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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추리무협(追利無俠)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최근연재일 :
2022.06.29 00:10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17,568
추천수 :
803
글자수 :
388,926

작성
22.06.03 08:00
조회
156
추천
6
글자
9쪽

탐부순재(貪夫殉財)-6

DUMMY

“...이러한 사정이니 그런 줄로만 알아라.”


“...네, 아버님.”


일방적인 혼인 통보, 아닌 매매 통보를 받은 장영은 부친의 명령에 그 어떤 반대 의사도 표현할 수 없었다. 이 저택에서 장선재의 뜻에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딸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영은 어릴 적부터 연애소설을 읽기를 좋아했다. 남녀의 정분을 다루기 때문에 시중에서는 잡서 취급을 받는 연애소설이었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모든 걸 가진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단 하나, 연애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장영은 소설 속에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 사랑을 찾아 떠난 여장부가 되었고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비련의 여인도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연애소설 중 장영이 가장 애독한 소설은 운명의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맺어지는 정통 순애물이었다. 장영 또한 여느 규수들처럼 소설 속에 나오는 이들과 같이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올 것을 꿈꿨지만 그녀의 현실은 너무나 냉혹한 결말을 맞았다.


아무리 규방에서 갇혀 지내는 처녀라지만 여자환에 대한 소문은 장영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정실과 측실을 포함해 열세 명이 넘는 여인을 아내로 둔 호색한. 그것도 모자라 궁 밖으로 나와 미색이 고와 보이는 민가 여인들을 멋대로 겁탈하고 다닌다 하여 대 지방에 악명이 자자한 사내였다.


장영은 비록 운명 같은 사랑의 기회는 없을지언정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토끼 같은 자식들과 화목한 가정을 이룰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자신을 대 왕궁에 팔아넘기겠다는 장선재의 말은 너무나도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장선재와 대화를 마치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던 장영은 터덜터덜 몇 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장영의 곁을 항상 지켜온 시녀가 그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그녀를 얼른 부축하며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다.


“아씨, 정신 차리세요! 이걸 어쩐답니까. 흑흑. 상단주 어르신도 정말 너무 하십니다.”


“아무 말 말렴, 양강아... 그냥 잠시만...이렇게 있게 해다오.”


주저 앉은 장영은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않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소설 속에선 이럴 땐 하늘도 함께 눈물을 쏟아주었지만 그녀의 눈에 담긴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선명한 날씨였다. 그래서 더욱 그녀의 얼굴에는 비가 많이 내리게 되었다.




장선재가 직접 대남도독부를 다녀온 뒤로 장영의 혼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열흘 남짓한 시간이 흘러 장선재의 저택에는 장영을 싣고 대 왕궁으로 출발할 꽃마차가 마련되었다.


장영을 아끼고 사랑했던 상단의 모든 사용인들은 그녀를 전송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으나 그들 중 밝은 표정을 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혼례는 그녀가 원한 것이 아니기에, 아니 애초에 혼례식 같은 거창한 행사도 없이 그저 별궁의 침실에 갇혀 지낼 그녀의 여생을 생각하니 침울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였다.


해마상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왕궁으로 가기 위한 꽃단장을 마친 장영이 방에서 걸어 나왔다. 울며 밤을 지새워 퉁퉁 부은 장영의 눈은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희고 붉은 진한 신부 화장에 가려져 티가 나지 않았다. 얄궂게도 장영은 자신의 인생 가장 슬픈 날에 그 어떤 때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훌쩍이는 양강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오른 장영은 왕궁으로 떠나기 전 작게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상단의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눈에 새겨 넣었다. 소리를 죽여 우는 여인들과 그들에게 울음을 그치라며 호통을 치는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그 사람...


떠나는 날 아침 해가 밝을 때까지 그녀는 혹여나 소설 속 연인처럼 벽운경이 나타나 자신의 손을 잡고 함께 야반도주 할 것을 권유하러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었다. 그러나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을 건너 닭이 우는 새벽이 올 때까지 벽운경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게 망상에 불과한 이야기였지만 장영은 그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는지 모른다.


장영의 눈에 들어온 벽운경은 평소처럼 입을 꾹 닫은 과묵한 무표정의 얼굴이었다. 그는 알까? 이따금 벽운경이 보여준 잔잔한 미소가 그녀의 마음에 얼마나 큰 풍랑을 일게 하였는지. 장영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 미소가 애타게 그리웠다.


'한 번만 더 그 미소를 볼 수 있었다면...'


그때 정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목청껏 소리를 질러 호위병이 당도했음을 알렸다.


“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귀한 손님들 오셨다. 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이거라!”


끼이익-


장선재의 호통과 동시에 상단 정문이 개방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정말 떠날 시간이 온 것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에 장영이 눈물을 왈칵 쏟기 전 절실한 그녀의 간절함에 마침내 하늘도 통하였는지 벽운경의 굳게 잠긴 입꼬리가 조금씩 흔들리며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어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저 사람, 저렇게 웃을 줄도 알았구나. 그런데 왜...’


장영이 벽운경의 미소에 의아해하던 그때 정문을 통해 무더기의 병사 행렬이 상단 내부에 깊숙이 진입하였다. 그런데 다소 의아한 점이 있던 것이 호위 무사로 파견 나온 병사들이 하나같이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갑주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을 인솔한 선두에 있던 이는 벽운경과 백 주사에게는 익숙한 인물로 그는 도독부의 수석 무공 교두로 있는 무사 광천이었다. 대남도독부를 방문해 위금호와 혼례를 의논하면서 광천과 안면을 트게된 장선재가 앞으로 나와 포권하여 예를 표했다.


“먼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제 여식을 부디...”


“대역죄인 장선재는 들으라!”


“!!”


당황한 장선재를 앞에 두고 광천은 손에 쥔 교지에 묶인 끈을 풀러 길게 펼친 뒤 그 내용을 위엄있게 읽어 내려갔다.


“죄인 장선재는 지엄한 국법을 어기고 나라에서 전매한 소금을 들여와 밀매(密賣)한 죄! 또 관리에게 뇌물을 향응하여 제 사리(私利)를 채운 죄 등을 물어 도독부에서 엄히 심문할 것이니 이를 따르도록 하라!”


“그게 무슨 소리요! 뭔가 잘못 알고 오신게 아니오? 도...도독 어른이 내게 이러실 수는 없소!”


얼굴이 터질세라 목까지 시뻘개진 장선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항변을 토했다. 그리고 장영이 타고 있는 꽃마차에 다가가 마차를 두들기며 말했다.


쾅쾅쾅-


“오늘이 어떤 날인지는 알고 온 거요? 이 분이 누구냐면 바로 대 왕 전하의 부인이 될 사람으로...”


“장선재 이놈! 어디 감히 황명 앞에서 대 왕 따위의 이름을 거론하느냐? 네 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화...황명이라고?!”


지엄하신 황제가 친히 내린 명령 앞에 장선재를 비롯한 상단의 모든 사람들은 곧바로 오체투지하여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광천을 따르는 병사들은 사십 명이 채 되지 않았지만 벽운경과 남정욱 같은 절정 고수를 포함해 수백 명의 표사라는 강력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장선재는 아무런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황명을 받든 이들에게 반항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역모에 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홍!”


“예, 수석교두님!”


“병사 열 명을 줄테니 대역 죄인 장선재를 포박하여 도독부로 압송하라. 난 남은 병사들과 함께 해마상단의 인물 중 이 일에 엮여 있는 자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것이다.”


“존명!”


부교두 장홍은 광천의 말을 따라 병사들과 함께 넋이 나간 장선재를 포박하여 도독부로 압송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광천과 병사들은 상단의 인물들을 나누어 건물에 가둔 뒤 샅샅이 수색을 실시하였다.


한편 병사의 손에 의해 꽃마차에서 끌어내려진 장영은 한 줌 같은 희망을 가지고 벽운경을 의지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상단 의 모든 사람들이 당황해 혼비백산인 상황에서도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그의 얼굴에서 이질적인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시간을 되돌려 벽운경과 백 주사가 도독부에 압송되었던 그 날 밤, 해마상단이 머물고 있던 표문객점으로 한 인영(人影)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림자는 객점의 삼 층에 위치한 특실 중 한 곳에서 멈춰 섰다. 그곳은 바로 벽운경이 묵고 있는 침실이었다.


소리도 내지 않고 은밀히 방 안에 들어선 그림자는 조심스레 꺼진 등잔에 불을 켜 방 안을 어스름히 밝혔다. 일순 광채와 함께 방안의 사물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불을 켠 이의 얼굴 또한 마찬가지로 드러났다. 그의 정체는 도독부의 수석 무공 교두 광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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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자귀환(死者歸還)-1 22.06.27 132 6 10쪽
69 대연회(大宴會)-3 22.06.22 140 5 10쪽
68 대연회(大宴會)-2 +2 22.06.21 139 7 14쪽
67 대연회(大宴會)-1 +2 22.06.20 143 7 13쪽
66 마선 강림(魔仙 降臨)-4 +2 22.06.18 140 7 10쪽
65 마선 강림(魔仙 降臨)-3 +5 22.06.16 150 7 12쪽
64 마선 강림(魔仙 降臨)-2 +5 22.06.15 146 6 13쪽
63 마선 강림(魔仙 降臨)-1 +2 22.06.14 159 6 9쪽
62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5 +4 22.06.13 145 7 16쪽
61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4 +3 22.06.12 144 7 9쪽
60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3 +1 22.06.11 140 6 10쪽
59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2 +1 22.06.10 150 6 10쪽
58 소영웅대회 개막(小英雄大會 開幕)-1 +1 22.06.09 158 5 9쪽
57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5 +2 22.06.08 170 5 11쪽
56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4 +2 22.06.07 148 7 9쪽
55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3 +2 22.06.06 153 8 9쪽
54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2 +2 22.06.05 166 6 9쪽
53 소영웅집결(小英雄集結)-1 +3 22.06.04 169 6 13쪽
52 무림맹행(武林盟行) +3 22.06.04 166 6 17쪽
51 탐부순재(貪夫殉財)-7 +2 22.06.03 153 6 13쪽
» 탐부순재(貪夫殉財)-6 +2 22.06.03 157 6 9쪽
49 탐부순재(貪夫殉財)-5 +1 22.06.02 163 5 10쪽
48 탐부순재(貪夫殉財)-4 +2 22.06.02 169 6 11쪽
47 탐부순재(貪夫殉財)-3 +2 22.06.01 155 6 11쪽
46 탐부순재(貪夫殉財)-2 22.06.01 162 5 9쪽
45 탐부순재(貪夫殉財)-1 +4 22.05.31 165 8 11쪽
44 귀서역로( 歸西域路)-5 +2 22.05.31 165 7 12쪽
43 귀서역로( 歸西域路)-4 +2 22.05.30 176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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