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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추리무협(追利無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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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최근연재일 :
2022.06.29 00:10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17,570
추천수 :
803
글자수 :
388,926

작성
22.06.01 19:00
조회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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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1쪽

탐부순재(貪夫殉財)-3

DUMMY

이른 아침에 출발했음에도 벽운경과 백 주사는 해가 저물기 직전에야 간신히 대남도독부가 위치한 양기현(梁基縣)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말을 몰았다면야 훨씬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건만 대화를 원활하게 해주는 '수단'을 실은 수레를 대동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가 되었다.


도독부 정문 앞에는 이미 용무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광경에 벽운경은 자신들의 차례가 오기 전에 관리들이 퇴청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으나

이미 백 주사와 안면이 있는 문지기가 별다른 검역 없이 관청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관원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관사의 앞에서 돌연 백 주사의 걸음이 멈추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백 주사는 헛기침을 내어 관사 안의 누군가를 불러내었다.


“백 모가 총관님께 면담을 청하러 왔습니다.”


“이게 누구야? 백 주사 아닌가. 어서 안으로 드시게.”


관사의 문이 활짝 열리고 살이 투실투실하게 오른 한 사내가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우스꽝스러워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그는 대남도독부에서 도독을 제외하곤 가장 높은 서열에 위치한 총관으로 위치하고 있는 배금태(裵搇怠)라는 사람이었다.


나랏일을 하는 고관 대작이 일개 천한 장사치, 그것도 상단주도 아닌 일개 부하 직원인 백 주사를 환대하는 모습은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가 반긴 것은 백 주사가 아닌 그가 가져온 물건들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일견 납득이 가는 일이었다.


배금태는 벽운경과 백 주사를 세워둔 채 한참을 건네 받은 패물을 만져본 뒤에야 용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백 주사. 이번에는 어인 일로 오셨을꼬?”


“다른 것이 아니라..”


백 주사는 장선재에게 전달받은 지시대로 자신이 오게된 이유, 즉 이번 교역에서 들여온 물건들에 대한 관세와 사치세의 감면 내지는 삭감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지긋이 눈을 감고 백 주사의 이야기를 경청한 배금태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사정은 딱하네만...그렇다고 해마상단의 편의만 봐줄 순 없는 노릇이네.”


“그래도...”


“자네도 알다시피 자네 쪽의 교역품에 달린 세금이란 게 한두 푼이 아니지 않잖나? 더구나 세금이란 엄연히 나랏돈이거늘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네.”


여태 백 주사를 통해 장선재의 검은 돈을 넙죽넙죽 잘 받아먹던 배금태가 나랏일을 들먹이며 청을 거절한다는 것은 참 가소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백 주사는 그간의 거래를 통해 배금태의 됨됨이를 파악하고 있었고 이런 사태에 대비해 장선재가 미리 일러준 말도 있었기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상단이 아니라 이 사람, 개인적으로 부탁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배 총관님께서는 평소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으시지 않습니까?”


“허허. 그리 자랑할 것도 없는 비루한 심미안일세.”


“제가 이번 서역에 가서 기이한 물건을 하나 얻게 되었습니다.”


백 주사가 품 안쪽의 옷섶에 꿰매 놓은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냈다.


"으음...이건 그....불상이 아닌가?“


그것의 정체는 순금으로 만든 성인 남성 주먹 크기만 한 불상이었다. 불상을 이리저리 만지며 갸우뚱한 표정을 짓던 백 주사는 그것을 배금태에게 쑤욱 들이밀며 물었다.


“이것이 불상이라는 것은 알겠다만 과연 남자인지 여자인지, 또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도통 표정을 알 수가 있어야지요. 혹시 견식이 뛰어난 배 총관님께서는 아시지 않을까 싶어 감정을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불상을 건네받은 배금태의 미간에 쓴 탕약을 들이켰을 때 처럼 깊은 주름이 지어졌다. 관리의 책임감과 눈 앞의 황금 불상이 주는 탐욕의 사이에서 배금태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깊이 감은 그의 시야는 어두컴컴할 뿐이었고 손에 들린 불상의 무게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결국 배금태는 둘 중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을 택했다.


“그런 일이라면 본 총관의 전문 분야이니 백 주사는 너무 심려치 마시오.”


“감사합니다. 총관 어르신.”


배금태에게 황금불상을 건넨 백 주사는 불상의 감정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 배금태 또한 거부할 수도 있었던 불상을 건네받은 뒤 누가 볼세라 품에 얼른 넣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의 거래는 성립되었다.


일련의 과정을 전부 지켜본 벽운경의 입 안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관부도 썩을 대로 썩었군.’


권력과 부는 뗄레야 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부패의 정도라는 것이 일개 장사치가 말단 관료에게 으레 하는 청탁의 수준을 넘어 고위 권력과 직접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벽운경은 커다란 환멸감을 느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살펴가시게.”


하직 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배금태의 관사에서 빠져나왔다.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는 홀가분함으로 흐뭇한 백 주사와 달리 벽운경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벌레 씹은 표정의 벽운경을 본 백 주사는 다들 이렇게 일한다며 그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상단들은 전부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거요?”


“모든 상단이 이렇지는 않겠지. 허나 분명한 사실은 이런 방식으로 일했기에 우리 해마상단은 지금의 위치가 되었다는 거요.”


벽운경은 문득 백화상단을 떠올렸다. 지금의 해마상단의 위세보다 더 대단했던 백화상단은 어땠을까? 대쪽같은 부친의 성품상 이러한 위법행위는 용납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실무를 담당하는 이들과 관부 사이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상념에 잡혀있던 벽운경은 잠시 후 한 행렬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선두에 선 자와 눈을 마주친 백 주사는 갑자기 사시나무 마냥 후들거리며 몸을 떨더니 바닥에 몸을 웅크려 큰절을 올렸다.


“도...도독 어르신을 뵙습니다.”


“관인도 아닌 자가 함부로 도독부에 들어오다니, 이놈들을 당장 포박하라!”




퍽-


“윽!”


퍽-


“윽!”


“도독 어르신, 말씀하신대로 장 열 대를 모두 쳤습니다.”


“자, 이제 말해보거라. 네놈들은 어떠한 연유로 도독부에 들어왔고 또 누구를 만난 것이냐?”


대남 도독 위금호(韋噙弧)가 서슬 퍼런 호통을 치며 문책을 재개하였다. 답을 얻어 내기 위한 혹독한 매질 앞에 백 주사는 반죽음 상태가 되어 끙끙대고 있었지만 호신공을 두른 벽운경에겐 그것은 가벼운 안마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를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기에 그는 그저 묵묵히 눈을 감고 도독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오냐. 아직 매가 부족한 모양이구나. 저 놈들을 더욱 쳐라.”


“예, 도독 어른!”


의자에 묶인 두 사람의 좌우에 장정들은 위금호의 지시와 함께 다시 몽둥이를 들어 두들겨 패기 시작했고 백 주사는 거의 초주검이 되어갔다. 위금호의 옆에 자리해서 백 주사를 지켜보는 배금태는 혹여나 그가 고문에 못 이겨 자신의 이름을 불게 될 것을 염려하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금호는 이미 청탁의 대상이 누군지 다 알고 있다는 듯 불안한 얼굴의 배금태를 흘끔 쳐다보고 있었다. 위금호에게 범인의 색출은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그는 그저 도독부 이 인자인 총관 배금태를 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두 사람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네놈의 부정을 모두 내가 알고 있으니 앞으로는 내 눈치를 단단히 봐야 할 것이다!'


“풉.크큭.”


오고가는 두 사람의 시선 속에 진상을 파악한 벽운경은 두 관리의 눈치싸움이 가소로워져 그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웃음은 도독 위금호의 분노를 일으키기엔 지나칠만큼 충분했다.


“이놈이 매질에 실성한게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미안하오. 내 평소 웃음이 많은 이가 아니나 가당치 않은 상황에 그만 웃음이 나와버렸소.”


“뭐라?”


“도독부의 수장으로서 관리의 부정을 신경써야하는 것은 이해하오. 허나 황상께서 당신을 도독으로 임명한 데에는 목민관으로 본인을 대신해 백성을 살필 것을 부탁한 터인데 어찌 백성들을 자신의 위엄을 세우기 위한 도구로 쓰는 것인지 나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소.”


“매질이 가벼운지 이놈이 아직 주둥이는 살아 있었구나.”


자신의 속내를 만방에 드러낸 벽운경의 말에 분노한 위금호가 옆에 선 수신호위의 허릿춤에 달린 검을 빼내들었다. 그 모습에 주변 호위와 관료들이 대경실색하여 위금호를 제지하였지만 그는 끝내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대고 있었다.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은 위금호는 한 식경이 넘게 매질을 당한 벽운경의 몸에서 피 한방울 나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이에 위금호는 벽운경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호라, 네 놈이 해마상단에 새로 들어왔다는 그 표사 놈이로구나. 보잘 것 없는 무공 좀 익혔다고 교만이 하늘을 찌르나 본데 관이 과연 무림을 두려워할 성 싶으냐?”


분노에 가득 찬 눈을 번득이며 주위를 부라리던 위금호는 이내 원하는 누군가를 찾은 듯 안면에 미소를 띠며 소리쳤다.


“광천(廣泉)!”


“예, 도독 어른.”


그가 찾은 이는 대남도독부의 무공 교두인 광천이란 자로 위금호가 대남에 파견될 때 황실에서 같이 보낸 자로 대단한 무공을 지닌 고수였다. 흡족한 미소와 함께 위금호는 벽운경에게 소리쳤다.


“알량한 무공을 믿고 광오한 네놈의 버릇을 내가 고쳐주겠다. 네가 이 광천을 쓰러트린다면 내 오늘 있었던 일을 불문에 부치고 너와 저 놈을 곱게 보내주겠다. 그렇지 않다면 네 놈은 그 입으로 내가 묻는 것에 전부 말해야 할 것이다.”


위금호는 병사의 훈련 지도를 위한 장봉(長棒)을 꼬나쥔 광천이 자신에게 가까이 왔을 때 그의 귓가에 혼자만 들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적당히 상대하다 힘 조절을 실패한 척 그대로 죽여 버려라. 내 죄는 묻지 않을테니.”


“존명.”


포박에서 풀려난 벽운경은 갑갑한 손과 발을 풀었고 그와 대치한 광천을 중심으로 큰 원이 생겼다. 벽운경을 향해 장봉을 겨눈 광천은 오만한 표정으로 그를 도발했다.


“선공은 양보하지, 무림인. 내 관부 무공이 지닌 격(格)이 어떠한 것인지 제대로 알려주마.”


“사양은 않겠소.”


땅을 박찬 벽운경의 몸이 광천을 향해 힘차게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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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마선 강림(魔仙 降臨)-1 +2 22.06.14 160 6 9쪽
62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5 +4 22.06.13 145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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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3 +1 22.06.11 140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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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1 +1 22.06.09 158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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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4 +2 22.06.07 148 7 9쪽
55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3 +2 22.06.06 153 8 9쪽
54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2 +2 22.06.05 166 6 9쪽
53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1 +3 22.06.04 169 6 13쪽
52 무림맹행(武林盟行) +3 22.06.04 166 6 17쪽
51 탐부순재(貪夫殉財)-7 +2 22.06.03 153 6 13쪽
50 탐부순재(貪夫殉財)-6 +2 22.06.03 157 6 9쪽
49 탐부순재(貪夫殉財)-5 +1 22.06.02 163 5 10쪽
48 탐부순재(貪夫殉財)-4 +2 22.06.02 169 6 11쪽
» 탐부순재(貪夫殉財)-3 +2 22.06.01 156 6 11쪽
46 탐부순재(貪夫殉財)-2 22.06.01 162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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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귀서역로( 歸西域路)-4 +2 22.05.30 176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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