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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추리무협(追利無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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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최근연재일 :
2022.06.29 00:10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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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4
추천수 :
803
글자수 :
388,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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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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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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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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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3

DUMMY

벽운경은 가만히 눈을 감은 뒤 긴 호흡을 들이마셔 운공을 행했다. 단전부터 시작된 잔잔한 내공의 물결이 그의 체내에 일주천 경로를 따라 흐르며 마침내 거센 파도가 되었다. 그것은 곧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작은 폭발을 일으켰고 그러자 그의 주위를 감싸는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는 연영공 오 층 경지의 기운을 해방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황옥 소협, 무대에 올라가실 시간입니다.”


자신을 담당하는 집화단원의 부름에 벽운경의 눈이 조심스레 뜨여졌다. 당당한 걸음으로 무대에 입장한 그의 맞은편에서 매산문의 탁미루가 걸어나왔고 마주 본 그녀는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긴장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탁미루의 모습에 흥미가 동한 벽운경이 그녀에게 물었다.


“이렇게 높은 무대까지 올랐음에도 떨지 않는 것을 보니 소저는 어린 나이에 심기가 대단하구려.”


“그야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잖아. 당신처럼 내 겉모습만 보고 우습게 여기는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건.”


“나는 이미 정욱이 꺾였을 때 그대를 인정했거늘 이제 보니 그대는 자존감보다는 자격지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군.”


“뭐라고? 이 허여멀건하게 생긴 놈이!”


탁미루의 서투른 격장지계는 벽운경에게 일절 통하지 않았고 되려 역으로 속내가 드러난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벽운경은 그녀의 욕설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뒤 미루를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손짓하여 선공을 양보했다.


“내 그대보다 조금 먼저 세상에 나온 자의 도리로 기꺼이 선수(先手)를 양보할테니 전력을 다해 들어오시오.”


“... 약속 하나 하지. 이 아가씨께서 반드시 네놈을 계집애처럼 앵앵 우는 신세로 만들어주마!”


격장지계를 쓰려다 역으로 도발당한 탁미루가 검을 먼저 빼어들었다. 그녀는 몸을 웅크린 듯 낮은 자세를 유지하다 돌연 땅을 박차며 날아와 벽운경을 향해 좌우로 검을 흩뿌렸다. 그것은 일전 남정욱에게 시전한 우아한 검무가 아닌 빠르고 난폭한 기세 일변도의 연속 공격이었다.


같은 사람의 검이라 보기 의심될 만큼 상이한 쾌검이었지만 벽운경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탁미루의 검에 맞서 몸을 앞으로 전진시키며 손을 뻗어 대응했다.


쇅쇅- 샤샤삭-


후웅- 파파팟


벽운경은 다가오는 탁미루의 검에 내력을 실은 권을 흩뿌리는 것으로 단번에 상쇄시켰다. 이에 질세라 탁미루 또한 검에 담은 내력과 휘두르는 횟수를 늘리며 어떻게든 벽운경의 철벽같은 수비를 뚫으려 했지만 여전히 그의 몸에 검을 닿게 하는데에 실패했다.


"이봐... 내 눈만 이상한 건가? 저 두 사람 왠지 육신성보다 더 대단한 솜씨를 지닌 것 같지 않아?"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저렇게 훌륭한 실력을 지닌 젊은 고수들이 어디에 숨어 지냈던 거지?"


"왠 미친 놈이 무선 어르신의 후인을 자처했나 했는데... 아무래도 저 젊은이는 진짜가 맞나봐."


여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인 두 사람의 대결에 객석의 군중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으나 두 사람의 공방이 본격적으로 이어지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전까지 있었던 다른 이들의 비무를 새까맣게 잊혀지게 만들기에 충분히 높은 수준의 대결이었고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여 관람에 몰두하게 되었다.


폭풍우처럼 몰아친 탁미루의 모든 검을 받아친 벽운경은 검풍에 너덜해진 소매 자락을 찢어 바닥에 내던졌다. 놀랍게도 옷을 찢어 드러난 벽운경의 손은 피 한방울 흐르지 않는 매끈한 모습이었다. 손톱 손질을 막 마친 사람처럼 양손을 들어 손톱을 확인한 벽운경은 따분한 얼굴로 탁미루를 도발했다.


"손톱을 다듬는 솜씨가 참으로 형편없군. 소매가 엉망이 되었잖나?"


"내 검이... 고작 손톱 깎는 수준으로 보였단 말야?"


"일전에 정욱에게 보인 그 검이 더 쓸만해 보였는데 이제는 쓰지 않는거요? 분명 지금의 단조로운 검 보다는 상승의 검도(劍道)로 보였는데 말이지.“


“...재수 없게 잘난 척 하기는!”


탁미루는 결국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가에 물기가 맺히고 말았다.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얼굴을 한 탁미루는 혼자만이 들릴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절대로 중원인들 앞에선 쓰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알면 혼내실지도 몰라.”


‘중원인?’


“알게 뭐람. 어차피 아버지도 지금 안 계신데.”


혼잣말을 마친 탁미루는 소매를 들어 눈물을 훔쳐낸 뒤 숨을 고르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검을 바로 잡은 이전까지의 자세와는 달리 역수로 검을 뒤집은 그녀는 마찬가지로 왼손에 빼낸 검집을 역수로 잡아 쌍검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빙글 빙글 돌며 검과 검집을 부딪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탁- 탁- 탁탁-


탁미루가 내는 불규칙한 박자의 소음은 조금씩 벽운경의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벽운경 수준의 고수의 평정심을 흐트러트리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니었지만 탁미루는 어느새 그를 향한 살기와 투기를 전부 지우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얼핏 경건하게 보이기까지 한 탁미루의 황홀한 춤에 홀린 관객들은 사술에 걸린 듯 정신없이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마찬가지로 벽운경도 대결을 잊은 채 탁미루의 춤을 감상하게 되었고 그녀의 춤사위가 점점 격렬해질 때마다 그의 몸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사기(邪氣)에 침범당한 것을 깨닫게 된 벽운경은 사기와 상극이라는 연영공의 기운을 급하게 끌어올려 이에 대항하려했다.


그러나 연영공을 운용함에도 그를 매료시킨 탁미루의 기운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고 벽운경은 오히려 몸안에서 알지 못할 기운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기운의 출처는 단전이 아닌 다른 곳, 벽운경이 가진 또다른 힘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백회, 인당혈부터 새어나온 폭발적인 기운은 어깨와 상완을 따라 내려왔고 벽운경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양 손을 앞으로 내밀어 범람하는 힘을 외부로 발출하였다. 무의식 중에 발현한 패도적인 위력의 공격에 아차 싶었던 벽운경은 최대한 공력을 회수하였다.


그럼에도 미처 회수하지 못한 공력을 담은 벽운경의 쌍장이 탁미루를 적중시켰고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내뱉으며 이삼 여 장이 넘게 멀리 나가 떨어졌다.


“커헉!”


내상을 입었는지 날아간 탁미루는 한 줌 가량의 피를 토하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벽운경은 서둘려 달려가 그녀의 맥을 짚어 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기맥은 심하게 손상되지 않았고 단지 외부의 공격에 놀라 내부의 기운이 진탕돼 불안정한 상태에 불과했다.


탁미루의 몸을 안아 반쯤 일으켜 세운 벽운경은 그녀의 명문혈로 진기를 불어넣어 의식을 되찾게 하였다. 그러자 곧 탁미루의 눈이 뜨였고 그녀는 외간 남자에 몸이 안겨 허리를 잡힌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크게 놀라 벽운경을 밀쳐내었다.


“으으...흐윽흑. 너... 기억했어. 두고 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한참동안 벽운경을 노려보던 탁미루는 그대로 몸을 돌려 무대 밖으로 쏜살같이 도망쳤다. 이윽고 심판이 벽운경의 승리를 선언했고 벽운경은 상처의 용태 확인과 치료를 위해 의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흐음... 상의가 온통 붉게 젖은 것을 보고 놀랐지만 다행히 상처가 골수까지 치미지 않고 피륙의 손상만으로 그쳤소. 한 치만 더 깊었어도 근육이 다칠 뻔 했으니 이는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겠소.”


“음. 치료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내가 한 게 무어가 있겠소. 공자가 평소에 몸을 잘 단련했기에 이리 가벼운 상처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오. 그럼 덧나지 않게 정양 잘 하시구려.”


당부를 마친 의원은 다른 환자를 돌보기 위해 벽운경의 침상을 떠났고 벽운경은 그대로 곰곰이 눈을 감고 탁미루의 검에 대한 감상에 빠졌다.


‘그 검은 뭐였던 거지?'


탁미루가 쏟아낸 후반부의 검은 검술보단 춤에 가까웠다. 벽운경은 단순한 춤사위에 불과한 그 검무가 칠 층 경지에 연영공에 다다른 그의 평정심이 흔들린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심마(心魔)에 흔들릴 때마다 그를 늘 자극해왔던 목소리도 평소와 달리 그녀의 검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그를 더욱 심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벽운경의 고민은 머지 않아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의해 잊혀지게 되었다.


“천하의 황 형제를 의방의 신세를 지게 만들다니, 역시 그 소저가 보통은 아니었나보오.”


“당신은...?”


어디선가 낯이 익은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은 어깨를 붕대로 단단히 동여맨 봉씨 세가의 소가주 봉태석이었다. 손을 올려 포권으로 인사를 건넨 봉태석은 팔을 잠시 올린 것만으로 통증이 있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봉씨 세가의 봉태석이라고 합니다. 의복에 묻은 피의 양이 상당해 보였는데 상태는 어떠신지요?”


“다행히 피륙의 상처로만 그쳤소. 그러는 봉 형은 어떻소.”


“황 형과 달리 제 사정은 그렇지 못하군요. 의원은 최소 나흘은 검을 잡지 말라하던데 이제 곧 비무가 있으니...”


“거 참 안타깝구려.”


“그럼, 조만간 또 봅시다.”


‘또 보자니, 지금 저 몸으로 두영모를 이기겠다는 소리인가?’


모든 것을 체념한 자의 표정으로 보기엔 너무도 환한 얼굴을 한 봉태석은 그렇게 두영모가 기다리는 비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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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자귀환(死者歸還)-1 22.06.27 132 6 10쪽
69 대연회(大宴會)-3 22.06.22 140 5 10쪽
68 대연회(大宴會)-2 +2 22.06.21 139 7 14쪽
67 대연회(大宴會)-1 +2 22.06.20 143 7 13쪽
66 마선 강림(魔仙 降臨)-4 +2 22.06.18 140 7 10쪽
65 마선 강림(魔仙 降臨)-3 +5 22.06.16 150 7 12쪽
64 마선 강림(魔仙 降臨)-2 +5 22.06.15 146 6 13쪽
63 마선 강림(魔仙 降臨)-1 +2 22.06.14 160 6 9쪽
62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5 +4 22.06.13 145 7 16쪽
61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4 +3 22.06.12 145 7 9쪽
»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3 +1 22.06.11 141 6 10쪽
59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2 +1 22.06.10 150 6 10쪽
58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1 +1 22.06.09 158 5 9쪽
57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5 +2 22.06.08 171 5 11쪽
56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4 +2 22.06.07 148 7 9쪽
55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3 +2 22.06.06 153 8 9쪽
54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2 +2 22.06.05 166 6 9쪽
53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1 +3 22.06.04 170 6 13쪽
52 무림맹행(武林盟行) +3 22.06.04 166 6 17쪽
51 탐부순재(貪夫殉財)-7 +2 22.06.03 153 6 13쪽
50 탐부순재(貪夫殉財)-6 +2 22.06.03 157 6 9쪽
49 탐부순재(貪夫殉財)-5 +1 22.06.02 163 5 10쪽
48 탐부순재(貪夫殉財)-4 +2 22.06.02 169 6 11쪽
47 탐부순재(貪夫殉財)-3 +2 22.06.01 156 6 11쪽
46 탐부순재(貪夫殉財)-2 22.06.01 162 5 9쪽
45 탐부순재(貪夫殉財)-1 +4 22.05.31 165 8 11쪽
44 귀서역로( 歸西域路)-5 +2 22.05.31 165 7 12쪽
43 귀서역로( 歸西域路)-4 +2 22.05.30 176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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