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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추리무협(追利無俠)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최근연재일 :
2022.06.29 00:10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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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3
추천수 :
803
글자수 :
388,926

작성
22.06.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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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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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1쪽

탐부순재(貪夫殉財)-4

DUMMY

벽운경처럼 장권(掌拳)을 주로 쓰는 이가 무기를 든 자를 상대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거리이다.


같이 팔을 뻗음에도 상대는 닿고 이쪽은 닿지 않는다는 것은 일방적인 손해가 된다. 그렇기에 장권을 쓰는 이에게 상대에 손이 닿는 거리까지 치고 들어갈 수 있는 폭발적인 보법은 전투에 있어 당연 필수적인 소양이었다. 물론 근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무선과 대련을 통해 익힌 벽운경의 보법이 천하일품이란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한편 광천은 자신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오는 벽운경을 향해 진기를 두른 봉을 아래로 힘껏 내리쳤다. 바람을 찢는 흉흉한 소리를 내는 목봉에 벽운경의 머리통이 그대로 쪼개질 찰나, 순간 벽운경의 신형이 바람에 흩어지는 안개처럼 뿌옇게 흔들렸다.


기묘한 움직임으로 어깨 한 뼘 분량의 거리를 두고 광천의 공격을 흘려낸 벽운경은 그대로 광천의 가슴을 노리고 들어갔다. 마치 물 흐르듯이 회피와 반격이 한 동작으로 이루어진 절묘한 공격에 광천은 몸을 뒤로 젖혀 가까스로 일 장을 피해냈으나 간담이 서늘해져 이어타정의 수법으로 몸을 튕겨 더욱 거리를 벌렸다.


‘방금 걸 반응하다니, 관에도 제법 괜찮은 솜씨를 가진 무인이 있었군.’


확실히 적중했다 생각한 공격이었건만 옷깃만 쓸고 돌아온 아쉬움에 벽운경은 출수한 손을 거두어 꼼지락거렸다. 상대의 실력에 감탄한 벽운경과 달리 호된 꼴을 당할 뻔한 광천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일개 상단의 표사 수준이라 가벼이 여겼더니 큰 망신을 당할 뻔 했다.’


광천은 사실 위금호가 지시한대로 상대에게 살수(殺手)를 쓸 마음까지는 없었다. 다만 상관의 비위를 맞춰줄 정도로 살짝 어루만져주어 벽운경의 교만한 말버릇을 고쳐 줄 심산이었다.


그러나 방금 주고받은 일 합을 통해 느낀 상대의 무위를 가늠해보건데 자신에 비해 그리 뒤떨어져 보이진 않았다. 실력이 비슷한 상대에게 손속을 둔다는 것은 되려 이쪽으로 하여금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 이상의 여유가 사라진 광천은 마음을 바로 잡고 먼저 움직였다.


진지한 자세로 임한 광천의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봉 끝은 채찍처럼 자유자재로 휘어져 벽운경의 머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한 방 한 방이 독사의 엄니처럼 위력적인 공격인 탓에 벽운경은 점점 더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어느새 벽 끝까지 밀려 더 이상 물러날 수도 없는 벽운경은 이번 대결에서 처음으로 내력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벽운경은 웅후한 내력이 담긴 손등과 손바닥을 이용해 광천의 공격을 한 쪽으로 밀어낸 뒤 몸을 한 바퀴 틀어 비어있는 광천의 가슴을 팔꿈치로 찍어 내려갔다. 그대로 두었다간 가슴뼈가 으스러질 터, 광천은 밀려난 봉을 두 손으로 맞잡아 벽운경의 공격에 대항했다.


쩌저적-


나무 찢어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광천의 봉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두 갈래로 찢어져버렸다. 엄선된 단단한 물푸레 나무로 만든 이 봉은 사용자의 체중을 견딜 만큼 탄성이 좋아 병사들의 훈련 병기로 애용되는 무기였다. 그런 물건을 종이처럼 찢어버린 벽운경의 공격은 그만큼 엄청난 위력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광천은 이에 당황하지 않고 예측이나 했다는 듯이 부러진 봉을 양 손에 짧게 잡아 단봉술(短棒術)로 공격을 전환하여 거세게 몰아쳤다. 무기가 짧아진 만큼 그 위력은 줄었으나 공격의 빈도는 두 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단봉술로 전환한 광천의 새로운 공격에 팔을 들어 고작 몸을 보호하는데 고작인 벽운경의 모습에 병사들은 제법 건방떨더니 결국엔 복날 두들겨 맞는 개꼴이 났다며 낄낄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보다 무예에 소양이 깊은 군관들은 그 광경에서 광천이 유효타는 하나도 없는 자잘한 공격을 연타하여 벽운경의 접근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려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서서히 거리를 좁힌 벽운경이 지른 발차기에 남아있는 봉 하나마저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이제 광천에게 남은 것은 부러진 반쪽짜리 봉 한 자루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광천은 또 한 번 자세를 바꾸었다.


부러진 봉의 끝자락을 말아 쥔 광천은 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마침 길이도 절묘하게 장검 길이 정도로 짧아진 터라 그의 모습은 꽤 그럴싸해보였다.


이번 역시 광천이 무공 교두로서 익힌 다양한 병기술을 이용한 임기응변 중 하나로 생각했지만 그가 취한 자세에서 풍기는 위압감은 예사 것이 아니었다. 여지껏 수십 합을 겨뤘음에도 상대의 공격에서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한 벽운경도 이번 광천의 검에선 절정검객의 기도를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벽운경 또한 연영공(然影功)을 통해 본신의 무공을 써야만이 상대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연영공의 기운을 끌어올린 벽운경과 검술을 쓰기 시작한 광천의 숨 막히는 대치에 모두가 침을 삼키며 긴장하던 순간 위금호의 부절이 두 사람의 가운데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만! 그만하면 되었다!”


두 사람의 본신 무공이 제대로 격돌할 찰나 위금호의 제지와 함께 두 사람의 대결은 다소 싱거운 결말을 맞이했다. 위금호는 벽운경의 무공이 예사 수준이 아님을 깨달았고 혹여나 관의 무공 교두가 일개 표사에게 망신당하게 되는 참사를 막으려 부절을 던져 대결을 중단한 것이었다.


“네 가진 솜씨를 보아 제법 콧대가 높을 만도 했구나. 허나 다음에도 그딴 태도로 본관을 능멸하려 든다면 그때는 내 군을 끌고 친히 네 목을 칠 것이다!”


“하명하겠습니다. 도독 어른.”


못마땅한 표정으로 용서를 선언한 위금호에게 벽운경은 포권으로 예를 표하였다. 그리고 초주검 상태가 되어 정신을 잃은 백 주사를 부축해 도독부의 정문을 빠져나왔다.


벽운경이 도독부를 떠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본 광천은 위금호에게 불만을 표했다.


“도독 어르신, 아직 승패가 결정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저들을 보내셨습니까?”


“흥,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면 결국엔 네가 이겼을 성 싶더냐? 황궁 직속 무사라 해서 내 너를 어여삐 여겨 수석 교두라는 높은 자리도 주었건만 이게 무슨 꼴이냐. 내 다음 입궁 때 황상께 이 사실을 아뢸 것이니 네놈도 짐을 쌀 준비를 하거라.”


“존...명...”


대결은 무승부로 끝이 났지만 그 결과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 쪽은 원하는 것을 얻고 무사히 돌아갔고 다른 이는 자신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위금호의 핍박에 광천은 자신이 무공을 가르치던 군관과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굴욕을 느꼈지만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백 주사, 정신이 드시오?”


“으으...여기가 어디오?”


“도독부는 아니니 안심하시오. 악 의원, 백 주사의 상태는 어떻소?”


도독부를 빠져나온 벽운경은 정신을 잃고 위중한 상태의 백 주사를 보살피기 위해 객점에 방을 구해 그의 몸을 눕히고 의원을 청했다. 그리고 그를 치료하고 진맥을 마친 의원의 입이 열렸다.


“천만다행으로 가죽과 근육만 상했을 뿐 뼈에는 손상이 가지 않았으니 안심하시오. 다만 심한 매질로 긴장하고 놀란 나머지 심(心)과 기(氣)가 많이 상했소. 한나절 정도는 약과 탕으로 안정을 취해야 될 듯 싶소.”


“알겠소. 악 의원, 고생이 많았소.”


“허허. 뭘 이런걸 다...”


진료를 마친 의원 악종산에게 벽운경은 품 안에서 꺼낸 은전을 튕겨 사례를 하였다. 생각보다도 후한 품삯에 악종산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붓을 들어 종이에 약재들을 주욱 쓰기 시작했다.


“약방에 가서 이 서첩을 보이면 약재를 내줄 것이오. 받은 약재들을 절반으로 나눈 뒤 한 탕기에 때려넣고 약한 불로 두 시진 졸인 것을 자기 전에 한 번, 일어나서 한 번. 그렇게 이틀 정도 들이키고 나면 반드시 쾌차할거요.”


“고맙소. 살펴가시오.”


의원 악종산이 사라지고 벽운경은 객점의 시동을 불러 악종산이 준 서첩을 내주어 약을 사오게 심부름을 보냈다. 그러나 몸을 제대로 일으키지도 못하는 백 주사는 약이 오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어서 상단주 어르신께 보고를...”


“그대로 있으시오.”


벽운경은 몸을 반 쯤 일으킨 백 주사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 다시 자리에 뉘였다. 그리고 불안과 초조함에 몸을 들썩이는 백 주사를 안정시키며 말했다.


“방금 의원의 말을 듣지 않았소? 한나절 정도는 정양해야 한다 하지 않았소.”


“그래도...”


“그 몸으론 말을 탈 수 없소. 괜히 길을 서두르다 도중에 병이 도져 객사하게 되면 대체 그 책임을 누가 짊어질 것이오?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보중하시오.”


“내...가족...”


늙은 노부모와 아내, 그리고 이제 다섯 살 박이 딸 아이를 떠올린 백 주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늦게 된 연유는 추후 내가 장 대인에게 말하리다. 백 주사도 알지 않소, 그가 우리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거.”


백 주사의 상태가 안정된 것을 확인한 벽운경은 그를 토닥인 뒤 방을 나서려 했다. 벽운경이 막 방문을 닫을 무렵, 백 주사가 돌아선 그를 잠시 불러세웠다.


“황 대협...”


“??”


“고맙소...내 오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소.”


“훗, 별일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구려. 그럼 쉬시오.”


벽운경이 나간 뒤 백 주사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주인의 명이라지만 나는 그를 죽이려 하였거늘 그는 오늘 내 목숨을 두 번이나 구했구나...’


백 주사는 도독부의 문초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끝끝내 입을 다물고 그대로 매를 맞아 죽기로 결심했었다. 장선재의 뇌물 공여 사실을 자백해 현장에서 풀려 난다해도 자신은 결국 원한을 품은 장선재나 배금태의 손에 죽고 말 것이다.


반면에 자신이 비밀을 엄수하고 죽고 나면 남은 가족은 장선재의 밑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기에 백 주사는 죽음을 택했다. 그러나 천운이 도와 황옥 덕분에 그는 도독부에서도 풀려났고 위중한 상황도 넘길 수 있었다.


주인의 청탁으로 죽이려한 대상이 은인이 된 탓에 백 주사는 심한 자괴감에 빠져 크게 괴로워했다. 그날 밤 백 주사의 방에선 소리 없는 오열이 크게 울려 퍼졌다.




“확실한가?”


“네, 교두 어른. 부상당한 사람도 있어 아직 양기현을 빠져나가지 않았다 합니다.”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나?”


“태문객점에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더러운 일로 돈을 번 놈들답게 돈이 썩어나는지 특실을 싹 점거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 친히 방문하지 않을 수 없지.”


은밀히 벽운경 일행의 정탐을 마친 수하와 대화하는 광천은 허릿춤에 매어 놓은 장검의 손잡이를 계속 매만졌다. 문득문득 보이는 날카롭게 벼린 칼날의 예기가 제 주인의 심정을 아는지 검집 안에서도 차갑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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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자귀환(死者歸還)-1 22.06.27 132 6 10쪽
69 대연회(大宴會)-3 22.06.22 140 5 10쪽
68 대연회(大宴會)-2 +2 22.06.21 139 7 14쪽
67 대연회(大宴會)-1 +2 22.06.20 142 7 13쪽
66 마선 강림(魔仙 降臨)-4 +2 22.06.18 140 7 10쪽
65 마선 강림(魔仙 降臨)-3 +5 22.06.16 150 7 12쪽
64 마선 강림(魔仙 降臨)-2 +5 22.06.15 146 6 13쪽
63 마선 강림(魔仙 降臨)-1 +2 22.06.14 159 6 9쪽
62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5 +4 22.06.13 145 7 16쪽
61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4 +3 22.06.12 144 7 9쪽
60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3 +1 22.06.11 140 6 10쪽
59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2 +1 22.06.10 150 6 10쪽
58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1 +1 22.06.09 158 5 9쪽
57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5 +2 22.06.08 170 5 11쪽
56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4 +2 22.06.07 147 7 9쪽
55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3 +2 22.06.06 153 8 9쪽
54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2 +2 22.06.05 165 6 9쪽
53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1 +3 22.06.04 169 6 13쪽
52 무림맹행(武林盟行) +3 22.06.04 166 6 17쪽
51 탐부순재(貪夫殉財)-7 +2 22.06.03 153 6 13쪽
50 탐부순재(貪夫殉財)-6 +2 22.06.03 156 6 9쪽
49 탐부순재(貪夫殉財)-5 +1 22.06.02 163 5 10쪽
» 탐부순재(貪夫殉財)-4 +2 22.06.02 169 6 11쪽
47 탐부순재(貪夫殉財)-3 +2 22.06.01 155 6 11쪽
46 탐부순재(貪夫殉財)-2 22.06.01 162 5 9쪽
45 탐부순재(貪夫殉財)-1 +4 22.05.31 165 8 11쪽
44 귀서역로( 歸西域路)-5 +2 22.05.31 165 7 12쪽
43 귀서역로( 歸西域路)-4 +2 22.05.30 175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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