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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K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오 바코드(Bio Bar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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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JaeK
작품등록일 :
2018.06.18 12:11
최근연재일 :
2018.11.10 10:0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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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307,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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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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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과거사(6)

DUMMY

" 헉, 헉. 이년아. 좀 더 쪼여봐. "

내 위에서 헐떡이는 사내. 오늘만 몇명의 낯선 사내들이 거쳐갔는지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이미 자신과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몇일이지? 얼마나 지난거지? 생각보다 인간의 생명력은 끈질지구나. 이미 모든것을 포기한 자신인데 문득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오자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매일 나오는 꿀꿀이죽을 받아먹으며 이 하찮은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자신이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좁은 방을 벗어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다. 창문을 통해 본 밖은 종말, 그 자체였다. 다행히 늦여름인지 밤에도 그리 춥지 않아 버틸 수 있었지 아니었음 이미 얼어죽었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얼어죽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위에서 헐떡이던 사내가 배설을 했는지 떨어져 나갔다. 이제 시간이 자정을 넘은 듯 해가 지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이젠 더 이상 사내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예전 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냥저냥 평범하게 살아오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학교도 다녔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들과 놀러다니던 그냥 평범한 여자였다. 아, 남자친구도 있었구나. 문득 떠오른 남자친구의 얼굴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남자를 떠 올리면 이곳에 잡혀오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올라타고 괴롭히던 남자들의 역겹고 더러운 입냄새 가득한 얼굴만 떠올랐다.

처음 이런 창녀보다 더 더럽고 힘든일을 겪었을때 감정은 부정이었고 분노였다. 이건 꿈일꺼야. 이제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로 돌아가겠지? 왜, 왜!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거지? 이게 현실일리 없어.

그런 상태로 몇일이 지났을 때는 타협했다. 이 사내들은 나를 지켜주기 위해 이러는 거야. 지금 밖은 너무 위험해. 그리고 우울이 찾아왔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는 거지? 그냥 죽을까?

하지만 예전 내 스스로 용기내어 무언가를 해 본적도 없는 아이였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영혼이 빠져나간듯 현실을 도피했다. 한마디로 반쯤 미쳐있었다.

그러는 동안 사내들은 내 방을 들락날락 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변태적인 행위에도, 목을 조르고 때려도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인형처럼 지냈다.

오늘 짧은 내 인생을 끝내려고 한다. 그래, 이제야 용기가 생긴 것이다. 이 빌어먹을 용기가.. 차라리 처음에 그냥 죽었더라면,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건지 모를 사내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엄마도 지금 살아있었겠지.

그래, 죽자. 저 좁은 창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끝나는 일이다. 창을 통해 내려다 본 높이는 꽤 높았다. 분명히 사람 하나쯤 바로 죽일 정도의 높이는 되리라.

결심한 나는 행복했다. 미치도록, 그래서 이렇게 눈물이 끊이지 않는 것이리라. 내 세상이 종말을 고하면 나 역시 자유롭게, 더 높은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아무려면 어떠하랴.

창문을 뜯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방범창까지 제거했을때는 이미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잠시동안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아무 의미없던 저 하늘, 해, 바람등이 새롭게 다가왔다. 죽을때가 되면 사람은 감성적으로 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생각에 피식 웃은 뒤 창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자유 낙하, 온몸으로 부딪혀 오는 공기를 느끼며 든 생각은 아, 옷이라도 입을껄.. 이었다. 저 바닥에 부딪힌 내 몸은 흉측하겠지? 그것이 마지막 생각이었다.

철푸득! 콰직!

아스팔트에 고기덩어리가 떨어져 부딪히는 소리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아무도 없는 새벽거리에 울려퍼졌다. 그리 크지 않은 소리에 그 어느 누구도 이곳에 사람에 떨어져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모른채 시간이 흘러갔다.


" 야, 603호에 있던 그년 어디갔어? 아침에 물빼러 갔다 보니 없던데? "

" 뭔소리야. 층별로 비상구가 다 막혀 있는데.. 어딜가? 열쇠도 여기 그대로 보관되어 있구만. 다시 가봐. "

예전에 꽤 고급모텔이었을 건물의 관리실 유리벽을 두고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생김새가 예전에 주먹으로 먹고 살던 이였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사내들이었다.

" 아닌데.. 분명히 확인했는데 말야. 근데 거기 창문은 원래 열리는 건가? "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는지 유리 밖의 사내가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관리실을 지키던 사내가 눈쌀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 뭐? 창문은 잠궈놨는데, 방법창까지 달아서···? 안되겠다. 같이 가보자. "

그렇게 일어선 사내는 옆에 놓여있던 몽둥이를 챙겨들고 막 나서려는 순간 건물의 입구에 누군가가 들어섰다. 어둠보다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날리며 들어선 인영은 여자였다.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의 여자.

유리벽을 통해 그 모습을 본 사내가 비현실적인 광경에 입을 벌리며 뭐라고 하려는 순간 나체의 여자 몸에서 검은색 구름, 연기같은 것이 피어올라 주변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마주보던 밖의 사내도 그런 기척을 느꼈는지 급히 뒤돌아 봤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검은색 어둠뿐이었다.

" 무,뭐야.. 씨발. 누가 커튼을 쳤··· 커억! "

우두둑. 뼈가 분쇄되는 소리와 사내의 짧은 신음이 어둠에 파묻혀 사라졌다. 그런 소리와 어둠을 유리벽안에서 지켜보던 사내는 입을 틀어막고 이 비현실적이고 괴기한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빌었다. 하지만 그의 바램도 무색하게 어둠은 유리벽을 아무런 장애없이 통과해 관리실까지 가득찼고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만 관리실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어둠이 지나가고 남은 건 두 사내의 목이 부러져 덜렁거리는 시체에 생식기가 뜯겨져 나간 상태로 간헐적으로 피를 뿜어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어둠은 천천히 건물 안으로 스며들듯이 들어가고 있었다.

삼보호텔. 명칭은 호텔이었지만 모텔에 더 가까운 숙박업소였다. 지상 팔층, 지하 이층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강남역과 가깝고 유동인구가 많아 항상 만실로 장사가 잘되던 곳이었다. 하지만 좀비사태 이후 이 곳은 강남파라는 조직이 접수하고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초반엔 생존을 위해 무작정 사람을 받아들이고 좀비들과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는 등 다른 조직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고착화되자 예전 습성이 튀어나왔다. 강남파가 주로 관리하던 집창촌, 안마시술소등 여자장사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여자사냥이었다. 아직 서울 시내 곳곳에 숨어있는 시민들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지경. 그들을 먹을거리나 생필품등으로 유인해 여자는 납치, 남자는 고기방패로 훈련시키는 방법으로 그 세를 넓혀갔다. 세상이 망해도 술, 담배, 여자는 항상 찾고 즐긴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강남파가 시작한 성매매는 입소문을 타고 여러 조직에서 찾아오는 유명한 곳이 되었다.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조직은 물론 지하철에 살고 있는 두더지들까지. 이렇게 수많은 인간들이 아직 생존해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인간들이 방문을 했고 댓가를 지불하면서 여자를 품었다.

그런 댓가들이 모여 강남파의 힘이 되어 주었고 지금에서는 강남에서 제일 유명하고 힘이 있는 조직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 조만간 분점을 낸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니 그 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곳에 지금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총 팔층의 건물 중 일이층은 조직원이 머물고 있었고 그 위층은 전부 납치당해 강제로 성매매하는 여성들이 머물고 있는 구조였다. 각 층은 엘레베이터가 작동하지 않고 비상구로만 접근 가능했는데 그 열쇠는 관리실에서만 관리하고 있어 탈출은 꿈에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 말은 강남파 조직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통로를 막고 있으면 누구도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는 구조였기에 그들은 갇힌 쥐새끼마냥 차례차례 어둠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우두득, 끄아악! 살려줘!

이른 아침부터 울려퍼진 비명과 고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 모,모두 무기.. 들어라! 저년은 한명뿌··· 커억! "

돌격대장 역할을 하던 사내가 비명을 내뱉고 어둠에 삼켜지자 전의를 상실한 사내들이 무기를 떨구며 머리를 처박았다.

" 우,우린 아무 잘못 없습니다. 저, 저자가 시켜서 한 일입니다. 사,살려.. "

어둠속에서 언듯 드러나는 여인의 얼굴을 알아본 누군가 바닥에 엎드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어둠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그런 사내의 전신을 감싸 앉았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비명.

그렇게 조직원들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도착한 곳은 가장 마지막에 있는 방이었다.

콰직! 순식간에 문이 부서지며 들어선 방안에는 화려하게 치장된 내부와 커다란 침대, 그리고 거기에 누워 떨고있는 어린 소녀들과 어느새 일어나 총을 떨어져 나간 문쪽으로 겨누고 있는 팬티만 입은 중년 사내. 강남파 두목이었다.

이젠 제법 힘을 다루는데 익숙해 졌는지 어둠을 자신의 옷처럼 둘러 입은 여인, 예전에 603이란 숫자로 불린 여인이 얼굴을 드러내며 앞으로 나섰다.

" 너, 넌.. 누구냐? 우리에게 왜..? "

처음 이곳에 납치당해 왔을때 자신을 유린했던 사내, 603호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이 사내는 그냥 지나가는 한명의 여자일뿐이었나 보다.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두목의 주름져가는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 큭, 진작에 죽을껄··· 너무 늦었네. "

알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미소짓는 여인을 한참 쳐다보던 두목이 급하게 말문을 열었다.

" 내가 가진걸 모두 주겠다. 살려만 다오. "

그렇게 제안을 하면서 연신 좌우로 눈을 굴리는 그 모습은 기회를 엿보는 쥐새끼와 닮아 있었다. 어둠이 스멀스멀 실내로 연기처럼 들어오자 급한 눈빛으로 다시 그가 외쳤다.

" 위, 위에 있는 여인들은 우리가 없으면 위험해. 늑대같은 무리들이 그녀들을··· "

그 소리에 잠시 멈칫한 검은 안개는 어림없다는 듯이 다시 방안을 채우며 들어서기 시작했다.

탕! 급한 마음에 두목은 들고 있던 리볼버를 당겼지만 어둠 어딘가를 파고든 총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모습에 당황한 두목이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지만 방안 어디에도 총탄의 흔적은 남겨지지 않고 어둠만이 두목의 전신을 감싸앉고 있었다.

" 사,살려 줘. 제,제발.. "

꾸드득, 끄아악! 꽈직, 꽈드득.

완전히 어둠에 잠식당한 그가 있던 자리에서 거대한 스크류 압축기에 자동차가 들어가 짓눌리는 소음이 어둠속에서 연신 새어나왔다. 초반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이후에는 뼈를 맷돌에 가는 소리만 들려온다.

그런 소란에도 아직까지 약에 취한 멍한 눈빛으로 침대에 누워 몸을 떨고 있는 두 소녀는 나체인 자신의 몸을 가리기 위해서인지 두려움때문인지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 있었다.

한참을 두목에게 집중하던 603호는 볼일이 끝나자 그런 소녀들을 한번 힐끔 본 뒤에 미련없이 몸을 돌려 문을 나섰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힘없는 그녀들을 구할 준비도 역량도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이 위층에 남겨진 수많은 여인들의 목숨도 저 소녀들도 자신이 구원하지 못한다. 아니 스스로가 구원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처럼.

아직 자신의 복수는 끝이 나지 않았다. 다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의 몸에 칼자국을 새기던 변태, 가학적인 취미를 가진 놈까지 몇몇은 기억하고 있다.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 자신의 복수를 완성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인생 목표다.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낸 603호가 건물밖으로 나서며 처음 본 광경은 푸른 하늘과 높은 빌등, 그리고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좀비떼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진한 화장을 한 가죽옷을 입은 여자였다. 그런 광경에 두렵다기 보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의 푸른색 바코드와 달리 저 이상한 화장을 한 여자의 이마에 박혀 있는 붉은색 바코드가 말이다. 더 이상 좀비는 두렵지 않았다.

" 호오, 너 저 안에서 나오는 길이야? 설마 다 죽인거야? "

603호는 피 하나 묻지 않은 자신의 나체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모습에 깔깔 웃은 가죽옷의 여자가 깊숙이 숨을 들이키며 다시 말했다.

" 흡, 하아~ 이렇게 신선한 피냄새가 짙게 풍기는데 그걸 모를까. 재미있네. 너 이름이 뭐야? 난 삐에로라고 해. 꼭두각시의 주인, 삐에로. "

" 내.. 이름? "

그동안 숫자로 불려졌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이름. 잊어버렸다.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모르겠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603호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로보던 삐에로가 말했다.

" 이름이 없어? 그럼 네 이름은... 다크, 다크 어때? 아하하하.. "

어느새 검은 안개가 옷처럼 그녀의 전신을 감싸앉는 모습을 보면서 삐에로가 박수까지 치면서 즐거워한다. 과장된 몸짓, 헤픈 웃음, 마치 광대같은 그녀를 보면서 603호가 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다크.. 좋네. 다크.. 다크라.. "

이 친숙하고 아름다운 어둠. 다크라는 이름이 꽤 마음에 드는지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연신 다크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 너 맘에 든다. 나와 같이 가자. "

" .. 난 복수를.. "

" 크큭, 그 복수 같이 하지 뭐, 재미있을꺼 같은데 말야. 호호호, 그 전에 저 안에 있는 여자들을 옮겨주는게 어때? "

삐에로는 다크의 상황, 이 건물의 목적, 현 상태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런 제안을 했다. 다크는 마음속에 조그만 부담이라도 있었는지 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됐건 이대로 그녀들을 둔다면 바뀌는건 없을 것이 뻔했으니까.

다크의 긍정적인 대답을 받은 삐에로가 좀비를 한편으로 물리자 한무리의 인간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 예정대로 움직여. 이 건물내에 있는 인간을 수거한다. "

" 네.. 네. "

수동적인 모습의 인간들은 그녀에게 고개조차 들지 못한채 굽신거리며 건물안으로 서둘러 진입했다. 안에 벌어진 참극에 잠시의 소란이 있었지만 익숙한 듯 빠르게 건물안에 남겨진 사람들을 모았다. 일사분란하게 모인 인원들을 통제한 인간들은 신세계라고 소개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좀비가 호위하듯 그런 그들을 감싸고 이동하는 모습은 이상함을 넘어 괴기했다. 이미 겁에 질린 여자들은 비틀거리면서 끝까지 넘어지지 않고 따라갔고 그들의 모습은 곧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쉬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병실을 울리고 있다. 작은 체구의 다희가 얼마전에 있었던 대결을 떠올리며 허공에 이리저리 레이피어를 찔러넣고 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듯 미간을 찌푸린 그녀의 옆에는 땅바닥에 앉아 정좌를 한 바위가 상체를 벗어던진채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병실을 왔다갔다 하는 간호사들은 이런 모습들이 익숙한듯 침대에 누워있는 차돌의 상세를 차트에 기록하고 주사를 하는등 조치를 하면서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피하는 모습이었다.

바위의 강철같은 근육이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열기를 피어내자 그의 몸 주변으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어느순간 번쩍 눈을 뜬 바위의 눈으로 광채가 흘렀다 사라졌다.

" 휴우. 괜찮네. "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바위는 만족스러운듯 긴 숨을 내쉬었다. 그 동안 바위의 몸은 보디빌더처럼 울퉁불퉁했다면 지금의 바위는 겉모습으로 봐서는 그냥 자잘한 근육으로 꽉찬 몸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큰 몸집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키는 좀 더 자라나 이미터에 가까웠다.

뼈 밀도가 올라가 강철보다 단단해졌고 근육이 압축되고 변형되어 단거리 선수가 아닌 장거리 선수처럼 변한 듯 했다. 이젠 쇠사슬을 온몸에 감아도 예전의 덩치처럼 보일뿐 비대하거나 불편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폈다한 바위는 그에따라 꿈틀거리는 근육과 세포하나하나를 느끼며 달라진 자신을 만족스럽게 보며 어느새 칼질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는 다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 아직이야? 아직 만족하지 못했어? "

" ··· 응, 바위가 너무.. 빨라.. 따라가지.. 못해. 속상해. "

바위는 각자의 능력은 상대적인 것이라 말해주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그녀 역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자신의 곁에 있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뼈를 갂는 수련을 스스로 하고 있는 그녀가 대견스러웠다.

자신은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수련했고 덩달아 그녀 역시 자신과 비슷하게 수련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녀의 발전은 눈부셨지만 상대적인 자신과 함께 있어 그 빛이 바래진 느낌이었다.

손을 뻗어 다희의 머리를 쓱싹 쓰다듬은 바위가 말보다 행동으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그것이 정답인 것이다.

세상에 자신보다 강한 사이퍼가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또 한명보다 여러명이 뭉친 힘은 그 상성에 따라 몇배의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바위였다. 그렇기에 단순히 한명의 사이퍼보다 강하다고 해서 수련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자신,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은 어느새 잠에서 깬 차돌이 바라보고는 입을 열어 말했다.

" 헤에. 바,바위야.. 보,보기가 조,좋아. "

" 형, 언제 깼어? 불편한 곳은 없고?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차돌의 눈빛은 따뜻했다. 세상에 남겨진 단 하나의 핏줄, 그 동생 바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듯 보였다. 그런 눈빛으로 다희를 바라보며 말을 있는 차돌이었다.

" 다,다희야. 바위..를 자,잘 부..탁해. "

살짝 얼굴을 붉히며 긴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손을 감싸주는 차돌의 손은 따뜻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병실 분위기를 깬 것은 병실문 노크소리였다.

잠시후, 병실의 문을 열고 모습을 보인 사람은 노인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들어선 것이다. 그의 뒤로 수행원차림의 건장한 사내들 두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 이렇게 불쑥 찾아와 미안하네. 아까 저 아가씨의 대련을 의도치 않게 보았네만.. "

노인이 찾아온 이유는 명확했다. 다희가 보여준 힘의 효용을 너무 잘 이해하고 어디에 써야 할 지 알고 있는 기업인 중 하나인 것이다. 과거 거대 재벌을 운용하고 모든 권력을 누린 인물들.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재벌이란 이름의 기업인. 과거의 영광에 대한 부산물이자 찌꺼기 같은 존재들.

그들의 신색과 옷차림을 본 바위는 흥미를 잃고 다시 정좌를 한 채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발끈한 노인의 수행원이 나서려 하자 지팡이를 들어 막은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 허허, 난 대동물산의 주인일세. 정부와 연이 닿아 군용식량을 대주고 있지. 자네들도 보아하니 혼자가 아닌듯 한데. 어떤가, 나와 손잡고 이 세상을 좀더 풍요롭게 살고 싶지 않은가? "

쉽게 말해 너에게 식량을 주겠으니 나의 밑으로 와서 무력을 보태라는 말이었다. 이 노인은 자신 나름의 등가교환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바위나 다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말이었다. 여전히 아무말 없는 바위를 쳐다본 노인은 혀를 차며 몸을 돌려 나가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찾아오게, 1201호에 입원중에 있으니 말일세. 난 자네들 같은 사이퍼? 초능력자들에게 관심이 많아. 아마 놀라운 조건을 들을 수 있을껄세. "

끝까지 자신감을 놓지 않는 노인은 자신의 할말을 다 한듯 수행원과 함께 돌아 나갔다. 그 이후에 정치인, 재벌, 심지어 정부관료까지 접근해 비슷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갔다.

바위는 설마 이런 가벼운 다툼에 이정도까지 주목을 끌지 몰랐는지 나중에는 눈썹을 찡그린 채 아예 몸을 돌려버렸다. 다희 역시 더 이상 듣기 싫은 표정으로 병실문을 잠가버려 그제야 조용해진 병실이었다.

하지만 간호사들이 들어와 치료를 해야 하는 병실의 문을 항상 잠가둘 수 없는 실정이었기에 대책이 필요했다. 그런 바위의 머리에 폴리스 조직과 헤드, 핸드가 들어왔다.

" 아무래도 핸드나 헤드에게 연락을 취해야.. "

바위가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또 다시 노크가 들려왔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은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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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이퍼(2) 18.06.27 1,080 24 21쪽
29 사이퍼(1) 18.06.26 1,081 22 20쪽
28 쉘터(7) 18.06.25 1,070 27 20쪽
27 쉘터(6) +2 18.06.24 1,192 24 20쪽
26 쉘터(5) 18.06.23 1,067 22 22쪽
25 쉘터(4) 18.06.22 1,067 21 21쪽
24 쉘터(3) +1 18.06.21 1,111 2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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