓아 달아나기 시작하자 왕자를 붙잡고 있던 병사들도 역시 그를 쫓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진작 놓을 것이지! 귀찮게 말이야.”


왕자가 품위가 넘치는 동작으로 옷을 털었다.


먼지 하나 튀지 않았지만 마치 그런 더러운 것이 있었던 양 왕자가 킁킁 코로 냄새를 맡았다.



어째 오늘따라 동작 하나하나가 괴이하게 그지없었다.


“좋아, 이제 내 품으로 오게. 소녀 검사!”


왕자가 두 팔을 쩍 벌리고 앞으로 다가갔다.


마치 괴수의 입처럼 벌어진 팔을 반기듯 인형이 씨익 기분 좋은 웃음을 웃었다.



이전까지 본 적 없었던 모습이다.


프레드의 말이 맞았던 것 같다.

웃는다는 것은 기쁨의 상징, 그리고 반가움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너무나 완벽하다.


그런 생각을 했지.


“그 누구도 날 가질 수 없어.”


정신을 차려보자. 그래,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된 것이냐고?

하하하하하.


알면 이 왕자가 바보 왕자이겠는가?


§


“젠장, 뭐 하느라 일이 이렇게 된 거야?”


분명 사람 하나 처리하는 것으로 일이 끝날 것이었지만 성의 분위기는 그런 평화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하나를 처리했기에 그럴 수도 있었지만 이건 거의 폭풍이 들이닥친 그 날의 모습과도 같았다.



성에서 도망치는 인파들에 남자가 섞여 있다는 것이 신경을 긁었지만 이런 곳에서 그런 걸로 어찌 불만을 표하겠는가?



“하, 드디어.”


성의 위층에서 이 소란의 주범이 나타났다. 혹여 누가 본다면 사건의 피해자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새벽의 마녀는 결코 그런 겉으로 보이는 것에 속는 사람이 아니다.


“벌써 몇 명을 해치운 거야?”


그 아련하고 가련한 모습에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혹독함과 가혹함이 묻어 있었다.


그 붉은 흔적이 결코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위협을 나타내고 있었다.


원래 붉은 머리칼이 마치 새로이 붉게 물든 느낌을 줄 정도로.



온 몸이 붉은 색이 되어 마치 새로운 인간이 태어난 것이 아닌지 의심을 일으킬 정도였다.


“오늘 하루는 정말 긴 하루가 될 것 같네. 그렇지 않아?”


새벽의 마녀 주변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듣고 있는 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혹은 듣고 있는 자가 있어도 없어도 아무 관계없다는 것인지.


아, 물론 어느 쪽이라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다.



하나 이상은 듣고 있다.


“고작 이런 걸로 날 속인다면 나도 대책이 있어!”


세레스가 바닥에 발을 쾅 찍자 돌로 된 성의 바닥과 벽이 우르르 소리를 내며 뒤집히더니 새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가능하다면 이건 너, 본인을 상대할 때만 쓰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세레스가 앞으로 손을 뻗어 주먹을 쥐자 인형이 서있던 계단이 우글우글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인형이 폴짝 앞으로 뛰어내리자 인형이 바닥에 반쯤 파묻혔다.



“고작 이 정도로 날 어떻게 하려 했다면 틀렸어.”


세레스가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이변은 없었다만 그 이변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뿐이지 결코 이변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새하얀 빛을 뿜던 바닥이 거친 흙빛을 띄더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바닥에 화살 하나가 꽂혔다.


“그래, 당하기만 하는 건 볼 수 없다······. 하지만 직접 나설 생각은 없다는 거네.”


세레스가 빙긋 웃더니 등으로 손을 옮겼다. 그 순간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창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손에 들렸다.



그리고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린 세레스가 순식간에 인형의 앞까지 달려 인형의 목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부러뜨릴 기세로 힘을 줬다.


끼기긱 괴이한 소리가 퍼지며 완전히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시 주변에 빛이 듬성 나타났다.


“에잇, 이건 반칙이잖아!”


세레스가 창을 휘둘러 허공에 나타난 빛을 모두 내치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흠, 그렇다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다 이거야.”


일전을 벌일 생각은 아닌지 세레스가 후다닥 달려 성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여전히 초점 없는 인형의 눈을 피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인형의 길을 비틀어 방향을 돌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보였다.


그리고 바닥에 창의 뒤쪽을 쿡쿡 치더니 그곳이 그대로 둥근 구멍이 되었다. 점점 커지는 구멍의 아래에는 방금 것과 같은 새하얀 공간이 보였다.


“일단 최대한 쓸데없이 사람을 죽이는 짓은 멈춰야지.”


여전히 힘 없이 터벅, 터벅 걷는 인형의 궤도는 구멍을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지만 방해는 금물이랴.


“막을 테면 막아봐. 이대로 두면 네가 준비한 두 가지의 수단이 모조리 사라질 테니까.”


호기 넘치게 세레스가 소리를 질렀지만 반응은 없었다.


“그렇게 나온다면 나야 상관없지.”


세레스가 창을 들어 인형의 손을 향해 찌르자 인형의 손에서 검이 불쑥 빠져나와 뒤로 날아갔다.


“역시 제 목숨 아까운 줄 아는 녀석은 너뿐이군.”


세레스가 튕겨 나간 검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에 인형은 터무니없게도 그냥 구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코도, 너도 결국 네 주인에게 버림 받았어.”


“닥쳐라 거지같은 마녀.”


“입이 거칠기는 역시나 너 만한 인물이 없군.”


세레스가 피식 웃었다.


껄껄거리며 괴상한 웃음이 이어졌지만 이것은 누구의 웃음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을려나?


§


성의 밖으로 나온 새하얀 색의 마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온통 겁에 질린 사람들이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이 성은 틀렸어요. 이제 이 성은 누구도 다가설 수 없도록 봉인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저주가 해소된다면 사람이 접근해도 좋겠지요. 하지만 그 순간은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일어날 일은 아닙니다.”


세레스의 말에 주변의 모두가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간단하다.



이것은 누구 하나를 위한 무덤이다.


다가오는 자는 목적이 뻔하다. 그 자 외에는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세레스가 문에 손을 대자 바닥의 틈에서 흙이 뻗어 올라오더니 마치 나무 뿌리처럼 변하며 문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손을 조금 더 대고 소리를 꽥 지르니 성의 서편의 언덕이 스멀스멀 움직이더니 성의 한 귀퉁이를 감쌌다.


“후, 이제 여러분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레스가 손을 털자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뻔뻔한 자들이다.



자신들이 초래한 위기를 타인의 손으로 해결하고 저리 좋아서 들뜨다니?

물론 세레스 본인에게 이 세상 그 누구가 좋게 보일까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안심할 수밖에 없지.”


§


옛날 옛적에 그 산에는 성이 있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왕이, 그리고 왕자가, 그리고 사악한 마법사가 살았다고 한다.



왕이 죽고 사악한 마법사가 왕자를 꼬셔 나라를 어지럽게 했다고.

그리고 그것을 참지 못 한 선량한 마녀가 나타나 왕자를 벌하고, 사악한 마법사를 해치웠다 한다.


그리고 선량한 마녀는 사악한 마법사의 횡포를 정리한 후 저 산의 성을 땅 속으로 묻어버렸고, 1년 내내 이어지는 짙은 안개를 깔아 사악한 마법사의 모든 것을 묻었다고 한다.


사악한 마법사가 죽인 수 많은 성의 주민들은 그 후로도 결코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미 사악한 마법사의 사술에 악마가 되었으니까 안 나오는 게 훨씬 세상에 유익할 거라고.




그런데 말이다.

옛날 이야기는 항상 살아남은 자를 좋게 평하는 경향이 있다.


사악한 마법사와 선량한 마녀.


결과적으로 발언권을 가진 것이 선량한 마녀라고 불리는 새벽의 마녀였다는 것이다.

하하하하하.


선량한 마녀가 되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세레스님.


근데 성의 주민들은 둘째치고 마을의 주민들은 다 어디다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건가?"


골똘히 생각을 하던 중에 웬 거대한 몸집의 가볍고 가볍고 투명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말을 걸었다.


"별 거 아니에요."


"얼른 와. 버리고 가기 전에."


"누가 누굴 버려요?"


"하긴 요리사는 못 버리지."


남자가 피식 웃었다.


이 남자도 과거의 일과 앞으로 있을 일만 아니면 참 좋은 사람인데. 안타까움은 있었지만 자신이 바꾼 생각에, 그 긍정적인 마음이 이 남자의 운명도 그대로 내버려두려 하고 있었다.


"그냥 버려도 되는데 안 버리니 따라 가야지."


새하얀 그 안개를 가르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구 하나를 위해 준비한 무덤이 그들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모든 것이 옛날 이야기. 그리고 그 옛날 이야기는 그들에게는 별로 흥미를 끄는 이야기가 되지는 못했다.


누군가 살아왔던 흔적도 이렇게 가볍게 흘러간다.


인형의 외전 終.


작가의말

4부 완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의 휴재로 뭔가 찝찝한 상황이 되긴 했지만 일단 얼른 4부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너그럽게 기다려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언덕집 마법사는 멀리 내일을 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1 5장.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자 (2) 19.10.27 66 0 11쪽
200 5장.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자 (1) 19.10.25 32 0 11쪽
199 4장. 불멸자 (4) 19.10.24 29 0 13쪽
198 4장. 불멸자 (3) 19.10.23 29 0 12쪽
197 4장. 불멸자 (2) 19.10.20 31 0 13쪽
196 4장. 불멸자 (1) 19.10.20 28 0 13쪽
195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6) 19.10.19 30 0 13쪽
194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5) 19.10.17 33 0 13쪽
193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4) 19.10.16 21 0 12쪽
192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3) 19.10.13 28 0 15쪽
191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2) 19.10.12 26 0 13쪽
190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1) 19.10.11 24 0 13쪽
189 2장. 복수의 다짐 19.10.10 32 0 13쪽
188 1장. 광풍의 바이에른 (5) 19.10.09 24 0 13쪽
187 1장. 광풍의 바이에른 (4) 19.10.06 103 0 14쪽
186 1장. 광풍의 바이에른 (3) 19.10.05 31 0 14쪽
185 1장. 광풍의 바이에른 (2) 19.10.04 28 0 12쪽
184 1장. 광풍의 바이에른 (1) 19.10.03 27 0 11쪽
183 5부. 시작은 붉은색, 그리고 검푸른색의 결말 19.10.02 28 0 12쪽
182 4부 부록. 지금까지의 시간선 정리와 4부까지의 인물 정리 19.10.02 38 0 19쪽
181 0장. 0번째 왕자 (11) 19.09.21 27 0 13쪽
180 0장. 0번째 왕자 (10) 19.09.20 67 0 13쪽
179 0장. 0번째 왕자 (9) 19.09.19 39 0 16쪽
178 0장. 0번째 왕자 (8) 19.09.18 76 0 12쪽
177 0장. 0번째 왕자 (7) 19.09.15 48 0 13쪽
176 0장. 0번째 왕자 (6) 19.09.14 53 0 14쪽
175 0장. 0번째 왕자 (5) 19.09.12 38 0 14쪽
174 0장. 0번째 왕자 (4) 19.09.11 58 0 13쪽
» 인형의 외전. 보내기 싫을 정도로 (7) 19.09.10 37 0 17쪽
172 0장. 0번째 왕자 (3) 19.09.05 33 0 13쪽
171 0장. 0번째 왕자 (2) 19.09.04 46 0 14쪽
170 인형의 외전. 보내기 싫을 정도로 (6) 19.09.03 34 0 12쪽
169 0장. 0번째 왕자 (1) 19.09.01 56 0 13쪽
168 마지막 장. 이 앞으로 그녀의 말은 모두 거짓말 19.08.31 41 0 20쪽
167 6.5장. 종장을 맞이하는, 그 남자는 그렇게 19.08.30 36 0 15쪽
166 6장. 마왕 살해자와 원령들이 함께 하는 밤 (3) 19.08.29 33 0 12쪽
165 6장. 마왕 살해자와 원령들이 함께 하는 밤 (2) 19.08.28 39 0 14쪽
164 인형의 외전. 보내기 싫을 정도로 (5) 19.08.27 39 0 12쪽
163 6장. 마왕 살해자와 원령들이 함께 하는 밤 (1) 19.08.25 37 0 15쪽
162 5장. 새벽이 엄습하는 오솔길, 그 옛날의 폐허가 (9) 19.08.24 43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