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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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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8.07.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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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만월회(1)

DUMMY

후우. 가벼운 한숨과 거기에 담긴 고뇌가 조그마한 입술을 통해 사방으로 흘렀다. 그 참을수 없는 무거움에 장내에 자리한 사람들의 고개도 절로 숙여지고 있었다.

그 한숨의 주인, 나연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이미 자신의 최대무기인 미래일기장은 그 가치가 점점 떨어져 지금은 단순 참고만 할뿐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한 일들, 그 작은 나비짓이 지금은 태풍으로 변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현재상태까지 끌고 왔다. 본래라면 지금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세계지도에서 사라졌어야 하는 곳이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일기장에 쓰여진 암울한 세상보다 지금이 훨씬 나아 보였기 때문이고 주변에 자신을 따라주는 많은 이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 고개를 드세요. 그대들이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

방금 받은 보고는 서울 곳곳에 위치한 만월회 안전가옥들 중 하나가 변절자들의 습격을 받아 적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곳이었다고는 하지만 변절자들의 재빠른 행동과 과감한 기습에 충격을 받은 모양새였다.

" 까드득. 언니, 당장 그 새끼들 목가지를 따올테니··· "

유독 상기된 얼굴의 선샤인이 이를 갈며 주장했지만 회주는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선샤인과 친하게 지내던 대원들의 가족들이 그 기습으로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진 탓이지만 회주는 그런 그녀를 말렸다.

" 아뇨. 지금은 아니에요. 아직까지 그들과 전면전을 치를 준비와 역량이 부족해요. 그리고··· "

그리고,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뒤에 어떤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지 여기 보인 인원에게 아직은 알릴 단계가 아니었으니까.

" 회주님. 그럴께 아니라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게 어떻습니까? "

낡은 양복을 입고 있는 개발팀장이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도 통과하지 못했다.

" 아직··· 아직은 아니에요. 지금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는 힘이 뭐라고 생각하시죠? "

" 당연히 정부와 군대 아닙니까? "

" 물론 그들이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힘은 이전의 대기업들과 정치적 이익집단들이에요. 지금 군대에 보급을 하는 먹거리, 총알, 옷, 심지어 휴지등 소모품등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어 납품하는 곳, 바로 그들의 힘이죠. "

" 그건 비축용으로 버티고 있는 것 아니었나요? "

" 그렇죠. 하지만 한달이 넘어서는 시점부터는 비축용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징발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정부와 협상을 한 그 이익집단들이 스며든 것이죠. 대부분의 생산공장과 물류를 그들이 장악하고 있었으니.. "

회주의 조용한 말에 선샤인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 아니, 그 자식들은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정신머리로 협상으로 이득을 취하려고 하고 있다니.. "

선샤인 세대는 한국의 재벌과 기득권만 살기 좋은 나라였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짓을 했는지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온갖 음모론을 듣고 자란 세대였다. 실제로 그런 증거들이 뉴스나 주변에서 보일때면 온갖 욕과 불만을 표시하지만 반대로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인 세대. 그런 세대의 나이대였다.

" 도대체 무슨 생각인걸까요? "

개발팀장이 조용히 물었다. 어쩌면 그도 기성세대, 젊은 세대와는 조금 다른 세월을 겪어온 사람이었기에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재벌이든 기득권이든 생각이 없지는 않다. 현재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인다? 말이 안되는 소리였다.

" ··· 아무래도 그들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것 같아요. 충분히 좀비사태를 막아내고 나라를 재건할 수 있을꺼라는 환상. 그 환상에 빠져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득을 가져올 수 있을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런 상황인거죠. "

이건 실제로 일기장 한켠에 적혀 있던 그들의 망상에 있던 이야기였다. 나라가 망하고 좀비들이 세상을 장악할때까지 환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폐기물 덩어리라고.

물론 지금은 상황이 그때보다 훨씬 좋았고 희망이 보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도 확실했다.

" 왜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가는 그들과 관계가 있어요. 지금 그들이 군부에 깊숙히 관계를 맺고 있고 사이퍼의 존재유무에 대한 정보들 역시 그들은 인지하고 있을거에요.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가는 그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옮겨가고··· 그들이라면 충분히 변절자들을 통제해 자신들의 손발로 쓸 수 있을것이라는 망상을 하게 되겠죠. 그 이후는··· "

말하지 않아도 그 미래에 대한 상상은 저절로 되었다. 변절자는 정확히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코드가 찍힌 좀비이자 인간의 이성을 지니고 초능력을 쓰는 괴물들이었다. 여기에 앉아 있는 몇몇도 바코드를 가진 초능력자들이었지만 변절자를 괴물로 부르기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쉽게 말해 이성없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좀비와 달리 인간의 지성, 간사함, 전략을 지닌 그들이라면 분명히 사회 지배계층의 요구에 대답할 것이고 그들을 이용해 이 나라를 파멸로 이끌어 갈 것이 분명했다. 그들과 직접적으로 부딪힌 적이 있는 전투 팀원들, 특히 천둥은 그 사실을 확신했다.

그 변절자들의 목표는 인간사육과 지배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마치 인간이 좁은 돼지우리에 돼지 수십마리를 가둬놓고 사육하고 언제든지 도살장으로 끌고가 고기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회주의 대답에 또다시 장내가 숙연해졌다. 각자 생각이 많아진 표정들이었다.

" 정부와 협상은 마무리 되었나요? "

분위기를 전환하듯 회주가 시선을 다른 쪽으로 주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에는 마에스트로가 도저히 이십대라고는 상상이 안가는 얼굴로 뭔가에 골똘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까득까득, 쇠구슬 세개를 한손에 쥐고 돌리던 마에스트로가 자신을 지목하는 회주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급히 입을 열었다. 각성 후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저 쇠구슬이 그의 마스코트처럼 여기지고 있었다.

" 네? 아.. 그건, 그러니까.. 대부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하하하··· 요즘 제가 정신이 없어서. "

정신없이 어수룩한 대답을 거내는 마에스트로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천둥이 쏘아보자 당황하며 얼버무리며 핑계를 댔다. 천둥과 마에스트로는 같이 작업을 한 사이임에도 그다지 친해지지 못한 듯 했다. 성격이 너무 달랐던 것이다.

" 정부에 우리 각성제를 전달하고 군사위성 사용권을 일부양도 받았습니다. 아마 몇 개 채널이 몇일안에 열릴겁니다. 하하하. 그리고 금고아도 제대로 만들어 놨으니 이젠 우리측 전력도 상승이··· "

" 혹시 장난질 친건 아니겠지? 대계에 조금이라도 손실이 간다면··· "

유들유들 말하는 마에스트로를 노려보며 천둥이 감정섞인 경고를 했다. 아무리 봐도 둘은 성향이 맞지 않는 듯 했다.

" 하.하.하. 그런 걱정은 넣어둬. 이번에는 완벽하니까. "

예전의 몇번의 실패가 있었는지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불안하게 쇠구슬을 까득까득 돌리는 소음과 함께 슬쩍 눈치를 보며 대답하는 마에스트로였다. 다시 한번 슬쩍 노려본 천둥은 시선을 돌려버렸다.

" 좋아요. 이로써 우리는 첫번째 장애물을 넘었네요. 이젠 다음 장애물을 넘을 준비를 하도록 하죠. "

그렇게 장내를 정리한 회주가 자신의 오른편에 서 있는 연미복의 집사복장을 한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릴때부터 그녀의 곁을 지켜주며 집사역할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모종의 일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최근에 다시 합류한 인물이었다.

볼따구에 난 커다란 점이 인상적인 집사는 회주의 시선에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 지방에 마련된 우리회가 만든 쉘터로 난민들이 생각보다 많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관리를 정부측에 모두 인계 완료를 했습니다. 당장 우리가 그들을 책임지기에는 역량이 모자라다는 아가씨의 의견을 들어 결정한 사항입니다. 가장 중요한 거점인 서울 북한산 쉘터만은 아직 직접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으며 쉘터 운영의 목적인 만월회의 전력강화를 위해 즉시전력이 가능한 남녀를 모집중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유입된 총인원은 만여명이 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 중 원하는 일부의 인원을 잠실의 정부쉘터로 이송시켰으나 북한산 쉘터의 시설의 부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북한산 쉘터내 폭동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

꽤나 긴 보고였다. 요약하면 만월회의 쉘터 중 대다수를 회주의 의견으로 정부에 넘기고 남은 북한산쉘터 운영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었다.

" 도대체! 그 인간들은 이런 상황에서···! "

집사의 보고를 듣고 있던 뭔가를 알고 있는지 만월회의 무력을 대표하는 제2팀장인 코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인물, 속칭 불의 신 아그니라는 이명을 가진 한우지가 분통을 터트렸다. 최근 팀원들의 대다수를 변절자들에게 잃은 경험을 한 아그니는 예전의 가벼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건 천둥도 마찬가지였지만 아그니의 변화는 극적이었다. 특히 무의도식하며 아무런 의무없이 자신의 권리만 챙기려는 인간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감정을 종종 보였다.

탕! 책상을 내리치며 분노하는 아그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전에 본적이 있어요. 선동하는 그 나이먹은 여자, 예전에 서울시 의원출신이라고 했던···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키는 우리에 대한 고마움을 잊은 사람들까지 보호해야 합니까? "

" 아그니, 진정해. 회주님 앞이다. "

천둥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며 머쓱한 표정을 지은 아그니가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 ···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스스로 계급짓게 했을 수도 있죠. 자원은 한정적이고 우린 싸울 사람이 필요하고 그렇게 남은 약한 사람들끼리 뭉쳐서 목소리를 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에요. "

회주는 생각했다. 일만명이 넘는 사람들, 그중에 필요한 자원만 만월회로 받아들이고 남겨진 이들보다 더 나은 삶의 질과 안전을 제공받는 일. 그 자체가 불평등을 만들고 상하관계를 규정짓는 행위였다.

힘이 없는 여성, 어린아이, 노인등도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간 예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 세상인 것이다.

" 우리는 그런 이들까지··· 모두 챙길 수 없어요. 나중에, 먼 훗날에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당장은 눈앞의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멀지 않은 미래의 전쟁을··· "

회주가 어떤 능력자인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장내의 인물들은 그녀의 말을 가볍게 듣지 않았다. 그녀가 말한 미래는 항상 닥쳐왔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가장 큰역할을 한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장내의 공기는 더욱더 무거워졌다. 단순히 쉘터문제나 정부와 관계, 좀비의 문제때보다 큰 위기감을 느끼는 그녀를 바라보는 장내의 인물들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 회주님! 정부에서 라디오방송을 재개했다는 소식입니다. "

그때 회의실 밖에서 누군가 반가운 목소리로 소식을 전해왔다. 그제야 장내에 내리앉은 무거운 공기가 옅어지며 회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 한번 들어보죠. "

금방 마련된 라디오에서 낡은 스피커를 울리며 젊은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치칙. TBS 라디오 방송을 시작합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이렇게 방송을 다시 인사하게 되어 감개가 무량합니다. 먼저 정부의 공식 입장에 대해···.


- ···.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대한국민의 군대는 목포, 통영, 강릉등 십여개의 도시를 수복했으며 그곳을 거점으로 서울까지 빠르게 치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희망이 가득한 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정작 그 희망은 멀리 있었고 현실은 너무 가까이 있었다.

쾅! 쾅!

철제로 만든 정문이 거칠게 무언가로 부딪히는 소리가 집안으로 퍼져나갔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런 정문을 바라보던 인혜는 시선을 돌려 가구등을 옮겨 진입로를 막고 있는 명환과 지윤을 봤다.

어떻게 찾아낸 것일까? 얼마전 머리르 맞고 4층으로 옮겨진 더러운 복장의 사내는 그 쇼크로 얼마 못가 죽어버렸다. 자신들의 첫살인이었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그 이후 저 패거리들의 이쪽 방향의 순찰이 늘어나더니 오늘에서는 결국 아지트를 들켜버렸다. 아마 바로 아래 길거리에 담요로 쌓인채 버려진 노부부의 시신을 발견한 것이리라.

언뜻 본 저들의 무장은 살벌했다. 횟칼이나 주방용 날붙이가 아닌 주로 살벌하게 생긴 둔기류와 어디서 구했는지 오토바이 헬멧을 착용한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조잡해 보였지만 온몸을 감싸고 있는 두툼한 것들, 플라스틱인지 강철인지 몰라도 중요부위를 막아주는 용도로 보였다. 대좀비용 복장인듯 보였지만 같은 인간을 상대할때도 분명히 효율적일 것이다.

" 시발것들아. 문 안열어? 이게 언제까지 니들을 보호해줄꺼라 생각하는거냐? 감히 우리 대식이를 죽여? "

이 건물을 탐색하다 4층에 묶인 채 죽은 동료를 본것이 분명했다. 문밖으로 들려오는 욕설과 문을 부수려는 시도. 다행히 철제로 만들어진 도어는 꽤나 튼튼한지 아직은 잘 버텨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갈지 몰라도 말이다.

" 언니.. 이제 어떻하죠? "

가구를 날라 문과 통로를 봉쇄하는 작업을 하던 지윤이 떨리는 눈빛으로 돌아봤다. 그 안에 담겨있는 공포와 절망은 점점 커져가는 듯했다. 좀비와는 다른 공포. 같은 인간에게 느껴지는 공포가 좀비에 대한 공포보다 더 크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 후우, 후.. 누님. 이대로는 시간이 걸릴뿐, 희망이 없어요.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 "

남자인 명환이가 거친 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인혜를 쳐다봤다. 그런 그의 발목으로 시선을 돌리는 인혜였다. 그 의미를 깨달은 명환이 발을 쿵쿵 구르며 말을 이었다.

" 봐요. 이젠 다 나았어요. 이까짓 상처는 별거 아니에요. "

하지만 슬며시 일그러지는 눈썹을 통해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눈치챌 수 있었다. 인혜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대로는 희망이 없었다. 자신이 사용하던 노트를 꺼내 들어 페이지를 넘겼다. 그 동안 인혜가 작성한 좀비들의 이동경로, 시간, 대략적인 규모가 시간대별로 적혀있었다. 처음에 작성할때는 언제가 이곳을 떠날때 저 좀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해 그것을 피할려고 적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도심의 어느 한곳에서 좀비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에는 부정확한 사항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이 좀비무리들이 원을 그리듯 같은 시간에 지나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 와중에 단 한무리의 좀비, 백여마리 정도로 작은 무리였지만 이상하게도 이 주변을 비슷한 시간대에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부 비슷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좀비들 중 특정해서 어떤 좀비를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특이하게 이 무리는 대부분 노인들로 이루어져 있어 인혜가 쉽게 발견한 것이다.

아마도 어느 경로당이나 실버타운, 그런 비슷한 곳에서 단체로 좀비가 되어 뭉쳐서 떠돌고 있는 듯 했기에 확실히 기억에 남은 무리였다. 대략 이틀에 한번정도 이 거리를 지나치는 이 좀비무리를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인혜의 뇌리를 스쳤다.

그러한 사실을 일행에 털어놓았다.

" 어떻게 좀비를 활용한다는 말이에요? 언니? "

그런 객관적인 사실만 말하고 입을 닫은 인혜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본 지윤이 되물었다. 그 대답은 명환이 했다.

" 그러니까, 좀비들을 끌여들여 저것들을 퇴치하자는 말씀인거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저들이 과연 모를까요? 저들도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이 도시에서 보냈는데 말이에요. "

정확한 지적이었다. 무식하게 좀비들을 때려잡아 저들이 살아남았을리 만무했다. 저들도 저들만의 원칙과 그 정도의 머리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 맞아. 우린 좀비들을 끌여들여 저들을 헤치려는게 목적이 아니야. "

" 네? 그럼요? "

" 분명히 저들도 좀비무리가 가까운 곳에 접근하면 서로에게 알릴 수 있는 수단이 있을꺼야. 그전에 저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하려고 하겠지. 그럼 우리는··· "

" 설마···? 저들이 잠시 피신해 있을 동안에 몸을 빼자는 말씀이세요? "

" 언니, 그럼 좀비들은 어떻게 피해요? 명환이 발목도 정상이 아닌데.. "

그말에 입술을 깨무는 명환의 얼굴을 힐끗 본 인혜는 냉정하게 말했다.

" 최대한 좀비무리를 피해서 움직여야 해. 물론 그 무리와 너무 떨어져서도 안돼. 명환이는 힘들겠지만 잘 따라와야 하고.. 그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챙겨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 "

좀비무리를 피해서 저 패거리들은 거리를 두고 숨을 것이고 자신들은 좀비무리와 일정거리를 두고 따라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설사 패거리들이 자신들을 발견하더라도 좀비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자신들을 쫒지 못할 것이라는게 인혜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명환은 여전히 걱정스런 표정이었고 지윤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좀비무리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말이다.

" 그.. 그냥 저들에게 항복하면··· 하아, 안되겠죠. "

지윤도 보고 느낀것이 있다. 저들에게 항복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끔찍한 삶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스스로 말을 바꾸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런 그녀를 살짝 안아주며 토닥여준 인혜가 조용히 속삭였다.

" 그래, 조금만 참자. 저 라디오에서 말하는 것처럼 언제간 우리들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꺼야. "

인혜는 그 노인들로만 이뤄진 좀비무리를 따르려고 한 이유가 그나마 좀비무리가 달려들때 도망이라도 칠 수 있을꺼라는 얕은 희망을 건것이다. 제발 그 좀비들이 조금이라도 허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누나, 그럼 언제 그 좀비무리가 온다는 거에요? "

명환이의 질문에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각.

"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녁 6시 무렵이었어. 날짜는··· 바로 오늘. "

자신이 적은 놓은 좀비무리들의 출연시간이 맞다면 말이다. 이제 고작 한시간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러는 순간 언제부턴지 정문을 두들겨 대던 소음과 욕설이 들리지 않았다.

그것을 인지한 지윤이 베란다로 달려갔다. 거리는 한산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실려온 역한 냄새. 좀비 특유의 악취가 희미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 조용하네. 언니, 이젠 어떻게 해요? "

이 무리의 리더인 인혜에게 의존하던 지윤은 이젠 아예 대놓고 모든 결정을 맡겨놓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를 본 인혜는 빙긋 웃음지으며 베란다를 가리켰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대번에 알아챈 지윤은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 왜? 굳이 문놔두고 벽을 타야 해요. 히잉··· "

" 그건 분명히 밖에 그 패거리들 중 몇명이 지키고 있을테니까. 당연한거 아냐? "

그런 지윤의 투정에 명환이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런 명환을 힐끔 째려본 지윤은 다시 인혜에게 물었다.

" 언니, 진짜 베란다로 내려가야 해요? "

" 그래, 명환이 말이 맞아. 그 동안 우리가 이때를 위해 준비해둔 것도 있잖아. "

이곳에 머물면서 항시라도 준비를 해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저녁마다 온 집에 있는 천들을 이용해 길다란 밧줄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이 오늘 사용될지 몰랐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감정이 앞섰다.

" 걱정마, 예전처럼 명환이 잡아서 버티는 것도 아니고 어설픈 옷으로 이어 만든것도 아니니까. 훨씬 안전할꺼야. "

희망적인 말이었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예전에는 불과 몇미터만 내려가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십여미터나 내력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벌써 그런 절망을 표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인혜의 생각이었다.

더 이상 투정을 부리지 못한 지윤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준비할것이 많았다. 그동안 정든 이곳도 떠나야 하는게 슬프지만 필수 생존물품을 챙겨야 하는 것은 이젠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배낭에 넣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던 인혜일행은 멀리서 들려오는 좀비의 괴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듯 했다.

" 자 준비하자. 좀비가 모습을 보이고 행렬이 끝나는 순간 내려갈꺼야. 그 꽁무니를 우리가 따라간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해.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명심하고··· "

그녀의 당부가 끝나기도 전에 건물을 돌아 가장 앞선 좀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이 많이 녹아내려 쉽게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명백히 예전에는 할아버지였던 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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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사이퍼(3) 18.06.27 1,045 21 22쪽
30 사이퍼(2) 18.06.27 1,080 24 21쪽
29 사이퍼(1) 18.06.26 1,082 22 20쪽
28 쉘터(7) 18.06.25 1,071 27 20쪽
27 쉘터(6) +2 18.06.24 1,192 24 20쪽
26 쉘터(5) 18.06.23 1,067 22 22쪽
25 쉘터(4) 18.06.22 1,067 21 21쪽
24 쉘터(3) +1 18.06.21 1,111 2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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