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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추리무협(追利無俠)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최근연재일 :
2022.06.29 00:10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17,581
추천수 :
803
글자수 :
388,926

작성
22.06.01 11:29
조회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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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탐부순재(貪夫殉財)-2

DUMMY

늦은 밤까지 이어진 연회가 끝나고 날이 밝았다. 간밤에 마신 술로 저택이 떠나가라 코를 고는 남정욱과 달리 벽운경은 운기조식과 연무를 통해 아침을 맞이했다. 가볍게 연무를 마치고고 숨을 고를 무렵 상단에서 일하는 하인 하나가 벽운경을 찾아와 장선재의 전갈을 전했다.


전갈의 내용은 이러했다. 서대륙에서 일어난 일로 이번 상행의 물품 매입가가 지나치게 폭등해 차익을 얻지 못할 듯 싶으니 관청을 찾아가 통사정을 해 관세를 낮출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백 주사가 대남 도독부에 파견 나가게 됐는데 황옥, 즉 벽운경이 그 호위 업무를 수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벽운경은 거액의 세금에 관련된 중요한 일에 남정욱이 아닌 자신에게 임무를 맡기는 것에 의아해했다. 그렇지만 도독부라면 고작 한나절이면 오가는 가까운 거리였고 공연한 일로 그에게 악감정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벽운경은 흔쾌히 수락한 뒤 가벼운 행낭을 준비해 대남도독부로 향하는 백 주사의 행렬에 동행했다.




“흐아암. 어제 너무 과음을 했나.”


해가 중천에 이른 시간이 되어서야 남정욱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평소 같았으면 진즉에 자신을 일으켜 아침 수련을 강요했을 벽운경이 보이지 않자 남정욱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남정욱은 근방을 지나가던 하인을 불러 벽운경의 행방을 여쭈어 보았고 그의 행선지를 듣고 난 다음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어쩐지... 이 꼴을 보면 난리를 칠 위인이 아무런 타박도 없다 싶었더니 일이 있었구만.’


그러고서는 자신이 세상 모르게 잠들었던 건 생각지도 않고 말 한 마디없이 홀로 임무를 수행하러 떠난 벽운경에 대해 남정욱은 불쑥 서운함을 느꼈다. 그러한 상념도 잠시 그는 자신을 찾아온 상단의 하인에게 장선재가 면담을 요청한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음... 형님도 없는데 장선재와 따로 얘기를 해도 되는 건가? 아무렴 어때. 그러는 자기도 혼자 돌아다니면서.’


남정욱이 하인을 따라 안채로 향하자 장선재가 고급진 다과들이 차려 그를 맞이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평소 가진 재산에 비해 씀씀이가 인색한 수전노인 장선재답지 않은 상차림에 괜시리 긴장하게 되었다.


남정욱을 발견한 장선재가 화색을 띠며 그를 반겼다.


“오오... 남 대협, 전 날에 있던 과음으로 피곤할텐데 이렇게 번잡스런 걸음을 하게해 미안하게 되었소.”


“별 일 없소. 그나저나 이 사람을 보자고 하는 연유가 무엇이오.”


양손을 맞잡아 포권을 하며 예의를 갖춘 장선재에게 남정욱은 그저 고개만 살짝 까닥여 말을 끊었다. 남정욱이 이러한 딱딱한 태도를 지니게 된 데는 다름 아닌 벽운경의 당부가 있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만일 남정욱이 원래의 행실대로 입을 가볍게 놀리게 된다면 혹여나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기에 벽운경은 그에게 장선재를 대할 때 과묵한 인물로 보이게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남정욱의 모습은 평소 자신 이상으로 과묵하고 주변에서 가까이 접근하기 힘든 분위기를 자아내는 벽운경과 어울려 꽤나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벽운경 없이 홀로 남아 누군가와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자리를 가진 것은 처음인지라 남정욱은 내심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남 대협과 황 대협이 이 상단에 온 지 어언 일 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시간은 무릅 화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오.”


남정욱은 그가 아는 한 가장 차가운 인물인 벽운경의 모습을 짐짓 따라했다. 그 연기를 통해 남정욱은 본래의 성품이 드러날 여러차례의 위기를 여지껏 꽤나 수월하게 넘겼지만 다음에 이어질 장선재의 말에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동안 사람을 통해 두 분에 대해서 따로 조사를 해두었습니다.”


“뭐요!”


감정이 과격해진 남정욱이 얼굴을 붉히며 사막의 복면인에게 강탈한 명도 ‘사락만(沙落彎)’에 손을 갖다 대었다. 날이 선 남정욱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장선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덤덤하게 차를 홀짝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두 분의 뛰어난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저는 상인입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상단의 명운이 달린 큰일을 무턱대고 맡길 순 없지 않습니까.”


“이이...”


남정욱은 장선재가 몰래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의 말은 확고한 정론이었기 때문에 차마 별다른 반박의 말을 할 수 없었다.


“남 대협께서는 제법 화려한 이력을 지니셨더군요. 하지만 계나라 재상 고보는 소금장수 출신이었고 하나라 충일왕의 어머니는 춤과 웃음을 파는 무희였습니다. 사람에게 과거는 그리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이지요.”


“그래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뭐요.”


“남 대협께서는 제 여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장영 낭자 말이오?”


“달리 또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장차 그 아이의 짝으로 남 대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


거뭇한 욕심이 면상에 그득한 제 아비와 달리 올해 열여섯이 되는 장선재의 무남독녀 장영은 설부화용(雪膚花容)한 용모의 단아한 규수였다. 용모에 걸맞은 조신한 몸가짐은 물론 장선재의 악행에 피해를 입어 불우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제 아비 모르게 양식을 베풀기도 하는 고운 마음씨를 가진 여인이었다.


게다가 늦은 나이까지 아직 아들을 얻지 못해 후사를 얻지 못한 장선재였다. 만일 누군가 장영과 혼인하여 그의 데릴사위가 된다면 그자는 단숨에 대남 제일 거부인 장선재의 재산과 해마상단을 물려받을 거부가 될 것이 분명했다.


장영을 자신과 맺어주고 싶어하는 장선재의 말에 남정욱은 잠시 연기하는 것을 잊고 동공이 크게 떨리게 되었다. 허나 이어지는 장선재의 말에 남정욱의 마음은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사내답게 생긴 준수한 용모에 뛰어난 무공을 지닌 남 대협이라면 제 딸아이를 보내도 마음이 놓이겠지요. 허나 저는 황 대협, 아니 그 황옥이란 자가 영 마음에 걸립니다.”


“...”


“조사를 통해 과거를 알게 된 남 대협과는 달리 황옥은 끝내 그를 아는 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절정 고수. 저는 그런 사람과 남 대협이 왜 저에게 오게 되었는지가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곽 노야가 말하지 않았소. 우연히 회갈촌을 향하던 나와 황 형이 습격당하던...”


“남 대협, 저는 욕심이 많은 인간이지만 바보는 아닙니다. 아무리 높은 보수를 받는다 하더라도 두 사람만한 절정 고수가 대남같은 변방 상단에서 일개 호위무사로 그 무공을 썩힌다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그게...”


“말해주십시오. 남 대협과 황옥은 무슨 관계입니까? 아니 대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저의 상단에 접근하셨습니까?”


평소 남정욱을 만날 때마다 실실대며 연신 굽신거리던 비굴한 모습을 보인 장선재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다만 그 자리엔 대남 일대를 호령하는 전귀(錢鬼) 장선재가 있었을 뿐.


남정욱은 일 장으로 단숨에 장선재를 쳐죽일 수도 있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그의 위세에 기가 눌려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결국 남정욱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대답을 회피하며 방을 나서게 되었다.


“내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남 대협의 용단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방을 나서는 남정욱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는 자세를 유지하던 장선재는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다음에 바로 허리를 곧추 세웠다. 남정욱이 나가고 난 뒤 옆 방에서 이 둘의 이야기를 귀를 대어 은밀히 듣고 있던 표사 정순이 장선재의 방으로 들어섰다.


“저자가 아무리 절정 고수라지만 정말 아가씨를 저런 근본도 없는 놈에게 주실 생각이십니까?”


“훗, 그럴 리가 있겠나.”


정중하고 위엄있는 얼굴로 남정욱을 대하던 장선재의 얼굴은 어느새 평소와 같은 비열한 소인배의 초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절정 고수들 사이에도 급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다. 저놈은 절정 고수들이 가진 진정한 위력이란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최하급의 절정고수다.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사문(師門)이군요.”


“그래. 어디 가서 칼 맞고 죽는다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비렁뱅이 낭인에게 내 딸을? 가당치도 않는 소리! 그년은 내 돈벌이에 가장 요긴하게 쓰일 물건이다. 함부로 낭비할 수는 없는 법이지!”


자신의 무남독녀조차 거래에 쓰일 품목으로 취급하는 장선재의 눈에는 탁하고 끈덕진 검은 탐욕이 가득차 번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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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보통 오전 연재 분량은 전날 밤에 작업을 마쳐 놓는데 다음 날이 공휴일이라 과음을 하는 바람에 연재가 늦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녁에는 꼭 정시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P.S. 투표는 미리 사전 투표를 통해 끝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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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자귀환(死者歸還)-1 22.06.27 132 6 10쪽
69 대연회(大宴會)-3 22.06.22 140 5 10쪽
68 대연회(大宴會)-2 +2 22.06.21 139 7 14쪽
67 대연회(大宴會)-1 +2 22.06.20 143 7 13쪽
66 마선 강림(魔仙 降臨)-4 +2 22.06.18 141 7 10쪽
65 마선 강림(魔仙 降臨)-3 +5 22.06.16 151 7 12쪽
64 마선 강림(魔仙 降臨)-2 +5 22.06.15 146 6 13쪽
63 마선 강림(魔仙 降臨)-1 +2 22.06.14 160 6 9쪽
62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5 +4 22.06.13 145 7 16쪽
61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4 +3 22.06.12 145 7 9쪽
60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3 +1 22.06.11 141 6 10쪽
59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2 +1 22.06.10 151 6 10쪽
58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1 +1 22.06.09 159 5 9쪽
57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5 +2 22.06.08 171 5 11쪽
56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4 +2 22.06.07 148 7 9쪽
55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3 +2 22.06.06 153 8 9쪽
54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2 +2 22.06.05 166 6 9쪽
53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1 +3 22.06.04 170 6 13쪽
52 무림맹행(武林盟行) +3 22.06.04 166 6 17쪽
51 탐부순재(貪夫殉財)-7 +2 22.06.03 153 6 13쪽
50 탐부순재(貪夫殉財)-6 +2 22.06.03 157 6 9쪽
49 탐부순재(貪夫殉財)-5 +1 22.06.02 164 5 10쪽
48 탐부순재(貪夫殉財)-4 +2 22.06.02 169 6 11쪽
47 탐부순재(貪夫殉財)-3 +2 22.06.01 156 6 11쪽
» 탐부순재(貪夫殉財)-2 22.06.01 163 5 9쪽
45 탐부순재(貪夫殉財)-1 +4 22.05.31 165 8 11쪽
44 귀서역로( 歸西域路)-5 +2 22.05.31 166 7 12쪽
43 귀서역로( 歸西域路)-4 +2 22.05.30 176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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