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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집 마법사는 멀리 내일을 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걓디
작품등록일 :
2019.04.01 15:27
최근연재일 :
2020.03.29 17:30
연재수 :
2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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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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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3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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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3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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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마지막 장. 이 앞으로 그녀의 말은 모두 거짓말

많은 분들의 격려에 무한한 감사를! 앞으로 더 좋은 글로 보답할 수 있게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DUMMY

“후, 어찌 된 검인지 따라하는 것만 해도 여의치가 않은 녀석이네.”

“그렇게 독특한 검입니까?”

“사실 특이할 것도 없지. 하지만······.”


르벤이 「윽!」하고 기합을 넣으며 검의 몸통을 망치로 강하게 두들기자 얇은 구리로 된 실이 쇳덩이의 사이로 파고 들었다.


“근데 이렇게 만들어서 강도가 나오나요?”

“하하하하하하. 그냥 이렇게 만들자고 하니까 만드는 거지. 결국 그 코도라는 검은 전혀 도움이 안 됐지만.”

“말 하는 검은 확실히 좀 무리가 있지요.”


이본이 살짝 웃으며 르벤이 때리는 새로운 검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가까이서 보면 뜨거워.”

“전 이미 그것보다 훨씬 뜨거운 남자가 되었습니다.”


“그거 본인이 얘기하기는 좀 부끄럽지 않아?”

“마도기사······. 정도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아, 그거 좀 그런데.


“설마 그거 계속 자기 입으로 말하고 다닐 생각인가?”

“음, 나름 괜찮은 이름 아닌가요?”

“어후. 너무 촌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뚱땅뚱땅 검을 망치로 때리던 르벤이 슬쩍 고개를 돌려 이본의 표정을 살폈다.

너무나도 밝은 표정, 그리고 당당하기까지 한 모습이 너무나도 눈이 부셨다.


“진짜로 쓸 거야?”

“네.”


“흠······. 그래? 그거 그대로 루아나한테 꼭 얘기해줘.”

“물론이죠.”


저 위풍당당한 모습이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르벤은 그냥 화덕에 눈을 돌리기로 했다.


태양보다 횃불이 덜 밝은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이본의 얼굴에 비하면 역시 화덕이 덜 밝았다.


“검은 이대로면 다음주면 완성되겠군.”

“성급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최고의 완성도를 원할 뿐이죠.”

“조금 멜라피오르 양반이랑 말버릇이 비슷해진 것 같은데.”


르벤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이본이 살짝 쑥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들리나요?”

“뭐야, 일부러 따라하는 거였나?”


“처음으로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존경할 만하고, 직접 두 눈으로 멋진 남자라 생각한 분입니다. 하나라도 닮고 싶다면······. 욕심일까요?”


“아니, 그냥 그 양반 말하는 투가 재수없어.”


“죄송합니다.”


빠른 사과에 르벤이 키득키득 웃으며 쇳덩어리를 화덕에 밀어 넣었다.


“물론 우리 이본에게는 다른 이야기지.”

“그렇습니까?”


“그래도 내 앞에서는 그냥 귀여운 소년 시디어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

“이제 안 될 것 같습니다.”


“아쉽네. 내 뺨을 긁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르벤이 다시 화덕 안의 쇳덩어리를 꺼내서 모루에 올리고 망치를 두들기자 조금씩 모양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실은 따라하는 게 너무 어설퍼서 듣기 고통스러울 뿐이야. 멜라피오르, 그 양반의 말투는 교양 있고 멋지긴 하지. 그러니까 나 같은 놈은 그냥 재수가 없다고 말하게 되는 거야. 나보다 잘난 점 많은 놈은 다 재수없는 법이거든.”


“하하하하. 그럼 저는 어떻습니까?”

“내가 아는 기사 중에서 유일하게 귀여운 기사지.”


“귀엽다는 건 별로 칭찬이 아닌 것 같네요.”


르벤이 때리던 쇳덩어리를 물에다 푹 집어넣어 담그고 그것을 휘저었다. 그리고 화덕에 다시 집어넣고 집게와 망치를 내려 놓았다.


“어린 시절의 널 본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게 말 할 거야. 너보다 귀여운 아이가 있을 수가 없었거든.”


르벤이 일어나 이본을 꼭 끌어안았다.


구릿구릿한 땀 냄새와 화덕의 숯 냄새가 섞여 조금 악독한 냄새를 냈지만 그 넓은 가슴이 뜨끈뜨끈한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땀을 이렇게 흘리고 이러는 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제 기사 이본 경에게는 다시 못 할 테니까. 오늘을 마지막으로.”


“아닙니다. 언제든지 저는 괜찮습니다.”


“기사란 그런 곳에서 체통을 지켜야 하는 법이야. 여전히 배울 점이 많은 미숙한 기사로구만.”

“솔직히 말하면 르벤과는 앞으로 더욱 친해져야 할 것 같네요.”

“어쭈, 기억이 아직 안 난다는 거지?”


이본이 말없이 쑥쓰럽게 웃었다.


“물론 내가 영광이지. 프랑크 최고의 기사님이 되실 분과 이렇게 쉽게 대화할 수 있다면.”

“되고 나서 얘기하세요.”


르벤이 시간이 되었다는 듯이 눈을 돌려 화덕에서 쇳덩어리를 꺼냈다. 기분 좋은 망치 소리가 이어지며 점점 쇳덩어리가 펴지기 시작했다.


“그런 최고의 기사님이 될 거라면 부디 내가 만든 무기를 써야지.”


“믿어도 되는 거겠죠?”


농담이기는 했지만 또 만드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 그건 그대로 신경이 쓰이게 할 말이었다.


“원래 무기란 도와주는 역할이지. 결코 무기의 힘으로 최고의 기사가 나오는 게 아니야. 검에게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은 기사의 일이지. 검은 그 기사가 쓰는 도구에 불과해.”


굉장히 교훈이 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솔직히 회피의 방법이기도 했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장인도 도구가 쓰는 족족 부러지는 경우에는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진심으로 접한 사이라면 말이다.


“멋진 말입니다. 마음에 새기도록 하지요.”


이본의 반응에 르벤이 슬쩍 웃었다.


“물론 나도 어디서 들은 말이야. 도구란 어디까지나 쓰는 사람의 역량이거든.”

“자신을 더 갈고 닦으라는 말씀이시군요?”


깡, 깡 망치 소리에 목소리가 조금 묻혔지만 싱글벙글 웃으며 나름의 깨달음을 설파했다.


“그 무기에 어울리는 최고의 기사가 되어 주길 바라는 바이지. 물론 내가 만든 이 검이 이본, 너의 손에 얼마나 잘 맞을지는 몰라도.”


“기사는 자신의 손을 무기에 맞추는 법이라 했습니다. 너무 뛰어나도 안 되지만 부족하다면 기사 스스로가 그 무기를 다루는 최상의 방법을 익히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건 분명 란드리 경의 말이군?”


“잘 아시는군요.”


땅땅땅 소리가 청명하게 울리며 검이 완성되어가는 기분 좋은 소리가 공방 안을 매웠다.


“그 황금빛 검을 처음 쓸 때는 상당히 애먹었다고 하더군. 그런 엄청난 무기를 어디서 구했는지 정말 궁금한데 말이야.”

“그런 검은 솔직히 반대입니다.”


“무엇이든 잘라버리는 검이지. 못 자르는 게 없다고.”


“원하는 것만을 벨 수 있는 검이라면······. 그런 검이라면 탐나겠지만 모조리 자르는 검은 다루는 것부터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런 검을 다루는 란드리 경이야 말로 진정 최고의 기사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점점 길쭉한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쇳덩이를 들어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르벤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우려도 한껏 담긴 말이었지만 표정만은 너무나도 밝았다.


어린 시절을 직접 봤던 소년을 위한 검을 만드는 사람의 행복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더라도 흐뭇하고, 따뜻하며, 뿌듯한 그런 것이다.


좋은 의미 외에 그 무엇도 없다.


“당연히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검은 그런 존재 자체로 전설로 회자되는 검은 아니야. 하지만 소년이······. 아차, 우리 기사님이 필요할 때 든든하게 손 안에서 마음껏 움직여 줄 그런 물건이지.”

“말만 들어도 든든합니다.”


입에 발린 말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런 인사치레는 아니다. 자신을 위하여 장인이 섬세한 손놀림으로 완성한 검에 전할 말이라면 결코 찬사 이외에는 없다.


그런 것에 불만을 제기한다면 그것은 어지간히 실력이 없는 대장장이의 손에서 만들어졌거나 기사라는 놈이 형편없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필요하다 느낀다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주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검을 말이야.”


“너무 멀리까지 내다보시는 것 아닙니까?”

“기사란 그런 사람들이거든.”


끄덕. 그저 고개를 숙였다 올리는 이본.


“얼마든지 만들어 줄 테니 부디 살아서 돌아와.”

“바라신다면 필히 노력하겠습니다.”


“암, 얼마든지 검은 만들어줄 수 있으니 멋 부린다고 전장에서 죽느니 어쩌니 그런 건 삼가길 바라네.”


전장에서 죽는 것이야 말로 영광이라고 하지만 역시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대답은 없지만······.


분명 이 남자의 바람은 전달되었을 것이다.



승락은 별개의 문제이며, 미래는 어차피 모두가 아는 방향으로 정해져 있다.


§


“더럽다, 더럽다 했지만 질기기 그지없는 목숨줄이야.”


녹색의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남자가 피식 웃으며 다가왔다. 붕대를 칭칭 감은 남자가 기분이 굉장히 나쁘다는 목소리로 그의 접근을 꺼렸지만 전혀 그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욱 잽싸게 그를 향해 달렸다.


“오랜만에 보는 주인에 대해서 이런 반응이라니. 섭섭한데?”


“주인이고 뭐고 이제 아예 관계없는 사람한테 뭐하러?”

“흥미로운 인재를 찾아내서 말이야. 관심이 많아.”


“흥, 누구 얘기하는 건지는 몰라도 절대 네놈의 편을 들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말해주지.”


붕대 사이로 비치는 눈이 굉장히 묵직하고 덤덤하며, 당당한 빛을 뿜었다.


그와는 반대로 마치 개운하고 시원한 냉수라도 마시는 듯한 청량감을 지닌 얼굴은 씰룩씰룩 웃음을 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확신하다니 이거 참 섭섭한 이야기군.”

“결코 네놈의 제안을 받을 인재는 아니지. 나 같이 어리석은 녀석이 아니거든.”

“흠······. 물론 제안을 받을 인재가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것만은 막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녹색 모자를 쓴 남자가 얼굴을 쑥 내밀어 붕대를 감은 남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붕대가 씰룩 움직이더니 그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끔찍하다는 듯이 짜부러졌다.


“반대? 하하하하하. 직접 이야기해본 일은 없는 모양이군. 네놈이랑은 말을 붙이는 것도 불쾌하게 생각할 친구지. 정의감에 불타는 녀석이거든. 그리고 네놈이 벌인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럼 확실히 나의 적으로 돌아선다는 말인가?”

“당연하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알고 있는가?”


녹색 모자의 남자가 모자를 살짝 들어 얼굴을 쓸 듯이 벗자 모자가 지난 자리에는 새하얀 빛의 뒤로 꽁꽁 빗어 묶은 노인이 등장했다.


그리고 황금빛의 안대······.



그가 다시 나타났다.


“적어도 다시는 내 앞에 안 나타날 것 같았던 인물이 나타나는 것보다는 예상하기 쉬운 일이지.”

“일반인에게도 가끔은 용무가 있는 법이거든.”

“난 일 없는데?”


“잘 알고 있지 않나? 내가 자네와 루티에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가장 사랑한다는 거.”

“변태자식. 요리사한테 직접 얘기할 용기는 없는 모양이네.”

“나도 이제 눈치는 봐야지.”


껄껄대는 웃음 소리가 잠깐 나더니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이 노인이 그대로 사라졌다.


“이제 별 일도 없이 나타나는군.”


붕대를 감은 남자가 입에서 찍찍 소리를 내더니 침을 탁 뱉었다.


“더러워서 내 참.”



“비니시우스!”

“여, 기사님.”


저 멀리서 오른손을 번쩍 들어 휙휙 휘두르며 달려오는 멜라피오르······가 아니고 엘리 포르마를 향해 비니시우스가 벌떡 일어났다.


“몸은 이제 괜찮으십니까?”

“아직 따끔거리기는 하지만 버틸 정도는 되는군.”

“이런······. 비단길을 가기는 좀 상태가 그렇군요.”


엘리 포르마의 입꼬리가 시무룩 내려가며 자신이 고대하던 일정이 비틀어졌음을 슬퍼하는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와하하하. 이 비니시우스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지금도 말이야 이런 것도 가능, 우악!”

비니시우스가 팔을 번쩍 들어 앞으로 펄쩍 뛰어 공중제비를 돌 것 같은 자세를 잡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니,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챙겨야 하는 법인데 말이다.


“좀 더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냐 가면서 다 나을 거라고.”


“제 욕심으로 떠나는 길인데 조금은 진정하시지요.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의 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비단길 아닌가?”

“실은 이번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까지만 갈 예정입니다. 참으셔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엘리 포르마가 슬쩍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후후, 그럼 더욱 가야지. 말 안 했던가? 로마가 바로 내 고향이라고.”

“로마가 고향인데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무슨 관계인가요?”

“아, 이 양반 답답한 소리를 하는군. 그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바로 로마가 아니던가?”

“네? 로마는 교황령입니다만.”


엘리 포르마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의문을 표현했다.


“이런, 기사양반은 역사 공부는 안 하나?”

“하하하하. 상인은 돈에 관한 공부만 합니다.”

“역사도 좀 배워.”


붕대를 칭칭 감은 비니시우스가 머리 끝의 붕대를 조금 풀었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려는 것이었겠지만 윽 윽 윽 하면서 비명이 조금 튀어나왔다.


엄살은 아니지만 조금 귀엽다는 생각은 들었다.


“벌써 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고 둥둥 싸매고 있어서 좋을 건 없지.”


“하지만 케세나스라는 분이 다 나을 때까지는 풀지 말라고 하셨는데······.”


“흥, 그 우중충한 여자 말을 내가 다 믿을 것 같나?”

“아, 좀 다 낫고 풀면 안 되겠습니까?”


“푸하하하. 진정한 영웅은 이런 가벼운 상처에 굴하지 않는다네.”


엘리 포르마가 비니시우스의 오른손을 찰싹 때렸다. 비니시우스에게서 「아야!」하는 깜찍한 소리가 나왔다.


“거 참, 이제 제 말을 들으시지요. 리옹의 기사님.”

“기사는 할 생각 없는데.”


비니시우스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자 조용히 손을 뻗어 엘리 포르마가 다시 그 붕대를 꽁꽁 묶었다.


지저분한 붕대이기에 갈아줄 필요가 있어 보였지만 일단 전문가가 필요한 부분이니 조금 참아야 하겠다며 엘리 포르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포르마 상회는 사실 전원 리옹의 기사입니다.”


“거 사람 쓰는 방식이 너무 거칠군.”

“우리의 왕에 비하면 상냥할 겁니다.”


“카롤루스라는 남자는 대체 얼마나 거칠게 사람을 쓰는 건가?”

“특급이지요.”


엘리 포르마가 방실방실 웃었다.


“기사양반 얼굴 보면 상냥하다 못해서 물 같은 남자일 것 같은데.”

“글쎄요?”


엘리 포르마가 손을 뻗어 그의 오른손을 잡았다.


“하지만 당신은 내게 있어서 기사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겁니다.”


“확신은?”

“없지만 이미 그런 관계가 아닙니까?”


“호, 그럼 그 게르하르트라는 남자와 비교하면 어느 쪽이 우월한가?”


엘리 포르마가 오른손을 더 굳게 쥐었다.


“물론 당신입니다.”

“감동이군.”


“가면을 벗으면 게르하르트지만.”

“배신이야.”


“하하하하. 리옹의 기사 격렬의 멜라피오르는 결코 친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리옹의 상인 엘리 포르마는 결코 동료를 버리지 않지요.”


“그게 그거잖아.”


비니시우스가 오른손을 붙잡고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 모두 제게는 소중한 친구라는 뜻입니다.”

“이 나이 먹고 친구 생기는 건 좀 어색하군.”


“살 좀 빼면 누가 봐도 제가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보일 겁니다.”

“거짓말을 너무 잘 하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깔깔거리며 엘리 포르마가 웃자 만만치 않은 경박한 웃음 소리가 비니시우스에게서 나왔다.


“이제 마지막 여행의 동료는 결정되었군.”

“이제 시작입니다. 마지막은 좀 더 기회를 보고 만들도록 하지요.”


엘리 포르마의 입술이 살짝 올라가며 그에게 운을 더했다.


“그래,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사람을 쉬지 못 하게 만들어 주는군.”

“더 바빠질 겁니다.”


§


“브르타뉴로 같이 갈 생각은 없어?”

“글쎄······. 후. 아직은 파리에서도 아우크스부르크에서도 일이 남아서.”


“가겠다면 언제든 연락해. 아니지. 언제든 와. 우리 집안의 누구도 거부하지 않을 테니까.”


솔직히 말해 이 여자의 입장에서 껄끄러운 인물이 그 곳에 있었다. 기억이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좀 어색하다.


“다시 만나는 건 언제쯤일까?”

“조만간 만나게 될 거야. 조만간이라 하면······. 3년 정도이려나?”

“너무 멀어.”

“어차피 3년은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야.”


마치 불쌍한 강아지의 눈빛을 보듯이 연민을 지닌 청록빛의 눈이 그 서글픈 눈을 달래는 말을 건냈다.


“이제 너도 엄청나게 바빠질 거고.”

“그래······. 그럼 이리나를 잘 부탁해.”

“벌써 갈 것처럼 말하네.”


조금은 슬픈 이야기였다. 정말 칼같이 가는구나.


“괜히 한 번 더 하면서 시간을 끌어봤자 그리움만 더 커질 테니까.”

“그리움······. 그렇긴 하네.”


“그리고 우리 딱히 연인이라고 할 만한 일도 없었고.”

“그건 좀 아쉽네.”


“그러니까 더욱 바라는 점이 하나 있지.”

이본이 손을 들어 루티에의 뺨을 스르륵 매만졌다.


“아, 그건 조금 그래.”

그러나 언제부터 방어의 귀재였는지 모르겠으나 요리사 주제에 엄청난 속도로 그 손을 채어 원래의 자리로 돌려 놓았다.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이본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붙잡은 두 손의 힘을 꼭 주어 떨어지기 싫다, 이대로 헤어지는 것도 싫다는 것을 알렸다.


“우리 딱히 연인이라고 할 만한 일도 없었잖아?”

“흠······.”


그대로 돌아온 말은 비슷한 말이었지만 어조가 조금 달랐다.


일에는 단계가 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 그럼 그 3년의 시간 뒤에는 꼭 연인다운 일을 하도록 노력하면 되는 걸까?”

“아마도.”

“그럼 조금 더 힘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


쑥쓰러운, 기사지만 여전히 소년인 그의 얼굴에서 그 누구보다 설렘이 드러났다.


마치 선물을 이미 받은 것 같은 그 앞서 나가는 마음이.


“약속이야. 다시 만나면······.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루티에가 말을 마치자 이본이 덥썩 그 여리고 금방 부러질 것 같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그래. 반드시. 결코 그렇게 할께.”

“나도 그리울 거야.”


부들부들 그리움에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누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쪽이겠지.


“남자가 이 정도로 울기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축이 되어준 것도 너니까.”


남자의 눈물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신분이 신분인지라 더욱 더.


잠깐 정적이 흐르고 이본이 팔을 풀어 루티에를 놓았다.


눈물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루티에의 표정도 살짝 슬픔을 담고 있었지만 이런 일이야 몇 백 년을 산 사람에게 그리 슬픈 일은 못 되나보다.


눈물이 흐르는 일은 없었다.



“그럼 더 보고 싶기 전에 얼른 가봐야지.”

“흠, 이미 올 사람은 왔네.”


저 편에서 마차가 따각따각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마부석에서 캐토린이 손을 흔들었다.


“어이, 계속 그렇게 있으면 평생 못 간다고.”

“그런 건방진 사람이 뭐가 좋다고 그래?”


불쑥 얼굴 하나가 더 솟아 나왔다. 하이트가 배시시 웃으며 이본을 불렀다.


“그럼 부디 건강히.”


이본이 공손히 손을 앞으로 뻗고 나서 접더니 허리를 그대로 굽혔다.


“물론, 나의 기사님 역시.”


루티에가 얼마 있지도 않은 치맛단을 붙잡아 슬쩍 올리고 다리를 꼬며 허리를 굽혔다.

우아한 동작이었지만 그 괴상한 감각의 치마 덕에 조금 웃긴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사를 주고받은 이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차를 향해 달려 잽싸게 올라탔다.

다시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었다.



“분명, 다시 만날 거야.”


루티에 역시 획 돌아서는 뒤도 보지 않았다.


“얼마 걸리지도 않을 일.”


§


달그닥, 달그닥. 한 숨 자고 일어난 이본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분명 군것질하려 넣어둔 것이······.


하지만 짚이는 것은 새까맣게 탄 재와 타다 남은 누군가의 머리카락으로 보이는 것뿐이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최근 일이 워낙에 많았어야 말이지.


하지만 언젠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라고는 했지만······.


그 언젠가가 언제가 될 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채로.


4부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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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5장.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자 (2) 19.10.27 66 0 11쪽
200 5장.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자 (1) 19.10.25 32 0 11쪽
199 4장. 불멸자 (4) 19.10.24 28 0 13쪽
198 4장. 불멸자 (3) 19.10.23 28 0 12쪽
197 4장. 불멸자 (2) 19.10.20 30 0 13쪽
196 4장. 불멸자 (1) 19.10.20 27 0 13쪽
195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6) 19.10.19 30 0 13쪽
194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5) 19.10.17 32 0 13쪽
193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4) 19.10.16 21 0 12쪽
192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3) 19.10.13 28 0 15쪽
191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2) 19.10.12 25 0 13쪽
190 3장. 교두보, 바르셀로나 (1) 19.10.11 23 0 13쪽
189 2장. 복수의 다짐 19.10.10 32 0 13쪽
188 1장. 광풍의 바이에른 (5) 19.10.09 24 0 13쪽
187 1장. 광풍의 바이에른 (4) 19.10.06 103 0 14쪽
186 1장. 광풍의 바이에른 (3) 19.10.05 30 0 14쪽
185 1장. 광풍의 바이에른 (2) 19.10.04 27 0 12쪽
184 1장. 광풍의 바이에른 (1) 19.10.03 27 0 11쪽
183 5부. 시작은 붉은색, 그리고 검푸른색의 결말 19.10.02 28 0 12쪽
182 4부 부록. 지금까지의 시간선 정리와 4부까지의 인물 정리 19.10.02 37 0 19쪽
181 0장. 0번째 왕자 (11) 19.09.21 27 0 13쪽
180 0장. 0번째 왕자 (10) 19.09.20 66 0 13쪽
179 0장. 0번째 왕자 (9) 19.09.19 38 0 16쪽
178 0장. 0번째 왕자 (8) 19.09.18 76 0 12쪽
177 0장. 0번째 왕자 (7) 19.09.15 47 0 13쪽
176 0장. 0번째 왕자 (6) 19.09.14 52 0 14쪽
175 0장. 0번째 왕자 (5) 19.09.12 37 0 14쪽
174 0장. 0번째 왕자 (4) 19.09.11 58 0 13쪽
173 인형의 외전. 보내기 싫을 정도로 (7) 19.09.10 36 0 17쪽
172 0장. 0번째 왕자 (3) 19.09.05 33 0 13쪽
171 0장. 0번째 왕자 (2) 19.09.04 45 0 14쪽
170 인형의 외전. 보내기 싫을 정도로 (6) 19.09.03 34 0 12쪽
169 0장. 0번째 왕자 (1) 19.09.01 56 0 13쪽
» 마지막 장. 이 앞으로 그녀의 말은 모두 거짓말 19.08.31 41 0 20쪽
167 6.5장. 종장을 맞이하는, 그 남자는 그렇게 19.08.30 36 0 15쪽
166 6장. 마왕 살해자와 원령들이 함께 하는 밤 (3) 19.08.29 33 0 12쪽
165 6장. 마왕 살해자와 원령들이 함께 하는 밤 (2) 19.08.28 38 0 14쪽
164 인형의 외전. 보내기 싫을 정도로 (5) 19.08.27 39 0 12쪽
163 6장. 마왕 살해자와 원령들이 함께 하는 밤 (1) 19.08.25 37 0 15쪽
162 5장. 새벽이 엄습하는 오솔길, 그 옛날의 폐허가 (9) 19.08.24 4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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