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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추리무협(追利無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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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최근연재일 :
2022.06.29 00:10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17,566
추천수 :
803
글자수 :
388,926

작성
22.05.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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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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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0쪽

귀서역로( 歸西域路)-4

DUMMY

“하아아-”


스윽-


늦은 밤, 교대를 기다리며 하품을 하고 있던 해마상단의 표사 하나가 손을 올려 제 입을 가리려는 중 뒤에서 나타난 누군가에 의해 목에 붉은 실선이 그어지며 그대로 쓰러졌다. 무너지는 표사의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그의 목을 그은 장본인은 그것마저도 계산에 넣은 듯 자연스레 그의 몸을 떨어지기 전에 받아냈다.


암살단의 서열 사 위, 밀리크는 표적인 벽운경의 천막 부근을 경비하는 표사 하나를 은밀히 제거한 뒤 정찰을 보낸 부하들을 기다렸다. 머지 않아 그를 따르는 십육 인의 부하들이 차례로 돌아와 경과를 보고했다.


“근방의 모든 경비들을 전부 정리했습니다.”


“잘했다. 그럼 표적을 제거하고 어서 단장님께 합류하도록 하자.”


밀리크를 위시한 암살단원들이 천막의 바로 앞까지 접근했음에도 천막 내부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달빛을 반사해 천막에 비친 표적의 그림자는 여전히 간이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암살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이상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만전을 기하는 신중한 움직임을 취했다.


“천막 양 측으로 여섯 씩 날개를 펼쳐 접근하라. 천막 안에는 우선 나와 이 셋만 들어간다.”


좁은 천막 안에 여러 명이 한꺼번에 진입하게 되면 교전시 혼란만 일어나기 마련이다. 밀리크는 일행을 나누어 혹시 모를 표적의 도주를 방지하고 암살에 필요한 최소 인원만을 대동하기로 결정했다.


표적이 머무는 천막 내부의 구조는 꽤나 단출했다. 모래 위에 천막의 지주를 이루는 긴 막대에 달린 꺼진 등불과 나무에 천을 덧대 만든 간이 침대, 그리고 그 옆에 세워둔 검 한 자루.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위에 잠든 사내가 바로 그들이 노리는 제거 대상이었다. 남자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죽은 사람처럼 잠들어 있었다.


“밀리크 님, 단장님께서 이자는 무림인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코 앞까지 접근했는데도 이자는 저희의 기척 하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카심, 방심은 금물이다. 쓸 데 없는 소리말고 어서 임무에 충실해라.”


밀리크의 지시에 따라 카심이라 불린 사내가 움직였다. 그는 먼저 침대 옆의 세워둔 표적의 무기를 들어 조심스럽게 동료에게 건넨 뒤 품 안에서 비수를 꺼내들었다. 단숨에 숨통을 끊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칼날에 잔뜩 맹독을 먹여둔 녀석이었다.


‘네 동료도 곧 따라 보낼 터이니 외롭다 원망치 말거라.’


비수를 거꾸로 세운 카심은 그대로 벽운경의 심장을 향해 세차게 찔러나갔다.




성공을 장담한 자신의 암습이 실패로 돌아간 게 언제였던가? 미숙한 예비 단원 시절? 여덟 명이나 되는 호위를 두었던 이국의 대장군? 분명한 사실은 부마락 최고 암살자의 이명(異名)인 붉은 뱀의 이름을 단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을 직감했음에도 붉은 뱀, 타르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심장이 오랜만에 뛴다! 그동안 심살(心殺)의 경지에 이르렀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 나는 아직 심장이 다시 뛸만 한 상대를 찾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비록 거죽 정도만 베인 얕은 상처였으나 남정욱은 자신의 피를 보고 이죽거리는 상대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비겁하게 숨어서 공격한 주제에 득을 봤다고 의기양양하는 꼴이라니.


의형인 벽운경에 의해 팔자에도 없는 점잖은 노릇을 하고 있지만 본디 드잡이질을 하는 왈패들의 대장이었던 남정욱이다. 누군가 거들먹거린다면 그것은 상대가 아닌 자신이어야만 했다. 남정욱은 오랜만에 본성을 드러내어 일갈했다.


“이 어르신이 반드시 네놈들로 피떡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말겠다!”


남정욱은 성난 수소같이 타르칸을 향해 무작정 들이 받았다. 남정욱의 기세에서 위험함을 감지한 암살단 서열 이 위의 엘림은 허벅지에 매어놓은 팔뚝 길이의 소검을 양 손에 꺼내 쥐고 타르칸 앞으로 몸을 날려 그를 마주 대했다.


“건방진 놈!”


“이 코쟁이들이 아까부터 자꾸 뭐라는 거야?”


솨악-솨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남정욱의 쌍장이 쏘아졌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엘림은 양 손에 쥔 소검을 역수(逆手)로 바꿔 잡은 뒤 남정욱인 쌍장에 맞서 내밀었다.


파캉-캉!


인간의 피륙과 쇠를 벼려 만든 검이 부딪혔음에도 그들의 충돌에선 금속의 파열음이 들렸다. 복면인과 일 합을 주고 받은 남정욱은 검과 맞부딪힌 손이 아린건지 수 차례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으아 따가워. 이래서 권장을 쓰는 인간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맨손으로 날붙이를 두들기니 손이 남아날 턱이 있나.”


남정욱은 사부에게서 검을 기반으로 하는 병장기 계열의 무공을 주로 익혔기에 양 주먹을 내공을 둘러 보호했음에도 검과 맞닿자 제법 적잖은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와 마주 상대한 엘림의 경우는 불행히도 그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흐으...내 손! 내 손이...”


단 한 번의 격돌에 손목이 부러져 흔들거리는 것을 본 엘림은 정신 착란에 빠져있었다. 눈이 풀려 횡설수설하는 제 주인과 달리 붙잡은 검을 놓치지 않은 채 아래로 꺾여 대롱거리는 엘림의 손은 분위기를 한층 더 기괴하게 만들었다.


엘림의 암살단 입단 동기이자 서열 삼 위의 바샤드는 착란에 빠진 제 친우의 뺨을 두들기며 진정시키려 들었다.


“엘림, 정신차려. 여기는 적진이다.”


“그치만...내 손...내 손이 돌아...읍!”


푸욱-


순간 금빛 섬광이 지나가며 엘림의 가슴에서 튀어나온 뜨거운 핏물이 바샤드의 얼굴을 타고 내려와 모래에 스며들었다. 착란 상태인 엘림의 상태가 임무에 부적합하다 판단을 내린붉은 뱀 타르칸이 순식간에 그를 처리한 것이다.


“저자는 내가 상대할테니 나를 엄호해라.”


“...예.”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료를 죽였음에도 타르칸은 바샤드에게 일말의 정당화를 늘어 놓지 않았다. 그저 임무 완수를 위해서 앞으로 해야 할 것에 대한 지시만 내렸고 바샤드 또한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암살자란 원래 그런 것이었으니까.


저 사내와의 근접전은 위험하다. 그렇기에 둘 중 실력이 떨어지는 바샤드가 원거리에서 암기로 원호하며 타르칸이 그를 상대한다. 타르칸이라고 그와의 정면 대결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우두머리가 되며 물려 받은 ‘용의 어금니’가 있었다.


용의 어금니란 오래 전부터 부마락에서 대를 이어 내려온 신물(神物)로 최고의 암살자인 붉은 뱀들에게 전승되는 곡도(曲刀)였다. 그것의 칼날은 진한 황금빛을 띠고 있다만 그렇다고 그것의 재질이 황금이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처음 이것이 만들어졌을 무렵에는 청백색이 감도는 밝은 은빛이었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의 피를 머금으며 점점 붉어지기 시작해 타르칸이 물려 받았던 근래에는 핏기가 감도는 짙누런 황금색이 되었다. 이 검이 온전히 짙은 적색(赤色)이 되는 순간 사막에 암살자의 신(神)이 탄생한다 전해져 내려왔다.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바샤드는 용의 어금니의 빛깔이 타르칸이 물려받았을 당시보다 지금이 조금 더 붉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었다. 어쩌면 자신들의 대에서 암살자의 신을 영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담을 누워있는 엘림과 나눈 적도 있었다. 비록 그 엘림은 전설의 일부가 되어 쓰러져 있었지만 말이다.


동료를 야멸차게 살해한 뒤 비릿한 웃음을 짓고 다가오는 타르칸의 모습을 본 남정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완전 제대로 미친 놈들이구나.’


자신 역시 시장통에서 굴러먹던 왈패 시절에 부하들을 눈물빠지게 두들겨 팬 적은 있었으나 동료를 죽인 적은 없던 남정욱이었다. 흉흉한 상대의 기세에 경직된 남정욱은 주위를 둘러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그러자 남정욱의 눈에 쓰러진 엘림의 손에 들린 소검이 들어왔다.


그러나 엘림의 시체는 자신보다 상대에게 가까이 있었고 적들이 무기를 호락호락 내어줄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저 소검은 상대의 손에 들린 곡도를 상대하기엔 너무 짧아 보였다.


상대를 어찌 상대할 지 골머리를 앓던 남정욱의 눈이 모닥불 가에 닿았다.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의 불씨는 이미 암살자들과의 교전 중 흩날린 모래바람에 꺼져있었다. 돌연 무언가가 떠오른 남정욱은 소매를 힘껏 휘둘러 모닥불 가에 바람을 한 차례 날려보냈다.


그러자 완전히 연소되어 재가 되어버린 나무 찌꺼기들이 사방에 퍼졌고 그것은 적들의 시야를 가리기에 족했보였다. 그러나 상대는 암살의 전문가들이었기에 연막을 다루는 데 정통한 자들이었다.


“흥! 얕은 수작 따위 통할 성 싶으냐!”


한 손의 소매를 들어 눈을 가린 암살자들은 곧장 반대 손으로 소매를 잡아 아래로 길게 늘여 잿가루를 막고 벌어진 섬유 사이로 시야를 확보해 이어질 남정욱의 기습을 대비했다.


그러나 남정욱이 택한 것은 기습이 아니었다. 꺼진 모닥불 가로 달려간 그는 검게 타 숯이 되어버린 나무 조각 가운데 적당한 길이의 막대를 잡고는 손으로 튕겨 강도(剛度)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정도면 충분하겠군.”


숯을 고르는 사이 남정욱의 옷과 얼굴은 검댕이 묻어 꽤나 볼품없는 꼴이 되었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들어 올린 기다란 막대 숯으로 타르칸을 가리키며 말했다.


“뒤졌다고 세 번 복창하면 살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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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자귀환(死者歸還)-1 22.06.27 132 6 10쪽
69 대연회(大宴會)-3 22.06.22 140 5 10쪽
68 대연회(大宴會)-2 +2 22.06.21 139 7 14쪽
67 대연회(大宴會)-1 +2 22.06.20 142 7 13쪽
66 마선 강림(魔仙 降臨)-4 +2 22.06.18 140 7 10쪽
65 마선 강림(魔仙 降臨)-3 +5 22.06.16 150 7 12쪽
64 마선 강림(魔仙 降臨)-2 +5 22.06.15 146 6 13쪽
63 마선 강림(魔仙 降臨)-1 +2 22.06.14 159 6 9쪽
62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5 +4 22.06.13 145 7 16쪽
61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4 +3 22.06.12 144 7 9쪽
60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3 +1 22.06.11 140 6 10쪽
59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2 +1 22.06.10 150 6 10쪽
58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1 +1 22.06.09 158 5 9쪽
57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5 +2 22.06.08 170 5 11쪽
56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4 +2 22.06.07 148 7 9쪽
55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3 +2 22.06.06 153 8 9쪽
54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2 +2 22.06.05 166 6 9쪽
53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1 +3 22.06.04 169 6 13쪽
52 무림맹행(武林盟行) +3 22.06.04 166 6 17쪽
51 탐부순재(貪夫殉財)-7 +2 22.06.03 153 6 13쪽
50 탐부순재(貪夫殉財)-6 +2 22.06.03 156 6 9쪽
49 탐부순재(貪夫殉財)-5 +1 22.06.02 163 5 10쪽
48 탐부순재(貪夫殉財)-4 +2 22.06.02 169 6 11쪽
47 탐부순재(貪夫殉財)-3 +2 22.06.01 155 6 11쪽
46 탐부순재(貪夫殉財)-2 22.06.01 162 5 9쪽
45 탐부순재(貪夫殉財)-1 +4 22.05.31 165 8 11쪽
44 귀서역로( 歸西域路)-5 +2 22.05.31 165 7 12쪽
» 귀서역로( 歸西域路)-4 +2 22.05.30 176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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