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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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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1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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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9
글자수 :
1,307,372

작성
18.07.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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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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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23쪽

서브웨이(1)

DUMMY

" 대단하네요. "

아파트 단지 주변에 지어진 담장은 도저히 인간이 올라가기 힘들정도의 높이였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유일한 입구는 제법 많은 공을 들여 바리케이트를 만들어 좀비의 공습에도 버틸 수 있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오면서 만져본 테두리 담장은 인간이 직접 쌓은게 아니라 누군가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조그만 아파트단지 쉘터에 몇명의 능력자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회주는 그 궁금함이 얼굴에 드러났다.

쉘터 운영도 굉장히 깔끔하고 질서 있게 하고 있었다. 아파트 내부 길을 따라 오면서 본 주민들의 얼굴에는 수심, 걱정, 비관이 아닌 방문자에 대한 궁금함, 미래에 대한 우려가 있어 다른 많은 쉘터에서 느낀 감정을 보여주었다. 분명 본적이 있는 바위는 이런 운영과 맞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회주는 이런 시스템을 만든 이가 문득 궁금해졌다.

특별히 강제하거나 통제하는 기색이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주민들과 공터 곳곳에서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자체적으로 훈련하는 모습등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인일조, 삼인일조로 허수아비를 좀비라고 생각하고 공격하는 모습은 꽤나 고심을 한 모습이었다. 가끔 혼자서 훈련하는 인원까지 제법 많은 숫자였다.

" 흐응, 그러게.. 쉘터 운영이 이렇게 할 수도 있네요.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

회주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선샤인이 회주의 말을 받았다. 그 옆에서 묵묵히 걷고 있던 천둥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들로써도 이런식의 운영은 수많은 쉘터를 만들고 운영했었지만 처음보는 광경들이 많았다.

" 여러분, 하느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린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

한쪽에는 목사차림의 중년인이 성경책을 펼쳐들고 그 앞에 옹기종기 모인 주민들에게 전도를 하는 모습 역시 신기했다. 다른 쉘터에는 종교가 광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통제를 했기에 저렇게 대놓고 전도하는 목사의 모습은 낮설었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앞에 모인 주민들의 표정이었다. 누가봐도 믿음을 가진 얼굴이 아닌 지루하고 따분한 표정들이었다. 무슨 이유가 있어 저곳에 모였는지 모르지만 최소한 저 목사의 설교가 목적이 아닌 듯 했다.

다른 한쪽에는 목사와 비슷한 연배의 중년인이 반듯하게 차려입고 뭔가를 열렬히 외쳐대고 있었다. 무슨 정치, 탄압, 여당, 야당.. 이런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보아 주민들을 모아 세력을 만들 생각인듯 보였다.

하지만 그 남자의 주위에는 목사와 달리 아무도 없었다. 가끔 지나가는 주부들이 멈춰서서 그를 쳐다봤지만 그것도 잠시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다시 갈길을 가는 모습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지나 쉘터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놀이터에 도착을 했다. 주민센터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더더욱 특이했다. 한쪽에 커다란 콘크리트 무덤 앞에 비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둘째치고 주민센터 문앞에 개줄에 묶인 남자가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 옆에 개밥그릇과 개집까지 있는것으로 보아 확실히 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번듯하게 생긴 남자가 묶여있으니 회주일행은 잠시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 흐응.. 저 개.. 아니 남자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흠.. "

선샤인이 뭔가 생각날듯 나지 않는 표정으로 주민센터 정문에 묶여 있는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는듯 여기까지 안내해온 대머리 사내가 말했다.

" 아! 메르스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인이 따로 있··· "

대머리 사내, 문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정문을 걷어차듯이 열어젖히며 나왔다. 문어는 그 사람이 사스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눈을 피했다.

하지만 문을 박차고 나온 사스는 문어와 그 옆에 있는 사람들에 신경쓰지 않고 씩씩 거리며 정문앞에 앉아있던 개.. 아니 청년을 걷어찼다.

퍽! 깨깽! 멍하니 있다 날벼락을 당한 청년은 습관적인지 비명이 아닌 개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한번 더 걷어찬 후에 기분이 좀 풀렸는지 개줄을 잡고 어디론가 나서려는 모양이었다.

그때 그 뒤로 한 남자가 따라나오며 사스에게 뭐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 야, 미친년아! 왜 사람을 개취급해. 그만 괴롭히고 풀어줘. "

" 뭐래? 일우씨. 니나 잘하세요. 뒈지기 싫으면.. 안그래도 그 다희년을 그때 대가릴 쪼갰어야 했는데.. 씨벌, 이게 무슨.. "

" 큼, 너 계속 그렇게 나오면 다시는 니 무기 안 만들어줄꺼야. "

" 그래? 그럼 너도 내일 뜨는 해를 못보겠지. 니 필요없는 대가리를 짤라서 정문에 걸어두고 뭐? "

사스의 두 눈에 시퍼런 광망이 맺히자 찔끔하며 물러선 일우가 더듬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 너 자꾸 이러면 바위에게 고자질할꺼야. "

" 뭐? 어쩌라고? 고자질해, 넌 진짜 고자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까 한말 못들었어. 난 필요없다고 나가있으라잖아. 씨벌. 이것들이··· "

" 워,워. 그건 네가 별로 도움이.. "

쓰릉.. 어제 새로 맞춘 마체테가 시퍼런 칼날을 빛내며 뽑혀 나오자 얼른 입을 닫은 일우가 시선을 돌렸다. 그런 일우의 눈에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문어와 그 안내인들이 들어왔다.

" 어, 저기 손님들 왔다. 난 이만.. "

그 말을 남기고 황급히 사라지는 일우와 써늘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미친ㄴ.. 아니 여인을 마주한 회주일행은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안되었다. 일반 사이퍼와 변절자가 한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인물들의 바코드 색깔이 반대로 된 듯 했기 때문이었다.

누가봐도 변절자, 적색 바코드는 이 여자가 가지고 있어야 설명이 되고 아까 그 남자, 일우는 청색 바코드가 아닐까 할 정도로 정상이었다. 순간 자신들이 잘못 본 줄 알았던 것이다.

" 뭘 봐? 미친년 첨 봐? 한 판 떠? "

이런 상황이 마치 눈싸움처럼 변해 서로를 한참 쳐다본 각각은 그제야 실수를 깨닫고 입을 열었다.

" 아, 죄송해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우린 이 주민센터로 들어가면 되나요? "

회주의 마지막말은 아직도 고개를 숙인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는 문어에게 한 것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문어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 네, 이쪽으로.. "

최대한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문어의 피나는 노력을 알아챘는지 별말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움직여 주민센터로 들어가는 회주일행이었다. 그런 그들을 첨부터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고 하나하나 살핀 사스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 별것도 없는 것들이.. 폼은.. "

중얼거렸지만 충분히 회주일행에게 들릴 정도의 소리였기에 발끈한 천둥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 당신! 말이 너무 심하군. "

" 응? 뭐? 내가? 왜? 그래서? 한판 하자고? 어? "

" 이··· "

천둥이 발작하듯이 뭐라고 하려하자 회주가 막아서며 말했다.

" 그만! 우린 손님이야. 미안해요. 우린 그런 뜻이 없어요. "

순식간에 뭔가 뜻대로 진행되는 일이 막히자 사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 쯧, 됐다. 흥이 식었네. 올라가봐. 가자, 메르스. "

그렇게 개목줄을 쥐고 터덜터덜 걸어 아파트를 돌아 사라지는 그녀를 지켜보던 회주일행은 뭔가에 홀린듯 자리를 지켰다. 그런 손님들을 보며 미안한 표정의 문어가 급히 변명을 했다.

" 본래.. 저 정도는 아닌데.. 아무래도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봅니다. 일단 자리를··· "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되고 자리를 하게 된 곳은 주민센터 이층에 마련된 회의실이었다. 그곳에는 바위를 비롯해 다희, 제비, 사장, 도끼, 으뜸, 은혜, 원장님까지 쉘터의 주요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련된 자리의 맞은편에 앉은 회주일행은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 전 만월회란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임나연이라 합니다. 만나서 방갑습니다. "

" 네, 저는 이 쉘터의 운용부장 차인철이라 합니다. 그냥 사장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

" 저는 지원부··· "

쉘터를 구성하고 있는 운용부, 지원부, 무력부, 채집부, 기술부까지 모든 부서들의 수장이 자신의 소개를 마치자 회주는 그제야 이해를 했다. 특히 운용부장 차인철의 경우는 그 놀람이 컸다.

일기장에 기록된 인물들 중에 그의 이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인철, 예전 오거리파라는 조직폭력배로 시작해 기업형 조폭으로 성장, 아포칼립소 이후 경기도 근교로 거점을 옮겨 세력을 만들고 확장해 그 세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대세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수완이 좋은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이 쉘터의 모습이 이해가 되는 회주였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지원부장이라는 잘생긴 청년 역시 간과할 수 없었다. 차사장이 가장 많은 눈치를 보는 인물은 바위가 아닌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인물들의 관계를 보며 빠르게 이 쉘터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는 회주였다.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그녀가 본 이 쉘터는 모든 것이 바위의 무력, 힘 위에 지어진 기형적인 구조였다.

쉽게 말해 바위가 없으면 사상누각,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사이퍼들의 숫자도 중견 세력들이 가진 사이퍼들의 숫자와 비슷했다. 심지어 변절자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마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이 언젠가 들은 천사고아원이 옮겨온 것이라는 소리에 기억을 해낸 회주는 급히 선샤인에게 속삭였다.

" 그.. 맞지? 북한산 쉘터의 그 항생체로 우리와 거래를 하려고 했던 그 여자 말이야. "

" .. 네. 기억나요. 워낙 요 근래 사건이 많아서.. 특히 북한산 쉘터 작전은··· "

" 혹시 잘못된 건 아니겠지? "

" 네, 언니. 걱정말아요. 그 사건으로 사망자는 있지만 그 여자는 그 명단에 없었어요. 확실해요. "

선샤인에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회주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 저희쪽 쉘터에 천사보육원 출신의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이름이 인혜였나? 그럴꺼에요. "

" 아! 인혜가 그 쪽에 있습니까? 하아, 잘되었네요. 잘되었어. 하하하. "

여지껏 아무말없이 듣고만 있던 원장이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위도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인혜는 바위도 잘 알고 있었고 잘 따르던 누나였으니 말이다.

원장님은 당장이라도 인혜를 데려오고 싶은 눈치였으나 이번 협상에 차질을 줄까 쉽사리 입을 열어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바위 역시 내심 방가운 정보였지만 그런 사정때문에 지켜보고만 있었다.

회주는 그런 그들을 지긋이 바라보다 제안을 했다.

" 여기까지 오면서 여러분들의 보금자리를 봤어요. 대단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이정도까지 쉘터를 정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무엇보다 사람들을 다루는데 아주 능숙하신 분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

슬쩍 사장과 제비쪽으로 눈길을 준 회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래서 한가지 제안을 하려고 해요. 본래는 바위씨와 다희양의 힘을 빌리려 했지만 그보다 더 나은 제안이죠. "

바위측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제안에 대해 여러가지 준비를 해놓은 상태에서 갑작스런 회주의 그런 말에 혼란스런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제비가 유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 네, 말씀하시죠. "

그런 제비를 보며 결정권은 그와 사장에게 있다는 생각에 그들을 보며 말을 잇는 회주였다.

" 우린 만월회와 동맹을 맺는 거죠. 그리고 이 큰돌모임? 큰돌회에서 세력을 확장해 주십사하는 것이 내 제안의 최종 목적이에요. "

" ··· 그게 무슨? 그게 지금 당신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요? "

잠시 말을 잊은 바위측 인사들의 침묵을 깬 것은 사장이었다. 어짜피 언제가는 해야 할 일을 조금 앞서 해달라는 그녀의 제안에 아직까지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호호, 네. 어짜피 신세계의 목적은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우리에 넣고 싶어하는 거에요. 결국 그들은 인간을 가축으로 만드려는 것이 목적이죠. 다시 말하자면, 어짜피 부딪히게 될 거란 이야기죠. 단지 그 시간을 좀 앞당겨 주십사하는 겁니다. "

" 흐음.. 그렇군요. "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고 각자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말은 틀린것이 없었다. 바위에게 들은 변절자들의 모습,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정보들을 취합해 의견을 나눈 결과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그녀의 말이 맞다는 것은 아니었다.

" 하지만 우리의 역량이 그 정도로 뛰어나지 않다는 거죠. 단순히 세력을 확장하려면 필요한 자원과 물자, 인력이 얼마나··· "

" 필요한 것은 우리측에서 전부 지원해 드리죠. 무기, 정보, 자원까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제가 말한 것은 그런 동맹이에요. "

" .. 그건 너무 파격적인데, 우린 무엇을 드려야 하죠? "

기브앤테이크. 협상의 기본이다. 내가 얻을 게 있다면 반드시 줘야 하는게 있는 법이다.

" 가장 우선 목표는 신세계의 몰락이에요. 그리고 대한민국의 안정이죠. 마지막으로 제 부탁 하나를 바위씨가 들어줬으면 해요. 물론 거절 하셔도 되죠. "

그건 대의였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가장 큰 목표이자 나아가야 할 길이자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의 희망이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제안이었다.

바위측 인사들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며 무언의 대화를 나눈 후 사장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 그런 제안, 안 받으면 바보겠죠. 좋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상세협약은 별도로··· "

" 네, 잘하신 결정입니다. 그런 의미로 한가지 선물을 드리죠. 여기서 불과 몇십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를 저희가 정부로부터 임대를 받았어요. 본래는 임시 쉘터가 들어설 자리지만 지금 정부의 여력이 부족해 저희가 쉘터를 만들기로 한거죠. 그곳을 여러분에게 양도하겠어요. "

일명 육사라 불리는 곳으로 서울 태릉에 위치한 이곳은 150만 평방미터의 크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수많은 건물과 생활관, 실험실, 사격장까지 갖춰진 곳으로 쉘터를 만드려는 곳들 중 가장 좋은 여건을 가진 곳이었다.

또한 서울과 가까워 진입이 자유롭고 이미 만들어진 담장은 조금만 보수해도 외부 좀비들의 유입을 막을 수 있게 해주는 곳이었다.

" 일차적으로 내부청소가 끝났으니 언제라도 사용하시면 될꺼에요. "

그녀가 말하는 청소는 내부에 있는 좀비들 소탕을 말하는 것이리라.

" 그곳의 전기는 언제든지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으니 연락만 주시면 돼요. "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낸듯 청산유수처럼 내뱉는 그녀의 설명에 넋이 나간 사람들은 멍하니 그녀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른 무언가 튀어나올지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 그외는 차차 협의하기로 하고.. 혹시 다른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

이미 그녀의 말에 과부하 상태인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생각에 잠긴 모습들이었다. 그 모습에 옆에 앉아 있던 천둥이 회주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 회주님. 부탁이 있습니다. 저 바위라는 자와 대련을 허락해주십시오. "

" 으음··· 갑작스럽네요. 그건 바위씨에게 물어봐야겠죠? 어때요? "

그녀도 내심 궁금했는지 바위에게 의향을 물었다. 회 내부에서 최강이라고 불리는 천둥과 어쩌면 드레드노트일지 모르는 바위의 대결이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드레드노트일지라도 지금 현재는 일기장에서 말하는 그런 모습이 아닐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일기장에서 경각심을 주고자 과장을 곁들였으리라는 마음도 조금 가지고 있는 회주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도 충분히 강하다는 것은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에 일기장이 쓰여진 시간대보다 훨씬 강해진 천둥과의 대결이 기대되는 이유였다.

잠시 고민을 한 바위가 몸을 일으켰다.

" 좋습니다. 대련장으로 가시죠. "

그렇게 장내의 사람들은 잠시 고민을 접어두고 다 같이 뒷산에 마련된 대련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 뒤를 회주와 묘한 눈빛의 선샤인이 뒤따르고 있었다.


스르릉.. 칼집에서 빠져나오는 환도는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그 환도를 보던 사장이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어디서.. 본 듯한 환도인데 말야. 흠.. "

지금이야 대부분 부하들과 바위를 비롯한 간부들에게 기부를 해서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자신의 유일한 취미인 고대 병장기 컬렉션 중 본적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환도에 관심을 끊고 막 시작한 대결에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쉘터내 사이퍼들의 대련은 몇번 보았지만 대부분 바위가 지도대련형식으로 가르침을 주는 형식이었기에 생사를 오가는 대련은 사장도 처음보는 것이었다.

스악-! 예고없이 천둥의 환도가 바위와 사이 공간을 갈랐다. 사장이 보기에는 마치 천둥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바위의 앞에 나타나 환도를 휘두러져 있는 광경이 사진처럼 눈에 들어왔다. 그 중간 과정은 마치 생략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 허억! "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행들 중 누군가가 신음을 흘렸다. 마치 천둥의 환도에 바위의 몸이 갈라지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장은 침착했다. 고작 그 정도에 당할 바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여준 천둥의 움직임 정도는 자신의 딸내미, 사스도 쉽게 보여주는 움직임이었다. 얼마나 미친듯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칼을 휘두르는지 도저히 눈으로 쫒을 수 없던 그 움직임은 고작 저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 사스와 다희, 일우를 동시에 상대하고도 여유가 넘치는 바위였기에 그런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다. 사장의 생각대로 바위는 별다른 큰 움직임도 없이 단 한발짝만으로 천둥의 사정권에서 이미 벗어나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한 채 그 둘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는 것과 달리 다희등 몇명은 무심한 얼굴로 장내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 중 다희는 긴장없이 호기심어린 얼굴로 둘의 대련을 지켜보는 선샤인과 회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 회주의 아름다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본 다희는 살짝 굳은 얼굴로 다시 대련중인 두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 여기까지.. 더 이상 다가오지... 부디.. "

" 넌 또 뭐라 중얼거리는 거야. 그 손가락 좀 어떻게 해봐라. 이년아, 니 속마음이 드러나잖아. "

어느새 다가왔는지 다희의 옆에 있던 나무 위에 앉은 사스가 다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존재를 느꼈는지 대꾸없이 정면을 바라보는 다희의 눈에 대결의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는 전투가 들어왔다.

파캉! 우르릉!

얄밉게 피하고만 있는 바위에게 조금 화가 났는지 천둥의 환도에 은은하게 우뢰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 칼날위로 파츠츠 스파크가 튀며 위험한 느낌을 더욱 높여주고 있었다.

"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꺼요. 대충 탐색이 끝났으니 능력을 사용하겠소! "

살짝 뿔이 난 듯한 음성으로 예고하는 천둥이 환도를 들어 기수식을 취했다. 환도를 역수로 쥐며 최대한 몸을 웅크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듯한 자세였다. 그런 그의 환도를 중심으로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전극이 천둥의 온몸을 휘감듯이 돌아다녔다.

주변에 서 있는 것만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자기장을 발생시켰다. 서둘러 주변에 있던 일반 관객이 몇걸음 물러서는 와중에 천둥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압! 번쩍! 쿠르릉!

기합과 함께 뛰쳐나간 천둥의 주위로 하얀빛이 터져나갔다. 갑작스런 빛에 눈을 가린 좌중은 뒤이어 덮친 우뢰소리에 놀라 급히 장내를 쳐다봤다. 아직 시야가 정확히 확보되지 않은듯 연신 눈을 끔벅이며 바라본 장내는 마치 사진의 한장면처럼 멈춰선 두사람의 모습이 잡혔다.

바위는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휘둘러진 환도를 정확하게 두 손바닥으로 잡아채고 있었고 천둥은 그 손바닥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 와중에 회주는 걱정스런 얼굴로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회주가 본 그 둘의 실력차이는 명확했다. 바위가 평상시 어떤 수련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천둥의 공격을 대부분 흘리는 그 움직임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수만볼트가 넘는 전압을 가진 천둥의 능력을 고스란히 받아내고도 멀쩡한 그의 상태였다. 아무리 능력자라고 하지만 그 정도의 전격은 쉬이 받아낼 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그 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굳은 표정을 한 회주의 뒤에 선샤인이 흥미로운 얼굴로 바위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 역시 회주가 느낀 점을 알고 있었지만 걱정보다는 호기심이 더 많은 얼굴이었다.

장내 사람들의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 하고 맞붙어 힘을 쓰고 있던 천둥은 힘을 풀며 말했다.

" 후우,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가르침 고마웠어요. "

천둥은 대련하는 도중 바위가 단순히 피하는 것만이 아닌 자신의 움직임을 교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전투도중 쓸데없는 움직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장은 고칠 수 없겠지만 언젠가는 고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웠다. 또한 바위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련은 부끄럼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와 부끄럼을 느낀 천둥이 몸을 돌리자 사방에서 박수소리가 터쳐나왔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무승부인 셈이었고 화려하고 현란한 그들 대련은 또 다른 경험이었기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돌아온 천둥에게 눈빛으로 인사를 한 회주는 제비와 사장에게 고개를 돌려 마지막인사를 전하고 천천히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헬기가 착륙한 곳으로 이동을 했다. 분명히 성과있는 협상테이블이었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은 날이었지만 돌아가는 회주일행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그 모든것의 원인은 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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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과거사(4) 18.07.17 930 17 19쪽
44 과거사(3) 18.07.16 905 16 22쪽
43 과거사(2) 18.07.14 916 18 18쪽
42 과거사(1) 18.07.13 933 21 23쪽
41 만월회(6) 18.07.12 922 16 21쪽
40 만월회(5) +1 18.07.11 956 15 21쪽
39 만월회(4) 18.07.10 963 16 21쪽
38 만월회(3) 18.07.09 978 17 19쪽
37 만월회(2) 18.07.06 991 18 20쪽
36 만월회(1) 18.07.05 1,030 15 21쪽
35 사이퍼(7) 18.07.04 1,027 19 21쪽
34 사이퍼(6) 18.07.03 1,009 18 19쪽
33 사이퍼(5) 18.07.02 995 20 21쪽
32 사이퍼(4) 18.06.29 1,001 20 20쪽
31 사이퍼(3) 18.06.27 1,045 21 22쪽
30 사이퍼(2) 18.06.27 1,080 24 21쪽
29 사이퍼(1) 18.06.26 1,082 22 20쪽
28 쉘터(7) 18.06.25 1,071 27 20쪽
27 쉘터(6) +2 18.06.24 1,192 24 20쪽
26 쉘터(5) 18.06.23 1,067 22 22쪽
25 쉘터(4) 18.06.22 1,067 21 21쪽
24 쉘터(3) +1 18.06.21 1,111 2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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