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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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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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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372

작성
18.07.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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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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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21쪽

신세계(1)

DUMMY

" 혹시 실례인가요? "

그렇게 묻는 여자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비단같은 검은 생머리에 병약하고 보호해주고 싶은 욕구가 드는 여인, 아니 소녀에 가까운 그녀는 만월회 회주 임나연이었다.

가볍게 미소지으며 방문의향을 묻는 그녀의 뒤로 아까보았던 철우와 짧은 머리의 고양이상 여자가 시립해 있었다. 언젠가 병원에서 본 여자였지만 가장 앞선 회주를 보는 바위는 다른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전원 사이퍼로 이루어진 이들.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여인, 조근조근한 말소리부터 기품있는 손짓까지 무언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그들을 파악한 바위는 다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 짧게 합시다. 보시다시피 환자가 있는 병실이라. "

언뜻 냉정하고 차가운 바위의 목소리에 발끈한 선샤인이 앞으로 나서며 뭐라 하려고 했지만 그녀를 막아서며 회주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 그러면 잠시 나가서.. "

" 아뇨, 우린 보호해야 할 사람이 있어서.. 여기서 하시죠. "

" ··· 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저희에게 힘을 빌려주세요. 그러면 그에 따른 댓가를 지불하겠어요. 즉, 당신들을 용병으로 고용하고 싶어요. "

그 동안 회주등이 생각한 것은 이미 서울 곳곳에 조직과 각종 모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사이퍼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었다. 적게는 한명, 많게는 수명에 이르는 사이퍼들은 이미 그들이 누리고 있는 혜택과 지위에 만족을 하고 있고 이 상황이 바뀌는 것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자신과 주변인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어쩌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각자의 이유와 명분이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몇번 설득 해봤지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몇번 접촉을 하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댓가를 주고 그들을 고용하거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몇번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치루고 난 뒤에는 타 세력을 움직이는 교본처럼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여기 바위나 다희의 경우에도 서울 외곽에 자신들의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한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더해 회주가 한가지 조건을 더 추가했다.

" 만약 승락하신다면 당신들 쉘터에 전기를 공급시켜 드리죠. 그리고 통신수단까지 제공할 용의가 있어요. 어떤가요? "

여지껏 접근해 온 사람들, 기업가, 정치인의 대부분은 먹거리나 생필품으로 그들을 유혹했지만 회주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접근을 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제안에 조금 흔들린 바위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했다. 현대에서 전기가 갖는 의미는 생활에서 떼려야 뗄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뛰어넘어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가전제품까지. 분명히 고아원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것들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바위는 눈을 뜨고 회주를 응시하며 물었다.

" 만약 승락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

반쯤 승락으로 들은 회주는 얼굴이 활짝 펴지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꽃이 만개하는 듯 했다.

" 우린 신세계라는 곳을 퇴치할꺼에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적색 바코드를 가진자들이 모여 만든 곳이죠. 인간을 사육하기 위해 세상을 동물우리로 만들려는 자들이에요. "

바위도 몇번 마주친 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심지어 일우라는 적색바코드를 가진 이가 자신의 진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 그들은 절대악인가? 당신들은 선이고? 그걸 누가 판단하는 거지? "

바위는 물었다. 누군가의 생명을 헤치려는 일이다. 누가 그런 판단을 내리고 규정하는 것인가에 대해 묻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선이고 이들이 악이라면.. 아니 요즘 같은 시기에 선악을 묻는 것도 우스웠다. 자신에게 이득이 가면 선이고 이익을 헤치면 악이라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 ···. "

할말이 없어진 회주는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바위의 말은 틀린 것이 전혀 없었다. 단지 의견의 차이일뿐. 자신은 그들이 어떤 존재이고 미래에 인간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실을 다 말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지금 좀비사태의 원흉은 그들일 확률이 가장 높아요. 그리고 그 변절자들은 식인을 함으로써 에너지를 보충하고 상처를 치료하죠. 결국 그들은 인간의 대척점, 포식자이자 좀비들을 움직이는 존재들이에요. 그것만으로 부족한가요? "

바위도 짐작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처음 일우를 만난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무작위한 적대는 단순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바위가 고쳤다고 생각하지만 언제 다시 발작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특히 피를 보면 자신도 주체할 수 없다는 일우의 말에 일우는 채집조에 참가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었다.

" 그들을 되돌리 수 없는 건가? 최소한 인간에 대한 적대심을 없앨 방법은 없나? "

일우를 생각한 바위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그런 바위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회주가 대꾸했다.

" 네, 지금은 없어요. 좀비치료제를 연구하고 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요. 더 이상은 극비라 말씀 드릴 수 없군요. 이제 답변을 들었으면 하네요. "

" 아니, 지금은 확답을 못내려. 나 혼자 모든것을 결정할 수 없어. "

그런 바위의 말에 의외라는 표정의 회주는 생각했다. 대다수의 세력들은 일인 독제 체제로 돌아가고 있었다. 힘이 있는 자, 사이퍼가 내린 결정에 그에 소속된 사람들은 무조건 따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앞에 있는 사내의 말은 그런 체제가 아닌

모두의 의견이 반영된 민주주의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이야기 였다. 여러모로 이해가 안되는 사내였다.

" 그렇다면··· 어쩔수 없네요. 그럼 언제쯤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요? "

본래라면 이렇게 이 사내, 바위의 세력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신세계가 갑작스럽게 세력을 넓히며 잠식해 들어가는 속도가 자신의 준비보다 빨라 부득이 하게 외부세력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최대한 손실없이 신세계를 일망타진해야 했다. 그렇기에 이런 머천다이저 거머리들과도 연계를 시도한 것이다.

그녀의 말에 잠시 생각한 바위가 대답했다.

" 일단 형의 병세가 완화되고 우리가 쉘터로 돌아가야 답변을 줄 수 있어. "

" 흐음.. 우린 무작정 기다릴 수 없는··· 당신들 쉘터의 위치를 저희에게 알려줄 수 있나요? "

조심스럽게 묻는 회주였다. 보통은 자신들의 거점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약탈을 주업으로 하는 일부 세력을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였다. 그런 회주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바위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 서울 외곽, 북동쪽 OO아파트 단지를 거점으로 삼고 있어. "

그의 말에 서울지도가 머리속에 그려지고 정확한 위치가 찍혔다. 생각보다 멀지만 헬기로 돌아 이동한다고 해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헬기를 도심을 가로지르는 것은 위험하지만 외곽으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회주였다.

" 조만간 찾아가죠. 그리고 한가지 부탁드릴께 있어요. "

" 뭐지? "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듯 했지만 회주가 갑작스레 부탁을 해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진 덕분인지 형이 깨어나려는 듯 꿈틀대자 미간을 찌푸린 바위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 저와 대련.. 아니 제 공격을 단 한번만 받아주세요. "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무슨 의미인지 생각한 바위가 물었다.

" 뭐하자는 거지? 네 공격을 받아달라고? "

" 네, 딱 한번 공격을 할테니 받아주세요. 여기 어떤분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테니 걱정안하셔도 돼요. "

그녀의 의도가 궁금해진 바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공격해. "

아직도 정좌해 있던 바위가 승락하자마자, 바위는 눈알이 따끔한 느낌을 받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뭔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듯 했는데 그런 눈을 비비며 시선을 돌려 회주를 바라봤다. 방금 전과 미묘하게 달라진 그녀의 모습과 위치, 그리고 손에 들린 날카로운 단검이 눈에 들어왔다.

" 공겨을 한건가? 신기한 능력이네. 역시 사이퍼들이 어떤 능력을 쓰는지 알수 없으니 항상 조심해야 겠어. "

저 단검이 자신의 눈을 찔렀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위는 만약 조금이라도 자신의 힘이 약했다면 눈이 뚫려 위험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사실에 더욱 다짐을 더한 바위였다.

그런 그를 보며 질린 눈빛으로 본 회주는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 돌아서며 말했다.

" 고마워요. 조만간 찾아뵙죠. 그럼 이만.. "

그렇게 문을 나선 회주와 선샤인, 철우는 어느정도 걸음을 옮긴 후에 식은땀을 흘리는 회주를 지키며 선샤인이 물었다.

" 언니, 왜 그래요? 몸이 안좋아? 아까 무슨 일이..? "

그녀의 걱정스런 물음에 덩달아 철우의 표정도 안좋아지자 고개를 설래설래 흔든 회주가 대답했다.

" 아뇨. 단지··· 휴우. 아니에요. 제가 요즘 이런저런 문제에 신경을 과하게 썼나봐요. "

그런 그녀의 말에 걱정스런 말투로 이런저런 위로를 건내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회주는 방금전 상황을 떠올렸다. 자신의 능력, 시간 조작은 길어야 십초내외. 그 이상 늘리면 몸에 부담이 너무 증가해 후속타가 불가능했다. 방금도 십초정도의 시간동안 평소 수련하듯이 바위의 전신을 공격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인간의 급소중 가장 약한 눈에 약간의 상처를 줄 수 있었지만 그 뿐. 시간이 풀리고 순식간에 아문 눈동자의 상처는 유효타라고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느낀 바위의 에너지는 깊고 넓었다. 부딪혀 봐야 알 수 있는 그런 그의 힘을 느낀 그녀는 두려움과 희망을 보았다. 그가 드레드노트인지 알수는 없지만 그 성정이 결코 나쁜 쪽이 아니었기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잡아야 겠다는 마음을 굳힌 그녀는 다시금 뒤돌아 그가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그리고 몇일 뒤, 바위의 형이 퇴원을 했다.


" 여,여기가.. 어디에요..? "

떨리는 목소리로 누군가 물었다. 자신들을 구원해 주고자 왔다고 전하며 데리고 지나온 곳은 마포대교였다. 마교대교의 위에는 주정차되어 있는 수많은 차들로 꽉 막혀 있었고 그 차들이 마치 하나의 묘지처럼 다리를 메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목소리에 가장 앞서 가던 사내가 돌아보며 말했다.

" 조금만 가면 된다. 그리고 더 이상의 질문은 금한다. "

평범한 이십대 청년의 모습을 가진 그는 차갑게 말하며 주변을 통제하던 사내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런 그를 본 사내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 모두 입닥쳐! 우린 곧 신세계로 들어간다! "

" 너희들에게 구원을 내린 분들이 계시는 곳이다. 모두 엎드려 칭송해라! "

건장한 사내들의 위협에 순식간에 조용해진 그 일행들은 물경 백여명이 넘었다. 자신들이 숨어있던 곳에서 부터 이곳까지 좀비의 습격없이 무사히 도착한 것에 안도감을 느낀 것도 잠시 돌변한 사내들의 위협에 모두 당황한 얼굴들이었다.

가족단위, 혹은 연인, 누군가는 비슷한 무리를 지어 걷고 있는 이들의 눈에 곧 다리가 끝나고 교차로가 눈에 들어왔다. 위 초록색 표지판에는 여의도라는 글자와 몇미터 남았는지를 표시하고 있다.

" 여의도? 이곳은 안전한건가? "

누군가 의문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주변에 있는 이들도 그런 의문에 동조하듯 연신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도로, 인도와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예전, 사고 이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아직은 멀어서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모습은 좀비에 대한 걱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곳으로 끌고 온 이들의 말대로 마치 신세계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에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띠를 머리에 두른 이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건장한 남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붉은 머리띠의 사람들은 가장 앞서서 걷고 있던 청년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쪼아리며 외쳤다.

" 둠스터님을 뵙습니다. "

몸을 낮추는 그들은 두려움에 몸을 살짝 떨고 있었다. 하지만 둠스터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지 그들을 무시하며 지시를 내렸다.

" 여기 데려온 가축들은 동쪽지역으로 몰아넣고 관리하도록. 사고가 없도록 유의해라. 만약.. "

눈을 번뜩인 둠스터가 경고하듯 말했다.

" 저번처럼 자살을 하거나 다툼으로 가축들의 몸뚱이가 상하면 그 죄를 너희에게 묻겠다. "

" 예, 예! 둠스터님. "

머리가 아예 땅에 닿을듯이 숙인 그들이 일사분란하게 이구동성으로 복명복창했다. 제법 멀리서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붉은 두건을 쓴 사람들의 우렁찬 목소리는 일행들의 귓가로 들렸다. 그 속에 묻어나는 두려움과 경외를 느낄 수 있었다.

경고를 날린 둠스터는 어느새 건물 사이로 모습을 감추자 엎드려 있던 붉은 두건의 사람들이 일어나 모두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지시를 했다.

" 들어라. 남자는 왼쪽, 여자와 아이는 오른쪽. 지금 움직여라. "

아까와는 전혀 다른 고압적이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그들의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었다. 쫙쫙! 아스팔트를 채찍으로 내리치자 그들을 이끌고 온 사내들이 몸을 움찔 떨며 몽둥이를 휘두르며 지시에 따르라고 여기저기 외치고 다녔다.

" 빨리 움직여. 조장님들의 말씀이 안들려? 어이, 거기 뭐하는 거야? "

" 우,우린 가족이요. 같이 있게 해주시오. "

" 이 새끼가 지금까지 뭘 들은거야. 빨리 저쪽으로 안가? 몽둥이 맛을 봐야 움직일래? "

지시에 불응하며 한쪽에 몰려 있던 가족 네명 중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머뭇거리며 말을 하자 몽둥이를 든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가왔다. 그런 모습에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급히 말했다.

" 여보, 일단 저쪽으로 가봐. 여기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겠지. 빨리.. "

" 으,응.. 그래, 현우야. 지우야. 엄마 말 잘 듣··· "

퍽! 악! 어느새 다가온 사내는 더 이상의 말도 없이 냅다 몽둥이를 후드려 치자 그 남편이 머리를 감싸며 나가 떨어졌다.

"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죽고 싶어? "

" 우아앙.. 우리 아빠한테 왜 그래요! 나쁜 아저씨! "

머리를 감싸쥐고 나뒹구는 아버지를 본 아이들이 울고불며 아빠에게 다가가려 하자 엄마가 두 아이를 감싸앉으며 말했다.

" 잠시만, 잠시.. 괜찮을꺼야. 우린 이제 좋은 곳으로 온거야. 얘들아. 엄마를 보렴. 자.. "

아이들을 달래며 최대한 아이들이 아빠를 못보게 만든 그녀는 우는 아이들을 달랬다. 그 소리를 들은 붉은 두건을 쓴 여자가 다가왔다.

" 머하는 거야? "

" 네.. 지금 이자가 지시에 불응해서.. 교육을.. 헉. "

짝! 쩔쩔 매는 남자의 얼굴로 채찍이 날아와 후려갈겼다. 하지만 남자는 차렷 자세를 유지한채 고개를 숙이고 그 채찍을 그대로 얻어맞았다. 순식간에 채찍을 맞은 부위가 부어오른 남자는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그 자세 그대로 지시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 정신차려. 그깟 주민하나 통제 못해서 어떻게 홍건조가 될 수 있겠어? 한번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퇴출이다. 알겠나? "

" 옛! 조장님. "

퇴출이란 말에 기겁을 한 남자는 더욱 기합이 든 눈빛으로 부동자세를 취하며 붉은 두건을 쓴 여자에게 대답을 했다. 그런 사내를 한번 훑어본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에 있던 가족들을 쓰윽 보고 고개를 돌렸다.

" 빨리 움직여라. 시간이 없다. "

" 넵! "

그렇게 다른 곳으로 그녀가 이동을 하자 아직까지 부동자세로 있던 남자는 다시 몽둥이를 들고 가족에게 지시했다.

" 들었지. 시간이 없다. 너는 저쪽으로 가고 아이와 여자는 저기로 움직여. "

조금 힘이 빠진 목소리로 지시하는 그를 따라 일어난 남편과 부인일행이 헤어져 각자의 자리로 이동을 했다.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로 나뉜 그들은 각자 다른 길을 통해 여의도에 들어섰다. 가까이에서 본 여의도는 깨끗했다. 높은 빌딩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주거지역보다는 상업지역이 많이 자리한 여의도의 풍경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현우엄마는 몇번이나 지나차면서 봤고 여기에 가끔 놀러도 와본 기억이 있기에 그리 달라지지 않은 여의도를 연신 둘러보며 속으로 감탄을 했다. 처음 이들이 신세계로 간다고 했을때는 그냥 그런 조직이름인가 보다 했는데, 실제로 신세계 처럼 보이는 이곳은 그녀를 예전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다만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통제는 걱정되었지만 예전에 있던 곳도 이 정도의 폭력은 늘상 있어온 수준이었기에 그리 큰 걱정이 아니었다.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있지만 좀비가 거리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런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손을 꽉 잡은채 붉은 두건을 쓴 여자를 따라 여의도 청사 기준 오른편의 거리로 들어선 여자와 아이들, 수십명은 좌우로 늘어선 건물들 사이로 수많은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자리잡고 있는 주민들이리라. 하지만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거리는 조용했다.

그런 거리를 걸어 한 건물에 들어선 그 일행의 앞으로 다시 붉은 두건의 여자가 나섰다.

" 여기가 너희들이 머물 곳이다. 우리 홍건조는 너희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조직으로 앞으로 우리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면 된다. 이해했나? "

" ···. "

아무도 반문과 질문을 하지 않자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여자가 말을 이었다.

" 각자 이 건물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어느 곳이든 알아서 자리를 잡고 다시 내려오면 생필품을 나눠주겠다. 그리고 너희들끼리 모여 대표를 선출해라. 너희들의 모임은 여자F-2조다. 식사는 매일 오전 8시와 오후6시에 배식을 한다. 이상. "

" 말씀 못들었나? 빨리 올라가 자리를 잡고 내려와라. 모포와 매트리스를 지급할테니, 이 건물내에서는 어떠한 다툼도 인정하지 않는다. 규칙을 어길시 퇴실조치를 하겠다. "

그 옆에 서 있던 사내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위협을 하자 앗 뜨거라 하며 급하게 건물을 올라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혹시나 건물안에 좀비가 있을까 두려운 눈빛으로 두리번 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건물은 텅텅 비어 있었고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깨끗한 편이었다.

" 생각보다 좋은데? 전에 있던 곳보다 깨끗해. 물이 나오지 않아 씻지는 못하겠지만 한강이 바로 옆에 있으니 물공급도 쉬울테고.. 괜찮은데? "

그렇게 중얼거리는 여인, 한씨 아줌마는 아래층의 사나운 눈길을 벗어나자 제법 여유를 부리며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었다. 예전에 이 건물은 사무실로 사용이 되었는지 제법 많은 방이 존재했다.

현우엄마 역시 한씨 아줌마를 따라 아이들과 함께 이곳저곳 둘러봤지만 좋은 터는 이미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조금 늦은 현우엄마는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이 높은 층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높은 층으로 올라 갈수록 배식과 이동이 불편했기에 낮은 층부터 자리한 사람들은 대부분 약삭빠른 솔로이거나 억측스런 아줌마들이 대부분이었고 상대적으로 느린 아이들이 있는 여자들은 높은 층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현우엄마와 느긋한 한씨 아줌마도 오층에 이뤄서야 겨우 방을 잡을 수 있었고 그곳에 자리를 마련하고서야 다시 일층으로 내려와 신상명세를 작성하고 생필품을 받을 수 있었다.

" 현우엄마, 근데 말야. 여기 좀 이상하지 않아? "

" 뭐가요? 아까는 좋다면서요.. "

" 아니, 아무리 둘러봐도 좀비 한마리도 없어. 지금 서울 시내에는 몇백마리부터 몇만마리의 좀비들이 우글대면서 돌아다니는데 말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여의도가 이렇게 깨끗한게 말이돼? "

" 말이 되니까, 이런 곳이 있는거겠죠. 아님 여기 조직의 힘이 대단하거나. 그, 왜 사이펀가 뭔가 하는 초능력자가 운영하는 곳 아닐까요? 하, 피곤하네요. 꽤 긴거리를 걸었고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거 같아요. "

" 흠.. 알았어. 현우엄마는 좀 쉬고 있어. 이곳의 대표선출도 한다고 하니 난 나가서 정보 좀 얻어올테니 말야. "

그렇게 말한 한씨 아줌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건물을 내려갔다. 참 기운찬 여인네라고 생각한 현우엄마는 이미 매트리스에서 눈을 붙이고 있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른곳으로 간 남편을 걱정했다. 그렇게 그녀는 아이들의 옆자리에 누워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신세계에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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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이퍼(2) 18.06.27 1,081 24 21쪽
29 사이퍼(1) 18.06.26 1,082 22 20쪽
28 쉘터(7) 18.06.25 1,071 27 20쪽
27 쉘터(6) +2 18.06.24 1,192 24 20쪽
26 쉘터(5) 18.06.23 1,067 22 22쪽
25 쉘터(4) 18.06.22 1,067 21 21쪽
24 쉘터(3) +1 18.06.21 1,111 2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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