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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 님의 서재입니다.

취업무림(就業武林)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현대판타지

촌부
작품등록일 :
2016.01.29 12:11
최근연재일 :
2016.03.2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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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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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6.02.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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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6장> 회자정리(會者定離) (2)

DUMMY

같은 시각, 서울시 용산구.

용산 전자상가의 건너편에는 주홍색 비닐 천막 하나가 놓여 있었다. 천막의 한쪽 벽면에는 ‘연애운, 학업운, 성취운 봐드립니다’ 라는 글귀가, 반대쪽 벽면에는 ‘계룡산 수행 30년, 주역 통달’ 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척 보기에도 떠돌이 점쟁이의 허름한 천막이었지만, 그 안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녀가 앉아 있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김태연.

2000년에 데뷔한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예계 최고 미녀 타이틀을 놓치지 않은 스타. 그동안 찍은 광고 물품 대부분을 완판했던 원조 완판녀.

그녀가 천막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천하의 무불통지가 용산에 천막을 치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대구에서 사주 카페를 하신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집도 절도 없이 떠돌게 되신 거예요?”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잖아.”


무불통지 김환석이 울적한 얼굴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박 사장, 그 새끼가 전세금 퉁치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무불통지의 점괘는 예로부터 정확하기로 유명했다. 그가 대구에 세운 사주 카페가 발 디딜 틈 없이 붐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장사가 잘 되자, 건물주였던 박 사장이 눈독을 들였다.

그는 전세금을 퉁쳐 줄 테니 운영권을 넘기고 고용 철학사가 되라고 권하다가, 무불통지가 계속 거절하자 계약이 만료되는 즉시 그를 쫒아냈다. 그리고 다른 철학사를 고용한 후 자신이 직접 사주 카페를 운영했다.

김태연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천하의 무불통지도 이제 다 됐네요.”

“아무래도 천기(天機)가 허락하지 않는가봐. 남의 것은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 있는데 이상하게 내 운명만은 맞추질 못하겠거든. 몇 년 전에는 주식을 해볼까 싶어서 천기를 읽어봤는데 L자로 시작되는 회사에 투자하지 말라는 것 외에는 읽을 수 있는 게 없었어. 대신, 다른 건 잘 맞출 수 있지. 어디, 요희궁주가 왜 왔는지 한 번 맞춰볼까?”


세간에는 그저 연예인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김태연의 진짜 정체성은 요희궁에 있다고 봐야 옳을 터였다. 요희궁의 무공에는 피부를 곱게 하고 이목구비를 아름답게 하는 효용이 있는데, 그녀가 데뷔하자마자 연예계 최고 미녀 타이틀을 쥐게 된 것은 바로 그 덕분이었다.

요희궁주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건 너무 쉽잖아요. 천괴 한재선, 한 조사(祖師)의 일이 아니면 제가 뭐하러 무불통지를 찾아 뵙겠어요? 실은 2년 전에 천괴 한 조사께서 제자를 들이셨는데, 출입을 금하시는 바람에 지금까지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거든요. 저는 그 일을 상담하러 온 거예요.”


요희궁의 원래 이름은 환락궁으로, 원 나라 말기에 기녀들이 모여 만든 문파였다. 자연히 무공 역시 색공과 흡성대법이 주를 이루었는데, 가진 절기가 그 모양이다 보니 강호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들을 사파로 분류했었다.

백 오십여 년 전, 천괴 한재선은 당대 환락궁주를 만나게 되었다. 긴 밀담 끝에 천괴는 환락궁의 무공을 손보아 정파의 것이라 할 만한 절기로 바꾸어 놓았다.

요희궁으로 이름을 바꾼 환락궁은 정파로 인정을 받아 무림맹에까지 가입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지금도 요희궁은 개파조사에 준하여 한재선을 모신다.

문제는, 도대체 천괴가 왜 환락궁의 무공을 손보아주었느냐는 점일 것이다. 당대의 무림인들이 여러 가설을 내놓았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은 하나도 없었다.

무불통지가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나까지 속일 필요는 없어, 요희궁주. 천괴를 찾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건 은원 때문이 아니라 천괴와 맺은 한 가지 규약(規約) 때문일 테지. 안 그런가?”

“…….”


김태연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무불통지가 천마금패(天魔金牌)의 규약을 알고 있었나?’


천마금패의 규약은 요희궁의 멸문지화를 불러올지도 모르는 극비 중의 극비이다. 백 오십여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죽였다.


“살인멸구를 고민하는 얼굴이로군. 으하하! 걱정하지 마, 입이 무겁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테니. 괘나 한 번 뽑아보지 그래? 내 정성껏 봐 주지.”


무불통지가 나뭇가지가 잔뜩 든 통을 들이밀었다.

장내에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뒤, 요희궁주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나뭇가지를 하나 뽑아 들었다. 살인멸구는 점괘를 들은 후에 시행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을 한 탓이었다.

요희궁주가 뽑은 나뭇가지를 바라보던 무불통지가 혀를 끌끌끌 차고는, 작게 한탄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쯧쯧쯧… 한 번 더 뽑아봐.”


요희궁주는 군 말 없이 다시 한 번 괘효를 뽑았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아까와 같은 괘였다.

무불통지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괘군, 같은 괘야! 신기하기도 하지, 같은 괘가 벌써 세 번이나 나오다니 말이야.”

“세 번? 저는 두 번을 뽑았는데요. 숫자를 착각하신 게 아닌가요?”

“실은 요희궁주가 아까 오기 전에 나 혼자 점을 쳐보고 있었어. 내 운명이야 천기가 감추었으니 알아볼 길이 없어서, 대신 무림 전체의 괘를 한 번 뽑아보기로 했지.”


무불통지가 요희궁주에게서 나뭇가지를 받아들었다.


“그것도 수산건(水山蹇)의 괘였어.”


무불통지의 표정이 불현듯 심각해졌다.


“요희궁주는 천마금패의 규약을 걱정하고 있었지? 그 규약을 빨리 풀지 않으면 멸문지화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틀린 소리는 아니야. 첫 번째 괘를 보니 그 예상대로 되겠어. 보름 후일까, 한 달 후일까? 그 안에 궁주 주위에서 큰 난리가 한 번 날 거야.”

“서, 설마 그들이…….”


요희궁주 김태연이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생로(生路)가 없는 것은 아니더군. 천무지체, 천괴의 제자. 그가 자네들의 생로가 될 거야. 천명이 그리 움직여. 두 번째는 생로를 찾았을 경우의 괘효였는데… 또 수산건의 괘라? 이건 예상 밖이었어, 예상 밖.”

“생로를 찾아도 살 길이 없다는 뜻이에요?”


요희궁주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건 나도 자세히 모르겠군. 다만 확실한 건…….”


무불통지가 심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천괴의 제자, 꽉 잡고 놓지 마. 그 곁에 붙어 있어야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생겨. 그게 아니면 장담하는데, 자네는 반드시 죽어. 난 그 말 밖에 해줄 게 없군.”


요희궁주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녀가 평온을 되찾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림 전체의 괘효가 수산건이라는 건 무슨 뜻이지요?”

“복채는 삼만 원. 내고 나가 봐.”


무불통지가 단호하게 말하고는 빙글빙글 미소를 지었다.

장내에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뒤, 요희궁주가 무불통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까 보름에서 한 달을 보셨지요? 넉넉잡아 한 달 반을 기다려 보지요. 복채는 그 이후에 내겠어요. 삼만 원으로 낼지, 아니면 칼로 낼지는 그 때에나 알게 되겠죠.”


요희궁주가 싸늘하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천막 밖으로 나간 요희궁주가 밴에 탑승하는 소리와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순차적으로 울려 퍼졌다.


“에이, 나도 담배나 한 대 태워야겠다.”


무불통지가 투덜거리듯 말하고는 천막을 나섰다.

무림의 괘효 역시 수산건. 하괘가 간(艮)이고 상괘가 감(坎)이니 험난한 산과 폭풍우 치는 바다에 휩싸인 형국이었다.

먼 과거에는 관과 무림이 불가침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가 통용됐지만 지금은 관이 무림을 누르는 시대. 무림에 혈풍이 불면 반드시 나라 전체로 번지게 될 터였다.


‘따지고 보면 생로도 같은 셈인데… 어디 보자.’


무불통지가 스모그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울에서는 드물게도, 희미하게나마 별빛이 보였다.


“쯧! 천괴께서 떠나시려는 모양이로군.”


무불통지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자미성(紫微星)의 기운을 북돋던 문곡성(文曲星)이 물러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문곡성 덕택에 자미성의 빛은 이전보다 밝아진 상태였지만 아직은 부족한 감이 있다.


‘칠십여 년 전에 당하신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었던가? 삼 년도 가르치지 않고 떠나실 줄은 몰랐어. 조금 더 가르치시면 좋았을 것을. 에잉! 배움의 기간이 너무 짧아.’


다만 다행인 것은 자미성이 저 스스로 빛을 발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계기만 주어진다면 문곡성의 도움 없이도 크게 흥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마 기연이라도 얻는 건가? 요즘 세상에?”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던 무불통지가 ‘그럴 리가 없지’라고 중얼거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곧 무불통지의 시선이 그보다 조금 남쪽의 하늘로 옮겨갔다.


‘그리고 저 놈은…….’


별 하나가 흉흉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로 시작이 머지않았구나.’


사실, 천문이란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유행이기는 했다.

옛날에야 별빛에 의미를 부여하고 앞날을 읽곤 했지만 과학이 별의 운행을 밝힌 지금, 천문은 다 늙은 노친네 몇 명밖에 믿지 않는 고리타분한 신앙이 되어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무불통지가 보고 있는 별빛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설혹 그것이 천살성(天殺星)이더라도.



그날 밤, 한재선은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종적을 감췄다.

여담이지만 홍삼 상자도 함께 사라져 있었다.



작가의말

이로써 수련편이 끝났습니다!

대란(大亂)편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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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제17장> 가면의 시대 (2) +124 16.03.19 7,419 366 14쪽
50 <제17장> 가면의 시대 (1) +143 16.03.18 7,056 383 13쪽
49 <제16장> 존재 의의 (4) +113 16.03.17 7,169 375 9쪽
48 <제16장> 존재 의의 (3) +187 16.03.16 7,864 447 15쪽
47 <제16장> 존재 의의 (2) +114 16.03.15 7,745 382 12쪽
46 <제16장> 존재 의의 (1) +133 16.03.13 8,419 406 12쪽
45 <제15장> 괴협 (3) +165 16.03.12 8,382 403 9쪽
44 <제15장> 괴협 (2) +150 16.03.11 8,264 402 16쪽
43 <제15장> 괴협 (1) +124 16.03.10 8,852 421 16쪽
42 <제14장> 무인에게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4) +108 16.03.09 8,582 417 11쪽
41 <제14장> 무인에게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3) +119 16.03.08 9,153 453 11쪽
40 <제14장> 무인에게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2) +123 16.03.07 9,938 475 8쪽
39 <제14장> 무인에게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1) +133 16.03.05 9,945 490 13쪽
38 <제13장> 욕망의 시대 (4) +213 16.03.04 9,875 545 9쪽
37 <제13장> 욕망의 시대 (3) +217 16.03.03 10,163 535 15쪽
36 <제13장> 욕망의 시대 (2) +165 16.03.02 10,395 498 13쪽
35 <제13장> 욕망의 시대 (1) +159 16.03.01 10,596 479 12쪽
34 <제12장> 기연(奇緣) (4) +133 16.02.29 11,039 492 9쪽
33 <제12장> 기연(奇緣) (3) +175 16.02.28 10,864 501 15쪽
32 <제12장> 기연(奇緣) (2) +209 16.02.27 11,420 498 12쪽
31 <제12장> 기연(奇緣) (1) +143 16.02.25 11,196 490 9쪽
30 <제11장> 회복(回復) (4) +115 16.02.24 11,571 484 7쪽
29 <제11장> 회복(回復) (3) +188 16.02.23 11,273 578 8쪽
28 <제11장> 회복(回復) (2) +125 16.02.22 11,232 545 11쪽
27 <제11장> 회복(回復) (1) +125 16.02.21 11,848 549 13쪽
26 <제10장> 소천괴(小天怪) (2) +135 16.02.20 12,318 499 11쪽
25 <제10장> 소천괴(小天怪) (1) +109 16.02.19 12,130 517 12쪽
24 <제9장> 검을 뽑기 전에…… (2) +117 16.02.18 12,183 561 12쪽
23 <제9장> 검을 뽑기 전에…… (1) +139 16.02.17 12,638 561 14쪽
22 <제8장> 화약고(火藥庫) (3) +107 16.02.16 12,768 562 17쪽
21 <제8장> 화약고(火藥庫) (2) +102 16.02.15 12,585 571 14쪽
20 <제8장> 화약고(火藥庫) (1) +85 16.02.14 13,010 603 16쪽
19 <제7장> 사자림(獅子林) (3) +89 16.02.13 13,343 585 13쪽
18 <제7장> 사자림(獅子林) (2) +132 16.02.12 13,583 655 14쪽
17 <제7장> 사자림(獅子林) (1) +123 16.02.11 13,969 579 16쪽
» <제6장> 회자정리(會者定離) (2) +77 16.02.10 13,721 593 10쪽
15 <제6장> 회자정리(會者定離) (1) +81 16.02.09 13,873 626 15쪽
14 <제5장> 21세기 수련법 (3) +117 16.02.08 13,851 616 18쪽
13 <제5장> 21세기 수련법 (2) +47 16.02.07 13,998 607 9쪽
12 <제5장> 21세기 수련법 (1) +38 16.02.07 14,532 551 10쪽
11 <제4장> 배사지례(拜師之禮) (2) +58 16.02.06 14,322 578 7쪽
10 <제4장> 배사지례(拜師之禮) (1) +63 16.02.05 14,899 608 15쪽
9 <제3장> 중년(中年) 호구 (2) +57 16.02.04 15,135 614 14쪽
8 <제3장> 중년(中年) 호구 (1) +63 16.02.03 15,847 620 10쪽
7 <제2장> 노인(老人) 한재선(韓再善) (3) +108 16.02.02 16,593 670 11쪽
6 <제2장> 노인(老人) 한재선(韓再善) (2) +89 16.02.01 17,394 719 11쪽
5 <제2장> 노인(老人) 한재선(韓再善) (1) +72 16.01.31 18,896 71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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