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130,962
추천수 :
2,769
글자수 :
1,307,372

작성
18.07.16 06:00
조회
905
추천
16
글자
22쪽

과거사(3)

DUMMY

" 아아악! 씨발년! 오기만 하면 죽여버리겠어!! "

차두미, 사스가 비명같은 고함을 지르며 발광을 하고 있었다. 그 주위로 개목걸이를 차고 바짝 엎드려 벌벌 떨고 있는 남자와 멀찍이 떨어져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다수의 주민들까지, 쉘터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었다.

" 아버지, 쟤 저렇게 놔둬도 괜찮을까요? 완전히 미친것 같은데.. "

" 으음, 괜찮아. 봐라. 아직 주변을 파괴하거나 사람을 물어뜯는것도 아니잖냐. 저기 기르는 개도 무사하고 나름 이성은 살아있는거지. 쯔쯧, 누가 니 동생 데려갈지 참.. "

" 누가 데려가다뇨? 어떤 미친··· 아니다. 바위가 있잖아요. 크크큭.. "

" 그.. 바위는 다른 여자가 있지 않냐? 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일부다처제가 흠도 아니지. 암.. "

수긍인지 체념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사장의 얼굴은 오늘따라 주름이 깊이 패어가고 있었다. 처음 두미를 만난날이 문득 기억이 났다. 조그만 몸둥아리를 가누지 못하고 엄마를 찾는 듯 우렁찬 울음을 내뱉는 아이. 하지만 그 아이의 엄마는 산고, 아니 병원의 실수로 이미 아이를 앉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당시가 생각이 나자 뿌드득 이를 가는 사장이 어딘가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아내를 죽인 병원, 아니 그 약을 시판해 수많은 어머니를 죽인 제약회사. 그 당시 아주 큰 이슈였지만 고작 몇푼의 배상으로 유야무야 묻힌 사건이었다. 그 잘난 법도 아무 소용없었다.

그때 제약회사를 찾아가 모두 죽여버릴 생각을 할 정도로 분노했지만 외국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에 분을 삭이며 병원에 화풀이 한 자신은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막내딸, 두미를 더욱 감싸고 돌았던게 아닐까 싶었다.

어린 시절 두미는 착하고 예쁜 딸이었다. 비록 욕심은 많았지만 그게 도를 넘지 않았고 남자아이처럼 여기저기 싸움을 하고 다녔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사춘기 쯤이었다. 누군가에게 평소에 궁금해 하던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어느날 자신에게 찾아와 물었다.

" 엄마 말야. 혹시 나때문에 죽은거야? 내가 엄마를 잡아먹은 거냐고!! "

그 말에 충격을 받고 알아본 결과, 단순 아이들의 감정싸움이 그렇게 번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오거리파와 경쟁중이던 종로파의 딸내미와 말싸움 도중 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두미는 변했다. 잘 웃고 활발하던 딸이 말수가 적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음침한 성격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오빠와 주변 조직원을 따라다니며 여기저기 싸움에 끼어들더니 급기야 사고를 쳤다.

종로파와 소사한 다툼이 두 조직간의 전면전으로 확산되고 그 사이에 두미가 사고를 친 것이다. 그 종로파 외동딸의 한쪽 눈을 파버린 사건은 그 당시 뒷세계에서 오랫동안 화자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그 당시 두미의 나이는 열여섯. 그 뒤로 조직원들에게 신신당부를 해 두미의 보호와 사고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고 눈이 뒤집힌 종로파는 죽기살기로 두미를 납치, 상해등 위해 움직였다. 그런 과정에 자신은 냉정하게 차근차근 종로파를 부수고 흡수를 해 단숨에 두배 이상의 세력을 일굴 수 있었지만 뒷맛은 깨운치 못했다.

그때 이후로 느낀 것이 있어 뒷세계에서 나와 전면으로 진출했다. 그 이후 사업은 꽤 승승장구를 했고 그렇게 큰 세력과 기업을 이끌 수 있었지만 든든한 아들과 달리 딸의 사고는 줄지 않았다. 툭하면 조직원과 어울려 다니고, 다니던 학교는 안나가기 일쑤였고 시비가 붙어 싸움을 안하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나중에는 남자친구, 애인이 있으면 좀 여자다워 질까하는 생각에 어느 기획사 연습생을 섭외해 거액을 주고 꼬시는 작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잘란 손가락과 함께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그냥 놔두었다.

이후 좀비사태가 발발하고 바위를 만나고 초능력자로 각성까지 한 딸내미는 이제 누구도, 아니 바위만 통제할 수 있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맘 같아서는 딸내미를 바위에게 넘겨 버리고 싶었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안되었다. 강력한 경쟁자가 바위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평소 남자처럼 살아온 딸내미는 다희처럼 여성스럽게 바위에게 달라붙는 방법을 몰랐다. 그냥 겉으로만 돌면서 대련을 가장한 스킨쉽만 하고 있을뿐, 누가봐도 호감이 있지만 다가서는 법을 모르는 어린아이같았다.

저렇게 다희가 바위를 몰래 따라갔다는 사실만으로 발광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모습처럼 비춰지는 것이다. 두미가 곁에 있던 개목줄의 사내, 메르스를 이리저리 차면서 괴롭히고 있을 무렵 아파트를 돌아 나오는 커플, 소미와 제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데이트를 즐기다 나온듯 희희낙낙한 모습을 들어낸 그들은 앞에 펼쳐진 광경에 걸음을 멈추고 소미가 나서서 무언가를 두미에게 말하는 모습이었다. 바위를 제하면 유일하게 두미를 통제할 수 있는 소미는 두미와 몇마디 설전을 벌이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두미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광경이었다.

그 뒤로 피식거리는 제비의 얼굴과 소미의 눈짓을 받고는 얼른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 그리고 같이 어디론가 향하는 그들의 행선지는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자동차 정비소 방향이었다. 그곳에서 지내며 온갖 요상한 물건들을 만들고 있는 일우와 도끼를 보러 가는 듯 했다.

정확히는 일우를 보러 갈 것이다. 정확한 대화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두미의 기분전환을 위한 대련상대로는 현재 일우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엄청나게 싫어하지만 일방적인 관계인 그는 결국에는 대련을 가장한 분풀이를 하는 두미를 뿌리칠 수 없으리라.

그런 광경을 센터에서 지켜보던 그녀의 오빠 으뜸이 말문을 열었다.

" 일우씨가.. 불쌍하네요. 언제 한번 대접을 해야겠어요. "

좋은 생각이었다. 아들이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표정이 풀린 사장은 아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 그래. 그리고 요즘 도끼와 일우가 하는 일에도 많은 지원을 해주거라. 분명히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

언제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 공방, 정비소였던 곳을 개조한 그곳은 공장지대에서 가져온 온갖 장비들로 넘쳐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공장에서 근무하던 몇명을 스카웃하더니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도끼와 일우가 있었다.

" 그건 그렇고.. 그 목사와 주민대표라고 우기는 자들의 행동은 어떠하냐? "

" 네, 일단 공장지대에서 온 사람들에게 각자의 생활공간을 제공하니.. 예전의 광신도적인 행태들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아무래도 그 당시 집단생활의 부작용이 있는 것같아요. "

" 그렇지.. 자신의 개인생활이 없어지면 집단의 광기에 쉽게 노출되니 말야. "

" 그리고, 그 주민대표라는 자와 목사가 연합을 해서 스스로 조직체계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자발적인 채집조를 운영한다던가.. 자경대를 조직한다든가 하는.. 뭐, 대부분의 주민들이 한걸음 물러서서 사태를 보고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구요. "

" 클클, 결국 그렇구나. 지금 시기에는 생필품이 권력이나 다름없으니.. 그것을 우리가 쥐고 있으니 말도 못하고 스스로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놔둬라. 몇번 하다보면 그것이 어떤 일이고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지 저들도 깨달을테니.. "

" 네, 아버지. 근데 왜 저런 자들을 그대로 두는 겁니까? "

" 그건 말이다. 인간은 내리 누르려고 하면 튀어오르려는 습성이 있어. 자기들 스스로 해보고 절망감과 포기를 느껴봐야 스스로 납득을 시작하지. 아, 역시 안되는구나. 힘들어, 어려워. 저들에게 속하면 얼마나 쉽게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스로를 세뇌시켜야 그들을 통제하기 쉬워진단다. 그게 대중이고 저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관념이 박힌 민주주의라는 말이지. "

" 아, 네.. "

으뜸은 뭔가 알듯말듯한 표정으로 수긍을 했지만 아직도 얼굴에는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걸음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 후우, 어렵네요. 그건 그렇고 바위는 잘하고 있겠죠? "

" 클클.. 너는 아직 바위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사람을 볼때 그 외견도 중요하지만 그 내면을 봐야한다. 내가 볼때 바위는 그 누구보다 강한 내면을 지니고 있어. 그리고 그 실력도.. "

" 저도 그건 알지만.. 요즘 같이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줄 알고.. "

" 그래, 그건 맞지. 하지만 바위는··· "

뭔가를 말하려던 사장은 이내 깊은 눈빛으로 무언가를 바라봤다. 그 앞에 대답을 기다리는 으뜸도 같이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깊은 내면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두 부자는 서로를 잊은 듯 각자의 세계로 빠져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롸앗! 크와악!

서울내에 위치한 실내체육관. 최근에 완공된 현대적인 외양을 가진 최신식 실내체육관이었다. 실내에 테니스 코트 몇개와 농구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어진 이곳은 좀비사태 이후 만월회가 점거하고 있었다.

그 실내에 커다란 동물을 가둬놓기 위해 만들어진 쇠창살을 가진 우리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 우리 곳곳에는 좀비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좁은 쇠창살 틈으로 좀비들의 괴성과 살의가 실내를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런 좀비우리를 내려다 보는 시선이 있었다.

" 저들도 한때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

" 회주, 하지만 저들은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을 천적이자 포식자인 그런 존재가··· "

" 후우, 천둥, 아니 대한씨. 우리가 만난지 얼마나 되었죠? "

그런 아래의 정경에서 눈을 뗀 회주가 고개를 돌려 천둥을 바라보며 물었다.

" ··· 아마 칠팔년은 넘었을 겁니다. 갑자기 왜.. "

휠체어에 앉아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인, 회주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대꾸하는 천둥이었다.

" 그렇군요. 생각을 그동안 해왔어요. 천둥이나 선샤인의 부모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같은 관계가 되어있을까요? "

" 글쎄요..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지난 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 법이죠. 우린 현재와 미래를 살고 있으니.. "

" 호호, 그렇죠. 그게 현실적인 대답이죠. 하지만··· "

말을 흐리는 회주를 걱정스럽게 쳐다본 천둥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진행하시는 일이 잘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

" 아뇨. 잘 되고 있어요. 목표는 멀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열차는 착실하게 가고 있답니다. 호호호, 제가 괜한 걱정을 드렸네요. "

가볍게 웃으며 분위기를 전환시킨 회주가 눈빛을 빛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 오랫동안 생각해 왔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우리들은 사이퍼가 되었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말이죠. 거기에 대한 결론을 어느정도 추론했어요. "

회주의 말에 궁금함을 내보이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천둥은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거기에 답하듯이 바로 회주가 말을 이었다.

" 혹시 느끼고 있는지 몰라도 사이퍼 대원들 중 성격이 뒤틀려있거나 편향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대부분은 아니지만 정상인의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 있죠. 안그런가요? "

" ··· 흠.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시기에 정상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잖습니까? "

" 맞아요. 그런 시대죠. 혹시 그 전에 각성한 사람들의 성격은 어땠나요? 그리고 미각성 사이퍼들은? "

그녀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던 천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확실히 정상적인 인물들은 몇 명 없네요. 근데 그것과 사이퍼 각성의 인과관계와 무슨···? "

"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도 많은 자료가 쌓이면 하나의 일정한 법칙을 이루는 경우가 있어요. 이것이 그런 경우죠. 많은 사이퍼들의 과거를 조사한 과정에서 하나의 비슷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어요. 그건 그들의 부모, 아니 정확히는 어머니가 없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였죠. 편부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많은 상처를 받는 경우와 그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각성을 한 뒤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에요. "

일기장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다. 이런 사실은 그녀가 몇년전부터 조사하고 자료를 모으면서 저절로 알게 된 하나의 사실과 미래에 일어날 일을 대입해 끌어낸 추론이었다. 물론 모든 사이퍼들의 어머니가 죽은 것은 아니었기에 신중을 더했다.

그녀의 말에 회주의 어머니도 어릴때 여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천둥이 조심스레 질문을 했다.

" 그럼··· 우리, 사이퍼들은 한명의 피해자고 그런 관계가 사이퍼 요건이 된다는 말인가요? "

" 글쎄요. 이 저주이자 축복인 능력이 어떤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그 원인파악을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야 정확한 진단과 결론을 내릴 수 있으니... "

심각한 표정을 짓는 천둥의 얼굴을 슬쩍 바라본 회주가 미소를 지으며 의제를 바꿨다.

" 부상당한 대원들의 치료는 마쳤나요? "

최근들어 신세계의 공세와 기습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팀원들의 부상이 많아져 신속한 처리와 투입이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로 알고 있는 그녀였다.

" 그게.. 회내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치료를 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큰 부상을 입은 대원들은 늦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머천다이저측 병원을 이용하고자 제안을··· "

" 아, 그래서 였군요. 그 병원에서 저를 만나자는 요구를 해온 이유가.. 후후, 그 사람들 꽤나 급한 모양이더군요. 하긴··· 이제는 선택할 때가 되었으니 말이에요. 정부의 힘은 커져가고 있고, 이 상태로 가다간 예전의 국가상태로 돌아간다면 그들이 누리고 있던 모든것들이 물거품이 될테니 말이에요. "

" ··· "

" 걱정말아요. 저를 노출시켜 가며 그들을 만날 이유는 없으니까. 아마 김집사님이 그들을 만날 것이에요. 저는 그냥 구경정도..? "

그녀의 대답에 표정을 굳히며 반박을 하는 천둥이었다.

" 위험합니다. 회주, 신세계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데 굳이 외출을··· "

자신을 말리는 천둥을 슬며시 바라본 회주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일으키며 대답을 했다.

" 정체는 드러나지 않을꺼에요. 그리고 잊어버린 모양인데.. 저도 사이퍼에요. "

휠체어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킨 그녀의 손에 천둥의 옆구리에 걸려있는 환도가 쥐어져 있었다. 미처 천둥이 반응할 사이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회주는 그런 환도를 이리저리 흔들어 본 뒤 천둥에게 돌려주며 말을 이었다.

" 후후, 정 걱정스러우면 선샤인이랑 같이 갈테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

그런 회주의 행동과 말에 별말없이 고개를 깊숙이 숙인 천둥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전면 유리에 비친 실내체육관의 정경을 눈에 담았다. 비록 지금 실험체로 잡혀 있는 이들이었지만 사람으로 돌릴 수 있는 연구를 성공한다면 저들도 한명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것이 어렵고 힘들겠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작업들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머리는 알고 있지만 한줄기 희망의 끈을 놓기 싫은 인간의 습성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회주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런 생각을 하는 회주의 눈에 격리된 우리의 한곳에 갖혀 있는 좀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연구팀원의 하얀가운을 입은 배교수가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펑퍼짐한 몸매를 가진 그녀를 발견하고 손을 창살 사이로 내밀어 그녀를 잡으려고 발광하는 한 좀비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그 좀비는 그녀의 아들이었다.

다가설듯 말듯 망설이는 그녀의 곁으로 다른 동료가 다가와 다독이는 모습과 고개를 숙인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러한 사람은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톡, 톡.

팔걸이부분을 손톱으로 가볍게 때리는 소리가 원장실을 울리고 있었다. 이런 소리는 병원장이 고민이 있을 때 내는 것이었다. 지금 원장실에는 원장을 비롯해 몇명의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이 병원을 움직이는 실세들이었다.

" 그래.. 최우선 대상자인.. 그 차돌의 수술날짜가 잡혔다고? "

" 네, 간단한 신장이식 수술입니다. "

한 중년의 의사가 보고를 했다. 원래는 이식수술 자체는 간단하지 않을 뿐더러 케이스도 많이 없었다. 누군가 장기기증을 해야하고 수많은 대기환자의 순번에 따라 적합성을 검사해서 통과해야 수술을 하는 예전과 달리 지금은 장기 샘플이 넘쳐나고 있고 수술할 환자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하루에 한번이상 이식수술이 이뤄지고 있었다.

괜히 전쟁중에 의술이 가장 발달한다는 소리가 있는게 아니었다. 지금은 댓가만 지불한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것으로 바꿀 수 있는 시대였다.

" 좀비들의 장기 활용은 아직 진척이 없나? "

" ... 네. 감염되는 것과 동시에 온몸의 장기가 변형이 되어 도저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식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몇번 실험을 통해 이식한 결과 그 사람도 좀비가 되어버려··· "

" 클, 아쉽네. 뭐 어짜피 샘플은 넘쳐나니까.. 그래도 계속 실험해봐. 뭔가 나오겠지. "

" 네. 원장님. "

아무렇지 않게 인권을 무시하는 그들의 대화에 다른 의사들도 별다른 감정의 변화없이 듣고만 있었다. 이런 식의 회의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이어져 왔는지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 물건들은 잘 전달했나? "

" 네, 전달 후 약속된 과천 공장을 받아 머천다이저 협회에 인계했습니다. 이로써 우리 병원의 입김이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

" 크크, 그래. 지금은 조그만 병원에 있지만 우리의 미래는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거야. 모두 기대하라고. "

" 네! "

이미 권력의 맛과 힘에 취해 자신에게 충성을 보이는 의사들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런 웃음을 짓고 있는 원장은 이내 이맛살을 찌푸렸다.

" 만월회에서 연락이 왔다고? "

" 네, 요청한 회주는 직접 오지 못하고 총관을 보낸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

" 역시.. 이미 예상 범위내야. 으음.. 그럼 그들에게 연락을 넣어. 이런 정보는 비싸게 팔아야지. 클클.. "

꽤나 기분이 좋은듯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뭔가를 생각하는 원장은 다른 의사를 모두 내보내고 한명의 여의사와 독대를 했다. 그렇게 남겨진 여의사는 원장과 비슷한 나이대에 앞머리가 눈썹까지 내려온 스타일이 독특한 여자로 회의 시간 내내 팔짱을 끼고 한마디도 하지 않던 이였다.

" 이봐, 키메라. 연구는 어떻게 됐어? 협회에서 성과를 보여달라고 아우성이야. "

" 흥! 거머리. 난 네 부하가 아냐. 저 머저리 의사가 아니란 말이다. 나에게 명령할 생각하지마. "

" 어이, 그래도 난 네 상급자야. 협회의 말을 부정하겠다는 건가? "

협회란 말에 눈썹을 찡그린 키메라가 쏘아보듯 원장, 거머리를 보며 대답했다.

" 아직 진척이 없어. 샘플이 너무 모자라. 살아있는 사이퍼가 더 필요해. "

" 휴우.. 지금 너에게 준 사이퍼 시체만 몇구인지 알아? 단순히 실패다, 모자라다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된다고.. 거기다 살아있는 사이퍼를 달라고? 그런 고급인력을 단순히 네 실험에 써먹자고? "

거머리는 어이가 없는지 황당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 후 답답하다는 듯이 담배한대를 꺼내들었다.

" 잘들어. 이건 협상이 아니라 명령이야. 빠른 시간내에 결과를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너도 네 동생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테니까. "

" 뭐? 이..익.. 내 동생에게 손만 대봐. 니들 모두 갈가리 찢어 죽여주지. "

새파랗게 살기를 발하는 키메라를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대꾸하는 거머리였다.

" 그건 그때가서 죽이든 살리든 하고.. 넌 당장 성과를 가져와야 해. 알겠어? "

쾅! 걸상을 내려치며 벌떡 일어선 키메라는 대답도 없이 몸을 돌려 원장실을 나섰다. 그런 그녀의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붉은색의 바코드가 선명하게 빛이나고 있었다.

처음부터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던 거머리는 원장실을 나서는 그녀에게 시선을 떼고 깊숙이 소파에 몸을 묻고 담배를 빨아들였다. 협회가 기획하던..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기획한 그녀를 이용한 실험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자신과 같은 7번 치료계의 합성과 자신의 능력인 안정이 만나 그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즉시 협회에 요구해 그녀를 자신의 병원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일반인에게 사이퍼의 능력 혹은 맹수의 힘을 심어주는 실험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그 결과 일반인의 몇배에 달하는 힘을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약물을 만들었지만 사이퍼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인공 사이퍼에 매달려왔지만 아직까지 연구의 진척이 없었다.

후우. 거머리가 내뿜는 담배연기가 그의 눈앞을 가리자 마치 그것이 그 연구의 앞날을 보는 듯 보였다. 하지만 번뜩이는 눈빛의 거머리는 결코 포기한 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3 서브웨이(1) 18.07.27 941 21 23쪽
52 신세계(5) +1 18.07.26 927 19 18쪽
51 신세계(4) 18.07.25 849 19 20쪽
50 신세계(3) 18.07.24 880 20 20쪽
49 신세계(2) 18.07.23 948 16 21쪽
48 신세계(1) 18.07.20 923 17 21쪽
47 과거사(6) +1 18.07.19 945 19 21쪽
46 과거사(5) +3 18.07.18 941 21 22쪽
45 과거사(4) 18.07.17 930 17 19쪽
» 과거사(3) 18.07.16 906 16 22쪽
43 과거사(2) 18.07.14 916 18 18쪽
42 과거사(1) 18.07.13 933 21 23쪽
41 만월회(6) 18.07.12 922 16 21쪽
40 만월회(5) +1 18.07.11 956 15 21쪽
39 만월회(4) 18.07.10 964 16 21쪽
38 만월회(3) 18.07.09 978 17 19쪽
37 만월회(2) 18.07.06 991 18 20쪽
36 만월회(1) 18.07.05 1,031 15 21쪽
35 사이퍼(7) 18.07.04 1,028 19 21쪽
34 사이퍼(6) 18.07.03 1,009 18 19쪽
33 사이퍼(5) 18.07.02 995 20 21쪽
32 사이퍼(4) 18.06.29 1,001 20 20쪽
31 사이퍼(3) 18.06.27 1,045 21 22쪽
30 사이퍼(2) 18.06.27 1,081 24 21쪽
29 사이퍼(1) 18.06.26 1,083 22 20쪽
28 쉘터(7) 18.06.25 1,071 27 20쪽
27 쉘터(6) +2 18.06.24 1,192 24 20쪽
26 쉘터(5) 18.06.23 1,067 22 22쪽
25 쉘터(4) 18.06.22 1,067 21 21쪽
24 쉘터(3) +1 18.06.21 1,111 22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