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가면의 시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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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민은 월미도 놀이공원의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뽀로로와 친구들’에 대한 뉴스가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
장현민은 실소를 지으며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국내 마약 조직, 아동용 애니메이션 가면을 쓴 괴한에게 붙잡혀…….
-한국식 배트맨 등장? 자경단의 명(明)과 암(暗).
-중국에서도 자경단 등장해. 국내 괴 단체와 같은 단체일 가능성 제기돼.
장현민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만약 음주단속 거부차량에 치었을 때 떨어진 가게가 이벤트 가게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거기서 다른 가면을 썼었더라면?
그러면 이야기가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뽀로로와 친구들’이 대한민국의 뒷골목의 공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테다.
미소 지은 채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장현민이 문득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네티즌들은 뉴스에 열광하고 있었지만, 당사자가 되어 보면 그들도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이 일만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음주단속 거부차량에 매달려 죽게 생긴 순경을 구하려던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마음 속의 한 가닥 불편함을 지워버리면 장현민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상동파는 인천에 있다고 했지.’
장현민이 눈을 지그시 감고는 생각을 정리했다.
상동파는 인천시 숭의동에 있다고 들었다. 물론 그 정보가 정확할 지는 의문이고, 또한 사무실 하나 덮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떡집 아저씨와 제갈경 아저씨는 지금 여러 군데에서 정보를 모으고 있다고 들었다. 국정원에 비하면 정보력이 현저하게 뒤떨어지므로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장현민은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실종자’, 혹은 ‘사람을 찾습니다’ 따위의 키워드를 검색했다.
“…….”
대한민국에 이렇게 실종자가 많았던가?
한 번 검색에 수많은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플래카드나 전단지가 찍힌 이미지 파일은 물론,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이뤄진 텍스트도 적지 않다.
한동안 그것을 들여다보던 장현민이 씁쓸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껐다.
‘여섯 시 반. 시간 됐다.’
장현민은 읏차,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XRV-930 아메리카 트윈에 올라탔다. 헬멧을 눌러 쓴 장현민이 숭의동 어림으로 바이크를 몰고 달려 나갔다.
부아아앙-
엔진 소리가 새삼스레 경쾌하게 느껴진다.
‘숭의동 83로라고 했던가?’
숭의동 83로에 있는 건물에는 ‘은호 캐피탈’ 이라는 회사가 자리해 있다. 김은호라는 사람이 사장인데, 이름만 그럴듯하지 실제로는 금융과는 아무 연관 없는 회사라 할 수 있었다.
김은호는 사기부터 폭력까지 전과가 8범인 범죄자로, 굳이 분류하자면 사채업자라고 볼 수 있었다. 보도방이나 성매매 업소와 커넥션을 맺고 쩐주 노릇을 하는데, 포주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곳, 저곳에 손을 대놨는데 하나같이 눈살이 찌푸려지는 범죄들이다.
‘그냥 뉴스만 볼 때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대한민국에도 범죄자들이 참 많구나.’
바이크를 몰면서도 장현민의 머릿속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잠시 뒤, 장현민은 숭의동 83로에 도착했다. 장현민은 최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바이크를 세우고는 헬멧을 벗어 바이크에 걸어두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뽀로로 가면을 꺼내들었다. 전자음까지 나오던 인형 탈과 달리, 이번에 받은 것은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의 가면이었다.
장현민은 그것을 손에 들고는 가볍게 신형을 튕겨 건물 옥상에 올라섰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해가 일찍 져 가고 있었으므로, 장현민이 옥상에 올라섰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현민은 옥상을 몇 개 지나서 어느 허름한 건물 옆에 도착했다.
장현민은 뽀로로 가면을 얼굴에 쓰고 끈을 단단히 조였다.
이곳이 바로 뽀로로 가면의 무대인 것이다.
장현민은 주위를 흘끔거리다가, 허름한 건물의 작은 창문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잡을 것도 없는 벽에 매달린 장현민이 창문을 열고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어디선가 구린내가 확 피어올랐다.
장현민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에이, 화장실이잖아.”
“뭐야, 시발! 깜짝이야!”
변기에 앉아 뿌직뿌직 큰일을 보던 어느 사내가 비명을 토해냈다. 사내의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었는데, 거기에는 전갈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사내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장현민을 바라보았다.
“뭐야, 시발! 창문에 갑자기… 어, 뽀로로.”
사내가 말을 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자 장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뽀로로와 친구들’의 정보를 이미 접한 바가 있던 사내가 전신을 긴장시키며 장현민을 바라보았다.
“요즘 뽀로로와 친구들이 난리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어디에서 보낸 놈이냐? 무림맹?”
사내는 보통 조폭이 아니었다. 알고 보면 사내는 마갈독두(魔蝎禿頭)라 불리는 무인으로, 사도맹 소속의 고수였던 것이다.
장현민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큰일을 보는 화장실로 들어오게 될 줄은 그 역시 몰랐다.
사내가 징그러워진 장현민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때였다.
“뽀로로, 이 개새끼야!”
그것을 공격 신호로 받아들인 마갈독두가 조법을 펼쳐 장현민을 공격해나갔다.
바지를 내린 채 큰일을 보고 있었으므로 보법에 큰 제약을 받았지만, 엉거주춤이나마 일어나 쌍수를 날리는 것이 제법 매서웠다.
장현민은 칠성권을 펼쳐 그에 대항해나갔다. 원래대로라면 곧바로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상대가 덤벼드니 어쩔 수가 없다.
몇 번의 초식이 지나자 마갈독두가 신음을 토해냈다.
“잠깐! 이건 불공평하다! 시발 놈아! 잠깐이랬잖아! 네가 정파의 무인이라면, 내게 똥을 닦을 시간을 줘야한다!”
“자기가 먼저 공격해놓고.”
장현민은 차갑게 읊조리고는 검결지를 맺어 유운검의 초식을 펼쳤다.
순식간에 수세에 몰린 마갈독두가 울부짖었다.
“개새끼야! 잠깐, 나 똥 닦고! 똥 좀 닦자, 시발 놈아! 잠… 커헉!”
장현민이 박수치듯 쌍장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마갈독두는 귓가가 멍해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물론, 똥 묻은 엉덩이를 홀랑 깐 채였다.
“으으, 더러워.”
장현민이 질색하며 뒤로 물러났다.
어째 시작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들어와도 화장실에 들어온단 말인가! 싸움이 벌어질 것은 물론 예상했지만, 엉덩이를 깐 무인과 싸우게 될 줄은 몰랐다.
엉덩이를 깐 것도 깐 것이지만 ‘무인’이라는 점이 장현민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냥 평범한 조폭인 줄 알았는데, 무인이 있다…….’
무림맹은 상동파를 치기 전에 대한민국의 음지에 있는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소란을 일으키자고 했다. 자연히 은호 캐피탈도 무공을 모르는, 일반 범죄자들이어야 했다.
그런데 이 대머리 똥쟁이는 무공을 알고 있다.
장현민은 ‘사도맹이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후우-”
소란을 들은 것인지, 화장실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현민은 어깨를 늘어트리고는 천천히 화장실 밖으로 나섰다.
화장실 밖의 좁은 복도는 서른 명 남짓한 사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왔다! 헉, 시발! 가면! 가면 썼다! 그 새끼들이야!”
“어떤 가면이야! 크롱? 에디? 포… 뽀로로군.”
장현민은 물끄러미 복도를 관찰했다. 가장 앞 선 사내들은 회칼이나 야구 배트, 망치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무공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 뒤에 있는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은 비록 적수공권이지만 호흡이 고르고 기세가 매섭다.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 분명했다.
마지막 다섯 명은 제법 고수였다. 이매탈을 쓰고 찾아왔던 마교도나, 사도맹의 장로라던 사사혈검 조종욱보다는 못하지만, 경험이 많아 보이는 것이 방심할 수가 없다.
장현민은 눈을 지그시 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복도의 제일 끝에 있던 정체 모를 사내가 입을 열었다.
“뽀로로 가면이면… 괴협일 가능성이 제일 크겠군. 이름은 장현민, 천괴의 사승을 이은 자이자 놀라운 재능으로 최연소 절정 고수가 된 자. 맞나?”
“아닌데. 난 괴협이 누군지 몰라.”
“목소리가 앳되군. 거짓말이 어설퍼.”
복도의 제일 끝에 있던 사내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장현민이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이 중에 조폭이 아닌 사람은 지금 빠져. 그 사람들은 안 건드린다.”
“뭔 개소리여, 뽀로로 개새끼야!”
“계속 남아있으면…….”
장현민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또각 소리를 듣게 될 거야.”
그리고, 그 말대로 되었다.
- 작가의말
오늘은 슬픈 소식을 하나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3월 21일)부터 2박3일간, 철원에 다녀올 일이 좀 생겼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제게 닥친 횡액(?)의 여파 때문입니다.
국민의 의무를 다하러 가야 해요.
때문에, 내일(3월 21일)부터 글피(3월 23일)까지 휴재가 됩니다.
사흘 뒤(3월 24일)에 연재분으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만큼, 독자 여러분들께서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얼른 갔다가 돌아올게요. ;ㅂ;
P.S: 역시 잠이 보약인지, 어제 오후까지 늦잠을 잤더니 몸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염려해주시고, 또 걱정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연재 시간이 들쭉날쭉하긴 했지만, 휴재만은 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 올립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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