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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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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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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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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372

작성
18.07.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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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만월회(5)

DUMMY

임나연, 만월회 회주인 그녀는 방금 전해들은 정보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지막 남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쉘터에서 들어온 정보. 항체를 보유한 일반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본래 일기장에도 그 정보가 적혀 있었다. 단지 그 사람은 이제 십여세가 지난 어린 남자 독일인이고 지금으로부터 몇달이 지난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만. 전부터 직감한 사실이지만 그녀가 아는 미래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

비록 그것이 좋은 쪽일지 나쁜 쪽일지 모르지만 아직은 대체적으로 희망으로 보는 회주였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차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의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 후우, 커피가 쓰네요. "

후릅 커피 한모금 마신 그녀의 낮은 중얼거림에 반응한 것은 맞은편에 않아 있는 개발팀장이었다. 여전히 낡은 양복을 깨끗이 다려 입은 중년의 개발팀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본래 커피는 쓴 법이지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

" 그를··· 데려와야 해요. 어쩌면 그 시간이 더 빨라 질수도 있겠네요. "

고개를 선선이 끄덕인 개발팀장은 자신의 옷깃을 정리하면서 알수없는 표정으로 회주를 지긋이 바라봤다.

" 회주님, 근데.. 그다지 기쁜 표정이 아니시네요. 허허허, 그리고 우리측에 그 정보를 가지고 접촉한 인물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항체보유인과 직장동료라고 하던데··· 꽤나 상황판단과 눈치가 빠르더군요. "

그 직장동료라는 사람의 판단은 적절했다. 쉘터 본부의 직원이 아닌 무력3팀장 울프에게 그런 사실을 알리다니 말이다. 만약 쉘터 직원에게 알렸다면 쉘터 내부의 세력들에게 그 사실이 흘러들어갔을 것이고 상황이 꽤 복잡하게 흘러갔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쉘터의 세력들은 미약하게나마 정부와 기업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 그 동료라는 여성이 내건 조건 중 하나가 자신 포함 세명의 인원을 우리회에 받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들 중 항체를 가진 사람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

그쪽에서 제시한 요구의 대부분은 안전과 생존에 관한 것이었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조건이다. 회주는 그들의 불안감을 이해했다. 보통 영화나 소설을 읽으며 자란 세대들이 이런 상황을 비춰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종의 편견이었지만 당연한 본능이다.

" ··· 마지막으로 특이한 부탁을 해오더군요. 서울 북동부에 위치한 천사보육원의 현재 상황을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될 수 있으면 그곳에 도움을 달라는 부탁입니다. 아마도 그곳이 그녀의 출신지로 보입니다. "

"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네요. 받아들이는 것이 맞겠죠? "

" 당연합니다. 당장 항체를 연구실로 보내 백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이상 좀비가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간다면 이미 좀비가 된 사람들도··· "

" 아뇨. 그건 불가능해요. "

단호하게 불가능을 외친 회주는 개발팀장의 희망을 단숨에 부숴버렸다. 이미 좀비가 됐다는 말은 한번 죽었다는 말이었다. 즉, 좀비가 백신을 맞아 인간으로 돌아오면 그 즉시 죽는다는 말과 같았다. 이것 역시 일기장에 고스란히 적혀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단호한 말에 고개를 숙인 개발팀장은 씁쓸하게 말했다.

" 그렇군요.. 하아, 하지만 저는 아직은 희망이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형식으로든 말이죠. "

개발팀장의 희망을 버리지 못한, 미련 가득한 목소리가 회장실 내에 조용히 울려퍼졌다. 그런 그의 두눈에 맺힌 풍경이 무엇인지 알수는 없었지만 그안에는 아련함과 미안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그 속에서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의 침묵을 깬 것은 회주였다.

" 최근 들어 변절자들의 기습과 함정에 대원들의 피해가 늘고 있어요. "

" 네, 그 구루라는 변절자가 저희들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듯 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이퍼가 변절자가 된 듯합니다. 예전에는 못보던 변절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걸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

알고 있는 정보였다. 이것 또한 회주가 예측하지 못한 미래였다. 본래라면 많은 사이퍼, 변절자들이 드레드노트에게 죽거나 그의 파괴행위에 휘말려 각성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나가야 했을 미각정자들이 버젓이 살아 만월회나 정부,변절자로 소속되었다. 이 말은 애초에 드레드노트가 죽었거나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회주가 커피잔을 들어올리자 그런 그녀를 한차례 본 개발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 무슨 짓을 했는지 전파를 차단하거나 교란시키는 방법을 변절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쪽 능력을 가진 변절자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측에서 서울시 전체 CCTV를 해킹해서 감시하고자 준비한 방법은 전기가 끊김으로써 폐기되었고 현재는 드론으로 한정된 장소만 정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 그래서 해결방법이 있나요? "

" 정찰조를 늘리고 드론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외에 정부측과 합동으로 원자력발전소 및 근교 발전소를 재가동시켜 서울로 다시 전기를 공급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정부의 대부분 역량이 38선부근에 집중되어 있어,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자체적으로 저전력 CCTV설치를···. "

" 개발팀이 고생이 많군요. 그렇게 진행해주시고 마에스트로의 동태는 어떻나요? "

" 정말 놀랍습니다. 사이퍼란 존재가 만약에 이전에 세상에 나타났다면 문명의 발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입니다. 그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은··· "

이제까지 진중하고 전직 교수답게 논리적인 답변을 하던 개발팀장이 이렇게 흥분하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은 천생 과학자다웠다. 아직까지 완벽하게 개화하지 못했지만 그 상태로도 마에스트로는 수많은 작업을 하고 만월회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물론 그 대가는 확실히 챙기고 있었지만.

마에스트로, 9번 물질계열의 능력자 인챈터. 능력 계열의 숫자가 올라갈수록 그 능력자가 줄어든다는 일기장의 말대로라면 마지막 9번대의 능력자는 세상에 얼마 없을 것이다. 그 축복을 받았지만 채 꽃을 피기도 전에 드레드노트에게 맞아 죽는 그가 지금은 예전과 달리 착실히 성장 중이었다.

물론 마에스트로의 성정은 문제가 있었지만 능력하나 만큼은 확실했다. 대부분 만월회 소속 사이퍼들의 무기와 보조장비들의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덕에 변절자들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였다.

열심히 과학의 미래를 설명하는 개발팀장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자신의, 대한민국의, 세상의 미래를 다시 그려보고 있는 회주, 임나연이었다.


" 메르스, 물어와. "

뼈다귀 모양의 나무조각이 뱅그르르 돌면서 날아갔다. 그것을 따라 목줄을 찬 한 남자가 열심히 뛰어가 입에 물고 돌아온다. 그 남자가 개였다면 평화로운 일상생활이었을 이 광경이 지금은 엽기가 되어 있었다.

그 남자에게 뼈다귀를 받은 사람은 사스였다. 야외 의자에 기대 앉아서 아까부터 이 짓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은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해다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남자를 불쌍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오는 한 여자가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간호복 차림의 제니였다.

" 언니, 언제까지 민호씨를 이렇게 대할꺼에요? "

그렇게 묻는 제니는 이 남자의 이름과 대략적인 정체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니 벌써 그에 대한 이야기를 사스에게 해준 듯 보였다.

" 뭐가? 신경꺼. 내꺼야.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됐어? "

" 아니··· "

뭔가를 더 말하려던 제니는 어짜피 더 말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묘한 시선으로 개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과거 자신이 잠깐 연예계에 몸을 담고 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름 그 쪽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 남자는 몰골이 씻지 못해 더러웠고 추례하게 입은 옷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늘씬한 체형과 선명한 이목구비는 분명 샤이닝스타의 리더 민호가 분명했다. 물론 본인은 부인을 했지만 눈썰미가 좋은 제니는 확신하고 있었다.

" 야! 차돌오빠, 어떻게 됐냐고 묻잖아. "

재차 묻는 사스의 말에 들어있는 짜증을 느낀 제니는 금방 시선을 돌려 답했다.

" 네, 언니. 일단 소미언니가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데··· 그 능력으로 치료가 안되는 종류의 병인가봐요. "

" 그래서? 바위오빠는 어떻게 한데? "

" 그건··· 아직 결론을.. "

사스의 미간이 찌푸려 지는 것이 보이자 당황한 제니가 급히 변명을 하려고 했다. 그에 앞서 메르스가 눈치를 보며 바짝 엎드렸다. 그때 회관에서 바위가 휄체어에 탄 차돌과 제비, 소미, 다희가 함께 막 문을 나서고 있었다.

벌떡 일어선 사스가 종종걸음으로 바위에게 다가가자 안도의 한숨을 쉰 제니와 메르스도 급히 뒤따라 갔다. 가까이에서 본 차돌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원래 소아마비로 인해 심하게 마른 체형의 차돌은 힘없이 휠체어에 기대앉아 가끔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더욱더 구기고 있었다.

" ··· 지금 방법은 대형병원에 가야해요. 아마도, 수술을 해야 할 상황까지 올 수도.. 그렇기에 대형병원에 가야하는 거죠. 예상대는 질병은 합병증인 소장 폐쇄와 척수염이 의심되는데··· "

소미가 차돌의 옆에서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불어넣으면서 바위에게 차돌의 상태를 브리핑해주고 있었다. 그 곁에선 모두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위와 차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바위가 차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 그래서 지금 당장 병원을 찾아가겠다는 거야? 혼자서? "

제비가 안에서 뭔가를 결심한 바위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이 쉘터 자체가 거의 바위 힘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제비의 걱정은 당연했다.

그런 사실은 쉘터내 일반주민들을 제외하고 중요인물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런 바위가 차돌을 데리고 큰 병원을 찾아가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 그래. 어쩔 수 없어. "

이미 결심을 굳힌듯 단단한 목소리로 다시 그의 생각을 알렸다. 어느샌가 조용히 다가와 상황파악을 하던 사스가 손을 번쩍 들었다.

" 나! 나도 따라갈래. 누군가 차돌오빠를 보호해줘야 하잖아. "

그녀의 말에 제비는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설래설래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 안돼. 너까지 빠지면 쉘터운영이 불가능해. "

얼마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적색바코드를 가진 사이퍼의 위험성을 깨달은 제비와 사장은 몇일간 머리를 싸매고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그 대책의 중심에는 자신측 사이퍼들, 다희, 사스, 일우가 있었다.

만약 바위가 외부에 장기간 나간다는 말을 듣는 순간 다희와 사스는 무조건 따라 나설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제비는 바위의 결정을 듣는 순간 머리가 아팠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 가는 건 나혼자 간다. 나머지 인원은 여기서 아이들을 보호해줘. "

그때 바위가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바위에게 있어서 고아원 아이들도 중요했기에 제비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자신과 다른 사이퍼들이 쉘터를 비운다면 쉘터 운영이 어렵다는 사실을 대략이나마 알고 있는 바위가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이미 바위가 결정한 사항은 절대 뒤집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쩐일인지 다희는 별다른 제스처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 그래도 누군가 따라가 차돌형을 돌봐줘야 하지 않을까? "

제비가 안도와 함께 걱정도 되는지 물었다. 그 말에 곰곰이 생각을 한 바위가 대꾸했다.

" 괜찮아. 도끼가 만들어준 이 튼튼한 휠체어도 있고 무엇보다 형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있으니까. 다른 사람은 도리어 방해가 될듯해. "

바위는 최근 도끼가 만든 이 휠체어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구조는 정확히 모르지만 자동차의 서스펜션을 뜯어 만들었다는 휠체어는 수동이지만 덮개를 덮으면 그 방호력이 웬만한 자동차보다 괜찮다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만큼 투박하고 크기도 크고 무거웠지만 바위에게는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았다.

"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야. 바위야, 넌 우리 쉘터의 희망이자 정신적인 지주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주면 좋겠다. "

진심어린 제비의 어조에 피식 웃으며 끄덕인 바위가 좌중을 둘러보며 전했다.

" 내일 출발하는 것으로 하지. 준비는··· 크게 할것도 없으니 간단히 제비가 준비해줘. 그리고 다희와 두미는 쉘터를 잘 부탁한다. "

다희와 두미를 번갈아 보며 신뢰어린 눈빛을 보내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녀들이 방긋 웃으며 부끄러운듯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들을 보는 좌중의 시선에는 당황과 어이없음이 서려있었지만 대부분 못본척 넘어갔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 일찍 제비와 사장이 바위가 수련하는 장소를 찾아왔다. 어제부터 하루종일 뭔가를 준비하듯이 바위는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뒷산 공터에 좌정하고 앉아 있는 바위는 팬티 한장만 걸친 상태였다. 그런 그를 본 제비와 사장은 숨을 죽이며 시선을 고정했다. 바위의 전신에 모공이 열려 수증기를 뿜어내듯 옅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전신의 강철같은 근육들이 약동하듯 부풀어올랐다 수축했다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마치 진흙으로 인간의 완벽한 모습을 만들어 내는것 같은 모습이었다. 제비는 예전부터 해오던 수련이라는 이름의 고문, 자기학대의 모습만 봐오다 이런 모습은 처음인듯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근육의 모습도 일반적인 펌핑한 근육과 그 모양이 전혀 달랐다. 마치 거대한 다리를 지탱하는 와이어로프처럼 근섬유를 꼬아서 만들면 저런 모습일까? 설명할 수 없는 탄성과 강인함이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졌다.

단순히 조각같다는 말을 넘어 신성하게 보였다. 제비 옆에 서 있던 사장도 입을 벌린채 점점 압축해 가는 바위의 근육들을 보면서 넋이 나가 있었다. 직업적 특성상 전국의 근육질 사내들, 주먹들을 봐온 사장이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광경은 난생처음인 듯 보였다.

" 후우···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가볍게 숨을 내쉬며 눈을 뜨는 바위는 습관처럼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 드디어 5단을 넘었네. 딱 맞춰서.. "

사실 바위는 몸을 움직여 수련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경험치가 쌓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시험 끝에 이런식의 집중을 통해 전신을 단련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15050000010. 현재 그가 본 자신의 바코드내용이었다. 저 두번째 자리의 숫자를 하나씩 넘길때 마다 큰 변화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웠다. 모든 시간을 수련에만 쓰고 있는 바위의 경우에도 이제야 5단에 들어선 것이었다.

바위는 천천히 몸을 읽으켜 나무위에 걸쳐놓은 자신의 옷들을 걸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꿈틀대는 근육은 예술품 같았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제비와 사장이 눈치 채지 못한 순간에 다희가 모습을 드러내 수건으로 바위의 전신에 묻어있는 땀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마치 성모 마리아상을 닦는 수녀같이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로 정성스럽게 닦아내고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던 제비와 사장은 바위가 옷을 다 입고 돌아서자 움찔했다. 원래 커보였던 바위였는데 지금은 이상하리 만큼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거대한 육식공룡이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 기다리게 했네. 지금 가면되는 거지? "

" 어? 어, 어. 그렇지. 모두 기다리고 있어. 내려가자. "

멍하니 쳐다보던 제비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리곤 옆에 아직도 멍한 얼굴의 사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 사장 아저씨. 뭐 할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

" 어? 휴우, 아니. 저런 모습을 보고 무슨 말을.. 다 쓸데없다고 생각이 드네. 그냥 잘 다녀오라는 말 빼고는 별로 할말이 떠오르지 않네. 그냥 내려가지. "

사장은 몇가지 당부를 전할 생각이었지만 바위의 기백과 비현실적인 광경에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왠지 한 사람, 사내로써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그렇게 몸을 돌려 돌려 내려온 일행은 어느새 사라진 다희를 찾았지만 바위의 한마디에 수긍했다.

" 요즘 무슨 수련한다고 기척을 내지 않고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더라구요. 가끔 기습도 하는데.. 알아서 할꺼에요. "

바코더, 사이퍼들은 각자의 수련방식이 상이했다. 그래서 어느누구도 그들의 수련방법에 대해 조언을 주거나 도움을 주지 못한다. 단지 그 상대가 되어줄 뿐.

어느새 도착한 센터 앞 놀이터에는 소미가 조용히 휠체어를 탄 차돌에게 말을 주고받고 있었고 승합차 한대와 꽤 많은 인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처음에는 무엇때문에 여기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모르는 주민들까지 합세해 제법 대규모인원들이었다.

한쪽에는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있는 교인들의 모습과 주민대표 행세를 하는 그 중년인까지 나와있어 그 규모를 더 키웠다. 바위가 내려오는 것을 본 도끼가 달려와 말을 걸었다.

" 너 괜찮겠어? 조심해야 한다. "

도끼의 진심어린 걱정에 미소를 지은 바위가 도끼의 넓은 어깨를 툭 쳐주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그들만의 행위였다. 그런 바위를 보며 씨익 웃은 도끼가 다시 말을 이었다.

" 승합차에 이번에 개조한 니 무기를 넣어두었다. 제법 쓸만할꺼야. "

저번에 개조하겠다면 가져간 쇠사슬을 말하는 듯 했다. 이젠 무기가 의미없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확신에 찬 도끼의 눈빛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는 바위였다. 지금 자신의 근력을 버틸 수 있는 무기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었지만 그것을 만든 도끼와 일우를 믿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승합차에 휠체어를 싣고 바위와 차돌이 차례대로 올랐다. 차로 진입가능한 구역까지 태워주기로 한 것이다. 이미 제비에게 대략적인 개요를 들은 바위는 그것을 떠올렸다.

' 먼저 북부간선도로를 타고 도심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병원부터 찾아 들어가면.. 작은 병원은 의미없어. 수술실 자체가 없는 병원도 있으니 무조건 대형병원, 대학병원을 찾아야 한다. '

제비가 건내준 서울시 전도를 살피며 표시를 해둔 병원을 눈으로 훑었다. 생각보다 외곽보다 도심에 있는 병원들이 많았다. 눈을 감고 이동경로를 떠올렸다.

그런 바위의 손에 가만히 닿는 손길이 있었다. 형이었다.

" 헤에.. 바,바위야.. 무,무리.. 하,지마.. 난, 정말.. 괘,괜찮어.. "

바보같은 형이지만 자신의 마지막 가족이자 희망이었다. 여기까지 불평불만도 없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따라와준 형이었다. 형만은 꼭 지키겠다고 어린 시절부터 늘 해오던 다짐은 지금에 와서는 어떤 것보다 단단히 굳어 있었다. 세상 그 어느것 보다 말이다.

세삼스레 뼈만 남은 갸날픈 손을 조심스레 감싸며 그런 다짐을 떠올렸다. 이렇게 말랐었던가? 그 동안 난 무엇을 위해 수련해왔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 감정이 들면 자신의 힘에 형이 다칠까 속을 삼킨 바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바위의 모습이었다.

그들을 실은 승합차는 금세 북부간선도로로 들어섰다. 여긴 일반 보행도로가 없었기에 사고가 난 자동차가 적어 통행이 가능했다. 제법 달려 톨게이트로 접어들자 그때는 도저히 차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결국 멈춰선 승합차의 문이 열리며 휠체어와 차돌, 바위가 차례대로 내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문어가 급히 보좌를 하며 구십도로 인사하며 외쳤다.

" 그럼 다녀오십시오. "

일반 대원들 사이에 거의 신급으로 추앙받는 바위였기에 문어는 열성을 다해 진심으로 인사를 올렸다. 그런 문어를 뒤로하고 휠체어에 차돌을 조심스레 앉히고 밀어 걸음을 옮기는 바위였다. 그런 바위가 사라질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있던 문어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그것을 확인하고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시 승합차에 올랐다.

그런 문어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분명히 사람의 실루엣인데 자동차 위를 넘어 바위가 사라진 방향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림자를 스쳐 본 것이었다. 도저히 인간의 속도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헛것을 본것인가 하는 생각에 눈을 비빈 문어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차를 몰아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위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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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서비스
    작성일
    18.07.11 10:56
    No. 1

    병원에.약이나.시설이.있긴.하겠지만...누가.진단과.처방을.해주고.수술해.주나요?
    정상가동되고.있나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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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사이퍼(6) 18.07.03 1,009 18 19쪽
33 사이퍼(5) 18.07.02 995 20 21쪽
32 사이퍼(4) 18.06.29 1,001 20 20쪽
31 사이퍼(3) 18.06.27 1,045 21 22쪽
30 사이퍼(2) 18.06.27 1,080 24 21쪽
29 사이퍼(1) 18.06.26 1,082 22 20쪽
28 쉘터(7) 18.06.25 1,071 27 20쪽
27 쉘터(6) +2 18.06.24 1,192 24 20쪽
26 쉘터(5) 18.06.23 1,067 22 22쪽
25 쉘터(4) 18.06.22 1,067 21 21쪽
24 쉘터(3) +1 18.06.21 1,111 2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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